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남은 왕 / 김성문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앞바다이다.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조약돌 해변에 앉아 있노라면, 저 멀리 바다 위에 바위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 바위섬은 네 면으로 바닷물이 흐르는 구조의 문무대왕 수중릉이다. 신라 제30대 문무대왕, 김법민이 잠든 곳이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파도 너머로 문무대왕의 위업이 서서히 떠오른다.
김법민은 626년, 태종무열대왕 김춘추와 문명왕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김유신 장군의 생질이자 정치적 동반자였다. 진덕여왕 시절인 25세 무렵, 그는 비단에 오언 율시로 지은 「태평송」을 당나라 고종에게 전하는 임무를 맡는다. 당의 위세를 예찬하는 그 시는 신라의 충성과 외교적 지혜가 담긴 노련한 정치 행위였다. 당나라 고종은 깊이 만족하여 김법민에게 태부경의 벼슬을 내렸다. 황제의 보물창고를 관장하는 태부경은 가벼운 직책이라 할 수 없었다.
아버지 태종무열대왕은 아들의 능력을 일찍이 알아보고, 29세가 된 김법민을 태자로 책봉했다. 6년 후인 660년, 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당나라 소정방의 군사가 내주萊州에서 덕물도에 도착하자, 김법민은 그들을 맞이하는 중책을 맡았다. 그해 7월, 나당연합군이 사비성을 공격하자 백제 의자왕은 웅진성으로 도주했다. 그의 아들 부여융과 대좌평 천복 외 장수들이 항복하자, 김법민은 부여융을 무릎 꿇게 하고, 과거 의자왕이 대야성 전투에서 자신의 누나로 추정하는 고타소를희생시킨 일을 꾸짖었다. 그 꾸짖음에는 복수보다, 동기간의 정이 배어 있는 깊은 슬픔이 서려 있다.
661년 음력 6월, 태종무열대왕이 서거하자 김법민은 36세로 왕위에 올라 문무대왕이 되었다. 동생 김인문은 당나라에서 숙위 중이던 신라인들이 귀국해 소정방의 고구려 공격에 신라의 협력을 요청한 당의 명을 전했다. 문무대왕은 김유신을 대장군으로 삼고 20여 명의 장군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출병했다. 백제의 잔당이 옹산성에 집결하자 그들을 진압했다. 잠시 후 당의 사신이 도착하자 그는 신속히 왕경으로 돌아갔다.
이듬해 음력 1월, 평양으로 군량을 수송하라는 당의 명에 따라, 김유신과 김인문 외 여러 장군이 수레 2천 대에 쌀과 조를 싣고 북으로 향했다. 소정방은 군량을 받고도 혹한에 밀려 철수하고 말았다. 그러나 당은 문무대왕을 계림대도독으로 임명하고 신라를 속국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665년, 문무대왕은 부여융, 당나라 사신 유인원과 함께 취리산에서 맹약을 맺고 백마의 피를 입에 바르며 다시는 싸우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우방을 자처하는 화친의 자리였지만, 그 이면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고구려 정벌은 이어졌다. 668년 음력 6월 12일, 당의 유인궤가 김삼광과 함께 당항진에 도착했다. 나당연합군은 음력 9월 21일 평양성을 포위하자, 마침내 고구려 보장왕이 항복했다. 삼국통일은 문무대왕과 김유신, 그리고 이름 없는 수많은 병사의 피와 의지로 이루어졌다.
문무대왕은 외모가 수려하고 지략이 뛰어난 군주로 평가된다. 군사적 승리 후 음주를 허용했다는 기록은, 평시의 엄격함과 전후의 관용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는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고자 당나라식 복장을 도입하고 음악을 교육했으며, 사찰의 무분별한 재산 축적을 금지해 왕권 중심의 정치를 이루고자 했다.그리고 669년에는 모든 죄인을 석방하여, 냉철함 속에 따뜻한 통치의 얼굴을 드러냈다.
681년 음력 7월 1일, 문무대왕은 21년의 재위 끝에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소 지의법사智義法師에게 “내가 죽으면 호국 대룡이 되어 불법을 수호하고 나라를 지키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유언에 따라 화장된 그의 유골은 유언에 따라 화장된 문무대왕은 동해의 큰 바위에 장사되었다고 전한다. 그곳이 지금의 대왕암, 문무대왕릉이다.
2001년 KBS 조사에 따르면, 대왕암에는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흔적이 있으며, 십자형 수로를 통해 바닷물이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부장품은 없었으며 외양은 문무대왕의 유지를 받들어 단정하게 정비되었다고 전해진다.
문무대왕은 태자 시절부터 삼국통일의 전장을 누비고, 왕이 된 뒤에도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그의 업적은 금석에 새겨지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바다 위 바위섬에 지금도 남아 있다.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 나라를 위해 평생을 바친 한 왕의 울림이 오늘도 가슴을 적신다.
문무대왕 수중릉, 출처: KBS 역사 추적-문무왕 비문의 비밀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