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복래의 人香萬里❷ 영조의 장수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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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복래/연합뉴스진흥회 감사/청담연구소 자문위원]
영조, 불로초 없이 진시황보다 오래 산 비결
조선 역사속 최장수 임금은 누구일까.
바로 비극적인 ‘사도세자 뒤주사건’을 겪은 21대 국왕 영조(1694~1776)다.
그의 인생은 폭풍 같았지만 무려 82세까지 살며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46세)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는 당시 백성들의 평균 수명(40세 안팎)과 비교해도 거의 기적과도 같다.
영조의 삶은 그 자체로 파란만장한 한편의 드라마였다.
궁궐 하녀인 무수리 사이에서 태어나 서자의 신분으로 왕위에 오른 그는 늘 정치적 음모와 스트레스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아들을 역모죄로 죽일 수 밖에 없었던 비극을 겪으면서도 한 시대의 주인공으로 82세까지 왕좌를 지켰다.
불로장생을 꿈꾸며 그토록 불로초에 집착했던 진시황이 50세에 사망했고,
‘태양의 왕’(Le Roi Soleil)으로 불리며 화려한 삶을 살았던 루이 14세도 77세에 숨을 거뒀다.
루이 14세는 72년간 재위하며 유럽 역사상 최장수 통치 기록을 세운 인물이다.
이렇게만 봐도 영조의 장수는 놀라울 따름이다.
장수 제1의 비결은 금주?
영조의 장수 비결은 술을 멀리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많다.
아닌게아니라 영조는 즉위하자마자 금주령(禁酒令)을 선포하며 조선사회에 큰 파장을 낳았다.
“밥먹기도 빠듯한데 곡물을 술로 낭비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당시 그 정책의 파괴력은 어마어마했다.
제사상에 올릴 술은 물론이고 국가적 행사나 종묘 제례에서조차 금지시켰다.
심지어 술을 빚기만 해도 유배, 술을 마시면 노비 강등이라는 무시무시한 처벌이 내려졌다.
특히 선비는 귀양보내고 평민은 수군에 복무시키라는 명까지 떨어졌다.
1년만에 유배간 사람만 700여 명에 달했다니, 영조 치하에선 술잔 대신 눈물이 넘쳤던 셈이다.
하지만 영조 자신은 솔잎과 누룩으로 만든 송다(松茶)를 마셨는데 술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평생 술을 절제하며 건강을 지킨 편이다.
할아버지는 금주가, 손자는 애주가
반면 그가 애지중지하던 손자 정조는 애주가였다.
할아버지의 ‘작품’인 금주령을 폐지하면서 전국 곳곳에 술집이 생겨났다.
연회에서는 건배사로 ‘불취무귀’(不醉無歸)를 외쳤다.
“취하지 않으면 귀가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특히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며 수원에 화성을 축성할 때, 기술자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자주 ‘불취무귀’를 외쳤다고 한다.
이 건배사는 오늘날 연말 송년회에서도 이따금씩 들리니, 정조의 유산은 여전히 뜨겁게 살아 있다.
이렇듯 두 임금의 운명은 마치 술잔 위의 물방울처럼 엇갈렸다.
영조는 술을 멀리하며 장수를 누렸고, 정조는 술을 사랑하며 짧지만 강렬한 삶을 살았다.
기름진 음식 멀리하고 소식한 웰빙의 선구자
<영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역사기록에 따르면 영조가 타고난 건강 체질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어릴 적부터 잔병치레가 잦았던 허약체질이었다.
그럼에도 장수한 비결은 금주 외에도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소식(小食)하는 습관, 규칙적인 식사,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던데 있었다.
이는 현대인의 건강 비법과 맞닿아 있다.
그는 “배는 80%만 채우고 입은 절제하라”는 철학으로 소식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밥은 늘 현미, 보리, 흑미 등 잡곡 위주였고, 김치, 시금치, 청경채 같은 채식 반찬과 고추장을 즐겼다.
무더운 여름철엔 밥을 물에 말아먹으며 소박한 미식을 즐겼고, 가뭄이나 홍수가 들면 간장 한숟가락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잔치 날이라고 과식은 없다”는 원칙도 예외가 없었다.
간식으로 생강, 녹두, 대추를 즐겼고, 후식으로는 인삼차와 삼령차, 복령차를 마셨다.
이쯤 되면 ‘웰빙의 선구자’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하지만 그는 소식을 하면서도 끼니만큼은 절대 거른 적이 없었고 제때 꼬박꼬박 챙겼다고 한다.
매일 새벽 5시 하루를 시작해 5차례 이상 수라상을 받았다.
자주 끼니를 거르고 야식을 즐기던 조선시대 다른 왕들과는 판이한 모습이었다.
특히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있던 그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식사는 꾸준히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가의 위기 앞에서도 배는 비워둘 수 없다”는 철학이었을까.
영조의 철저한 검진 습관 본 받으면 백세시대 누릴듯
영조는 단순히 식단과 생활 습관으로만 건강을 관리한 것이 아니었다.
알고보면 ‘조선판 건강검진 마니아’였다.
52년의 재위 기간 총 7천284회의 검진을 받았다고 하니, 사흘에 한번 꼴로 어의(御醫)들에게 건강상태를 점검받은 셈이다.
이 정도면 요즘 초현대식 병원의 프리미엄 건강검진 프로그램도 부럽지 않다.
영조의 철저한 자기 관리는 단순히 옛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적용 가능한 삶의 지혜다.
그는 이처럼 수많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번민 속에서도 장수를 누렸는데,
이는 모든 사람들의 희망사항인 무병장수가 결코 머나먼 꿈이 아님을 보여준다.
작은 습관들이 인생을 바꾸듯, 우리도 영조의 지혜를 하나씩 실천한다면 건강한 백세시대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출처 : 맑은뉴스(https://www.ccn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