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Jane Eyre)
1943년 미국영화
감독 : 로버트 스티븐슨
원작 : 살롯 브론테
각본 : 로버트 스티븐슨, 존 하우스맨, 헨리 코스터 외
음악 : 버나드 허만
출연: 오손 웰즈, 조안 폰테인, 마가렛 오브라이언
페기 앤 가너, 존 서튼, 아그네스 무어헤드
엘리자베스 테일러, 헨리 다니엘, 힐러리 브룩
이디스 바렛
'제인 에어'는 19세기 영문학 소설 원작 작품중에서 꽤 많이 영화화 된 작품입니다. 아마도
'안나카레니나' 와 함께 영화나 TV 드라마로 가장 선호되는 작품일 것 같습니다. 통속
로맨스 소설로서의 재미와 드라마틱한 구성을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겠죠.
1943년 만들어진 로버트 스티븐슨 감독의 제인 에어'가 벌써 4번째 영화화된 작품일
정도입니다. 무성영화 시대에 2번이나 만들어졌지만, 1시간 남짓한 시간에서 과연
소설의 내용을 어느 정도라도 제대로 표현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1934년
첫 유성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역시 매우 짧았고 평가도 별로입니다.
1943년 작품은 오손 웰즈, 조안 폰테인, 아그네스 무어헤드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으로 무게감이 있고, 극적 구성도 꽤 흥미롭게 펼쳐지는 '제대로 된 영화' 입니다.
추억속의 흑백 고전이고, 우리나라에서도 40년대 후반에서 50년대 초반까시 수시로
재상영을 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습니다.
악녀 전문 배우 아그네스 무어헤드
제인의 외숙모로 등장
아역 제인 에어를 연기한 페기 앤 가너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가난하고 혹독하게 성장한 제인 에어 라는 여성의 파란만장하고
굴곡진 삶을 영화에서 다 닮아내기에는 매우 한정된 시간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제인 에어의 삶 중에서 어린시절 헬렌과의 우정 부분, 그리고 성인이 된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와의 로맨스 부분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대신 로체스터의 곁을 떠난 후의
제인 에어가 겪는 나름 '홀로서기의 삶'과 새로운 가족이 될 뻔한 존 리버스와의
이야기는 통생략이 되어 있습니다.
1시간 30분 좀 넘는 시간동안 나름 필요한 부분을 건져서 잘 각색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로체스터와 제인의 이별후의 기간이 좀 짧은 느낌이지만 그 기간의
이야기를 하려면 영화는 무척 방대해집니다. 그래서 제인 에어의 외숙모의 죽음도
로체스터 저택에서 살던 시절이 아닌 그 집을 나와서 돌아온 뒤로 슬쩍 각색을 해서
제인 에어가 로체스터와 이별한 후의 삶에 대한 부분을 짧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도 외삼촌댁에서 자랐지만 외삼촌마저 돌아가시고 핏줄이 아닌
외숙모 손에서 자라면서 그야말로 객식구가 되어 버린 제인 에어의 고생스러운
어린 시절은 오프닝의 나레이션으로만 설명됩니다. 나름 상징적인 외삼촌의 돌아가신
'붉은 방'에 대한 이야기도 거의 생략됩니다. 대신 로우드 기숙학교에서의 삶이
펼쳐지는데 이 부분은 여우굴을 나왔더니 호랑이굴에 들어온 느낌입니다. 못된
외숙모 밑에서 학대받고 자란(마치 콩쥐나 신데렐라 처럼) 제인 에어가 드디어
그 집을 탈출했지만 대신 머물게 된 기숙학교는 아주 혹독하고 매정한 곳이었습니다.
아마도 헬렌 이라는 또래 소녀의 우정이 없었다면 제인 에어의 삶은 더욱 혹독했을
것인데 영화에서는 헬렌과의 따뜻한 우정을 어린시절 기숙학교에서의 모습중에서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헬렌 외에 의사선생님의 따뜻한 격려는 헬렌의 죽음 이후에
제인이 삶을 견뎌내며 그 학교에 머무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출연장면
당시 11세
꼬마 시절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인 역의 페기 앤 가너와 헬렌 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성인이 된 제인 에어를 연기한 조안 폰테인
이후 어른이 된 제인은 학교에서 알선해준 가정교사 자리를 마다하고 자신이 직접
광고를 내서 지긋지긋한 그 마을에서 벗어나 어떤 외진 성 같은 저택으로 가게
되는데 로체스터의 성이었습니다. 그 집에서 키우는 아델이라는 프랑스 소녀의
가정교사역할을 하고 비로소 편안히 자고 깨는 삶을 찾게 됩니다.
