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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방(馬房)댁(宅)
어릴 때 우리 동내에 마빵 띠기가 있었다, 그냥 택호가 그러니 하였는데, 지난해 2015년에 장사의신(神)연속극에 마방(馬房)이란 용어가 나왔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택호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연세가 많으신 어른신은 아직 택호가 있다, 그러나 지금 젊은 층은 택호가 무엇인지 모른다, 장가가는 동내 즉 처가가 있는 동내 이름이 그 가정의 택호로 불러졌다, 말하자면 장가를 마방이라는 동내로 가면 그 남편은 마방 양반 이 되고, 그 동내에서 시집온 새댁은 마방 댁이 되는 것입니다.
낮선 동내로 시집온 새댁은 모던 것을 다 지우고 오직 시집을 위하여 다 바쳐야 하는데, 어릴 때 추억이 간직된 고향의 지명만 가슴속에 영원히 남는 것이 택호였다.
선비들도 아호가 있다 자기가 지향 하고 져하는 뜻을 호로 혹은 자기의 고향 또는 강학을 하던 지역을 아호로도 한다, 율곡, 퇴계 도 있다.
경산시 남부동 주민 센터 부근에 상방동이 있다, 그 동내 이름이 옛날에는 마방으로 불리었다,
경산 옛 읍성 터의 남쪽 문이 있었던 곳으로 원님이 정사를 보는 관청 앞을, 그리고 공, 맹자를 모신 경산 향교가 신교동에 있어 그 부근을 지날 때 말에서 내려야하고, 파발마도 관리를 하여야 하는 마방이 이곳에 생겼다 그래서 마방이라는 지명이 생긴 것이다.
신(新)교동(校洞) 즉 교동은 향교가 있는 동내이름이다, 그럼 구(舊)교동(校洞)은 어디일까?, 임진왜란 전에는 성암산 밑에 향교가 있었는데, 임난 때 불탄 것을 한참 후에 고려 때 신교동에 향교를 복원 한 것이다.
성암산 밑 사정방(士亭房)부근일 것이다, 한양 가는 영남대로 변에 선비들이 모이는 장소인 정자가 있던 사정동의 기원이 되는 곳이다. 기록에는 옥곡동에 향교가 있었다고 하나, 동내 경계는 1914년 행정 개편한 왜정 때 일입니다. 그전에는 고시올(옥곡) 이라는 곳과 사정방 이라는 곳이 이웃한 것입니다.
그럼 상방(上方)동 중방(中方)동도 있는데 왜 하방(下方)동은 없을까?
대구에는 신천 강변을 따라 상동 중동 하동이 있었다. 코오롱 공장이 하동에 생기면서 인구가 급하게 팽창하여 신천동으로 개명을 한 것입니다,
남천 혹은 금호강의 수리관리가 잘 안될 때 정평동 대평동 대정동 은 평지에 생긴 동내인데 그 이전에 동내가 생겼다가 저지대의 수해로 동내가 없어졌다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경산에 살면서 옛 지명이 하나씩 밝혀 추적하는 재미가 내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인가 봅니다.
宅號(택호)
사람이 이 세상에 아기로 태어나면 부모는 아이의 이름을 짓기 위해 매우 고심한다. 또 때로는 삶이 원만하지 않을 때는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렇듯 이름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고 운세가 바뀐다는 생각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우리의 오랜 민간 사상이다.
이는 이름에 대한 주술적인 관념이 강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뿐만 아니라 간혹 세계각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이름을 중요시 여기는 우리 선조들은 애써 지은 이름을 아무나 함부로 부르는 것을 금기시 하고 기피하는 풍속이 있기 때문에 성인이 되면 자(子)나 호(號) 또는 별호(別號) 등을 지어 이름 대신 부르는 것이 풍습화 되었다. 또한 혼인한 남녀를 지칭할 때 본명 대신 택호를 지어서 부르는 것도 이러한 풍습에서 기인된 것이라 생각된다. 기혼 여성은 자신의 출신 지명에 따라 택호가 정해진다. 예를 들면 부인의 친정이 의성이면 의성댁, 의성 할매 남편은 의성양반, 의성 아제 등으로 부르며 반대로 친정에 가면 시집의 지명과 성씨에 따라 귀내 전실이, 귀내 누님 귀내 전서방, 귀내 새아제, 귀내 전서방 댁 등으로 부른다.
