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도처 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오늘 1차 행선지는 표선면 가시리의 따라비오름입니다. 해발 342m지만 비고(比高), 즉 우리가 올라야 할 높이는 107m여서 그리 높지는 않습니다. 가는 길에 호랭이가 괴로워합니다. 덜컹거리는 승합차 뒷좌석에 앉아서 가다보니 어제 늦게까지 마신 술이 뱃속에서 요동을 쳐서 목구멍 밖으로 다시 나오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원래 멀미를 잘하는 편이어서 큰 차 타기를 꺼린다고 하네요. 중간에 한 차례 내려서 쉬었다가 속을 비워냈는데도 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일행이 따라비오름으로 향할 때 호랭이는 차 안에서 쉽니다.
당초 예보에는 비가 오는 걸로 돼 있었는데, 전날 예보에서는 오후 4시부터 오는 걸로 바뀌었습니다. 다행히 먼 곳까지 조망이 펼쳐집니다. 정상을 마주하는 봉우리에 오르자 사방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그곳에서 마주친 커플 여행객 가운데 한 명이 우리 일행 사진을 찍어주며 “멀리 보이는 오름은 큰사슴이오름이고요, 아래 보이는 풍력발전소 단지는 제주에너지공사가 운영하는 겁니다”라고 설명을 곁들입니다. 후배들이 저를 쳐다보며 “형보다 더 전문가시네요”라며 놀립니다. ‘인생도처 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고 가는 곳마다 숨은 고수가 있는 법이죠.
말굽형으로 터진 분화구를 지나 정상으로 향합니다. 한 탐방객이 개 두 마리를 끌고 올라와 한가롭게 평상에 걸터앉아 있습니다. 개를 좋아하는 우리 일행이 말을 겁니다. “이 놈은 수놈인데 풀네임이 아더 프레데릭 쇼팽 김입니다. 겁이 많아 용감해지라고 아더라고 지었죠. 클래식을 좋아해 쇼팽 음악 나오면 가만히 앉아 감상합니다. 암컷은 메이 엘리자베스 소피 김이죠. 5월에 거두었다고 구조자가 메이라고 지었다는데 제가 소피를 덧붙였습니다. 정말 생긴 게 소피 마르소 닮지 않았나요?”
‘이름 짓는 재미로 개를 키우나? 정말 별 사람 다 있군’ 하는 생각으로 흘려듣고 있는데, 감자바우가 제게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저 사람 혹시 한겨레 김현대 사장 아닌가?” 그 말을 듣고 얼굴을 보니 맞습니다. “와! 오랜만이다. 나 연합뉴스 있던 이희용이야” “그래 반갑다”
김현대 한겨레 사장은 저와 동갑내기로 김택환 선배와 함께 월례 포럼에 참여하며 친해졌죠. 최근에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몇 차례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한겨레 사장 임기는 약간 남아 있으나 소속 기자가 김만배에게 거액을 빌린 일이 드러나 책임을 지고 물러났죠. 현직 기자 시절에 협동조합을 열심히 취재하고 책도 낸 인연으로 가시리 협동조합 마을에 머물고 았다고 합니다. 포럼 멤버였던 산바람과 감자바우도 안부를 묻고, 삼성전자에서 오랫동안 홍보를 맡은 참나리도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가벼운 해장 산행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가니 호랭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차 문을 여니 그제서야 “문을 열어주고 가지 답답해서 혼났네”라고 푸념하며 밖으로 나옵니다. “답답하면 문을 열고 나와 있지 그랬어”라고 하자 “안에서 열 수 있는 거예요?”라고 반문합니다.
더운 여름날 차 안에 아이를 혼자 두었다가 질식사하는 사고를 뉴스에서 접하기는 했지만 다 큰 어른이 문을 못 열어 차 안에 있다는 건 생각도 못했습니다. 날이 선선해 그나마 다행입니다.
