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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도탁스 (DOTAX) 원문보기 글쓴이: 라이즈는라이해
개성에는 조선시대 초기부터 건축되고 거주해 온 한옥 300여채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여러 구역에 모여 있는 형태여서 문화재적인 가치가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세계문화유산에 모두 10건이 등재돼 있으나 전통가옥 집단지구가 지정된 곳은 없다.
경기도 남북협력담당관실 송용욱 팀장은 "경기문화재단 등 전문가 그룹과 협의해 현지 조사와 더불어 보존 방안을 수립할 계획"이라며 "개성이 경기도 지역인 데다 비정치적인 사회문화 교류사업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1/10/20120110030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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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소장하고 있는 개성시 한옥거리사진중 일부입니다.
서울의 북촌이나 전주 한옥거리와 비교해보면 개성의 거리가 더 예전 모습이 살아있음을 느낄수 있습니다.
자남산 중턱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가정하고 고개를 약간 오른쪽으로 돌리면 이런 모습이다.
사진의 위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인 길은 바로 앞의 사진 오른쪽에도 나오니 연결되는 사진이다.
역시 기와 지붕이 이어져 있는데 이것만 봐선 모르겠지만 일부 한옥의 몸체는 개량된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협동 농장의 주택처럼 시멘트에 흰색을 칠한 것 같기도 하고 북한 정부 수립 이후 개량된 듯한 집들이 여러 곳 보이고 있다.
지붕은 기와 지붕말고도 기와골이 없는 밋밋한 지붕이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모르고 있지만 전통 가옥에서 쓰이는 지붕이다.
이 지붕에 대한 언급은 나중으로 하고 어쨌든 한옥마을은 꽤 넓게 이어져 있다.
좀 더 자세히 왼쪽 부분부터 살펴보면 이런 모습인데 한옥이 밀집하고 있는 지역 위로 왼쪽에 송도사범대학 건물 일부가 보이고
중간에는 거대한 학생소년궁전 건물이 보인다. 그 뒤쪽의 산은 개경의 우청룡인 오공산 자락일 것이다.
아마도 개성 한옥사진의 홍보책자를 제작한다면 이 부분의 사진을 많이 실을 것 같다. 외관상으로도 한옥의 상태가 좋은 것 같다.
한옥마을 가운데 위 아래로 공간의 띄워져 가로로 길게 이어진 라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로 배천의 물이 흘러간다.
아래의 흑백 사진은 1911년에 발행된 조선풍속사진집의 개성인데 지형을 비교해보면 같은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북한 개성의 한옥마을[북한 한옥 보존지구]|작성자 gnass
남대문에서 남대가를 따라 북쪽으로 600m 정도 올라가면 개성민속여관이 있다.
개성민속여관의 설명을 보면 조선시대 전통가옥단지를 여관으로 개조하여 1989년 개장하였고 19채의 건물에
100여개의 방이 있는데 4, 6, 8, 16, 19호동에는 1등실과 2등실이 있고 나머지는 3등실이라고 한다.
숙박시설로 온돌방, 전통침구 등을 구비하고 있으며 여관 내 민속식당에서는 반상기, 닭곰, 약과 등 토속 전통음식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원래 이 지역에 있던 한옥을 숙박시설로 꾸미고 주변의 민가와 담장을 쳐서 차단한 모양인데 이 안에는 배천이 흐르기 때문에
숙박을 하면서 이 길을 따라 산책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모양이다. 하천을 따라 나무를 동그랗게 신경써서 잘 다듬어 놓았다.
북한은 형편에 비해 외국에 보이는 부분은 정말 정성껏 가꾸는 것 같다. 사상만 안 들먹이면 봉사원들도 친절할 것 같은데 한번 숙박하고 싶다.
여기에 숙박해본 외국인의 리뷰를 보면 전통적인 건물과 산책로도 좋고 편안했는데 나름의 전기 사정이 있는 것 같고
쌀 껍질 베개가 딱딱하여 불편했다고 적고 있는데 아마 이 여관의 베개는 메밀 껍질로 속을 채운 것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첫번째 사진은 서울 북촌에 가면 볼 수 있을 것 같은 꽤 세련된 한옥인데 몇 등실인지는 몰라도 높은 등급일 것이다.
방마다 다를지 모르겠지만 사진상으로 보면 여름인 듯 바닥에는 화문석이 깔려 있고 미닫이를 열면 자개장이 있고 그 위에 침구류가 있다.
TV는 80년대에나 볼 수 있던 그런 제품인데 전체적으로 방안 분위기는 우리나라 60년대 종로 근방 중상층 계층이 살던 한옥집같다.
고집있고 어느 정도 학식있는 할아버지가 대청마루에서 모시한복 입고 부채를 부치면서 신문을 보고 있을듯한 분위기다.
식사는 여러 종류가 있는 모양으로 삼계탕인 닭곰, 약과에 한정식이라고 할 수 있는 반상기 등이 있다. 사진의 밥상이 13첩 반상기다.
개성관광을 한창 할 때 관광객들은 통일관 혹은 여기에 있는 백송식당에서 이 13첩 반상기로 식사를 했다고 한다.
관광 리뷰를 읽어보면 조미료의 맛에 익숙한 사람이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모양이다. 2달러짜리 냉면도 팔았다고 한다.