택호는 여자가 출가(出家)하면(시집가면서부터) 또 하나의 이름이기도 하므로 택호를 지을 때는 옛 부터 의례(儀禮)에 준하는 절차를 따르기도 한다.
우리지방의 택호 짖는 방법을 소개 하면
첫째, 집안 어른들이 모여서 지어주기도 하지만 동성(同姓)반촌(班村)인 집성(集成)촌에서는 문중에서 지어 부르게 한다.
둘째, 고명하신 선비에게 부탁하여 짓기도 한다.
셋째, 남편의 친구들이 모여 부인(婦人)을 맞은 친구에게 술고 kdmatlr을 대접 받으면서 택호를 지어주기도 한다.
집안어른 분들이나 타인에게 택호를 받을 때에는 좋은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일반 적이 관례이다.
그러나 전통사회에서는 반촌(班村) 일수록 집안 어른들이 모여서 택호를 지어주는 경우가 많고, 친정이 같거나 가깝고 비슷한 지역에서 같은 집안으로, 즉 동성(同姓)반촌(班村)으로 시집온 부인들의 택호는 변별(辨別)성 있게 조정 하여 지어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봉화군 법전면 풍정리 시드물”이란 지역에서 같은 문중으로 시집온 부인들에게는 한사람은 시드물댁, 풍전댁, 법전댁 이런 씩으로 짓는다.
또 시댁의 웟대 시조모나 시어머니 택호가 같은 지역일 때에는 나중에 시집온 아랫대에서는 다르게 짓는다.
예를 들면 시집의 윗대 부모조상의 택호중에 “낙평댁”이란 택호가 있었으면 아랫대에는 낙포댁, 낙성댁 등으로 다르게 지어 윗대와 구별하게 한다.
또 다른 경우 남편이 사회에 나와 관직을 얻을 때 옛날에는 진사(進士)댁, 참판댁, 대감댁, 김판서댁 등으로 부르고 현대에 와서는 군수댁, 시장댁, 김검사댁, 전국장댁 등으로 가장의 관직명을 택호로 사용하기도 한다.
부계중심의 가부장적이 사회에서 여성의 출신지명에 따라 택호를 지었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사항이다, 왜 선조님들은 여성의 출신지명을 따라 택호를 지었을까? 그것은 택호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일차적인 기능이 변별성이 있기 때문 일 것이다.
동성 마을이 주를 이룬 전통사회에서는 혼인한 여성의 출신지명을 사용한 택호는 여성의 내력을 알려는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택호는 주로 혼반(婚班)을 중요시 여기는 반가(班家)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출신 지명을 통하여 문중에 새로 혼입(婚入)한 여성이 어느 지역 어떤 가문의 사람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성이 택호를 얻는다는 것은 새로운 가문의 구성원이 되었음을 뜻하기도 하고 시집오기 전 사용 되었던 이름 대신 새 이름인 택호를 받으므로 서 과거에 소속되었던 집단에서 새로운 집단의 구성원으로 이동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반대로 친정에서 이름 대신 택호로 불리는 것은 다른 가문의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자의 친정 쪽에서 딸과 사위의 호칭 앞에 성(性)을 붙이므로 서 완전히 다른 가문의 사람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2017. 02. 09. 사정방 에서 松湖
첫댓글 감사히봅니다.
경산은 유서 깊은 고장입니다..
옛숨은 이야기들을 찾아 널리 알리는것도 우리 시경계 산행 협의회와 아주 찰떡 궁합 입니다..ㅎㅎㅎ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 下洞 ~ 상동 중동은 그대로 있고,아래下자 하동을 인근에 있는 수성교 다리명을 따와서 壽城洞으로 개명하고,인근의 신천동 일부를 편입하여서 수성구 수성동으로 부르게 됨. 하동에 친인척이 대대로 살면서 수성들판에 벼 보리 밀 농사를 지어왔습니다.저는 새 쫓는 종줄을 당기곤 하며,집이 논끝의 물도랑에 있어서 매일 통발을 대어 놓으면 아침에 붕어 미꾸라지등이 수복하게 들어있습니다.그때는 농약살포도 안하고 해서,며뚜기도 많이 잡고.대문앞 골목길이 동네 빨래터 이고 물 놀이터 였습니다.어릴때 모습이 선 합니다..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