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龜亭. 소산마을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김계권의 아들들이 88 세의 노모를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하여 연산군 2년에 지었다고 한다.
마당에 거북이처럼 생긴 돌이 세 개가 있어서 삼구정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노모를 즐겁게 해 드리려고 정자까지 지었다는 아들들의 마음씀에 한없는 존경이....
삼구정 정자 마루에 걸터앉아서 바라본 마을 앞 들판.
동야고택은 경북문화재 193 호로 김중안 (1639 -1705) 이 지었다고 한다.
후손인 동야 김양근 (1734-1799) 호를 따서 동야고택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청원루. 청음 김상헌이 청나라에 끌려갔다 풀려난 뒤 1645 년 청나라를 멀리
한다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소산리 마을에는 이런 기와집들이 꽤 많았다.
보백당의 종부가 (노란 윗도리) 넉넉한 웃음으로 우릴 맞아 주었다.
만휴당. 정자다. 보백당 김계행이 지었다는.
앞으로는 계곡물이 흘러가고 산 속에 파묻혀서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경관을
자랑하는 곳. 이곳에서 안동김씨들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이렇게 창호지가 찢긴 채 방치된 집도 있었다.
묵계서원.
보백당 김계형 (1431-1517 )과 응계 김옥고(1382-1436) 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숙종 13년에 지었으나 고종6년 서원철폐때 사당은 없어지고, 최근 복원된 곳이라
한다.
묵계서원의 담장이 운치있게 이어져 있다.
안동지방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안동김씨들의 종택들을 구경하면서
그들이 우리역사에 끼친 영향을 생각해 보기에 앞서
나는 종부들의 힘들었을 삶에 마음 한 켠이 싸아해 왔다.
그래서 보백당에서 만난 넉넉해 보이는 종부에게 힘드시죠 하고 말을 건네
보았더니 그냥 웃기만 한다. 역시 종부는 타고난 사람만 될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