신부의 신부
김대술 신부
주름살 구부러진 골목 복덕방, 긴 밤 할 일 없는 서너 명 모이면 고스톱이 최고다. 이것저것 없는 사람들, 겹겹이 동지 싸매다 풀던 입춘 지나도 겨울바람 매섭다. 아이고 우리 형님 오늘 밤도 짤짤이로 용돈벌이 하시네. 돈도 돌다 보면 돈의 무게가 있다. 어이 어서 와. 한 판 하려고. 쌍칼, 마빡이 아직도 살아있네. 방앗간 그냥 지나가면 섭섭하잖아요. 어제 국가장학금 수급비 나온 날이지. 수원역에 돈이 좀 풀렸어. 이런 날 한 목 잡아야 막걸리, 담뱃값 충당할 수 있지. 동전 세 개만 빌려주세요.
섬에서는 배가 한 척 두 척 왔다 갔다 하는 겨울 노름판, 몽땅 털려야 끝나는 도박의 비정함, 그날 밤 노숙인들이 가진 돈을 다 따버렸습니다. 심리전의 명수인 저는 어린 시절 돈 세는 비서를 두고 짤짤이를 하곤 했었지요. 차르륵, 많이 가지지도 않고 동전 몇 개면 됩니다. 학교 끝나면 선수들과 단골 2층 중국집에서 짭짤하게 놀았습니다. 바람 부는 섬이 되고 싶은 도시, 밤 12시 넘은 수원역, 판돈이라야 기껏 십만 원 미만, 쌈 치기가 끝나고 걸판지게 한잔했지요. 통닭과 피자, 아가리가 미어지고, 쫀득쫀득한 족발에 막걸리는 막갈리로 변했는지 부실한 다리는 풀어지고, 혀는 꼬부라져 긴긴 겨울밤 휘리 휘리, 흔들흔들 추운 날 가진 것 없는 노숙인들과 함께 낄낄대며 기름기 단단히 칠했는지 모르겠습니다. 2년 전 이곳 강화도 발령받기 전, 13여 년을 수원역 노숙인들과 지지고 볶은 세월 그립습니다.
살길 찾아 입도한 선조들 뒤로하고 무엇을 찾겠다고 섬을 나왔는지. 신학교 가기 전 광화문에서 열댓 개, 정상적인 직장은 아니고 그냥 밥벌이했었지요. 포항 군대 70년대 후반부터 엄혹했던 80년대 다 흘러갈 동안 참 질기게도 살았습니다. 겨울밤에는 김밥과 찹쌀떡 장사를 했지요. 청량리에서 물건을 떼다가 광화문에서 노량진, 밤 9시부터 새벽 서너 시까지 잘하면 일 년 생활비, 단과반 경일학원 수강료를 벌 수 있었지요. 장사를 거의 다 마치면 마지막 코스, 서울역 맞은편 ‘양동’은 황석영 선생님의 소설 <심청>, 연화암에 안착한 주인공. 몇 개 남은 김밥과 찹쌀떡을 집창촌의 누님들과 함께 먹으면서 인생을 배웠지요. 참 그리운 님들이었습니다. 어찌어찌하다가 신학교에 들어갔고, 또 어쩌다 보니 이곳 성공회까지 와서 이제까지 밥벌이 어영부영 25여 년 징글징글 흘러갔습니다.
사제가 되면 일반 교회에서 사목을 담당하지만, 첫 발령지가 어쩌다가 남양주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 나환자와 함께 성직 생활을 하게 되었지요. 인사발령 따라 시골교회, 나눔의 집, 가족 단위 노숙인 쉼터를 전전했지요. 결국 수원에서 노숙인들과 함께한 슬픔과 고통과 기쁨이 저를 영글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적은 돈이지만 고정적인 월급을 받고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었다는 감사함이 있었습니다. 가족들, 노부모님 생활비, 저의 비상금 술값에도 긴요하게 사용되었지요. 물론 노름은 손을 씻었습니다. 만약 성공회 사제가 되지 못하고 왔다 갔다 장사나 하고, 막일이나 기웃기웃했으면, 아마 지금쯤 영락없이 노숙인이 되었을 것이고, 일찍 세상에서 버림받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아직도 의문인 것이 하느님 빽 때문인지, 저가 폼 잡고 세끼 밥숟가락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할 뿐입니다.