제주 오름을 누구보다 사랑한 두 인물
점심은 우리가 자주 갔던 조천읍의 오름나그네입니다. 보말칼국수 전문점이죠. 아니나 다를까, 대기 인원이 많습니다. 9번 번호표를 받아들고 기다리는 동안 단체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 떠나는 피플러버 선배와 친구분, 오늘 합류한 알 대장까지 연인원 11명이 함께하는데, 아직도 다같이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이때 찍은 사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식당 이름은 오름의 대동여지도라고 할 수 있는 명저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기자 출신인 김종철은 제민일보에 연재한 글을 3권짜리 책으로 엮었는데, 마지막 3권을 펴내자마자 지병인 늑골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름 하면 김종철과 함께 떠오르는 인물이 사진작가 김영갑입니다. 그는 충남 부여 출신인데, 누구보다 제주 오름을 사랑했죠. 2만 컷이 넘는 사진으로 오름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고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사진은 구좌읍 두모악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 피플러버와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합니다. 제주공항과 그리 멀지 않은 함덕해수욕장으로 향합니다. 가는 길에 마이크를 잡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김종철과 김영갑, 삼별초와 몽골 지배, 4.3사태, 주상절리 지형, 제주마 등 제주에 얽힌 이야기들을 늘어놓습니다. 가는 길에 소떼가 보이자 피플러버 친구분이 “소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세요”라고 합니다. 제가 역사, 문화예술, 종교, 축산, 지질 등 온갖 분야에 두루 아는 척을 하니 떠본 것 같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소에 관해서도 좀 공부해올 걸”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어쩝니까. 대신 썰렁한 개그 퀴즈 몇 개를 냈습니다. “소 한 마리를 두 글자로 하면?” “소 두 마리는?” “소 여러 마리는?” “소가 죽으면?” 여러분도 맞혀 보시죠. 정답은 이 글 말미에 공개합니다.
“삼양리 검은 모래야. 너도 한라산이지”
함덕해수욕장 옆의 서우봉은 예전에도 우리가 함께 올랐던 곳입니다. 서우봉도 오름인데, 끝에 봉이 붙어 있는 건 예전 봉수대가 있던 곳이죠. 그래서 주로 바닷가에 있습니다. 이곳의 해발 높이는 113m, 비고는 106m입니다. 피플러버, 참나리, 뜬구름은 카페 야야에서 쉬고, 나머지는 서우봉으로 향합니다.
해안 산책로로 이어지는 삼거리가 나오자 산바람은 서우봉 여러 번 가봤다며 왼쪽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나머지는 정상으로 올라갑니다. 노란 유채꽃이 검은 현무암 돌담과 잘 어울립니다. 내려다보이는 함덕 바다 빛깔은 에메랄드보다 연한 옥빛입니다.
호랭이는 어제와 오늘에 걸쳐 오른 세 개의 산(오름) 가운데 겨우 하나 정상을 밟았습니다. 한라산 갈 때도 백록담에 못 오른 삼 할에 포함됐고, 따라비오름에서는 혼자만 빠졌죠. 제가 놀리자 고은 시인의 시구를 용케 기억해내고는 맞받아칩니다.
“형이 그랬잖아요. ‘삼양리 검은 모래야. 너도 한라산이지’라고요. 제주도에 왔으면 어느 봉우리를 올라도 한라산에 오른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산책을 마치고 커피숍 야야에 모두 모입니다. 바다를 감상하라고 모든 좌석을 경기장 스탠드처럼 계단식으로 만들어놓았네요. '바다멍’을 하고 있는 동안 피플러버와 친구분은 먼저 공항으로 향합니다. 우리는 남은 시간을 어디서 보낼까 고민하다가 숙소 인근의 약천사를 택했습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법당을 자랑하는 약천사는 조계종 사찰이지만 제주 교구본사인 관음사의 말사가 아니라 경북 영천 은해사 소속입니다. 일타 스님 상좌 혜인 스님이 필생의 작업으로 조성한 절이죠. 개산 직후인 90년대에는 돈으로 쳐발랐다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었으나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다보니 그새 관록과 기품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대적광전 2층과 3층까지 찬찬히 둘러본 뒤 또하나의 명물인 오백나한전에서 나한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춰봅니다. 이 역시 최근에 만들었지만 나한상마다 다 특징이 있고 얼굴 표정에 생동감이 넘쳐 볼 만합니다.
