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탐하지 말고, 번 돈이 있으면 패션쇼 여는 데 투자해라. 패션쇼는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을 국내외에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늘 당부하셨죠.”
21일 85세로 타계한 1세대 한복 디자이너인 이리자(본명 이은임) 선생의 별세 소식을 들은 제자 박술녀(63) 한복 디자이너가 전화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리자 선생의 제자였던 한복 디자이너 박술녀씨. 2014년 박지성·김민지의 결혼식이 진행된 서울 광진구 쉐라톤그랜드 워커힐호텔에서 결혼식 축하하객으로 참석해 포즈를 취한 모습이다.
“어린 아니도 아니고 스물두 살 나이에 한복을 하겠다고 제자로 받아달라며 스승님을 찾아갔을 때 몇 번을 거절당했죠. 그래도 지치지 않고 문을 두들겼더니 결국 받아주시더라고요.” 박술녀씨는 고인의 집에서 7년 간 수학하며 한복을 배웠다고 했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 한복의 전통을 지켜온 동시에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고인은 1935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충남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어려운 살림 때문에 바느질을 시작해 작은 한복집을 열었지만, 한복을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패션’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데 주춧돌을 놓은 인물이다.
1966년 이리자 한복연구소를 설립한 그는 근대화 이후 서양의상이 유행하면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한복의 실루엣을 지금의 형태로 바꾸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항아리처럼 가운데가 볼록했다가 끝단이 툭 떨어지는 한복 치마 실루엣은 키가 작은 한국인의 체형을 더 왜소하게 보이는 단점이 있었는데, 고인이 밑단으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A라인 형태로 바꾸어 디자인한 것.
1970년대엔 섬유산업의 발달에 발맞춰 다양한 색동과 금박, 은박을 한복에 적용했다.
고인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한복의 국제화를 고민했고 1974년 미스유니버스 대회에 참석하는 민속의상을 만들기도 했는데, 저고리에 들어갔던 전통 색동무늬를 치마 한가득 펼쳐놓아 당시 최우수 민속의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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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국내 최초로 한복 작품 발표회를 개최해 ‘한복 디자이너’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현대인들로 하여금 한복의 아름다움에 주목하게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후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100여 회가 넘는 한복 패션쇼를 열었고, 프랑스 기성복 패션쇼인 프레타 포르테에도 초청받아 한복을 세계 무대에도 진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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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술녀씨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야단을 칠 때는 눈물을 쏙 빼놓지만, 통도 커서 한여름 리어카 수박장사를 집으로 들어오게 해 제자들 모두에게 수박을 한 통씩 돌릴 만큼 호쾌함도 넘쳤다”며 “그 남다른 배포가 전 세계를 오가며 한복 패션쇼를 여는 열정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박씨는 “ 2~3개월 전 병문안을 갔을 때도 몸은 아프시지만 정신만은 정말 또렷해서 앞으로 좋은 작품 남기라고 격려도 해주셨는데 이렇게 허망할 수가 없다”고 말소리를 흐렸다.
2000년에 위암 판정을 고인은 2009년 역대 대통령 부인들이 입었던 한복 등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고 ‘이리자 한복 기증 특별전’을 여는 등 꾸준히 한복 연구에 매진하며 암과 싸워왔던 걸로 전해진다.
첫댓글 우리도 한복 입자ㅠㅠㅠㅠ
한복 진짜 예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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