고교 시절 ‘국어2’ 선생님께서 저의 작문을 보시고 그대는 시인이 되어야 하겠어. 이 말 한마디 때문에 시인, 가슴속에 불가능하고 이룰 수 없는 높은 이상을 꿈꾸었지만, 미친놈처럼 비틀비틀 밥만 축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독한 밥벌이, 경제적인 독립이 필요한 것을, 서울 객지 생활하면서 뼈저리게 알아버린 것이지요.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 우당 독서실에 있었습니다. 연탄불에 밥해 먹던 세월이었지요. 삼수를 사수하고 오수까지 가야 한다고 모진 아르바이트하면서, 토스트 한 통을 사면 한 끼에 몇 개를 먹어야 하는지 계산해야 했던 시절을 보냈습니다.
세월 흘러버린 지금, 주중에는 사회복지 시설에서 근무를 하기 때문에 월급이 이곳에서 나오고 있지요. 교회의 사목자들보다는 엄청 많이 받습니다. 후배들이 저만 보면 형 술 좀 사주라. 잉잉댑니다. 야, 그동안 돈맛 볼 기회 없었고 나도 은퇴 후 비자금 만들어야 해. 이리 빼고 저리 빼다가 자주는 못 사고 어쩌다 술과 밥을 사면, 이놈들이 성에 차지 않은가 봅니다. 집으로 쳐들어와서 밥 먹자고 저를 끌고 가지요. 허허 그려 가자. 이럴 때 비상금이 요긴하게 사용됩니다. 강화 창리에 혼자 살고 있는 집에, 신용카드 없애버린 대신 현찰 100만 원이 잘 숨겨져 있지요. 아무 때나 외로운 친구가 올 때면 사용할 놈들입니다.
쫑알쫑알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야아. 나도 현찰이 있다고. 언제든지 쓸 돈이 있다고 즐거워한답니다. 적당히 놀고 다음 달 월급날이 되면 또 100만 원을 채워 놓지요. 노후 복지가 제대로 되지 않은 교단에서 도움받을 일은 별로 없습니다. 은퇴하면 개털인 것이지요. 겨우 국민연금 몇 푼 받고 노령수당을 받아야 할 형편입니다. 그래도 비상금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참 잘했다고, 언제든지 술 먹을 수 있다고, 이죽이죽 댑니다.
성과 속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요일이 되면 깔끔하게 싹 씻고 성당에 가지요. 공식적인 직업이 신부인 저로서는 일요일 미사와 함께 거룩한 사제가 되곤 한답니다. 성공회 미사는 예전을 중요시합니다. 한 편의 연극을 감상하는 것처럼, 오감을 자극하는 전례가 참 아름답지요.
소담스럽게 수놓은 초원의 들풀 웃는 소리 들리듯, 겨울바람 서로가 갈대숲 희롱하는지 청둥오리 날아오르다 마지막 물 한 방울 호수 위로 떨어지는 종소리인지, 별들의 명멸明滅 속에도 수 천억 년 놀고 있는 아이들 광활한 벌판인지, 거역할 수 없는 원시 시대 소환하는 유향과 연기,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하는 영성적 시원始原인지, 몸을 내어놓고 묵상하는 불의 향연, 삼라만상 깨워 스스로 무거웠을 범종, 잃어버린 본향은 오직 ‘지금 여기에’ 스치듯 오시는 영혼의 정화, 찬란한 태양입니다.
역사 이래 반복되는 슬프디슬픈 땅을 쓰다듬어 하늘이 되게 하고, 거만하고 옹졸한 하늘을 끌어내려 땅의 사람이 되게 하는 사제의 숙명을 일깨우기도 하지만 모두가 찰나인지 모르겠습니다.