로체스터의 등장은 말을 타고 오다가 제인을 보고 놀라서 말이 날뛰는 그 내용
그대로 펼쳐집니다. 흑백영화속에서 무언가 안개낀 음산한 분위기속에서 보여지고
이렇게 제인과 로체스터의 드라마틱한 만남이 시작됩니다. 이후 영화가 풀어야 할
숙제는 짧은 시간동안 두 사람의 낯선 남녀가 초면의 무뚝뚝하고 어색한 관계를
극복하고 어떻게 사랑을 하게 되느냐인데, 소설에서처럼 구구절절 표현할 수는
없는 한계가 있지요. 여기서는 불에 타 죽을 뻔한 로체스터를 제인이 구해주는
장면을 통해서 동기부여가 되고, 이후 파티장에 온 속물같은 사람과는 다르게
진심으로 로체스터를 도와주고 생각해주는 제인 에어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꽤 젊은 모습이라서 중년시절보다 훨씬 근사한 오손 웰즈의 거대한 풍모, 그리고
참한 인상의 조안 폰테인, 나름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들이니 젊은 시절 이렇게
좋은 외관을 갖추고 있고 별 사람도 들나들지 않는 고요한 저택에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질 수는 있지만 소설에서는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 모두 외모가 뛰어나지
않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조안 폰테인은 예쁜 얼굴이지만 화려하거나
뇌색적이지 않고 착하고 참한 이미지라서 나름 어울려 보였고, 오손 웰즈는 너무
젊은(당시 28세)것이 오히려 단점이었지만 20대에도 워낙 중후한 풍모라서
그 나이에도 이 역할이 가능했습니다. 20여살 차이라는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이룬
사랑이지만 실제 두 배우의 나이차이는 2살 차이입니다. 젊은 로체스터는 최근
작품에서 30대 초반의 마이클 패스벤더가 연기한 적도 있는데, TV영화에서의
조지 C 스코트나 90년대 작품에서의 윌리암 허트가 원래 적당한 나이였지요.
춤 연기를 선보이는 마가렛 오브라이언
당시 6세 시절 출연작
로체스터와 제인의 첫 만남
로체스터의 부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때문에 제인이 결혼을 앞두고 그 집을
나오게 되는 내용은 이미 영화가 상당히 후반으로 흘러갔을때 입니다. 그 이후 다시
제인이 돌고 돌아 로체스터와 재회하기 까지의 과정은 짤막하게 처리되고 존 리버스와의
인연에 대한 내용을 통색략한 대신에 옛날 고모가 키워준 집에 잠깐 머무는 것처럼 처리됩니다.
그래서 제인과 로체스터의 재회가 그리 아득한 세월을 보낸 뒤의 애틋함이 덜 느껴지는 것이
단점이기는 합니다.
배우들의 면모를 보면 조안 폰테인은 무난한 캐스팅으로 보이고, 오손 웰즈는
10살 정도만 더 들었으면 딱 좋았을 분위기입니다. 거칠어 보이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은 따뜻한 면이 있는 그런 외모로서는 더 없이 어울렸습니다.
조안 폰테인이 캐스팅 된 것은 3년전에 출연한 '레베카'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서도 가난한 처녀가 부자집에 들어오면서 남편의 과거의 비밀때문에 괴로움을
겪으면서 슬기롭게 극복하는 연기를 했는데, 제인 에어 역시 어렵게 자란 처녀가
거대한 저택으로 어느날 오게 되고 거기서 저택의 주인을 사랑하지만 어떤 숨겨진
비밀때문에 괴로움을 당하지만 결국 극복해낸다는 두 영화의 내용은 판박이처럼
흡사합니다.
오손 웰즈는 투박한 외모에 비대한 몸 때문에 배우로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은
아니고, 그가 주연배우로 활동하던 40년대는 게리 쿠퍼, 클라크 게이블, 로버트
테일러, 캐리 그랜트 등 호남배우들이 장악하던 시대라서 그들과 대등한 위치를
누리기는 어려웠지만 '시민 케인'에서 볼 수 있듯이 20대의 배우가 그런 놀라운
재능과 연기를 보인 것은 그가 감독으로서, 배우로서 얼마나 천재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인 에어'는 '상하이에서 온 여인' '이방인' '내일은 영원히' 등과 함께
감독이 아닌 배우 오손 웰즈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된 작품입니다.
생각에 잠긴 제인 에어
로체스터에게 사랑과 연민을 가졌는데 그와 약혼할
여자가 방문하자 상심과 혼란에 빠진다.
거대한 체격의 오손 웰즈와 작고 가냘픈 조안 폰테인의
대조적인 모습
이 영화는 당시 재능있는 아역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우선 어린시절 제인 에어
역을 연기한 페기 앤 가너는 엘리아 카잔 감독의 '나무는 자란다' , 그레고리 펙이
신부 역으로 열연한 '천국의 열쇠' 등에 출연한 40년대 아역배우입니다. 당시 11세
였고, 성인으로 성장한 10대 후반부터는 주로 TV 활동을 계속 했습니다.
