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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우리 삶과 뇌는 아주 깊은 관계가 있다. 삶에서의 모든 것은 뇌가 지령하고 또 지시한다. 이 책은 도쿄대학교 약학부 교수이자 뇌과학 전문가인 ‘이케가야 유지(池谷 裕仁)’의 저술로 작년인 2024년 3월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었다. 저자는 실용적이고 유용한 최신 뇌과학 연구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소개하고 있는데, 그의 여러 저술들은 중국과 한국,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출간되고 200만 부 이상 판매되어 뇌과학 베스트 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우리는 흔히 과학이란 딱딱하고 어렵기만 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때로는 인생의 깨달음을 주기도 하고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다. 과학이 흔들이는 삶에서 선명한 좌표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전할 수 있다면 그걸로 책을 낸 목적은 달성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모두 4개 PART로 나누고, 24개 소단원으로 나눠 쓰여진 이 책에서 ‘아! 그렇구나’하고 감동되는 부분들을 요약하는 것으로 독후감에 대신할까 한다. 첫단원이 “뇌라는 것은 불확실성을 즐기도록 만들어져 있다. 스포츠 게임이 즐거운 것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도 미리 결말을 알면 재미가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손바닥 보듯이 뻔한 삶은 뇌를 망칠 수 있고, 재미도 없다. 역설적이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이야말로 뇌에게는 최대의 영양분인 것이다. 물론 불안감이 심하면 트라우마가 생기거나, 우울증에 빠질 수는 있다. 하지만 불안감이 전혀 없는 것도 문제다. 동기 부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뇌는 불안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고민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서 생겨나고, 그 예측은 경험을 바탕으로 계산된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 미래를 예상하는 것이 바로 뇌의 전두엽이 하는 역할이다. 전두엽이 손상되면 미래를 예상할 수 없으므로 고민이 사라진다. 고민이 사라지면 좋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사실 비참한 일이다.”라고 하면서 시작한다.
불안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사실 불안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요소이기도 하다. 계획은 인생의 예행 연습이다. 미래를 예측할 때 불안이 생기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장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고 예상해 몇 가지 선택지를 준비하고, 그에 대한 대처법을 생각하는 것이 예측이고 계획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불안은 진지하게 미래를 설계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도 있다. 이것이 불안할수록 뇌가 똑똑하다는 증거다. ‘조금 불안하다고 해서 진짜로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의문을 가지는 것 중의 하나가 나이 들어도 뇌세포는 계속 생겨날까?인데 뇌세포는 60조 개쯤이라고 하고, 답은 ‘그렇다’이다. 인간의 신경세포는 2세 이후에는 거의 평생동안 변하지 않는다. 피부세포도, 장 세포도, 머리카락도 끊임없이 새로 나고 교체된다. 간장은 80%를 절제해도 몇 개월 뒤에는 원래 크기로 복원된다. 반대로 처음 태어날 때 가진 세포를 평생동안 사용하는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근육과 뇌의 신경세포다. 어째서 뇌는 계속 똑같은 세포를 사용하는 것일까. 그것은 만약 뇌세포가 사흘에 한 번씩 교체된다고 한다면 뇌의 역할 중 하나인 기억을 저장하는데 쓸모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뇌세포도 증식한다’는 논문이 발표되었고 쥐 실험에서 자극물이 많은 환경에서 생활한 쥐의 해마 세포 증식 속도는 그렇지 않은 쥐보다 2배 빨랐던 것을 확인했다. 쥐가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하면 별다른 자극을 받지 않아도 신경세포 분열이 가속화된다. 반대로 쥐의 해마에 방사선을 투과시켜 신경세포 중식을 억제하면 우울증 치료제 효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해마海馬*’라는 존재의 역할이 무엇인지 확인된 것이다.