혀를 통해 목을 강타하는 붉은 포도주의 향긋함 바로 뒤에, 면병麪餠이 닿아 파고드는 부드러운 촉감은 낯선 여행지에서 뜨겁게 사랑했고, 죽기 전에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마지막 뒤돌던 눈빛, 그리운 님의 촉촉한 입술인지. 모든 것을 보고 있는 듯, 아침 햇살 타고 스테인드글라스 파르스름 떨리며 오시는 태양의 장엄한 바라봄. 성당의 미사는 지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생령들에게 금강석보다 빛나는 슬픔의 결정체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밥 얻어먹을 일 걱정입니다.
이중섭 평전에서 직업을 가지지 않는 이유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곤궁했던 화가의 생각은 맹렬한 창작활동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지요. 동시대 인물이지만 환경이 달랐던 박수근 화가와는 분명코 다른 삶이었습니다. 어찌어찌하다가 식구들 이끌고 서귀포에 살면서, 바다 게를 잡아먹고, 구멍치기 낚시를 하며 연명했고, 초상화를 그려주고 살았던, 가족들은 일본에, 돌보는 사람 하나 없이 서대문 시립병원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던 이중섭 화가를 생각하면, 첼로 곡 <재클린의 눈물>이 들립니다.
목구멍 포도청 무섭습니다. 이번 주는 살그머니 로또 복권 한 장 사겠습니다. 은퇴 이후 가난스러운 생활비 걱정 없이, 그동안 개을렀던 독서와 사색 빈둥빈둥, 아찔하고 까마득한 절벽의 끝 난간에 고쳐 앉아, 글쓰기에 전념하고 싶은 도둑놈 마음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참, 『시와산문』에서 원고 청탁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성가시기도 하고, 글을 써야 할 이유도 모르겠고, 못 보낸다고 연락했지요. 출근하여 메일을 확인했더니, 원고료 준다는 말씀에 동공이 확 열렸지 뭡니까? 하늘과 땅의 만나를 먹지 못하고 사회복지사로 직업을 가진 것이 죄인지, 전생에 업이 많아 사제로 평생 기도하면서 살라고 명령을 받았는데, 그렇게도 하지 못하고 사는 저는 도대체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영부영 갈 길 얼마 남지 않고, 익지도 않았는데 해 떨어지고, 내 이럴 줄 알았습니다.
지구촌의 모든 문제의 블랙홀인 팬데믹 시대, 인간의 이성이나 권력, 그 무엇으로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재앙을 막을 수 있을까요? 아름답고 푸른 작은 별에서 생명체가 사라질 것을 생각하니 밥맛도, 살맛도, 그 어떤 흥미도 없습니다. 왔던 길 가는 것인지, 가야 할 길이라도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나무 하나 심어야 할 희망을, 행동해야 하는 운명이라서 원고료 주시면, 한반도의 근원적인 비극의 뿌리가 분단에 원인이 있다는 생각에,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여 통일운동 단체에 기부하겠습니다.
강화읍 야행
뒤꿈치 닳은 신발들 꿈꾸다 깬 듯 여름철 장마 생각의 빗줄기 굵다 처마 밑 웅크린 덧니로 빛나는
강화 온수리 온천수 뒤틀리듯 읍내로 가는 전등사 옛길 도편수만 그랬을까 손때로 붉은빛 목상이 앵두처럼 붉다, 붉어
노스님이 주신 막걸리 서너 병 부족한 취기 달래다 핑계 삼아 담배 사러 갔지요 편의점에 발목 묶인 고양이 시름 쌓이듯, 쳇바퀴 풍경소리도 티이브 화면 속에서도 현기증 피어오르고요 담벼락 모퉁이 돌아가는 암고양이 속내로 무너져가는 냄새 따라 어슬렁어슬렁 걷는 듯,
갯벌 강화에서, 한 컷
환하다 못한 쨍한 바다는 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수평에 수평들이 이어지는 끝 눈이 시리다 뻘과 경계를 이루며 검푸른 무늬를 흔들고 있었다 그리움은 잊어버린 이름으로 찰랑거리지만 눈 맞춘 정령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물결이 떨리듯 몸을 맡기고 갯 흙에 뭉개지며 쏟아지는 오랜 비린내 아리다 어디에서 날아든 석간신문 한 조각, 물 컹 한 장의 꿈 숨 가쁘고 이젠, 작고 아름다운 푸른 별 볼 수 없어 부둥켜안은 바다도 장엄한 아우성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