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랭* 외 1편
손경선
사방이 거품이다
세상을 깨고 나와 지금껏 탐한 적 없는 노른자는 빼내고
변방에서도 변두리로 유랑하는 진득한 흰자만을 고른다
혼돈의 단맛이 있어야 풍성한 거품이 몰려드는 것
설탕을 더하고 거품기를 손에 든다
거품을 일으키는 일도 만만치는 않아서 팔이 떨어지라 휘젓는다
달콤한 유혹을 따라 발버둥 쳐보지만
헛바람만 일으켜 거품만을 일구는 날들
비가 말라버린 구름이 되어 떠돈다
어둠이 내린 벼랑에서 주린 욕망을 따라 걷다가
거품인 줄도 모르고
어깨에 덕지덕지 내려앉은 흰색의 허세
사는 것이 뜻대로 되지는 않지만
비릿한 세상맛에는 식초 한 방울 떨구고
이리저리 치대다 보면 거품도 단단해질 때가 있어
마냥 쓸모없는 존재만은 아니라
배고픈 이의 맘껏 부푼 빵이 되고
배부른 자의 멋진 장식으로 기지개를 켠다
*머랭-달걀흰자에 설탕을 조금씩 넣어가며 세게 저어 거품을 낸 것
하루
집을 나서 골목의 막막함을 지나는 길
그림자 길게 뒤로 매달리고
비릿한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림자 늘 앞장서 걷는다
어떤 날은 비가 내리고 어떤 날은
바람이 불고 춥고 덥고
지내기에 딱 좋은 날은 드물었다
며칠씩 이어지는 가뭄 장마 한파에도
제자리에 서거나 뒷걸음치지는 않고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걸었다
그 하루하루에 애간장도 태우고 마른침도 삼키고
웃음 한숨 눈물 거뭇한 가슴 모두 들려 보내고
빈손으로 허투루 지낸 날은 없었다
푹 꺼진 뱃구레에는 이미 된장찌개가 끓어오르고
지친 눈망울에는 저녁별이 제집인 양 드러누울 무렵
하루는 잊어버리기로 하고
지나갔으니 지난 것으로 하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올 것을 모른 척하고
때를 기다린다고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린다
----애지사화집 박용숙 외 {멸치, 고래를 꿈꾸다}에서
약력
2016계간<시와 정신>신인상으로 등단
2015제14회 웅진문학상 수상
시집-외마디 경전(2017),해거름의 세상은 둥글다(2020),
(2022),당신만 몰랐다(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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