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Ⅱ-81]인터넷바둑 1만판 대국(對局) 단상
나의 취미趣味를 책읽기(독서)라 할 수 있겠으나(그것도 전혀 체계적인 아닌, 들쭉날쭉 활자중독에 가까운 남독濫讀이어서 늘 창피하다), 특기特技라 하면 뭐라 할까? 소싯적 익힌 바둑이 첫 번째, 생활글쓰기가 두 번째일 듯하다. 흔히 예로부터 기원바둑 3급‘아마추어의 꽃’이라 했다. 요즘 인터넷바둑은 급수가 인플레되어 아마 3급을 1단으로 쳐주는데, 1단부터 6단까지 올라왔으니 기원바둑 ‘물1급’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나의 바둑의 치명적인 결점이 생각을 거의 하지 않고 ‘논두럭 깡패’처럼 싸움(쌈)바둑에 능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광화문 겡까도리(일본말로 투계鬪鷄) 3급’. 대마大馬킬러라 하지만, 킬러는커녕 번번이 대패大敗하는 ‘물바둑’임을 고백한다. 그래도 3급만 되어도 어느 바둑인을 만나도 개무시는 당하지 않는 실력인 것을.
아무튼, 인터넷바둑으로 ‘타이젬’과 ‘오로바둑’이 있다는 것은 20여년 전에도 알았다. 언제 ‘오로바둑’에 무료가입을 했는지는 기억이 전혀 없지만, 틈만 나면 즐긴다. 오늘 바둑을 몇 판 두다 오른쪽 편에 항상 기록돼 있는 나의 대국전적을 보고, 합계를 내보았다. 총 10009 대국 중 5029국 승리 4881국 패배 99승 무승부였다. ‘1만(一萬. 10000)’의 ‘만’은 1만이 아니어도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은 시인의 <만인보>도 1만명으로 한정한 게 아니다(5천600여명). 1만은 그것이 무엇이든 허벌나게 많은 숫자임에 틀림없다. 아마 귀향 즈음부터 두었을 터이니 7년은 족히 되었으리라. 6호반 공제가 있는데 어떻게 무승부로 기록됐는지 알 수 없었고, 그동안 1만국이 넘게 두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몇 년 걸쳐 달성한 기록일까? 궁금한데 언제 제1국을 두었는지 찾을 수 없었다.
바둑이 재밌는 것은 어떤 고수를, 어떤 하수를 만나도 ‘같은 판’은 언제까지나 있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이제껏 이뤄진 모든 바둑 대국을 알파고는 다 공부했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천하의 어떤 고수도 알파고를 이길 수 없다고 한다. 이세돌이 2016년 5국중 1국을 이긴 것도 알고 보면 컴퓨터의 실수에 의한 것이라 하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실제로 지난주 서울 종로3가 한국기원에서 <센스로봇 고(GO)>와 9단을 설정하고 6점 접바둑을 두었는데, 여지없이 깨졌다. 해도해도 너무 한 일, 뛰다 죽을 일이 아닌가. 하지만 실력은 실력인 것을. 이세돌이 다시 도전한다는 소식에 이제는 “진다”에 무조건 ‘한 표’를 걸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했다. 아아-, 이 허망하고 무참한 노릇을 어이 할꼬?
아버지는 내가 국민학생(4학년 겨울방학)때 조훈현이나 이창호처럼 ‘바둑신동’이나 된 것으로 착각하셨는데, 그것도 그럴만한 것은 사랑방에서 어른들이 바둑을 두는데 어깨너머로 1주일 본 내가 동네에서 가장 잘 두는 아버지 친구를 정선(定先)으로 이겼기 때문이었다. 전주로 유학을 보내고 ‘바둑 독선생’을 한 달에 쌀 1가마값 3만원을 주고 1년이나 모셨다. 그 꼬마가 무릎을 꿇고 2시간이나 바둑공부를 했으니,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으면 신병이 도져 버렸을까? 끝내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1년도 안돼 꿈을 접은 나를 보고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오죽하면 그때부터 바둑, 장기, 낚시하는 놈들만 보면 천하에 한량이라며 마치 나 들으라는 것처럼 삿대질과 욕을 하셨다. 이제 와 아버지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소자,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소서. 허나, 아버지 덕분에 말년에 킬링 타임하는데 최고 짱인 지적인 게임, 마인드 스포츠(Mind Sports)를 배운 게 된 것은 “고맙습니다”를 연발해도 지나치지 않을 일입니다. 이제 내가 100살이 되어도 건강만 하다면, 바둑로봇과 얼마든지 바둑을 둘 수 있는 특기를 갖췄으니 이 아니 좋은 일입니까?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