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제도건 그 유지를 위해서는 비용이 초래되기 마련이고, 따라서 대부분은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만이 정책화됩니다(혹은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스캔본 단속에 대해서도 비슷한 문제를 제기해볼 수 있겠는데요, 일반적으로 스캔본을 단속하는 근거는 무체재산권의 침해입니다. 그렇다면 스캔본에 대해서도 무체재산권의 근간 문제를 제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잠시 그 근거에 대해서 다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근대적인 의미의 저작권법은 1710년에 영국에서 제정된 앤 여왕 법(Queen Ann's Law)에서 시작되었다. 당시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본토 사이의 출판업계가 서로 긴장을 유지하던 상태였으며(상대적으로 뒤떨어졌던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서 쓰여진 책을 출판하고 있었다) 이로 인한 불화가 격화되고 있었다.앤 여왕 법은 이러한 갈등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법이 만들어짐으로서 생긴 가장 중요한 변화는 출판조합의 독점에 제동이 걸렸다는 사실이다. 당시엔 출판물의 권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제한 없이 보장되었고, 때문에 출판업자들은 저작권을 구입하면 그것을 통해서 출판물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었다. 때문에 앤 여왕 법에서는 저자의 권리와 저작권의 기간을 규정하여 출판조합의 독점적 사업에 제약을 가했다. 1차 생산자인 저자에게 배타적인 권리를 부여해서 타인의 불로소득을 막고 동시에 저작권의 기간을 28년(기본 14년, 14년 뒤 작가가 살아있으면 14년 추가 갱신)으로 지정하여 저자에게 권리를 귀속시켰다.
여기서 우리는 최초 저작권법의 발생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를 확인할 수 있다. 앤 여왕 법의 공식적인 명칭은 ‘여기에 규정된 기간 동안 작가 또는 원고의 구매자에게 인쇄된 책의 원고에 대한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학문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법’이다. 저자에게 권리를 귀속시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래야만 학문이 증진되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저자에게 권리를 귀속시키는 것은 학문의 발달을 위해 귀속된 것일 뿐이라는 것이며, 그러한 목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존재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현재의 한국 저작권법에도 명확히 규정되어있는데요, 저작권법 1조는 목적에 분명히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보건데 다소 법경제학적인 서술이지만, 무체재산권을 부의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에는 큰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전제 하에서 스캔본 문제에 대해서도 좀 지적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스캔본이 과연 시장을 파괴하는가에 대해서는 저는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현재 저작권 침해로 인한 피해액의 산정 방식은, 침해량*가격 의 공식을 따릅니다. 간단히 말해서 5천원짜리 만화책 100여권이 각각 10만번 다운로드되었으면 500억원의 피해액이라고 하는거지요. 그런데 이러한 방식의 피해액 산정은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이전에도 썼던거로 기억하는데, 미국에서 음반 다운로드가 100% 증가할 동안 시장크기 감소는 6%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6%의 감소도 저작권침해로 인한 것인지가 명백하지 않지요. 오늘날 음반이 안 팔리는 이유는 까놓고 말해서 여가거리가 늘어 더 이상 음반을 들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나 TV를 켜면 켰지 굳이 음반을 듣는 사람은 많지 않지요(없다는건 아니고). 만약 정부가 전능한 수단-_-을 동원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인터넷에 더 이상 저작권 침해 음원이 사라진다고 쳐보죠. 그러면 과연 사람들이 음악에 목말라 음반을 사서 들을까요. 제 생각에 안 들으면 안 들었지 사서 듣진 않을거라 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기서 예로 든 500억의 피해는 애초에 그들이 얻을 리도 없고 얻지도 못할 돈을 침해받았다고 산정한 꼴입니다.
