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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9: 32.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자 33. 이런 일을 본적이 없다. 34.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6. 벙어리를 고치시다 ( 9: 32-34 )
32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33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34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마 9: 32.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자 -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 하는 자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자기의 생각과 마음과 뜻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없는 그 농아인은 얼마나 답답한 삶을 살아왔겠는가?
1] 그들이 나갈 때에
이 장면은 앞 절과 연결된 것으로 시각장애인을 고치셨던 그 집에서 막 나가려고 하던 그 순간을 가리킨다.
2] 귀신 들려
성경에는 귀신에 사로잡혀 중풍 병자나 시각장애인, 벙어리가 된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사탄의 무리들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이나 불구를 이용하여 침투하고는 교묘하게 자기들의 모습을 감추곤 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이 사람의 병이 귀신에게 붙잡혀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아셨다. 병의 원인이 귀신에게 있다고 기록하는 신약성경의 언급들이 조잡하고 원시적인 미신에 근거한 성경 기자들의 우매성을 드러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적 발병과 귀신에 의한 병을 구분할 줄 아는 영적 통찰력을 반증하는 것이다.
* 막 9: 14-29 -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시다(마 17: 14-20. 눅 9: 37-43 상)
3] 말 못하는 사람을(*, 코포스) 예수께 데려오니
이 말의 원어는 '청각장애인'(deaf), '언어장애인'(dumb), '귀먹고 말 못 하는 자'(deaf- mute)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이다. 청각장애인과 언어장애인은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으로서 귀가 먹어 듣지 못할 경우 자연적으로 말을 배우지 못해 언어장애우가 된다.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는 자, 그리고 구원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자들 역시 농인 귀신에 사로잡힌 말 못 하는 언어장애인이다.
마 9: 33. 이런 일을 본적이 없다. -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때가 없다. 하되 )
그는 주 예수께 와서 귀신이 쫓겨나고 입이 열려 말을 하였다. 무리들은 기이히 여겨 말하였다.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도다.”
예수님의 기적 행하심은 특별하셨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과 달리, 그는 모든 종류의 병들을, 즉각적으로, 또 완전하게 치료하셨다.
1] 귀신이 쫓겨나고
예수께서는 이 사람의 언어장애의 원인이 귀신 들린 데 있다는 것을 아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므로 이 사람의 언어장애를 고치셨다.
2]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 때에 일어날 사건을 예언하면서 '말 못 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라고 하였다.
* 사 35: 5-6 – 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 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이처럼 말 못 하는 자가 말하게 된 이적은 메시야가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였다.
3]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때가 없다. 하되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들도 이와 같은 이적을 행한 일이 없었다. 따라서 귀신을 쫓아냄과 동시에 벙어리를 고치신 이적은 일반 백성들에게는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다.
다음 구절에 언급되는 바리새인들의 반응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부자와 학자들보다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이 더 쉽게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인정하고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된다.
예수의 기적 행하심은 탁월하셨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달리, 그는 모든 종류의 병들을, 즉각적으로, 또 완전하게 치료하셨다.
마 9: 34.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
바리새인들은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의 하신 일을 마귀의 일로 돌렸다. 그러나 하나님의 하신 일을 마귀의 일로 돌리는 것은 매우 악한 일이다. 그들은 무지하고 악하였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을 바로 아는 지식을 주셨고, 그에게 합당한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그에게 돌리게 하셨다.
1]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바리새인들은 여러 번 예수의 사역과 이적을 보고 예수를 하나님의 메시야로 보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를 비난하였다.
* 마 9: 3, 11, 24 –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여기서는 귀신을 쫓아내고 언어장애인을 고치는 메시야 이적에 대해 예수께서 귀신의 왕의 힘을 빌었다고 극단적인 도전을 감행했다. 이 부분은 이후의 예수의 가르침, 그중에서도 특히 10: 16-28의 배경이 된다.
2]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의 왕'은 귀신들의 괴수, 곧 사탄을 지칭하는 말로서(4: 1-11, 사탄과 귀신)이는 바알세불을 가리킨 것이다(10: 25. 12: 24 참조).
'빙자하여(*, 엔)'는 귀신의 왕을 '통하여'라는 뜻도 있고 귀신의 왕 '안에서'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사단을 방편 삼았을 뿐 아니라 그의 능력을 덧입어 병자를 치유했다고 한다.
