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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나라와 고조선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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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 기원전 4세기 이전
연나라의 동쪽에 조선요동이 있고 북쪽에 임호누번이 있고 서쪽에 운중구원이 있고 남쪽에 호타역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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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략] 기원전 3세기 초반
연나라가 장수 진개를 파견하여 조선의 서방 2천 리를 치고 만번한으로 국경을 삼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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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기원전 3세기 초반
연나라가 조선과 진번을 복속시켰다.
연나라 진개가 동호를 격파하고 1천리를 치고 조양에서 양평까지 장성을 쌓고 상곡,어양,우북평,요서,요동군을 설치
흉노가 동호를 격파하고 상곡(난하 상류 이서지역)에 좌방왕을 배치한 후 동쪽으로 예맥 조선과 접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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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철론] 기원전 3세기 초반 이후
연나라 의 국경선은 갈석산과 요수로 이루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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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말기 고조선의 서쪽 경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요동, 만번한, 갈석산, 요수를 알아야 하며 만번한은 요동내지에 있을 것 같고 갈석산과 요수는 인접하였을 것이다. |

2. 진나라와 고조선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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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기원전 3세기 후반
진나라의 영토는 동쪽으로는 바다에 이르러 조선(朝鮮)에 닿고 서쪽으로는 임조(臨洮)와 강중(羌中)에 이르렀고 남쪽으로는 북향호(北嚮戶), 북쪽으로는 황하를 천연의 방어선으로 삼아 음산(陰山)에서 요동(遼東)에 이르렀다.
1) 기원전 226년 연왕은 동쪽의 요동(遼東)으로 도망가서 그곳의 왕이 되었다.
2) 기원전 222년 요동의 연왕이 사로 잡혔다.
3) 기원전 216년 진시황이 갈석산에서 자찬하는 비석을 세웠다.
4) 기원전 209년 진시황의 아들 이세 황제가 순행하여 진시황의 송덕비를 세움
갈석산을 넘어 해안에 도착 → 남쪽으로 가서 회계에 당도 → 시황제가 세긴 비석의 옆면에 수행 신하 이름 명기
→ 방향을 북쪽으로 돌려 요동을 방문한 다음 함양으로 돌아옴
5) 거의 동시대(한무제) 사마천이 인식하였던 갈석산은 산동에서 해양으로 북상하면 위치하는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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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정의] 장수절(당나라)이 인식한 동쪽 바다
1) 海는 발해를 일컫는다.(海謂渤海)
2) 동북쪽에 조선이 있다.(東北朝鮮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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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와 고조선의 경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요동, 갈석산, 진나라와 접하는 바다를 알아야 하는데 중원의 사가들은 발해라고 했다. |

3. 한나라와 위만조선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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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기원전 2세기 초반
1) 연나라가 번성할 때 진번, 조선을 경략하여 복속하고 관리를 두어 장새를 쌓았다.
2) 진이 연을 멸하자 요동 외요에 속하게 되었다.
3) 한나라 때에 그 땅이 멀어 지키기 어려워 요동의 예전 요새를 다시 수리하고 패수를 경계로 삼았다
4) 위만이 망명하여 패수를 건너 진나라의 옛 빈 땅인 상하장에 자리 잡았다.
5) 진번,조선의 만이들과 연, 제나라 망명인 들을 복속하여 왕이 되었고 왕험에 도읍을 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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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정의] 장수절(당나라)이 인식한 조선
1) 고려 도읍 평양성 = 한나라 낙랑군 왕험성 = 옛날 조선 땅
2) [지리지]에서 이르길 패수는 요동 새외를 나와 서남쪽으로 낙랑현에 이르러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浿水出遼東塞外,西南至樂浪縣西入海
패수는 요동 새외를 나와 서남쪽으로 흐르고 낙랑현 서쪽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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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색은] 사마정(당나라)이 인식한 조선
1) 응소(후한)가 이르길 현도군의 본래 진번국이다
2) 응소(후한) 요동 험독현 = 서광(동진) 창려 험독현 = 낙랑군 패수 동쪽 = 왕험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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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와 위만조선의 경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요동, 상하장, 패수, 왕험성, 창려, 험독현을 알아야 하는데 연나라가 경략하고 진나라가 예속하였던 요동 지역 중에 패수 서쪽이 한나라의 영토 이었다. |

4. 고조선 말기 시대의 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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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펴본바에 따라서 고조선 말기의 서쪽 경계를 파악하기 위해 습득한 지리정보는 아래와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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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나라와 고조선의 경계가 되는 바다는 발해만이다.
2) 갈석산은 발해 북안에 위치한다.(산동성에서 해상으로 북상)
3) 요동, 요수는 갈석산과 인접해 있다.
4) 패수는 연나라 요동군을 가로지르고 패수 동쪽에 낙랑현 왕험성이 있다.
