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논쟁은 어리석은 일
일체의 의미는 맥락적이다(contextual meaning).
그러므로 진실이란 없다. 입장과 입장이 있을 뿐이다.
- 데리다(J. Derrida) -
역사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이나 일이다. 또한 그 기록도 역사다.
인류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사건, 일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원인은 인간의 생존본능, 사랑, 욕심, 새로운 기술의 보급 등 인간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고, 자연재해처럼 인간과 무관한 것일 수도 있다.
이들 다양한 원인에 의해 일어났던 일과 사건이 기록으로, 구전으로 여기 저기 산발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역사가는 이들 사료史料를 수집해서 전말顚末이 있는 하나의 이야기(narration)로 기술한다.
기술된 내용이 사료에 의해 실증되고 논리적으로 정합整合하면 역사적 사실, 즉 역사가 된다.
그러므로 역사는 결코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일 수 없다.
물론 역사가는 자신의 주관을 배제하고 엄정하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기술하고자 한다.
하지만 과거의 사실을 있었던 그대로 모두 기술해서 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36년간 일제강점 하의 한국에 관한 역사를 쓴다고 해서, 그 36년 동안에 있었던 사건과 일을 빠짐없이 모두 기술해서 복원하면 그것은 36년에 걸친 기나긴 이야기가 된다.
불가불 역사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료만을 수집하고, 골라서 역사를 기술한다.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이 모든 작업은 역사가의 무의식적인 이항대대 패턴의 구조적 사유思惟에 의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우리가 선이라는 개념을 사유하는 것은 선이라는 개념과 악이라는 개념을, 우리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지만[무의식적], 이항대대적으로 사유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달리 말해, 선과 악은 인식론적으로는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것처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지만 존재론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즉, 악이라는 개념이 없으면 선이라는 개념도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도덕영역에서는 무개념의 세상이다(이런 세상이 바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에 거닐던 ‘에덴 동산’이다). 동일한 원리로, 전/후, 인/과, 이득/손해, 네 편/내 편, 진보/보수, 애국/매국, 자유/압박, 평등/착취 등 다양한 이항대대적 개념에 기반된 다양한 의미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러한 삼일독립운동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다양한 의미영역이 총합되어 삼일독립운동사, 임진왜란사 등의 역사가 되는가?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역사가 만들어지는 원리는 신화가 만들어지는 원리와 동일하다.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실제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이다.
그 하나 하나의 사건은 한 묶음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그런데 그 한 묶음의 이야기 자체에는 어떤 고정된 의미가 없다. 그 이야기와 관련된 당사자들 간의 입장에 따른 다양한 의미가 있을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데리다는 ‘진실은 없다. 입장과 입장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한 묶음의 이야기 자체는, 신화의 경우로 말하면, 의미가 정해지지 않은 개별 신화소神話素에 불과하다. 한 묶음의 이야기로 구성되는 하나의 사건은, 역사가의 무의식적인 이항대대적 사유에 의해, 다른 어떤 한 묶음의 이야기로 구성되는 사건과 이항대대적 관련성을 가지게 됨으로써 비로소 어떤 의미가 생기고(engender), 이렇게 의미가 생긴 일련의 사건이 총합되어 임진왜란사가 된다.
그러므로 역사는 결코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그러한 코기토적 ‘인간의 역사’가 아니다.
사르뜨르가 제시하는 그러한 실존적 인간에 의한 ‘실천(praxis)의 역사’도 아니다.
헤겔이 주장하는 그러한 ‘이성의 역사’도 아니다.
역사는, 레비-스트로스의 주장처럼, 무의식적 ‘구조의 역사’이다. 무의식적인 구조적 사유의 인간이 존재하는 한, 다시 말해, 이항대대라는 자동적[무의식적] 인식메커니즘을 가진 인간두뇌의 기능이 변하거나 멈추지 않는 한 역사는 구조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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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론적으로 그럴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문화적 인공물(cultural artifact)이다.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그 어떤 사상事象도 고정된 단자론적 의미가 없다.
그 어떤 사건이나 현상도 역사가가 그것을 다른 사건, 다른 현상과 어떻게 관련 지어 기술하는냐에 따라 다양한 관계론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마르크스가 역사가에게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이유이다.