기관 3
기관 9
기관 11
접속권 소멸 30일 전
0.0950
0.2020
0.1603
접속권 소멸 30일 후
0.0018
0.0000
0.0035
감소율
-98.11%
-100%
-97.82%
Jeffiry K. MacKie-Mason·Juan F. Riveros·Robertt S.Gazzale, "전자정보상품의 가격설정 및 번들링: 현장을 중심으로," Ingo Vogelsang·Benjamin M.Compaine 편, 현경보·이승선·조영신 역,「인터넷 대격변」, (서울:한울 아카데미, 2003), p.364.
위 자료는 논문 이용자들을 두고 테스트한건데, 보통 논문 이용자들은 자신이 가입한 기관(대학이나 연구소 등)에서 논문 이용권을 구매한 덕분에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접속권이 소멸하고 나면 이 사람들이 논문 구매를 얼마나 하느냐가 문제가 되겠죠. 위 통계는 논문 공급이 끊어지더라도 이용자들이 유료로 전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거의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사실상 이용을 포기하였죠. 이는 시장을 살리기 위해 무료이용자들을 제거하는 것이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저작권 의식에 대해서도 지적할 부분은 있습니다. 흔히 오해되는 것 중 하나가 일본 만화시장은 저작권 의식이 충실하게 지켜진 덕분에 성장했다는 생각인데, 이는 명백히 잘못된 것으로 오히려 일본 만화시장은 초기에 심각한 해적판 문제를 겪고 대여점 위주의 출판과 저작권 침해를 겪어왔습니다(물론 196-70년대 이야기이니 인터넷 침해는 아니었겠지만요). 그렇지만 이것이 결과적으로 일본에서 만화를 널리 퍼뜨리게 하였고 오히려 만화가 문화로 자리잡아 성장하는데에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요. 스캔본 문제도 마찬가지인데, 사람들은 스캔본으로 인하여 시장이 붕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저는 그 상관관계를 확실하게 한 통계자료를 본 적이 없습니다.
현재 한국 만화시장의 축소는 만화의 소비계층이 만화를 소비할 능력이 없고 오히려 상당히 제약당하고 있는 것에 그 근본 원인을 찾는게 훨씬 올바르다 생각합니다. 위에서 말한 두가지 문제가 다시 제기되는데, 스캔본이 다 사라진다 치고, 과연 현재의 사회상황에서 만화를 사서 볼 수 있긴 하겠냐 이거죠. 만화시장 자체의 크기는 사실 한국도 상당히 거대한 규모입니다. 그런데 그 소비량의 상당수가 아동만화나 학습만화라는거, 과연 저 꼬맹이들이 더 돈 잘 벌고 저작권 의식이 건전하여서 그런거겠습니까? (…)
또한 법령을 근거로 올바름을 피력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적어봅니다. 물론 법은 사회의 근간이긴 하지만 그 법 또한 비판대상이 될 수 있지요. 로렌스 레식은 일본 동인지 시장에 대해 과연 저 동인지 작가들을 몽땅 저작권 침해로 고소하여서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되겠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스캔본은 2차 창작보다도 컨텐츠 생산에 기여하지는 않긴 합니다만, 설령 그렇다고 하여도 단순히 현행 법령을 근거로 하여서 무체재산권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회의적입니다. 스캔본이나 게임등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인터넷 이용자 중 저작권 침해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건 현재 저작권의 개념으로는 이에 대응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올바르다 생각합니다.
아무튼 내용을 요약하자면, 만화 시장을 살리자는 취지는 좋으나 그 원인으로 한국인의 저열함이나 저작권 의식을 논하는 것은 문제를 잘못 짚은것이지 싶습니다.