3]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이와 같은 악한 행위는 하나님의 행위를 사단에게로 돌리는 악의에 찬 비난이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대표자들로서 하나님의 능력이 목수의 아들 예수를 통해 발휘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시기와 질투심에 가득차 있었다.
자기들이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한 데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에게 일어나는 신비로운 메시아의 광채를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악한 마음을 품고 있었으며 이처럼 악한 사탄의 말을 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은 바리새인들과 같은 악한 시기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죄의 권세 아래에 놓여 있는 이상 이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을 바로 아는 지식을 주셨고, 그에게 합당한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앞에서 못 고칠 병이 없고, 해결되지 못할 문제가 없다. 나병도, 중풍병도, 열병도, 시각장애도, 청각장애나 언어장애도 고침을 받았다.
귀신 들린 것도 고침을 받았다. 심지어 죽은 자도 살아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나든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자!
우리의 어려운 사정들을 낱낱이 그에게 아뢰자! 그가 기뻐하시면 무엇이든지 행하실 수 있고, 또 그는 가장 좋은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도우실 것임을 확실히 믿자! 또 우리가 입으로 말을 할 수 있을 때 찬송과 기도와 전도에 더욱 힘쓰자!
4] 고침을 받은 농아인
말은 인간에게만 있는 특수한 관계 소통의 기능이다. 사람은 말을 통해 자기의 의견을 개진하고 남의 생각을 수용할 수 있다. 그래서 말은 인간 사회의 기본이 되는 대화의 매개체로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자.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말을 못하는 우리의 이웃들을 긍휼히 보살펴 주며 그들의 의사를 대변해 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예수님도 그의 치유의 사역 중 많은 농인을 고쳐 주셨다.
* 마 12: 22-27 – 22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 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23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24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25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26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 눅 11: 14-15 – 14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 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15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귀신 들려 말 못 하는 자를 온전케 해주셨다.
(1) 말 못 하는 이유.
① 선천적인 경우.
이는 대부분 청각장애로 인해 비롯되는 장애로서 듣지를 못하기 때문에 말을 못 한다.
* 출 4: 11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② 하나님의 형벌.
하나님께 죄를 범한 사람에게 '네 혀로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말을 못 하게 되었다.
* 겔 3: 26-27 – 26 내가 네 혀를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네가 말 못 하는 자가 되어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27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니라.
③ 귀신의 역사.
악한 귀신의 작용으로 인하여 말을 못 한다.
성경은 귀신 들려 말 못 하는 사람들을 고쳐 주신 기록이 많이 있다.
* 막 9: 25 -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 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 말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경우에 따라 벙어리가 되는 '진짜 벙어리들'이 있다.
① 용기가 없어 정직한 말을 못하는 사람이다.
정직한 언행은 용기가 있어야 한다. 특히 사악하고 거짓된 환경 속에서 살아야 하는 성도들은 모두 용기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신앙은 무력한 사람에게 힘을 준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신뢰하는 성도들은 용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세상의 권력이나 재물을 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그것의 눈치를 봐야 하기에 싫어도 말을 할 수가 없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런 기색을 낼 수가 없다. 그들은 입이 있어도 말을 못 하는 농인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② 이해타산에 따라 바른말을 못 하는 사람이다.
남에게 충고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올바른 사람이어야 한다. 자기는 계속 잘못을 저지르면서 남의 잘못을 지적할 수는 없다. 이런 남의 말은 설득력이 없으며, 아무런 의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라면 그의 말은 참으로 설득력있는 감명을 주는 말이 될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벙어리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과감히 그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가차 없이 선포하였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칭함을 받게 된 '의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다.
③ 예수를 시인하면서도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복음이 전하여지는 경로에 대해 말하기를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하였다. (롬 10: 17)
복음 전파의 최대의 도구는 바로 '말'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구주 되심과 그의 대속하신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도 예수에 대한 신앙심이 싹트게 되고 구원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가 있다.
그러나 성도 중에는 아직 한 번도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벙어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증거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 딤후 4: 2-5 –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3)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농인은 그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였다.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아 말을 하게 된 농인의 모습은 바로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우리는 예수님에 의해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닌 육체와 영혼 모두의 치료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함은 물론이거니와 이러한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찬송하는 말을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한다.
* 시 150: 1-6 – 1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4 소고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첫댓글 귀한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입술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설교 감사합니다.
우리의 입술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사랑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습니다. 오늘도 건강과 함께
좋은 사람들과 좋은 향기로 좋은 인연 이어가는 날 되시기 기원 합니다.(^~^)
우리의 입술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