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복래의 人香萬里➊ 프롤로그/인향만리를 연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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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복래/연합뉴스진흥회 감사,청담연구소 자문위원]
프롤로그/인향만리(人香萬里)를 연재하며
사람의 향기가 만 리까지 퍼진다는 이 고사성어는 참으로 깊고도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말들 중 하나다.
만개한 꽃의 향은 백리를 채우고, 잘 익은 술의 내음은 천 리에 퍼지며,
훌륭한 사람의 인품은 만리를 넘어 세상에 전해진다는 뜻이다.
이 말은 중국 남북조시대 송계아라는 관리가 처음 썼지만,
그 진리와 아름다움은 시공을 초월해 우리의 가슴속에 커다란 울림을 남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성어를 무척 좋아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말의 참뜻이 점점 더 가슴 깊이 다가온다.
최근엔 이 말을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려놓았다.
인간이 직접 맡을 수 있는 향기라면, 만발한 꽃이나 오랜 기간 숙성된 술에서 나는 향이 단연 으뜸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향기란 눈에 보이지도, 코로 맡을 수도 없는 그 존재와 삶의 본질에서 느껴지는 무언가다.
사람의 향기가 어떻게 만 리나 퍼질 수 있을까. 만 리라면 약 4천Km인데,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열배가 넘는 먼 거리다.
그럼에도 이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왜일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한평생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업적을 남겼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따라 그 평가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 명성과 인품의 향기는 세월을 넘어 수 년, 수 백년, 어쩌면 영원히 전해질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만 리라는 표현이 외려 부족할지도 모른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에이브러햄 링컨, 간디, 넬슨 만델라,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인슈타인, 마더 테레사…
이들의 인격과 향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여전히 우리 마음 속에 살아 숨쉰다.
그들의 이름과 그들이 남긴 향기는 세대를 넘어 끊임없이 우리의 삶을 비춘다.
하지만 오늘날의 세상을 돌아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비정상적인 일들이 많다.
유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혈육 간의 다툼도 빈번하다.
인간의 향기보다는 차라리 악취가 나는 장면을 자주 목도한다.
유취만년(遺臭萬年).
더러운 이름은 만 년을 간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상황도 적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먼저 인간의 향기를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구한말 유학자 지신정 허준(許駿) 선생의 삶은 현대인들에게 큰 교훈을 준다.
허준 선생은 조선의 명의 허준과 동명이인이지만, 그 인품과 행적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는 GS그룹 창업주 허만정 선생의 부친이고, 전경련 회장을 지낸 허창수 회장의 증조부다.
대한제국 관리를 지내다 고향인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로 낙향한 후 반평생 근면과 절약으로 살며 만석꾼으로 재산을 불렸다. 하지만 그는 재물을 지역사회를 돕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썼다.
사유재산을 출연해 의장답을 조성했고, 흉년이 들면 구휼하고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
특히, 77세에 자신의 전답을 자식 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에게도 나눠주도록 허씨의장비(許氏義莊碑)라는 비석을
직접 세우며 가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유훈으로 남겼다 이는 조선시대 전체를 통틀어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유훈을 비문으로 새긴 것은 마치 오늘날의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공표한 것과 같을 정도로
투명하고 단호한 조치였다.
앞으로 펼쳐질 인향만리라는 주제의 글들은 사람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갈 것이다.
아름다운 인품을 지닌 이들의 향기뿐만 아니라, 악취를 남긴 사례들 역시 함께 조명될 것이다.
동서고금의 인물들이 등장하며, 그들의 삶 속에서 우리가 배울 점을 찾아갈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가 행하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수만리까지 퍼져나가는 인간의 향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현재를 보다 의미있고 아름답게 살아가며, 그 향기가 세상을 긍정적으로 물들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인향만리. 그 깊은 뜻을 가슴에 새기며 오늘 이 순간의 삶을 보다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때다.
출처 : 맑은뉴스(https://www.ccn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