제 생각에 논한다면 인터넷 문화와 기존 권리를 어떻게 조화하느냐의 문제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봅니다. 한국 뿐 아니라 관련된 문제가 제기되는 건 인터넷이 발달한 어떤 외국이라도 마찬가지거든요. 현재 있는 법률로서는 이와 같은 기술의 변화에 대처하기 매우 힘듭니다. 저작권법은 특히 많은 변화가 이루어진 분야임에도 그렇지요(한국의 경우 전송권 등 새로운 권리를 만들어 이 분야에선 최첨단임에도). 기술의 변화를 무시하고 기존 법률을 그대로 관철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거도 한 방법이겠지만 이건 문제가 많다 봅니다. 양자 사이를 어떻게 조화하느냐의 문제로 가야지 단순히 어느 한쪽으로 다른 하나를 누를 수야 없겠죠.
여기서 논한 스캔본 문제는 사실 이와 같은 전체 문제에 비하면 일부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현재 기술의 변화로 인해 창출된 새로운 문화에 대응할 수 있는 법리와 제도를 완성시키지 못했습니다. 기존의 논리를 어떻게 확장시켜 이에 대응할 지의 부분이 필요한 상황이겠죠. 현재까지 인터넷 상에서는 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몇몇 학술지에서 기술변화에 대응하는 법리확장을 시도하긴 했지만 이 역시 미흡하거나 일부 부분에만 접근하는 수준에 머물렀고요. 제 생각에 이건 보다 핵심부분에서 논리를 확장시켜야지 단순히 기존 저작권법을 기반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근데 결과적으로 "만화시장을 살린다"는 것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수익구조를 정비하여 작가들과 만화출판사들이 작품활동을 통해 향후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거거덩요. 이러한 수익구조 왜곡의 주된 요인이 대본소/대여점 시스템이긴 한데, 현재 그 비율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고 불법공유가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해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겐 '조화'의 문제이지만, 만화 그리고 출판하는 당사자들에겐 이미 '생존'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조화시켜나갈 것인가의 문제는 일단 시장의 구조적 붕괴를 막은 후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첫댓글 하지만 만화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논해야 하는 부분이긴 하지요.
제 생각에 논한다면 인터넷 문화와 기존 권리를 어떻게 조화하느냐의 문제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봅니다. 한국 뿐 아니라 관련된 문제가 제기되는 건 인터넷이 발달한 어떤 외국이라도 마찬가지거든요. 현재 있는 법률로서는 이와 같은 기술의 변화에 대처하기 매우 힘듭니다. 저작권법은 특히 많은 변화가 이루어진 분야임에도 그렇지요(한국의 경우 전송권 등 새로운 권리를 만들어 이 분야에선 최첨단임에도). 기술의 변화를 무시하고 기존 법률을 그대로 관철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거도 한 방법이겠지만 이건 문제가 많다 봅니다. 양자 사이를 어떻게 조화하느냐의 문제로 가야지 단순히 어느 한쪽으로 다른 하나를 누를 수야 없겠죠.
여기서 논한 스캔본 문제는 사실 이와 같은 전체 문제에 비하면 일부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현재 기술의 변화로 인해 창출된 새로운 문화에 대응할 수 있는 법리와 제도를 완성시키지 못했습니다. 기존의 논리를 어떻게 확장시켜 이에 대응할 지의 부분이 필요한 상황이겠죠. 현재까지 인터넷 상에서는 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몇몇 학술지에서 기술변화에 대응하는 법리확장을 시도하긴 했지만 이 역시 미흡하거나 일부 부분에만 접근하는 수준에 머물렀고요. 제 생각에 이건 보다 핵심부분에서 논리를 확장시켜야지 단순히 기존 저작권법을 기반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근데 결과적으로 "만화시장을 살린다"는 것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수익구조를 정비하여 작가들과 만화출판사들이 작품활동을 통해 향후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거거덩요. 이러한 수익구조 왜곡의 주된 요인이 대본소/대여점 시스템이긴 한데, 현재 그 비율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고 불법공유가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해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겐 '조화'의 문제이지만, 만화 그리고 출판하는 당사자들에겐 이미 '생존'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조화시켜나갈 것인가의 문제는 일단 시장의 구조적 붕괴를 막은 후의 일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