어린 제인 에어가 기숙학교에서 만나게 되는 마음 따뜻한 헬렌 이라는 소녀는
놀랍게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등장합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출연 영화중에서 '돌아온 래시' 다음으로 어린 시절 출연작이고, 이듬해 출연작이
유명한 '녹원의 천사'입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아주 잠깐 등장하지만
천사처럼 착한 소녀로 곤경에 빠질 뻔한 제인 에어의 친근한 친구가 되어 줍니다.
안타깝게도 일찍 죽는 역할이지요. 어린 시절에도 성인 시절의 외모가 고스란히
담겨 있더군요.
제인 에어가 로체스터의 집에서 가르치게 되는 어린 소녀 아델 역은 마가렛
오브라이언이 등장하는데 이 마가렛 오브라이언은 30-40년대 활동한 아역배우
중에서 '셜리 템플' '디아나 더빈' '주디 갈랜드' 와 함께 가장 큰 위상을 가졌던
전문 아역배우입니다. 디아나 더빈이나 주디 갈랜드는 청소년기에 아역으로
활발히 활동했지만 마가렛 오브라이언은 10세 이전의 나이에 맹활약을 했던
뼈속까지 아역배우였던 인물로 6세부터 12세까지가 전성기였던 어린 아역 전문
이었습니다. 제인 에어를 친근하게 따르며 춤을 추는 재롱을 보여주는 깜찍한
소녀 아델 역으로 등장하며 일부러 마가렛 오브라이언의 비중을 높여준 느낌이
듭니다. 마가렛 오브라이언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같은 영화에 출연하긴
했지만 함께 공연한 장면은 없는데 6년뒤 '푸른 화원'에서 자매로 같이 출연합니다.
감독 로버트 스티븐슨은 우리나라에는 '메리 포핀스'로 알려진 감독인데 두 영화의
시간차이는 무려 19년입니다. 두 영화 외에 '킹 솔로몬'이나 '추억의 불야성' 같은
개봉작이 있습니다.
가난한 소녀가 여러 파란마장한 삶을 겪으며 결국 부유한 남자와 결혼한다는
기존 신데렐라 스토리를 제인 에어 역시 극복하지 못한 경향은 있습니다.
하지만 차이가 좀 있는게, 당시 남녀차별, 신분차별, 계급차별 등이 극심히
심했던, 심지어는 19세기 초반에는 여성은 부모에게 유산조차 물려받을 수
없는 시대의 영국, 그래서 여성의 삶은 '혼테크'를 하지 못하면 하녀나
단순노동자 밖에 할 수 없었던 그런 시대에 제인 에어는 비록 어렵게
태어났지만 스스로 운명에 도전하고, 불행을 극복해 나가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시대의 여주인공으로서는 꽤 독립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체스터와는 20여살의 나이차이가 있기 때문에 기존의 백마탄 왕자와는
차원이 많이 달랐고, 그녀가 로체스터에게 돌아온 것도 그가 불행한 사고를
당하여 저택이 폐허가 되고 눈까지 실명한 상태였다는 점에서 동화속의 일반
신데렐라 스토리 유형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물론 그대로 이야기가 끝맺을
경우 독자들의 마음이 아플것을 우려했는지 로체스터는 다시 시력을 되찾고
제인 에어와 결혼하여 아이까지 얻는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맺는 이야기입니다.
19세기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두 작품을 쓴 작가인 브론테 자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영미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전으로
자리잡고 있었지만 두 자매는 딱 이 작품들 하나씩만 발표했고, 에밀리 브론테는
불과 30세에, 샬롯 브론테는 39세의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자매들의 삶고 그들의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기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인 에어'는 샬롯 브론테가 남긴 영국 문학의 명작이며 여러차례 영화화되었고,
1943년 작품에는 오손 웰즈, 조안 폰테인 외에도,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전설의
배우가 함께 등장하는 무게감있는 영화입니다. 버나드 허만의 음악까지 여러
버전의 제인 에어 중에서 가장 공들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 많이
만들어진 제인 에어 버전들을 감상할 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제대로 된 '원조'
작품이 된 것이 1943년 오손 웰즈 버전 '제인 에어'라는 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옛날에는 확실히 결혼을 참 빨리 했던 것 같습니다. 오손 웰즈는 19살에
이미 한 번 결혼했고, 조안 폰테인도 저 당시 이미 기혼이었습니다.
ps2 : 방대한 소설을 짦은 영화로 각색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영화 중간에 수시로 나레이션을 통한 소설 원문을 낭독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친절한 해설이지요.
http://blog.naver.com/cine212722/221057204605
ps3 : 엘리자베스 테일러 출연 장면 영상입니다.
[출처] 제인 에어(Jane Eyre 43년) 명배우 대거 출연한 원조 제인 에어|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