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제주시 봉개동 350번지(명도암서길23-5)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종교시설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은 ‘무극대도교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1936년 제주도에서 무극대도교 교주 강승태가 조선 독립을 주장하는 포교 활동으로 일제에 탄압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하였다.
제주의 무극대도는 1936년 1월 한의원을 경영하던 강승태에 의해 창시되었는데, 그는 안덕면 동광리에 포교 본부를 두고 제주도의 도주라고 자처하였다. 정도령이 나타나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을 독립시킨 다음 전 세계를 지배할 것이며, 그때가 되면 무극대도의 도생(道生=信者)들은 성인의 반열에 올라 영원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이상세계를 제시하였다.
1937년 11월까지 30여 차례에 걸쳐 도법을 설파했는데 당시 그의 주장을 듣고 모여든 도생이 1천여 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신앙의 주대상은 대한 민족의 시조인 단군을 받들어 단군성조(檀君聖祖)라 하였으므로 민족주의적이었고, 일본 천황 폐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한 반일집단이었으므로 일본 경찰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를 따르는 세가 커지자 이를 주시하던 일본 경찰은 무극대도를 탄압하기에 이른 것이고, 1937년 12월 제주경찰서의 다니모도(谷本) 고등계 주임은 무극대도 도주 및 신자를 ‘천황에 대한 불경, 치안유지법 위반, 총포수렵법 위반, 조언비어, 범인 장닉’ 등의 혐의로 일제히 검거하였다. 그 중에서 강승태 이하 67명을 광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하였는데 10개월에 걸친 혹독한 고문을 동반한 심문 끝에 일제 당국은 23명은 구속·기소하고 44명은 불구속하였다.
일제 당국은 여러 신도들이 마을 훈장이거나 한시(漢詩)를 지을 정도로 유식한 사람들임에도 신도들에 대한 판결문의 맨 앞에는 ‘5년간 한문을 배운 것 외에 교육을 받은 적 없고’(강석구), ‘4년간 한문을 습득한 것 외 아무 교육을 받은 적 없고’(김태휴), ‘어릴 때 한문을 배운 것 외 아무 교육을 받은 적 없고’(오병표) 등으로 그들이 무학이라고 강조하여 은연중 그들이 어리석었기 때문에 현혹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작성했다.
또한 도주 강승태에게는 ‘강간치상’ 혐의까지 조작하여 이들을 파렴치하고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종교·사교(邪敎) 사건으로 처리함으로써 민족주의와 독립사상의 전파를 차단하고자 했던 것이다.
강승태의 판결문을 기준으로 무극대도의 독립운동 내용을 살펴보면 ①일본 천황 폐제 주장 ②일본 패망 예언 한시 유포 ③중일전쟁 및 패전 예언 및 징병 반대 ④각종 기원제를 통하여 일본 패망과 한국 독립 기원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표선면 세화리 강왓본소에서 포교활동을 하는 동안 봉개동 명도암에 터를 마련하고 1956년 12월에 명도암에 본소를 개설하여 지금(2022년)까지 이용하고 있다. 중심건물인 천단(天壇)은 2002년에 신축했으며, 건물에 들어서면 약 1.2m 높이의 제단을 보게 된다. 제단에는 단군성조(檀君聖祖)를 비롯한 玉皇上帝, 九天上帝, 道主大聖王, 瑪竇天師, 丹朱天師, 七元聖君, 五大山王, 天地諸位神明神將이라는 나무로 만든 위패가 모셔져 각종 제사(치성)를 지내는 곳이다. 도주 강승태의 제사도 이곳에서 지낸다. 천단 외에도 8개의 건물이 있어 제사를 준비하거나 신도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이용한다.
본소 남쪽에는 나무와 잔디를 심어 조경한 조그만 공원이 있으며 원래 도주 강승태의 묘가 있던 자리이다. 깨끗이 관리되고 있는 가운데 도주 강승태를 기리는 ‘무극대도 도주 상니대성 유적비(無極大道道主尙尼大聖遺蹟碑)’가 세워져 있다. ‘尙尼’는 도호(道號)이다, 좌우에는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형을 받은 분들에 대한 ‘무극대도항일기념비’(2004년 건립)와 돌아가신 남녀신도들을 기리는 ‘無極大道乾坤道生追慕碑’가 있다.
항일기념비에는 강승태 외 20명이 이름이 가나다순으로 새겨져 있으나, 金景軾이 金敬軾으로 되어 있고, 기소자 명단에만 있고 판결문에는 없어서 형의 확정 여부를 알 수 없는 강위경·고창길 이름은 들어 있지 않다.
※무극대도교 :『제주항일독립운동사』에도 ‘무극대도교의 항일활동’이라는 제목으로 무극대도교라는 명칭을 쓰고 있으나, 봉개동 명도암마을에 있는 무극대도 본소에 출입하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은 ∼교라는 말을 쓰지 않고 무극대도라고 한다. 또한 교주라고 하지 않고 도주라고 한다.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는 ‘선도’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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