*해마 : 물에 사는 해마와 비슷하다 하여 이름 붙였지만, 뇌의 중요한 부위 중 하나로, 단기기억을 해마를 통해 장기기억으로 만들고, 기억과 상기(想起)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뇌의 측두엽 안에 왼쪽뇌, 오른쪽뇌에 하나씩 모두 2개가 있으며 변연계에 속한다. 해마가 손상되거나 통째로 괴사할 경우 학습이나 새로운 기억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답답할 때 담배를 찾는 이유는 무엇이며, 百害無益하다는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담배는 정말로 백해무익할까? 흡연자가 담배를 찾는 이유는 니코틴이라는 알칼로이드 성분 때문이다. 폐에서 흡수되는 니코틴은 혈류를 따라 중추신경계에 도달해 에세틸콜린 수용체의 일종인 니코틴 수용체에 작용하는데, 이 수용체는 신경세포에 플러스 이온을 유입시키고 이것이 신경세포를 흥분시킨다. 니코틴은 나쁜 측면만 강조되고 있으나, 사실 바람직한 작용 효과도 적지 않다. 니코틴은 뇌를 각성시켜 집중력을 강화하는 기능이 있고 기억력을 높인다. 파킨슨병 증상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 알츠하이머병 같은 인지증(認知症) 환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니코틴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것은 뇌 질환을 치료하는 데 유용한 정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담배를 피워서 암에 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도 암에 걸리는 사람이 있고, 좀처럼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과 쉽게 끊는 사람도 있다. 담배를 그저 습관적으로 피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담배를 끊으면 금단 증상이 심각한 사람도 있다. 똑같은 담배인데도 사람마다 이렇게 다르다는 것은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독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약이 되는 것이다. 유전자만큼 중요한 것이 환경인자다. 평소에 음주와 흡연이 잦은 사람은 특정한 간장 효소가 더 활발히 움직인다. 알코올과 니코틴을 빈번하게 분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약물을 복용해도 간장에서 금방 분해되기 때문에 제대로 약효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의사가 환자를 볼 때는 유전자뿐 아니라, 환경과 생활습관까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의사들에게 하는 말 같지만, 귀담아들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항상 생각하고 지시를 내리기도 하는 것이 사람의 뇌다. 하지만 쉬기도 한다. 쉴 때는 아주 쉬는 것이 아니라 꿈을 꾸기도 하는데, 꿈은 기억의 단편들을 연결해 스토리를 만든다. 꿈은 기억정보의 정합성을 측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주기율표를 고안한 멘델레예프와, 예스터데이를 부른 비틀즈도 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꿈을 꾸지 않는 깊은 잠에 빠졌을 때는 뇌가 무엇을 할까? 그때는 해마가 기억을 대뇌피질로 전달한다. 얕은 잠일 때 여러 가지 조합을 시도하고 적당한 조합이 이루어지면 그 정보를 압축해 대뇌피질에 전달해 저장한다. 다시 말해 해마는 대뇌피질에게 ‘이 정보를 보존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심장처럼 뇌는 쉰다고 해도 아주 쉬는 것이 아니다.
‘배부르면 아무 생각 없다’는 말은 맞을지 모른다. 적게 먹을수록 뇌가 똑똑해진다는 것이 여러 실험에서 증명된다. 어떻게 하면 뇌를 단련해 기억력을 높일 수 있을까? 뇌의 특성을 활용해 일시적으로 기억력을 높이는 요령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노력이 중요하다. 다방면에 흥미와 호기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목적을 달성하고야 말겠다는 ‘헝그리 정신’도 필요하다. 공복은 생물에게는 위기상황이다. 영양섭취는 생명과 직결된다. 배가 고프면, 즉 위장이 비었을 때는 크릴린이라는 소화관 호르몬이 방출되는데, 위장에서 뇌로 그것이 전달된다. 이때 식욕이 증진되고 식욕이 생긴다. 크릴린이 해마에 도착하면 스냅스가 30% 증가해 활발해지고, 반대로 크릴린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스냅스가 25% 줄어들면서 기억력도 저하된다. 영양은 몸에 필요하지만, 지나친 과식은 뇌에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준다. 결국 해마를 단련하려면 ‘헝그리 정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비슷하지만, 최근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것에 따르면 일본인의 사망 원인 1위는 암이다. 이는 전체의 30%를 차지한다. 다음은 심근경색 같은 심질환, 세 번째가 뇌경색, 뇌출혈 같은 뇌질환으로 각각 15%씩을 차지한다. 이 세 가지가 전체 사망 원인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셈이다. 2위 심질환과 3위 뇌질환은 부위만 다를 뿐 똑같은 혈관계 질병이므로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2가지를 합치면 암과 같은 1위가 된다. 정좌를 하고 오래 앉아 있으면 다리가 저리다. 오금의 혈관이 압박을 받아 혈류가 제대로 순환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리 저림은 몇 분만 지나면 저절로 낫기 때문에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더 심각한 상태로 혈류가 완전히 멈추고 세포가 괴사해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그런데 뇌나 심장의 혈관이 막히면 생명이 위태롭다. 나이가 들면 신체 부위 곳곳에서 혈관이 막힌다. 그렇게 혈관의 순환이 멈추면 주요한 장기에 경색이 일어나면서 죽음에 이른다. 혈관은 끝까지, 죽을 때까지 잘 돌게 해야 한다.
다음은 ‘스트레스’에 대해서다.
