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묻은 신앙의 흔적들 고스란히 남아 있어 감동 ... 기억하고 순교신앙 계승해야 |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이영훈 목사)는 지난 9월 13일 교계 기자단을 초청해 ‘2023년 근대 기독교 문화유산 답사’를 진행했다.
현장에서 사역하고 있는 교계기자들이 근대 기독교의 피묻은 역사를 품고 있는 강화 땅을 밟고, 잊혀진 역사를 기억하며 순교신앙을 가슴에 새겼다.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이영훈 목사)은 지난 9월 13일 교계 기자들을 초청해 ‘2023년 근대 기독교 문화유산 답사’를 진행했다.
‘우리에게 근대는 어떻게 왔을까?’ 주제로 진행된 첫 답사에는 한교총 신평식 사무총장, 정찬수 법인사무총장, 이상택 사무국장, 허은철 교수(총신대 역사교육과), 교계 기자들이 동행했다.
강화대교를 지나 오른쪽에 위치한 ‘강화기독교역사관’은 1993년 강화기독교선교 100주년기념사업회를 조직해 믿음으로 이 땅을 지켜 온 선조들의 신앙이야기를 잊지 말고, 후세에 전한다는 취지로 설립을 시작하여 마침내 2022년 3월 21일 완공했다. 더구나 이 땅은 강화인들에게 버려진 땅이었다. 매장지로 사용하던 죽음의 땅을 부활의 땅, 생명의 땅으로 새롭게 일구어 의미를 더했다.
고려 때는 몽고의 말발굽아래 고통을 당하고, 조선말기에는 통상을 요구하는 프랑스, 미국, 일본의 거센 폭정에 시달렸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강화도조약을 거치면서 상처입은 강화인들은 서양 선교사들의 선교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동방의 빛 대한민국을 위해 끊임없이 선교의 문을 두드렸다. 첫 발을 내딛은 선교사는 감리교와 성공회였다. 1892년 제물포를 중심으로 선교하던 감리교 존스 선교사는 처음에는 강화유수에 문전박대를 당했으나 결국 이승환이 예수를 믿고, 그의 어머니가 선상에서 세례를 받으면서 감리교 첫 교회인 교산교회가 설립됐다. 그 후 홍의교회가 창립되면서 강화도 복음은 급속하게 확장됐다.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에는 감리교와 성공회를 시작으로 복음이 어떻게 확장되어 갔는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에는 감리교와 성공회를 시작으로 복음이 어떻게 확장되어 갔는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빚진 자의 심정으로 노비 문서를 태운 종순일 목사, 민초들을 깨워 독립의 횃불을 든 이동휘, 조봉암, 조광원, 시각 장애인을 위해 한국 최초로 점자교과서를 출판한 박두성 선생 등 수많은 민족의 선각자들의 감동적인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최훈철 목사는 “그들이 남긴 역사는 유품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역사박물관을 나가면서 무엇을 가슴에 품고 떠나게 할까 고민하다 마지막 방은 그들의 모든 흔적을 시(詩)에 담았다”면서 “시를 읽으면서 순교적 신앙을 잊지 않고 기도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성공회는 강화의 관문인 동쪽 갑곶이에서 첫 선교사 위너를 통해 성니콜라회당을 만들어 고아들을 모아 선교를 시작했다. 고종이 영국인의 도움으로 해군학교를 설치해 민족의 독립을 도모했던 숨은 이야기도 있다. 통제영학당은 결국 일본의 방해로 물거품이 되었지만 그 관사에 방주 모양의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이 설립됐다. 한국인의 아픔을 이해한 성공회는 한옥으로 지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강화도의 피묻은 복음 역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기억이다. 감동과 아픔이 밀려왔다. 강화 땅을 밟으며 이 시대 한국교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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