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뻘 젊은이만 가는 줄 알았던 모델 학원의 문을 그렇게 처음 열었다. 빚을 갚으려 간병 일에 매달리던 노년의 삶이 뒤바뀌는 순간이기도 했다. 4년 후 진짜 패션모델이 됐고 ‘힙한 할머니 모델’이라며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올해로 데뷔 3년 차를 맞은 최순화(77)씨가 그 주인공이다.
최씨는 런웨이를 걷는 일이 숙명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남들보다 늦은 출발이라는 걸 알지만 발걸음은 유독 여유로워 보였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모델 에이전시 ‘더쇼프로젝트’에서 만난 그는 “70년이 걸렸다”며 모델이 되기까지의 순간순간을 털어놨다.
최씨는 1943년 경남 창원에서 1남 6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홉 식구가 모여 살던 집은 어려웠고 그는 늘 언니들의 헌 옷을 물려 입고 자랐다. 언젠가 아버지가 사온 여성 잡지를 뒤적이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 사진 속 화려한 옷을 걸친 모델들을 본 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그러나 6·25 전쟁 직후, 패션이나 모델 같은 건 입에 담는 것조차 생소했고 그 시절 부모님의 이해를 바랄 수도 없었다.
그는 “그때는 나라가 어려우니 가정들도 어려웠다. 모델을 하고 싶은데 어디서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며 “그저 혼자만의 소망이었을 뿐”이라고 회상했다. 그렇게 길을 헤매던 사이 결혼을 했고 한 사람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최씨는 “사느라고 잊어버렸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예순이 넘어서는 빚을 갚기 위해 간병 일에 뛰어들었다. 그의 삶은 팍팍함의 연속이었고 꿈은 있었는지도 모르게 묻혀버렸다.
최씨는 ‘모델 지망생’이 됐다. 그는 “낯선 환경이었다.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갔는데 다들 근사하게 옷을 입었더라”며 “솔직히 겁이 났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다시 생각을 다잡았다. “나는 나대로, 당신들은 당신들대로. 마음 먹은 대로 밀고 나가겠다”고.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최씨는 “소녀 최순화의 꿈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면서 “그 환자분의 말을 들은 뒤 잔상이 사라지지 않았다”며 “저걸 가져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 누군가 손에 딱 쥐여준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의 열정은 행동으로 그대로 옮겨졌다. 간병 일을 하며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을 들었다. 주말을 반납하는 건 당연했다. 쉬어가며 꿈을 이룬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최씨는 늦은 새벽 환자가 잠든 후 아무도 없는 병원 복도를 런웨이처럼 걸었다. 그는 “모델은 엉덩이만 흔들며 걸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골반을 돌려야 하더라. 무척 어려웠다”며 “일자 걸음은 물론이고 포즈도 안 됐다. 극복하기 위해 혼자 정말 많이 연습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포기하고픈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일을 꼭 해야겠다는 다짐이 강해졌다. 그는 “늦은 나이에 생긴 빚은 삶에서 희망을 없애버렸다. 그런데 모델이라는 꿈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은 것”이라며 “모델을 준비하면서부터는 마음에 늘 즐거움이라는 걸 품고 다닐 수 있었다. 그 하나로 모든 어려움을 다 이겨냈다”고 강조했다.
그대로 둔 흰머리는 ‘트레이드마크’… “나는 모델이다”
최씨는 2018년 3월 모델 김칠두(64)씨와 함께 국내 시니어 모델 최초로 서울패션위크 무대에 올랐다. 가을겨울 시즌 디자이너 ‘키미제이(KIMMY.J)’ 쇼에 섰고, 같은 해 2019 봄여름 시즌 ‘더갱’ 무대를 걸었다. 지난해에는 요가복 브랜드 ‘안다르’의 모델로도 발탁됐다.
‘모델 최순화’로서 첫 쇼에 서던 순간을 떠올려 달라고 했다. 최씨는 숨을 크게 한 번 쉬더니 바로 어제 일처럼 감격스러워했다. 그는 “저 많은 관객 앞을 지나야 한다는 생각에 굉장히 뿌듯했다. ‘이 나이에도 할 수 있구나, 해냈구나’ 싶었다”며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먼 길을 돌고 돌아 꿈에 안착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최씨는 ‘강한 의지’라고 답했다. 그는 “최순화라는 모델이 있다는 걸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했다”며 “점점 나만의 캐릭터가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고, 노력을 통해 발전시켰다”고 했다. 이때부터 그는 흰머리를 까맣게 염색하던 일을 멈췄다. 책을 뒤지며 패션에 대한 아이디어를 수집하기도 했다.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개성’을 얻는 과정이었다.
최씨의 꿈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꿈을 이루는데 그들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최씨는 “‘그걸 당신만 하겠느냐’는 사람이 몇몇 있었다”면서도 “그들은 제게 얼마든지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내 마음가짐과 주변의 응원들”이라고 했다.
인터뷰가 있던 날에도 최씨는 두 시간짜리 워킹 수업을 받았다. 8㎝ 굽의 하이힐을 신고도 흔들림이 없었다. 이날 최씨를 가르친 임성민 더쇼프로젝트 팀장은 ‘선생님으로서 보는 모델 최순화를 말해달라’는 질문에 “삶의 굴곡과 짐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와 열정이 있는 분”이라고 평가했다. 최씨 역시 “나이는 상관없다”며 동의했다. 이어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선택 기로에 선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진지한 조언을 건넸다.
그는 “기회가 왔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며 “포기하지 않으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새 삶을 살 힘이 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단 시작하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최씨는 두 번째 꿈을 향해 뛰고 있다. 해외 모델들과 나란히 런웨이를 서는 것이다. 그는 “키가 큰 해외 모델들 속에 작은 동양 할머니가 선다면 더 특별하지 않을까 싶다”며 “미국 모델 카르멘 델로피체가 롤모델이다. 89세 나이에도 아직 무대에 오른다. 그의 옆에 꼭 서고 싶다”고 했다. “먼 훗날, 나이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열정 가득했던 모델로 기억되고 싶다”는 소망도 내비쳤다.
드라마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최씨에게 ‘일흔일곱이라는 나이’와 ‘모델’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했다. 그는 “저는 늘 젊은 날의 청춘을 생각한다”며 “일흔일곱의 숫자는 나이를 묻는 사람에게 해주는 대답일 뿐”이라고 했다. 이어 “모델은 저의 행복”이라며 “제가 모델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새삼스럽게 나는 모델이구나, 생각이 나 문득문득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나이 든 최씨의 얼굴에서 수십 년 전 소녀의 미소가 겹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