특권적 지위가 부여된 역사가는, 말할 것도 없이, 유물변증법적 사관을 함양한 역사가이므로 그 어떤 사건이나 현상도 유물변증사관으로써 다른 사건, 다른 현상과 관련을 지어 의미를 부여해 기술한다. 비근하게 대한對韓식민사관을 함양한 역사가의 경우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 구주조의의 선구 강신표는 ‘사실(fact)은 과학적 이론에 매우 중요한, 이론을 뒷받침하는 기본자료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사실은 이론적 틀에 의해서만 선택되어 의미가 부여된다’고 했다. 또한 월러스틴은 이렇게 주장한다.
"사건은 [의미라는 관점에서] 먼지에 불과하다.
사건은 언제나 어디서나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런데 어떤 사건은 바로 당시에 기록되고, 어떤 사건은 기록되지 않는다.
또 어떤 일은 후일 역사가가 사건으로 취급하는 반면, 어떤 일은 사건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진리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기록된 것, 사건으로 취급된 것이 그렇게 되지 않은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간주할 수 있는 미리 정해진 어떤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의미가 덜한 것은 버리고 의미심장한 것을 사건으로 기록한다고 해도 그것은 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역사가가 바로 자기의 코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역사가가
자신의 판단 또는 관심으로 만들어낸 것(self-interested inventions)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것을 확대해서 생각하면] 국가, 민족, 사회적 이익집단 등 어떤 차원에서든지 정략적 불화가 존재하는 한, 그 기록은 결코 동의에 이를 수 없다."
(I. Wallerstein, 1991, Unthinking Social Science, pp. 136~138의 내용 요약, 각괄호 학수이)
그렇다. 국가, 민족, 사회적 이익집단 등 어떤 차원에서든지 정략적 불화가 항존恒存하는 현실에서 “역사는 결코 역사가 아니다, 오직 무엇을 위한 역사일 뿐이다(history is therefore never history, but history-for).” (C. Lévi-Strauss, 1969, The Savage Mind, p. 257)
그러므로 보편의 역사(universal history), 즉 모두에게 타당한 역사를 한 개인 역사가가 쓸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 개인이 보편역사를 쓰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그가 쓴 역사는 결국 그에 의해 선별된 한 시리즈의 한정된 국지적 설명일 수밖에 없다. 여러 명의 역사가가 쓸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역사기술에 있어서 그들 간의 합의에 작용하는 변수와 방법이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오히려 보편역사와 더욱 멀어질 수 있다.
요컨대, 역사는 결코 경험한 것의 원본, 즉 있었던 그대로의 것일 수 없다.
그것은 결국 합의권이 큰, 합의권을 쥔 승자의 기록이다.
승자가 바뀌면 동일한 사건이나 사태가 달리 해석되는 현실을 우리는 목도해 오고 있다.
그래서 역사를 왜 쓰느냐고 물으면 ‘다시 쓰기 위해서’라는 자조自嘲적 답변을 제시하는 역사철학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한국의 현실은 보수적 입장과 진보적 입장 간에 친일, 반일 역사논쟁으로 나라가 쪼개질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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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한 말씀 하신다]역사를 과거의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fact)을 기록한 것이라고 생
각하면 역사는 이데올로기적 다툼의 불쏘시게가 되기 마련이오. 그래서 사실여부, 진실여부를
두고 해마다 역사논쟁이 뜨거워지게 되오.
학수이: 역사가 과거에 있었던 사실 그대로를 기록한 것일 수 없다면, 도대체 역사를 어떻게 접근해야 합니까?
레비-스트로스: 역사란 과거에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한 역사로부터 나와야 하
오. 나와서, 역사를 다시 올바로 접근해야 하오.
학수이: 그 올바른 접근방법을 말씀해 주십시요.
레비-스트로스: 허허 참… 내 누차 말했지요. 구조주의로써 접근해야 한다고.
학수이: 그 구조주의적 접근에 관해 쉽고 명료하게 쓴 한글 문헌이 있는지요?
레비-스트로스: 허- 참, 당신 치매인가 보오.
학수이: 제가 치매? 하기야 치매 끼가 좀 있습니다만…
레비-스트로스: 바로 당신이 쓴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문화이론과 사상>에 그것이 제법 잘 쓰여있소.
당신 치매 끼 없이 정신 맑을 때 그거 다시 함 찬찬히 읽어 보시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