현대인들은 스트레스 속에서 산다. 스트레스 때문에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하여 폭음을 하는 사람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아무리 호소해도 객관적으로 가늠하기도 힘든 것이 스트레스다. 워낙 그 속에서 살다 보니 감각조차 무뎌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가 신체에 누적된 스트레스로 병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의외로 스트레스를 자주 호소하는 사람이 스트레스에 잘 견딘다. 주관적으로 정신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신체가 느끼는 스트레스는 다르다. 심각한 것은 자각할 수 있는 스트레스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몸이 현실적으로 느끼는 스트레스가 더 무섭다.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예측과 회피다. 발생 가능성 있는 일을 사전에 알고 대비하는 것, 견디기 힘들 때는 언제든지 그것을 피할 수 있다는 것, 이 두 가지는 일반적인 환경 인자에 따른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약물로 직접 끌어내는 강제적인 스트레스까지 극복할 수 있다. 운동을 하거나, 음악을 듣는 것은 실제로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단지 간접적인 효과일 뿐이다. 스트레스는 기본적으로 만성적이다. 24시간 중, 1시간을 운동해서 스트레스가 해소되었다고 해도 나머지 23시간은 스트레스를 느낄 수밖에 없다. 행위를 통해 스트레스를 완전히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아는 것이다. 또 방법을 안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스트레스를 느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트레스 받드라도 언제든지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건망증은 어떤가? 어른이 되면 건망증이 심해진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나이 들면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믿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다. 주위의 아이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라. 놀이터에 놓아둔 옷이나 놀이 기구는 그들이 깜빡 잊고 두고 간 것이다. 다만 아이들은 그렇더라도 일일이 신경 쓰지 않는다. 어른이 그럴 경우 나이 탓이라면서 의기소침해한다. 일부러 나이 탓으로 돌리면서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뭔가를 깜빡 잊었을 때는 그만큼 뇌에 많은 것(지식)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건망증은 기억을 불러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어디까지나 불러내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뇌에서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질병이다. 이른바 치매가 그것이다.
건망증 중에 ‘알코올 건망증’이라고 있다. 지나친 과음으로 기억이 날아가 버리는 증상을 말한다. 이것은 단지 건망증일 뿐 질병이라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 알코올이 체내에서 사라지면 기억력은 되돌아온다. 健忘이라는 말 자체가 ‘건강하게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깜빡 잊어버리는 것, 그것이 건망증이다. 기억이 아직 뇌 속에 남아 있는 상태이므로, 이러다가 혹시 치매가 되는게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것은 지나친 기우다.
그것으로 점을 치기도 하고, 성격을 평가하기도 하는 인간의 혈액형은 어떤가? 일본인의 경우 A형이 40%, O형이 30%, B형이 20%, AB형이 10% 순이다. 그런데 서쪽 지역은 A,O형이 높고, 북쪽 지역은 B형이 더 높다. 이처럼 지역마다 분포가 다르고, 국가별로도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인의 경우 절반이 O형인데 반해, 인도는 B형이 40%를 차지한다. 태국과 아이누인들은 AB형이 더 많고, 태국의 경우 AB형이 33%다. 극단적인 경우를 보이는 곳은 남미쪽인데 90% 이상이 O형인 나라도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혈액형으로 점을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름으로 점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귀로 들었을 때 왠지 어감이 좋은 말과 싫은 말이 있다는 것을 안다.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 똑같은 이름으로 불리다 보면 영향을 받아 성격도 미미하지만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연초에는 보게 되는, 보아온 운세도 혈액형과 마찬가지로 지나친 믿음보다 오락거리로 즐기는 것이 좋다.
다시 치매로 가보자. 일본에서는 채매를 ‘인지증’이라고 한다. 용어가 바뀌었다고 증상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바꾸는 것이 맞다. 인지증은 특별한 질환이 아닌 뇌의 변화로 기억이나 지능에 장애가 나타나는 증상을 가리킨다. 인지증을 일으키는 원인은 여러 가지 인데, 가장 큰 원인이 알츠하이머병이다. 노인이 앓는 인지증 중 절반 이상이 알츠하이머병이라고 한다. 알츠하이머병은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독이 뇌에 쌓이면서 발생한다. 사실 베타 아밀로이드는 건강한 뇌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 몸이 그 독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쌓아 두면 결과적으로 뇌가 위축되어 인지증 증상이 나타난다. 수십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병이 고령자에게 많이 나타나는 것이 그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병은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개선효과를 볼 수 있다. DHA가 풍부한 음식을 먹고 적당히 운동하는 것이다. 카레에 들어있는 ‘커큐민’이라는 성분도 알츠하이머에 효과적이다. 인도에는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적은 것은 단순히 수명이 짧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커큐민 효능에 대한 실험 데이터가 있다. 카레를 자주 먹은 사람은 인지력 테스트에서도 나이에 비해 젊은 뇌상태를 유지하는 사실도 밝혀졌다.