5) 전한의 요동은 패수 서쪽이었는데 후한의 요동은 패수 동쪽도 포함한다.
- 후한 요동군 험독현 왕험성 = 동진 창려군 험독현 왕험성
- 전한이 위만조선을 멸하고 왕험성이 있었던 패수 동쪽이 요동군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동진의 창려군은 후한의 요동군임을 알 수 있고 청나라 지리 정보에 파악된 창려 지역과 유사하다.
6) 진나라 상하장=낙랑군 패수동쪽(낙랑현)=후한 요동군 험독현=동진 창려군 험독현=위만조선 왕험성 위치
7) 갈석산, 발해만, 요수(난하), 장성 동북 끝(산해관)의 지리정보는 현재와 고조선 말기 일치할 것으로 사료됨
8) 현재의 창려는 청나라 이후 부터 굳어진 지명이나 이전 시대에는 군현의 이동에 따라 위치가 변하였을 가능성 있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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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그림은 송본지리장도의 진나라 강역 표시 지도 인데 현재의 난하가 요수로 표시 되어 있고 난하 인접하여 요동군이 있다. 산해관에서 만리장성이 끝이 나는 것을 보면 현재의 난하에서 산해관 까지가 진나라의 요동군이었음을 대비할 수 있다. 만리장성 내지가 진나라의 영토임은 당연 할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는 진나라가 찾이한 동북 강역의 일부가 너무 멀어서 패수를 경계로 하여 위만조선과 경계를 하였는데 패수는 요동밖에서 시작한다고 하였으니 난하(요수)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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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浿水出遼東塞外, 西南至樂浪縣西入海”
혹자는 패수는 “西入海”를 해석하여 서쪽 바다로 들어가니 한반도를 흐르는 강이라고 하였고 삼국사기 북한본에서는 패수를 대동강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인용하여 위만조선과 한나라의 낙랑군은 북한의 평양일대에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패수는 요동밖에서 시작하는 강이라고 하였는데 한반도를 흐르는 어떤 강도 요동밖에서 시작하는 강은 없다. 고조선 말기의 요동은 후대의 중원사가들은 난하일대 이었다고 하였고 당대의 사마천이 언급한 갈석산도 발해만 북안이니 난하일대 이다.
패수는 요동 새외를 나와 서남쪽으로 흐르고 낙랑현 서쪽에서 바다로 들어간다.(?)-난하지류중에 서남으로 흐르는 하천이 보인다. 물론 자의적인 해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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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색은] 사마정(당나라)이 인식한 갈석산
태강지리지(서진)에 이르기를 낙랑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고 장성이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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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전] 두우(당나라)가 인식한 갈석산
한나라의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그 산에서 진장성(만리장성)이 시작하여 요수를 지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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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말기 시대의 강역은 서남쪽으로는 패수(난하)를 경계로 하여 한나라와 대치하였을 것 같고 서북쪽은 난하 이동 지역 일부를 상실하였을 것 같다. 흉노는 동호를 격파하고 상곡에 좌방왕을 배치한 후 예맥 조선과 접하였는데 상곡은 난하 상류 이서지역 이지만 난하와 인접한 지역이고 동호가 난하 이동 지역으로 서납목륜하 일대에 까지 세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고 고조선이 흉노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으므로 서북쪽의 경계는 난하 이동지역으로 흉노가 일정부분 찾이하였을 것으로 보여진다.
고조선 말기 시대에는 부여와 공존 하였는데, 부여가 고조선의 제후국임을 판단 할 수 없으므로 부여와 고조선을 별도의 국가로 보고 한반도 일정 부분을 고조선이 점유 하였던 것으로 파악하여 고조선의 강역을 추정하면 아래와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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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본인이 파악한 고조선과 한국 교과서에 나오는 고조선의 강역은 조금 차이가 난다. 아래 그림이 교과서의 고조선 강역인데, 이는 시기에 따라서 고조선의 강역이 변하는데 어느 시기를 기준으로 하여 작성하였나에 따른 차이 일 것이다. 진한색 부분이 고조선의 강역이고 점선 부분은 고조선의 문화 영역이거나 시대상황에 따라서 변천된 영역일 것이다. 진한색 부분의 고조선 강역은 본인이 파악한 고조선과 마찬가지로 고조선 말기의 상황일 것인데 차이가 나는 것은 고조선의 서남쪽 경계가 장성 밖이다. 물론 고조선이 연나라에게 격파된 후 진나라 시대까지는 장성밖에서 고조선이 있었지만 한나라는 진나라가 찾이한 지역이 너무 멀어서 패수를 경계로 하여 고조선과 경계를 하였으므로 장성의 서쪽에 경계가 되는 패수는 최소한 난하 서쪽지역의 하천이라야 하므로 적어도 난하까지는 고조선 말기시대의 강역이었을 것이다. 