오늘은 돼지고기입니다. 고기가 다 고기서 고기라고 하지만 제주에 오면 한번쯤 돼지고기를 먹어줘야죠. 돈육을 꺼리는 피플러버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3일 연짱 생선회를 먹는 건 너무 심하니까요. 난드르바당에서 오겹살로 배를 채웁니다. 육질이 부드럽고 맛이 고소해 입에 넣자마자 목구멍으로 넘어갑니다.
“우리는 이현준 보유 동기입니다”
오늘도 대리기사를 불러 운전을 맡깁니다. 감자바우는 이 길을 잘 안다며 걸어가겠다고 합니다. 오전 따라비오름을 건너뛴 호랭이도 걸음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동행하겠다고 합니다. 깜깜한 밤에 길을 잃을까 걱정되기는 했지만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잠시 호랭이 모습이 보이지 않아 가벼운 실종 소동을 빚었다고 합니다. 감자바우는 "호랭이가 예전에 '분화구로 들어간 사람들'이라고 글을 써서 혹시 바다로 들어갔나 하고 생각했다니까"라고 너스레를 떱니다. 뜬구름은 "자기만 없으면 호랭이가 사고를 친다"고 핀잔을 줍니다.
우리 일행 가운데 83학번 세 명이 주고받는 대화를 보면 재미납니다. 뜬구름이 호랭이한테 뭘 시키면 호랭이는 귀찮아하며 꼬맹이에게 떠넘깁니다. 그런데 뜬구름은 꼬맹이한테 쩔쩔매는 듯합니다. 마치 가위바위보처럼 뜬구름은 호랭이한테 큰소리치고, 호랭이는 꼬맹이를 만만하게 여기고, 꼬맹이는 뜬구름한테 우위를 보이는 거죠.
이들 가운데 뜬구름과 호랭이는 갹각 경남 마산과 진주 출신으로 대학 시절부터 붙어 다녔다고 합니다. 주로 뜬구름이 호랭이한테 쫑코를 주고, 호랭이는 능글맞게 받아넘기는 식이죠. 늘 당하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호랭이는 총무라는 권한과 역할을 의식해서인지 가끔은 뜬구름을 추켜줍니다. 그 중 압권은 “그래도 우리는 이현준 보유 동기입니다”란 말이었죠. 한때 유행한 ‘문재인 보유국’이라는 말을 패러디한 겁니다.
저와 며칠 지내다보니 다들 아재개그가 입에 붙었습니다. 내일 수월봉 가는 게 어떠냐고 하자 감자바우는 “거긴 오르기 좀 수월한가?”라고 폭탄성 발언을 투척합니다. 지난달 망우산 산행 때 본 독립유공자 오기만 묘소 이야기를 꺼내며 호랭이에게 혹시 친척 아니냐고 묻자 뜬구름은 “기철이 니가 오기만 기다렸다더라”라며 막말 대잔치의 끝판왕을 시연합니다. 동음이의어를 찾아 웃겨 보려는 이른바 ‘이희용씨병’의 전형적인 증세죠.
어제는 제주의 첫날 밤이어서 한 잔 더했고, 오늘은 제주의 마지막 밤이어서 그냥 보낼 수 없죠. 어제 빠졌던 뜬 총무가 호랭이와 함께 제 방에서 늦게까지 뒤풀이를 즐깁니다. 안주가 부실하다 보니 컵라면까지 끓여 안주 삼아 술을 마십니다.
