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는 눈은 시시각각이나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찿을 때가 있다.
선도라는 분은 걱정하는 말을 했다 거시기 하다는 것이 였다. 어느 분은 괜찮는데 예쁘자나.... 등등
세상이 변하는 건 막을 수 없다. 그러나 데카르트 논법으로
"나는 아내를 생각한다 고로 나는 무섭다"
조선시대 어떤 관찰사가 소문난 공처가(恐妻家)였는데 수하(手下) 사령들은 어떤지 궁금했다. 어느날 사령들을 모아 놓고 "마누라가 무서운 사람은 왼쪽으로 물러서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제 자리에 남으라"고 했다. 모두들 쭈뼛거리며 왼쪽으로 갔는데, 단 한 사람만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 비결을 물으니 "제 처가 사람 많은 곳에는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요"라고 했다.
'공처가'를 주제로 한 어느 표어 공모에서 국민교육헌장 형식의 공모작이 금상을 받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내용은 '나는 아내 행복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였다. 은상은 데카르트 논법으로 '나는 아내를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였다. 동상은 '아내의 아내에 의한 아내를 위한 남편'이라는 링컨 스타일이었고, 특별상은 케네디와 푸시킨의 명언을 패러디한 '아내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할지 생각하기 전에 내가 아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한다'와 '아내가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였다.
공처가를 지배하며 세상을 농단(壟斷)한 엄처(嚴妻)의 역사적 사례는 적잖다. 황제를 제치고 손수 천하를 경영한 당나라의측천무후(則天武后), 유럽을 정복한 영웅 나폴레옹을 함락시킨 조세핀이 대표적인 예다. 이른바 '천하를 제패하는 것은 남자이지만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임을 실증한 것이다.
우리 역사도 예외가 아니다. 신라 왕실을 손아귀에 넣은 미실, 고려 조정을 쥐락펴락했던 천추태후, 조선시대에 여인천하를 펼친 문정왕후가 있다.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는 차라리 역사의 격랑(激浪)과 혁명의 희생양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연산군을 희롱한 장녹수, 숙종의 후궁 장희빈에게도 억울한 누명이 있을까?
대통령 부인의 국정개입 관련 추문이 횡행(橫行)하고, 아내 앞에 작아진 듯한 대통령의 모습에 엄처시하(嚴妻侍下)를 우려하는 국민들이 많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속담의 의미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상황인 듯하다. 왕조 시대의 제왕이든 현대 국가의 통치자이든 백성과 국민을 받드는 경민(敬民)이 아닌 아내의 치마폭에 휘둘리는 공처(恐妻)의 행보를 보이는 것은 역사의 굴욕이다.
첫댓글 시쳇말로 "가스燈效果"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