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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조선의 군대 - 조선후기의 군사체제. Step - 1
다크킬러 추천 0 조회 1,205 06.12.25 14:09 댓글 1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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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12.25 15:05

    첫댓글 인조님 짱이심...ㄱ-

  • 06.12.25 20:59

    참으로 나무랄데 없는 훌륭한 캐삽질 잘보고 갑니다.-_-b

  • 06.12.25 21:35

    예전에 어디서 본바론 청군의 진군을 사신행렬로 잘못 판단한것도 초기대처가 늦은 이유라고 하더군요.;;;;

  • 작성자 06.12.26 00:38

    흠...사신행령이 3만이군요. 흠. 역시. 흠. 역시. 흠 역시. 흠. 역시. ........ 이말박엔;;

  • 06.12.26 12:24

    아...그게요. 야전군에선 보고가 들어갔는데... 중앙 조정에서 돌아온 답신은 '그럴리가 없다. 사신 행렬을 잘못 본것일 것이다. 다시 파악해서 보고하라....' 였다고합니다. 그바람에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는 후문도............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전시체제를 발동하고 전국의 군대가 집결하긴 하지만 이미 늦었죠. 인조는 사로잡혀 삼정도에서 머리박고 있었고..... 인조가 사로잡히는 과정 자체가 거의 코미디 수준이라서....;;

  • 06.12.26 12:38

    김정일은 그래도 핵이라도 가지고 개기지요. 그건 그렇고 요즘 공명의 갈림길이란 일본 시대극을 보는데 임진왜란은 명백히 조선과의 전쟁인데 곧 죽어도 명나라한테 진다고 하더군요.

  • 06.12.26 13:27

    그게..;;; 사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런소리까지 들어도 할말은 없는 상황이 된것은 사실입니다. 애초에 선조가 원했던 시나리오는 명군이 보란듯이(?) 일본군을 패퇴시키고 조선을 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조가 조선군의 명장들(대표적으로 이순신장군 같은분......) 을 눈의 가시 처럼 여긴 이유도 그런거고..... 그것 때문에 반격할 시간을 놓치고 협상으로 시간을 허비했고 그사이에 일본군은 왜성을 쌓고 남해안 일대를 요세화 해서 아군의 공격을 더 어렵게 만들었고 덩달아 조선군은 정치적 목적으로 인한 홀대로 쪼그라 들었고(이순신 장군은 참 대단한 분입니다. 그럼에도 병력과 병참을 유지한걸 보면.)..

  • 06.12.26 13:25

    그와중에 정유재란을 맞은 거죠. 그당시 조명연합군의 편제를 보면 명군이 총 9만 정도 조선군이 3만여 정도 병력으로 보면 조금 그런 소리 나올만 하기는 합니다.

  • 06.12.26 21:53

    조선군은 딱히 3만이라고 못박을 수는 없었죠. 각도에서 일시적으로 징집한 군대가 지역당 많을 때는 1,2만 씩이니...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해서 그렇지. 그리고 임란 때 대부분의 전투를 조선 관군과 의병들이 치뤘고 이순신 제독이 제해권을 쥐고 있어서 육상의 의병들과 함께 보급을 차단한 것이 임란에서 일본군이 패한 주요원인이기 때문에 조선에게 진 것이 맞다고 봅니다. 단순히 병력 숫자로 볼일은 아니죠.

  • 06.12.27 00:38

    임진왜란 관련 기록을 보니 조선 정부에서 집계한 군대 수가 관군 의병 포함 무려 17만명이라는 군요. 일본군은 14만명 정도였는데

  • 06.12.27 02:28

    제가 말한건 정유제란때를 말한 것입니다. 17만은 임란발발이듬해인가 집계한 거고 문제는 애초부터 선조는 조선군에게 맞길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지요. 임란 초에 활약했던 의병들도 나중에 가면 거의 찾아볼수 업습니다. 앞에도 언급했듯이 협상한다고 쓸대없이 시간 낭비하고 조선군은 조선군대로 선조의 꼬장 때문에 병력은 줄어가고......

  • 06.12.26 18:36

    인조 역시 선조와 더불어 삽질의 제왕입니다. 선조와 같이 현대로 살아돌아 온다면 일주일 내에 전 국토에 참호를 팔수 있겠네요. 그야말로 북한이 꿈꾸는 전 국토의 요새화의 실현?(응?)

  • 06.12.26 22:02

    인조가 삽질한 것은 맞지만 몇몇 이탈자가 생긴 경우로 국민성을 이야기하긴 좀 뭐하죠. 대게 다른 나라의 경우 정규군이 패배하면 곧 나라 전체가 접수되기 마련인데 우리민족 만큼은 백성들이 끝까지 완강하게 저항하는 전통이 있어왔으니

  • 06.12.26 23:39

    정규군이 패한게 아니라.. "전진 고향 앞으로!"라서... ㅡㅡ;

  • 06.12.27 02:31

    전투 자체는 그렇게 못 싸운건 아닙니다. 쌍령전투처럼 다소 황당하게 깨진 전투도 있지만 주요 4대전투의 승률은 2승2패로 동률입니다.

  • 06.12.29 01:13

    병자호란때 남한산성을 청군이 포위하는 동안,각지에서 조선군과 의병들이 청군과 크고 작은 전투를 전개하고 있었습니다.그런데 그 중에서 완연히 이긴 전투는 2차례 뿐이고,상당수는 초반에 잘 싸우다가 나중에 청군의 계략에 낚이거나 지휘관의 만용으로 인해 반격을 받고 패퇴 하였습니다. 광교산 전투에서 청군을 대파 했던 김준룡 장군도 결국은 군량 부족에,청군의 위협 멘트로 인해 철수하였습니다.(그것때문에 김준룡 장군은 파직 당했죠.)

  • 06.12.29 00:32

    야전군 지휘관들만 불쌍하죠. 정작 책임지고 물러나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정말 지금 생각같아선 청군에게 사로잡힌 인조나 신료들은 포기하고 왕을 새로 옹립하고 내각을 새로 구성하는 것도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도...............;;;;;;; 충무공도 그렇고 조선의 군인들이나 선비들은 왕에대한 충성이 너무 강한듯.... 이것도 지나치게 임금에 대한 충,효를 강조한 유교의 폐혜인지.....

  • 06.12.27 15:54

    17만 병력은 임진년 다음해인 계사년에 확인되는 병력입니다 동원가능한 병력은 그보다 더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06.12.27 21:49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음편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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