옛날에는 지금과 같은 화학합성 기술이 없었으므로, 약이란 것은 모두 천연성분으로 만들어지거나 음식 자체였다. 식물을 비롯해 파충류, 곤충, 미생물에는 약용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술도 약이라고 하여 ‘약주’라고 했다. 약은 단지 인류의 입장에서 이용 가치 척도로 ‘약’하다고 했을 뿐, 그것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독’이었다. 인류는 그런 자연의 지혜를 약으로 이용한 것이다.
생물의 존재 규칙 중 하나가 유전자다. 생명에 필요한 정보를 유전자가 이어받고 있는 것인데, 인간사회에는 그 외에도 또 하나의 유전자가 존재한다. 문화라는 규칙과 관련된 유전자다. 인간은 왜 규칙을 만드는 것일까? 규칙 중에는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것도 있고, 불합리한 부분도 있다. 축구의 경우 인간은 양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동물인데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발로만 하도록되어 있다. 사회적 집단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규칙이 존재한다. 그 규칙이 불합리하고, 불가사의하다 해도 그 사회에서는 통하는 것이다. 스포츠뿐 아니라 예술에서도 여러 가지 규칙은 존재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하이든은 곡의 빠르기나 가락, 구성 등을 정하고, 교향곡 형식을 만들어냈지만, 그 규칙을 깬 것은 제자인 베토벤이었다. 그는 형식을 파괴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만 곡을 만들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않으면, 곡을 만들지 않았다. 하이든이 104곡, 모차르트가 41곡의 교향곡을 만든 것에 비해 베토벤은 9곡밖에 만들지 않았다. 베토벤의 교향곡에는 항상 새로운 무언가가 발견된다. 교향곡 3번 『영웅교향곡』의 경우 이전에는 곡이 길어봐야 25분 정도였지만, 그것은 1시간이나 됐다. 게다가 경쾌하고 화려한 곡이 아닌 웅대하고 공격적인 음악이었다. 이는 이후로 교향곡의 규칙이 된다. 인간은 누군가 나타나서 규칙을 만들면, 반드시 누군가가 그 규칙을 깬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신선함으로 교체되는 과정을 통해 예술로 문화로 거듭나는 것이다.
사람은 이성을 좋아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과연 상대를 좋아하게 된 근거가 있을까? 만약 연인이 “내 어떤 점이 좋은 거야?”하고 물으면, “상냥하고 얼굴이 예뻐서”라는 식으로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다시 “그럼 상냥하고 예쁘면 누구라도 좋아할 거야?”하고 물으면, 난감해진다. 물론 누구라도 다 좋아할 리는 없다. 그런 식으로 파고들면 결국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을 선택한 뒤에 합리화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왜 좋아하게 된 거지?’라는 질문의 정답은 ‘뇌가 동요했기 때문’이다.
다시 꿈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인생에서 3일은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한숨도 자지 않으면 누구든 환각이 나타나고, 기억력이 저하된다. 또 잠이 부족하면 학습력이나 기억력도 떨어진다. 때문에 우리는 수면이 기억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수면은 단지 기억력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기억력뿐 아니라 생명 유지에 필요한 근본적인 역할도 한다.
수면에는 얕은 잠(렘수면)과 깊은 잠(논렘수면)의 주기가 있다. 사람의 육체는 오히려 렘수면 상태일 때 깊이 잠들고 꿈은 얕은 잠을 잘 때 자주 꾼다. 얕은 잠을 잘 때는 깨어 있을 때처럼 뇌가 활발하게 움직인다. 깨어 있을 때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이는 뇌 부위도 있다. 하지만 몸은 마치 죽은 것처럼 꿈적도 하지 않고 잠들어 있다. 깊은 잠을 잘 때도 꿈을 꿀 때가 있다. 수면 중에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는 때가 이때다. 수면 상태에서 뇌와 몸은 시소 관계에 있는 것이다. 뇌가 효율적으로 활동하는 시간에는 몸이 휴식하고, 몸이 활동하는 시간에는 뇌의 활동이 둔해진다는 말이다.
뇌를 아는 것은 자신을 아는 것이다. 또 나를 아는 것은 세상의 일부를 이해한다는 뜻이다. 무엇이든 잘 알게 되면 걱정과 두려움이 줄어든다. 하지만 하나의 의문이 해소되면 또 다른 의문이 반드시 생겨난다는 것이 과학이라는 학문의 특징이다. 과학은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과학은 현시점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불완전한 상태로 존재할 것이다. 과학은 고도의 논리성과 냉철함, 정확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사실 과학은 매우 가변적이고 유연한 분야다. 시대에 따라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기도 한다. 과학은 해석학이다. 과학자는 실험으로 데이터를 분석해 진리를 추구하고 추측한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인간에 의해 연구되는 이상 언제나 착오와 모호함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예나 지금이나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