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
결혼 1년차 김모 씨. 2세를 낳고 싶지만 주택 마련하랴, 대학원 다니랴 임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다. 다만 나이 들어 임신하면 아이와 산모 모두 힘들다고 하니 빨리 잉태하는 편이 낫겠다 싶다. 그래서 1, 2년 뒤 임신하겠다고 계획을 세워보는데, 피임을 철저히 하지 못하는 편이라 그마저도 뚜렷하지 않다. 계획 임신을 표방하는 그도 결국엔 무계획 임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김씨 같은 사람이 절반에 이른다. ‘대한산부인과학회지’에 실린 ‘계획 임신율과 계획 임신에 미치는 관련 요인 분석’이란 논문에 따르면 200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계획 임신율은 51.4%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계획 임신과 무계획 임신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계획 임신을 적극 권한다.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박문일 교수는 “계획 임신부 그룹은 임신 초기 기형 유발 물질에 노출된 경험이 있는 사람이 38%인 데 반해 무계획 임신부 그룹은 77%로 2배나 높으며 노출 정도도 약물은 3배, 알코올은 2배, 방사선은 2.5배 높게 나타났다”는 점을 들어 무계획 임신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계획 임신은 그 자체로 장점이 많다. 부부의 건강 상태를 미리 점검하고 대비할 수 있어 산모는 물론 남편의 몸과 마음이 편해질 수 있으며, 원하는 시기에 임신할 가능성이 높아 심리적으로 안정돼 태교에도 좋다. 그리고 계획이든 무계획이든 임신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임신 전 검진’이다. 산모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아기가 자라날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김지연 교수는 “임신 중에 질환이 발견되거나 악화되면, 임신 때문에 치료에 제한이 생기고 질환에 따라 산모의 질환이 아기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임신 전 이상 여부를 확인한 뒤 치료받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유전성 질환이 있는 예비 엄마가 검진을 받으면 임신 전 관리로 선천성 대사 이상, 신경관 결손증 등 태아 기형의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 착상 전 유전검사로 건강한 수정란을 택해 자궁 내에 착상시키는 기술도 개발된 바 있다.
계획 임신 해야 심리적 안정·태교에도 유익 ‘삼성미래산부인과의원’ 도움을 받아 기자가 직접 ‘임신 전 검진’을 해보기로 했다. 결혼 1주년을 앞두고 이참에 계획 임신의 첫 단계에 돌입해볼 생각이었다. 일선 병원에서 특이사항이 없는 예비 산모에게 진행하는 검진은 크게 3가지다. 자궁경부암 검사, 부인과 초음파(자궁초음파)검사와 혈액검사를 통한 풍진 항체 여부, B형간염 항체 여부, 갑상선 기능 체크가 그것. 풍진 바이러스는 기형 유발인자이기 때문에 태아 기형, 유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풍진 항체를 확인하는 것은 검사의 기본 중 기본이다. B형간염 항체를 확인하는 것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7, 8%가 B형간염 보균자인 데다, 임신 중 B형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산모에게 간경변증이나 간암이 진행될 수 있고 유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풍진 항체나 B형간염 항체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 수준이 높아 검진율이 높은 편이다. 문제는 갑상선 기능 확인이다. 검진을 담당한 최노미 원장은 “갑상선이 좋지 않으면 뇌 발달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아 태아의 뇌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갑상선 기능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민망한 자세로 진찰대에 누워 자궁경부암 검사의 가장 기본인 세포진 검사를 받았다. 질 속에 검사 도구를 넣어 자궁경부 세포를 채취한 뒤 현미경으로 암세포가 있는지 살펴보는데, 오진 가능성이 20~50%로 높은 편이라 HPV 검사 등을 병행하지만 대부분의 예비 산모는 세포진 검사만 받는다. 그러고는 질경(膣鏡)으로 자궁의 여기저기를 보며 자궁초음파 검사를 마쳤다. 자궁 및 난소의 종양, 자궁근종 유무를 판단하기 위해서인데, 검사하는 내내 자세 때문에 불편했지만 이상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오른쪽 팔목에서 혈액을 채취하는 것으로 검사를 마쳤다.