수라상이 12첩인데 그보다 더 많고 첩수도 밥, 국, 장류나 김치 등을 세지 않는데 그릇 숫자를 보니 이런 저런 것도 첩수에 포함시킨 듯 하여
오랜 족보있는 그런 차림은 아닌 것 같고 나중에 북한 측에서 관광객에게 제공하기 위해 나름 개발한 밥상같다.
전통적인 느낌인데 어째 남한에서 전통이라고 하는 것과 느낌이 약간 다른 것 같다. 기름진 느낌이 없어 보이고 담백할 것 같다.
몇 가지 반찬만 빼면 먹고 나서 목탁으로 북치기박치기를 할 수 있을 듯 하다.
반찬이야 때에 따라 바뀌겠지만 사진만으로 어떤 음식인지 살펴보자면 약밥에 도라지 무침에
고기 완자, 생선에 계란을 입쳐 구운 듯한 전, 회, 오이소박이, 약과 비슷한 과자, 두부 지진 것, 나물 등에 국이 오르는 것 같다.
화학 조미료를 별로 안 넣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상당히 건강한 밥상일 것이다. 그런데 버라이어티한 느낌은 부족한 것 같다.
개성은 예로부터 요리로 유명한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평양냉면과 전주비빔밥과 함께 개성탕반이 유명했다고 한다.
개성음식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몇몇의 요리를 보면 단아한 기품이 엿보인다.
맵지 않고 간도 세지 않은 느낌이고 화려하지만 천박하지 않고 정갈하고 단정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고려 왕조의 궁중과 귀족의 요리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개성음식은 대표적으로 조랭이떡국이라든지 편수, 보쌈김치, 주악 등을 들 수 있는데
평양냉면처럼 단품의 메뉴 중에서 대중화 된 것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생소하며 개성음식을 파는 가게도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개성음식과 실제 개성의 음식이 상당히 다를수도 있는 것이고
위의 음식들이 얼마나 그런 개성음식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출처] 북한 개성의 한옥마을[북한 한옥 보존지구]|작성자 gnass
아래사진은 전통한옥 여관거리입니다. 잘만 발전시키면 교토의 료칸못지 않은 장소들이 될수 있을듯.
참고로 서울 청계천 모습입니다 (삼청동). 개성과 비교해보면, 고도(古都)로써 서울이 얼마나 전통을 잃어버린 모습인지 극명하게 비교가 됩니다. 사실 개성이 약 5백년간의 수도로써의 기능을 이미 600여년전에 (918~ 1394) 잃어버린데 비해, 서울은 계속해서 무려 6백여년간 (1394- 현재) 수도로써 기능해왔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19세기말까지 천년간 수도역할을 했던- 즉 우리로 치면 개성시대+서울시대- 교토 (794~ 1868) 의 현재모습을 보면 서울의 그것은 더욱더 가슴아프게 와닿습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시기적으로 경주보다 교토에 가까운 도시는 서울이지요).
서울시 삼청동 청계천 모습 (20세기초)- 청계천은 이런 역사적인 모습을 최대한 다시 담는쪽이 되어야 하지 않을런지.
일본 교토 현재
교토뿐 아니라 현재수도 도쿄도 덴포인거리등 에도시대를 재현한 거리가 외국인등 관광객들에게 그리고 시민들에게 큰 관광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래는 모두 덴포인도리입니다.
덴포인거리 곳곳에서는 샤미센등 일본 전통악기의 연주가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과연 서울 어디에서 아쟁이나 거문고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을까요. 전통음악과 문화는 박물관에서만 보존되어야 할 물건들이 아닙니다. 그런 방향으로 가면 곧 사라집니다.
도쿄의 유명인사들의 오래된 화집이나 사진이 가로등에 붙어있습니다.
에도시대를 묘사한 현대식그림이 거리 곳곳에 쓰입니다 (식당-카페문)
에도시대의 인력거사진. 이 인력거들이 실제로 이 거리에서 관광객들에게 제공됩니다. 이사진은 거리 곳곳에 있습니다.
덴포인거리의 여러 볼거리와 전통주점과 상점
마지막으로 중국도 전통거리보존에 힘쓰고 있습니다. 하나의 예일뿐이지만, 복건성 난허우제거리 (삼방칠항- 서진시대 거리- 건물은 명청시대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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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조금 샜습니다만, 개성 한옥지구 보존결정은 정말 현명한 정책입니다. 지금이라도 근대서울의 '우'를 범하지 않는 이런 정책이 많은 한반도의 고도들에서 결정되길 바랍니다.
1903년 서울 (한양)- 한성전기회사사옥에서 본 모습 (클릭하면 커집니다)
출처: 까마구둥지
http://luckcrow.egloos.com/227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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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 무슨 세트장같아
너무 이쁘다 ㅠㅠㅠ가보고 싶다
한복입고 걷고싶다
문화유산 만세
일본이랑 비교하는게 존나 짜증나기도 하는게, 그래도 일본은 국토 침략 받아서 식민 역사는 없지 않음? 그니까 상대적으로 보존하기도 하고 그런거지.. 우리나라 궁 대부분도 왜놈들이 태우고 부수고 그랬던 것을.. 그리고 이제 와서야 보존 이러면서 회상하는거지 과거로 돌아가서 개발 할거냐 보존할거냐 물으면 태반은 개발하자고 할 것 같음. 그런 시대를 지나서 지금이 있는거니까.....
너무 예쁜데 너무 걱정됨 문화재 부숴놓고 디디 피 짓는 새끼들이랑 같이 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