고조선의 서북쪽 강역은 주 거점지역 뿐만 아니라 문화 영역도 난하 상류를 제외 하였는데 이는 하가점 상층문화가 고조선의 문명이 아니라고 파악한 결과 일 것이다. 하가점 문화와 홍산문화의 주체에 대한 견해는 고조선이거나 고조선이 아니라고 확답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동북쪽의 강역은 부여지역을 포함하였다. 물론 부여가 고조선의 제후국이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제후국임을 밝힌 사서가 전하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견해는 "모른다"는 것이다. 부여가 언제 건국되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국가체계를 갖춘 기록은 전국시대로 파악할 수 있는데 고조선과 동시대에 존재 하였다. 따라서 부여가 고조선의 제후국이 아니었다면 부여는 고조선의 강역에서 제외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춘추시대 이전에도 부여지역에서 국가형태를 갖추었다고 추정할 만한 유적등이 발굴되었는데, 문헌상에는 춘추시대 이전에는 부여는 없고 고조선만 있었으니 고조선의 일족이 북상하여 부여 건국의 기틀을 마련하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교과서에서는 북한 전역을 고조선의 강역으로 파악하였는데 위만에게 왕위를 찬탈 당한 준왕이 한반도로 가서 한국을 세웠는데 준왕의 한국도 고조선의 새로운 체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본인도 경우에 따라서는 고조선의 강역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실체가 낙랑국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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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펴 본 고조선의 강역은 전국시대 말기와 진, 한 시대의 고조선 강역으로 주로 위만조선 시대에 해당된다. 시기상으로는 기원전 4~2세기 정도의 고조선 강역인데 그 이전 시대의 고조선의 강역은 고조선 시대 말기 보다 확장된 영토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속단할 수는 없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전적으로 나의 개인적인 견해 이다. 따라서 잘못 파악할 가능성이 아주 높기는 하지만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필요한 내용만 선별하여 정리하였던 것은 아니고 고조선의 지리정보를 담을 만한 기록들은 기록 하나 하나 모두 소중하게 취급하였다. 먼저 진나라의 장성 끝이 한반도라는 견해가 제기 되어서 나의 견해를 밝혀 보고자 정리를 해 보았는데, 현재 산해관에서 끝이 나는 장성은 명나라가 보수한 장성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명나라가 진 장성을 보수 하면서 진나라 장성보다 축소하여 쌓았을리는 만무하다. 명나라는 원나라 시대 때 고려인의 일부가 고려의 영토 일부를 들고 원나라에 귀부하여 십여년간 원나라에 소속시킨 지역이 있었는데, 그 땅을 고려의 공민왕이 다시 정벌하여 찾아 냈지만 명나라는 원나라에게 일정기간 속해 있었던 공간은 자기 땅이라고 내어 놓아라고 고려에 요구 하였던 나라이다. 원래 진 장성 보다 더 멀리 쌓았으면 쌓았지 축소시켜 보수할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전기 시대의 고조선 강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서지역의 홍산문화와 하가점 문화의 실체를 파악 하여야 하는데 하가점 상층 문화는 산융 및 동호의 것이라고 하며 홍산문화와 하가점 하층 문화의 실체는 고조선이 아니었겠냐는 견해가 조심스럽게 제기 되고 있다. 고조선이 요서지역의 일정 공간을 전국시대 말기에만 지배를 한 것인지, 아니면 전 시대 부터 지속적으로 점유하고 있었던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요서북쪽의 대륙문화(산융)와 요서남쪽의 내륙문화(기족관련) 및 난하 하류의 고죽, 영지국등의 실체와 문화적 차이를 요동과 더불어 파악하여야 한다. 대체적으로 기원전 8세기 이전에 난하 상류 일대의 산융과 난하 하류일대의 고죽이 제나라 환공에게 격파된 후 족적의 흔적을 명확히 남기지 못했고 동반하여 대능하 일대의 기족관련 유물도 더 이상 전승되지 않았다. 그리고 기원전 7세기가 되면 고조선이 중원과 교역을 하는등 관련기록이 전해 지는데, 멸족된 고죽등지를 고조선이 접수를 한 것인지, 고죽 산융등이 고조선의 일파이었는지는 더 깊이 연구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서주 이전의 시기에 하북성이나 산동성 등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 되는 숙신이 과연 무었이었는지, 고조선이 등장하지 않고 왜 숙신이 등장하였는지, 숙신이 고조선이었는지 등을 파악해 보아야 할 것이다. 고조선 전기 시대의 강역과 족속문제는 다음번에 언급하기로 하고, 오늘은 진나라 장성과 관련이 있었던 시기의 고조선 강역과 진장성의 실체를 파악해 보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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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만리장성이 한반도까지 연결되어 있는 중국의 웹을 보고 흥분해서 정리해본 글이라 헛점 투성이 일 것입니다. 지적해 주시면 크게 반성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