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책은 월풀라 라훌라 스님의 저서 What the Buddha taught를 고법엄선생이 한문으로 번역한 것임.
[책 속으로]
네 번째 거룩한 진리는 둑카의 그침에 인도하는 길이다. 이것은 양극단을 피하는 중도로 알려져 있다.
중도는 일반적으로 거룩한 여덟 길(八正道)이라고 언급된다.
바른 이해 正見
바른 생각 正思惟
바른 말 正語
바른 행위 正業
바른 생계수단 正命
바른 노력 正精進
바르게 마음을 일깨우기 正念
바른 정신집중 正定
이 여덟 요소는 불교 수행과 교육의 세 가지 진수(三學), 즉
(1) 윤리적 행위(戒)
(2) 마음 닦기(定)
(3) 지혜(慧)를 증진시키고 완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윤리적 행위(戒)는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보편적 사랑과 자비라는 광대한 개념으로 짜여 있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가르친 토대 위에 있다.
많은 학자들이 불교에 대해 말하고 글 쓸 때에 부처님께서 가르친 이 위대한 이상을 잊고서 메마른 철학적 형이상학적 헤매임에만 탐닉하고 있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부처님께서는 많은 이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상에 대한 자비심에서 가르침을 폈다.
바른 생각 正思惟는 사심 없는 자제와, 집착을 여의는 것과, 사랑의 생각, 비폭력의 생각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사심 없는 집착의 여읨, 사랑, 그리고 비폭력이 지혜의 측면으로 분류된 것은 매우 재미있고 중요하다.
이는 진정한 지혜가 이 거룩한 성품들에 의해 주어진다는 것과, 이기적인 욕망과 악의, 증오와 폭력적인 생각 모두가 지혜의 결핍이 초래한 결과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바른 이해 正見은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물을 진정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 네 가지 거룩한 진리이다. 그러므로 바른 이해는 결국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이해하는 것으로 환원된다. 이런 이해는 궁극적 실재를 보는 최상의 지혜이다.
일반적으로 이해라 부르는 지식은 기억의 집적으로 조건에 따른 앎隨覺이다. 진정 심오한 이해는 꿰뚫음 通達이라 부른다. 그것은 이름과 라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진정한 본성으로서의 사물을 보는 것이다.
[글을 본 후]
월폴라 라훌라 스님이 《부처의 가르침》을 통해 전하고자 한 팔정도의 가르침은, 불교가 메마른 관념적 철학이 아니라 삶 속에서 닦아야 할 구체적인 실천의 길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 교학적 통찰을 거울삼아, 저는 이를 한국 불교의 깊은 신행 전통 속에서 온전히 나의 신앙적 고백과 발원으로 이어고자 합니다.
공파 스님의 말씀입니다.
"지혜로 세상을 정확히 보아야 한다. 팔정도 가운데서 正見이 제일 앞에 나와 있는 것만 보아도 이 대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세상은 허상이다. 진실된 모습이 아니라 가짜다. 허상에 집착하지 마라. 거기에 집착하면 죽는다. 이것은 물속의 개에게 정신이 팔려 자기가 문 진짜 고기를 놓치는 어리석은 개의 경우와 같은 것을 경계하고 있다.
세상을 정확히 보라. 원효 스님은 이 세상을 허공의 꽃이라고 보셨다. 허공에는 꽃이 없다. 꽃이 보이면 안과에 가서 눈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 중생세계도 원래 없다. 중생세상이 실제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경전으로 마땅히 교정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금강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凡所有相 범소유상
皆是虛妄 개시허망
若見諸相非相 약견제상비상
卽見如來 즉견여래
세상 모든 것들은
다 허망하다.
만약에 눈에 보이는 형상을 형상 아닌 것으로 보면
즉시 부처를 볼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지식과 지혜의 안목에 머물러서만은 안 된다. 금강경은 본질을 내보인 말씀이지만 이 본질을 찾으러가는 행원의 수행이 필요하다.
《수마제장자경》에서는 만약 사람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지도 않고 믿지도 하며 그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죽음과 같은 것이라고 하셨다.
부처님오신날이 지나고, 이제 백중이 다가오고 있다. 지식으로 불교를 안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이런 기회에 입을 닫고 복을 짓는 수행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그게 진정 자신을 살리고 불교를 살리는 일이다.
본능 위에 지식이 있다. 그 지식 위에 지혜가 있다. 지혜 없이 죽는 인간을 불쌍히 보시고 부처님이 그 지혜를 열어 보이시려고 이 땅에 원대한 원력으로 오셨다.
그런 원대한 원력은 지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 올바른 지식이라면 그 위대한 스승에게 깊이 무릎을 꿇고 그분의 가없는 자비를 찬탄해야 한다. 그러면 그분이 구세주가 된다.
그렇게 부처님이 위대한 스승이면서 동시에 자비로운 구세주로 보일 때라야 비로소 불교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1년 365일이 부처님오신날이라 해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
일체개고, 삼계화택.
이 땅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무지개를 쫓는 것.
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7살 된 아들 라훌라를 데리고 궁궐을 나오셨겠는가.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리던 왕족들이 왜 출가를 했겠는가.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삶의 결과가 죽음인 것을.
설사 행복에 겨운 환희와 황홀한 기쁨의 절정을 누린다 한들 결과는 죽음일 뿐.
苦 火宅 속에 변치않는 행복은 없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은 지혜의 불을 밝히는 날.
백중은 삼보전에 공양을 올리며 공덕을 짓는 날.
거울과 복밭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거울을 보며 자신을 다듬고 복밭에는 씨를 뿌려야합니다.
거룩한 여덟 길을 따라가고 그 길을 지킬 수 있는 기초 공사는 복덕으로 이루어지고, 복 있는 사람에게는 환원의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성스러운 아들인 '라훌라(Rahula)'와, 20세기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위대한 불교학자이자 이 글의 저자인 '월폴라 라훌라(Walpola Rahula) 스님'이 이름을 공유한다는 점은 참으로 깊고도 흥미로운 인연입니다.
네 번째 거룩한 진리는 열반을 깨닫도록 인도하는 길입니다. 라훌라 스님은 "길을 그저 아는 것만으로는 길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그것을 따라가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저에게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의 생생한 숨결로 사성제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신 월폴라 라훌라 스님께, 그리고 진리의 안목과 복덕 짓는 수행의 길을 바로 세워주신 공파 스님께 만강의 감사를 올립니다.
한 방울 물의 기쁨은 바닷속으로 환원하는 것. 무상살귀(無常殺鬼)에 잡혀 죽기 전에 무상(無上)의 길로 발걸음을 옮겨 극락세계로 인도해 주신 스님들께 깊은 감사와 경배를 올립니다.
一終一
이제까지 월폴라 라훌라 스님의 부처님의 가르침과 함께 해 주신 여러 불자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원효센터 1부 회원 해운대 아줌마 The west 올림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오늘도 좋은 법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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