감자바우의 가스라이팅도 논란거리였습니다. 우리 멤버들의 공통적 의견은 감자바우가 술자리에 있으면 왠지 모르게 술을 많이 마시게 되는데, 감자바우가 은근히 바람을 잡기 때문인 것 같다는 거죠. 자신은 나서지 않으면서 술을 마시도록 배후조정하는 겁니다. 제주도에서도 그런 징후가 여러 차례 확인돼 '까스명수'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산은 지금 오르는 산”
셋째날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호텔 조식 대신 근처의 바다목장 횟집에서 성게미역국으로 아침을 먹습니다. 반찬도 맛깔스럽고 전망도 좋아 첫날 저녁을 여기서 했어도 됐을 듯싶습니다. 그러면 굳이 대리기사를 부르지 않아도 되니까요. 다음을 기약해야죠. 여주인 겸 주방장은 전라도 출신인데 제주로 시집온 지 36년 됐답니다. 음식 솜씨의 연유를 짐작할 만합니다.
오늘 행선지는 애월읍의 노꼬메오름입니다. 바로 옆 족은노꼬메오름까지 들렀다 오자면 시간이 빠듯할 듯합니다. 오늘은 안개가 더 자욱합니다. 오름 입구에서부터 백록담을 방불케 할 정도로 앞이 안 보입니다. 진입로의 고즈넉한 정취는 그런 대로 즐길 수 있었지만 노꼬메오름의 또다른 매력 포인트인 능선길은 좌우 조망이 없어 영 꽝입니다.
그래도 정상에 오르니 뿌듯합니다. 2박3일 제주 여행 가운데 네 번째입니다. 이곳은 표고 834m, 비고 234m에 이르는 꽤 높은 산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알 대장이 족은노꼬메오름으로 방향을 틀려고 하는데, 아무도 호응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가봐야 보이는 게 없을 테니 알 대장도 굳이 고집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귀가한 뒤 페이스북에 이른바 곰탕 산행 이야기를 올리니 한 페친이 댓글로 충고합니다. “자연에 들면 자연이 보여주는 대로 보셔야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산은 지금 오르는 산이고, 가장 아름다운 길은 지금 걷는 길입니다. 참 좋은 곳에 다녀오셨네요.” 프로필을 보니 제주 인문학 유튜브 ‘하르방TV’를 운영하는 분이더군요. 한 수 배웠습니다.
가는 길에 '성박물관'이라고 쓰인 간판이 보입니다. 십여 년 전의 일이 생각납니다. 한국기자협회 운영위원회가 서귀포에서 열려 둘째날 한라산을 오르고 몇몇 임원과 저녁을 먹었는데, 룸메이트인 회사 후배가 어디 좀 다녀오겠다는 겁니다. 나중에 방으로 돌아온 그에게 물으니 "사실은 궁금해서 혼자 성박물관에 가봤어요. 함께 가자고 하기엔 쑥스러워서요. 근데 문을 닫았더군요"라고 답합니다. 이 얘기를 집에 돌아와 들려주니 당시 고교생이던 딸이 "혹시 아빠 얘기를 남 얘기인 것처럼 하는 거 아냐?"라고 넘겨짚습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일행은 "딸내미가 아빠를 잘 아네" "그 아빠에 그 딸이네"라고 한마디씩 합니다. 제 속을 버선목처럼 뒤집어 보여줄 수도 없고. 억울합니다. 진짜 제 후배 얘기라니까요.
족은노꼬메오름을 포기한 덕분에 시간이 남습니다. 일찌감치 제주시 용두암 근처의 김해횟집으로 향합니다. 참나리가 “우리는 왜 시내는 안 가나?”라고 투덜댔는데, 비로소 시내에 들어섭니다. 11시 15분께 도착했는데, 12시 30분부터 문을 연답니다. 타협 끝에 11시 50분 우리를 받기로 정했습니다.
도두봉을 다녀올까 하다가 근처 카페 시로코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모두 모여 앉을 수 있는 널찍한 자리도 있습니다. 오순도순 모여 담소를 나누다가 시간 맞춰 김해횟집에 들어섭니다. 김해횟집은 회도 싱싱하지만 해조류, 젓갈, 김치 등이 일품입니다. 오늘은 이색적으로 도라지김치를 내놓습니다. 제주까지 와서 방어전을 못 치르고 가나 했는데 방어도 등판합니다. 한라산 술병이 연신 비워집니다.