3일 뒤와 일주일 뒤에 각각 ‘갑상선 정상, 피검사 결과 풍진·B형간염 항체 모두 있습니다’ ‘자궁암 검사 결과 정상입니다’라는 문자가 온 것으로 검진은 일단락됐다.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비용은 13만~15만 원(보건소에서는 절반 이하 가격에 진행된다).
|
다행히 기자는 항체가 있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없다고 해도 걱정할 건 없다. 예방주사를 맞으면 되기 때문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는 임신 전 풍진 항체가 없으면 풍진 예방접종을 하되, 풍진 백신은 생백신이기에 임신 중에는 금기이고 적어도 임신 3개월 전에 접종할 것을 권한다. 풍진 예방접종은 한 차례만 하면 된다. 단 B형간염 예방주사는 6개월에 걸쳐 세 차례 접종해야 하고, 첫 번째와 두 번째 접종은 6주 간격, 세 번째 접종은 첫 번째 접종 후 6개월 뒤에 한다. 임신을 계획 중이라면 마지막 접종 후 적어도 1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또한 갑상선 저하증이 나타났을 경우 치료한 뒤 임신해야 한다.
이 밖의 임신 전 검진이 있는데, 35세 이상 예비 엄마의 경우 유방암 검진이나 당뇨·고혈압 등을 체크하는 경우가 많다. 간기능 검사, 매독 에이즈검사는 건강검진의 차원에서 하는 것이 좋고, 산모가 RH 음성이고 태아가 RH 양성인 경우 특별한 관리를 받지 않으면 유산·조산·사산이 될 수 있으므로 혈액형을 안다고 해도 다시 검사해야 한다.
한편 임신 시도 7개월 전에 A형간염 예방접종을 권하는 전문가도 있다. 첫 접종 뒤 6개월이 지나 두 번째 접종을 하면 평생 면역이 되는데, 그것을 놓쳐서 임신 초기 A형간염에 걸리면 유산, 조산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자궁경부암 백신은 임신 전에 예방접종하는 편이 좋지만 필수사항은 아니다. 6개월에 걸쳐 3번 접종해야 하고, 임신 전 접종은 권하지 않는다.
생리통 그냥 참아서는 안 돼
주의해야 할 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감염성 질환은 수정란의 착상에 문제를 일으켜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잘 예방해야 하는데, 손만 잘 씻어도 질환의 70%를 막을 수 있다. 평소 당뇨병·고혈압 등 지병이 있는 여성이라면 임신 전부터 상담을 받아 적절한 약물 처방을 받아야 한다. 또한 변비는 난관 염증을 일으켜 임신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고치는 것이 좋다. 고치지 않으면 임신 중 치질이 생길 수 있고, 변비가 있으면 딱딱해진 대변이 치핵을 건드려 통증과 출혈이 더 심해지고 질염, 생리통, 성교통, 월경과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생리통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생리통의 가장 큰 원인은 가임기 여성 7%가 앓고 있다는 자궁내막증으로, 불임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하루빨리 치료해야 한다. 또한 피임약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두 번의 월경주기 동안 월경을 하지 않았거나, 월경이 두 번 이상 연속으로 해서 40일 넘게 지속되면 병원에 가야 한다. 전체 여성의 3%에 해당하는 무월경자는 칼슘과 엽산을 보충하면 증세가 완화된다는 보고가 있으므로 영양에 힘쓰는 것이 좋다. 걷기, 수영, 요가 등을 하면 골반 내 생식기관이 자극을 받으므로 좋지만 격렬한 운동은 자연 임신에 해가 되므로 피한다.
그리고 배란일 즈음에 ‘하늘을 자주 봐야’ 한다. 배란일 5일 전부터 3일 후까지 2, 3일에 한 번씩 부부관계를 하는 것이 좋은데, 무엇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임신이 아니라 즐거움을 위해 부부관계를 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배란일 계산은 간단하다. 월경주기에서 14를 뺀 수에 마지막으로 한 월경 시작일을 더하면 된다. 예를 들어 월경주기가 28일이고 월경을 6월 3일에 했다면 배란일은 6월 17일이 되는 것이다. 기초 체온으로도 배란일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일어나자마자 누운 상태에서 전용 체온계로 재 평상시보다 0.5~1℃ 올라갔다면 배란일이라고 볼 수 있다.
임신 준비 중에 주의해야 할 식품과 약 술, 담배, 여드름 치료제 NO! 엽산제 YES! | |
여성은 적어도 임신 시도 2주 전부터 금주해야 한다. 알코올중독 수준이 아니더라도 임신 전에 술을 자주 마시면 유산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고, 극단적으로는 태아알코올증후군이라 부르는 발달장애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아알코올증후군이 있는 아이들은 비정상적인 얼굴 모습, 비정상적인 발달과 학습장애, 산만한 활동 등의 특징이 나타난다. 게다가 음주는 임신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기도 하다. 다만 요리할 때 사용하는 술은 양이 적은 데다 조리 중 알코올 성분이 25%밖에 남지 않으므로 임신에 해롭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