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나에게 일생일대의 행운은
참선과 염불을 깊이 체험하여
마침내 둘이 하나임을 알게 된 것이다.
출가 후 처음 십 년 동안은
오직 주인공의 자리를 찾았다.
“나는 누구인가?”
이 한마디를 가슴에 품고
치열하게 궁구했다.
십 년 가운데 처음 이 년쯤 되었을 때
화두가 ‘의관’이 되면서부터는
자나 깨나 화두와 한덩어리가 되어 살았다.
몸을 돌보는 것조차 잊은 채
애를 쓰고 또 애를 쓰다 보니
육체적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던 1996년.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더 이상 무엇을 붙잡고 갈 것인지조차 막막했던 그때,
한 도량에서 천일 동안 잠이라도 자보자는 심정으로 선산 도리사에서
‘나무아미타불’ 천일기도를 시작했다.
그것이 벌써 여섯번째 천일기도로 이어졌다.
당시에는 그저
살기 위해, 견디기 위해
천일의 기도에 매달렸던 것 같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돌아보니
그 선택이야말로 내 수행 인생에서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염불을 하면서 화두를 버린 것이 아니고,
화두를 들면서 염불을 버린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깊이 들어가고 또 들어가다 보니
염불과 화두가 하나가 되는 자리를 만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비로소 수행방법에 대한
온갖 법집(法執)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때 선원에서 화두 중심으로 수행하던 이들이
나를 두고 염불승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그런 말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직접 걸어보았기 때문이다.
선의 길도 걸어보고
정토의 길도 걸어보면서
두 길이 마침내 하나로 만나는 지점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곳에 이르러 보니 알겠다.
수행의 방법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궁극에는 하나의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큰 산을 오르는데
어찌 한 길만 있겠는가.
동쪽에서도 올라가고
서쪽에서도 올라가며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올라간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길과 길이 만나고,
갈라졌던 길들이 하나로 합쳐진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서는 길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길로 올라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상에 도착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수행도 그러하다.
선이냐 정토냐,
화두냐 염불이냐를 따지는 마음은
아직 길 위에 있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편견과 집착을 하나씩 내려놓고
직접 깊이 들어가 보면
어느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이 올라온다.
“희유하고 희유하구나.”
그때부터는
수행의 방법론에 더 이상 매이지 않는다.
화두를 들어도 자유롭고,
염불을 해도 자유롭다.
걷다가 염불하고
앉아서 화두를 들고
숨 쉬는 순간순간에도
부처님과 하나가 되는 길을 걷는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내가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연과 시행착오가
나를 이 자리까지 데려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선도 감사하고
염불도 감사하다.
화두를 주신 인연도 감사하고
나무아미타불을 만나게 해준 인연도 감사하다.
이제는 그 어느 것도
다른 것이라 말할 수 없다.
길은 달랐지만
향하는 곳은 하나였고,
수행은 달랐지만
마침내 만나는 마음은 하나였다.
'나무아미타불'
이 한마디 속에
걸어온 모든 길이 있고
이 한마디 속에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있으며
이 한마디 속에
마침내 돌아갈 그 자리도 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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