2박3일 함께한 애마 솔라티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향합니다. 대원들 손에 감귤초콜릿 한 개씩을 선물로 건넵니다. 산바람은 다크초콜릿을 원했는데 비싸서 집으려다 말았습니다. 1만 원 차이지만 9개를 사야 하니 마음이 약해집니다. “미안하다, 산바람! 회장이 소심해서.” 전날 떠나 드리지 못한 피플러버 선배께도 죄송합니다.
“기생용 하생철(旣生鎔 何生澈)”
이번 제주행은 떠나기 전부터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아쉬운 대목도 있었지만 얻은 것도 많았습니다. 성대 신방과 산악회 장거리여행에 처음 함께해준 감자바우와 참나리에게 사의를 표합니다. 부족한 동기 회장을 따르느라 애썼습니다. 피플러버 선배와 친구분도 함께해 주셔서 든든하고 즐거웠습니다. 야메(정확한 표기는 야미) 문화해설에 귀 기울이고 썰렁한 아재개그를 웃으며 들어준 후배들도 고맙습니다. 특히 시산제 준비에서부터 각종 물품 구입과 식대 숙박비 지불, 운전, 사후 정산까지 애써준 뜬구름에게는 따로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겠습니다. 하루 늦게 합류했지만 대장의 풍모를 여지 없이 보여준 알자지라도 끼워주겠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함께하지 못한 회원 여러분께 제주의 2박3일을 생생하고도 상세히 전하려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긴 글 꾹 참고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글을 쓰다 보니 누에고치가 실 뽑아내듯 즉석에서 술술 글을 풀어내는 호랭이의 재주가 부럽습니다. 모차르트의 타고난 재능을 시샘하는 살리에르의 심경을 이해할 듯합니다. 삼국지의 주유도 제갈량의 지략에 도저히 미치지 못함을 깨닫고 분을 참지 못하죠. 그가 화병이 도져 숨질 때 남긴 말은 “기생유 하생량(旣生瑜 何生亮)”이랍니다. “하늘이시여! 희망과용기를 낳으시고도 어찌하여 호랭이를 또 태어나게 하셨나요?”
앞에서 낸 문제의 답은 차례대로 ‘소원’, ‘투우’, ‘소스’, ‘다이소’입니다.(끝)
첫댓글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을 제주도! 즐겁게 살기 위해 잘~~노는 일이 중요하지요.산행기 처음과 끝에 댓글 달며 드는 생각, 모든 일은 처음이 있으며 마무리도 있다, 입니다!
잘 놀려면 좋은 사람과 함께해야
기생용 하생철(旣生鎔 何生澈)
축구선수 기성용인줄, 갑자기 왜 그 이름이 나왔을까,
과분하게도 량의 자리에 철이 들어감을
그때는 몰랐다
밤늦은 시각에 한자 이름 어찌 되는지
카톡으로 물어 볼 때까지도
그런데 아침 일어나니
놀라운 일이 벌어져 있었다
내가 제갈량 되다니,
과문하기 그지 없는데 우찌 이런 일이
세상의 기억 저장소
춘향가 흥보가 수궁가 모든 해학 뛰어넘는
재치면 재치 유머면 유머 모두 갖춘 구방미인
시대의 선구자이자
세상의 희망불이신
용의 발꿈치에도 미치지 못함을 아뢰오니
부디 철을 삭제하여 주시기를 거듭거듭 요청하나니 굽어 살피소서!
겸양은 필요한 덕목이지만 과공은 비례라. 남들이 글 재주를 칭찬하면 쑥스러워도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게. 재미를 위해 고사를 패러디하긴 했으나 실제로도 나는 호랭이의 글 솜씨를 부러워하고 있다네. 나와는 스타일이 다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