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린 누그로호는 1961년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나 자카르타예술원을 졸업했다. 1991년 <사랑은 빵 한 조각>으로 장편 데뷔하였으며, 단편과 다큐멘터리, TV 시리즈 등도 다수 제작했다. <달의 춤>(1995)으로 베를린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고, <베개 위의 잎새>(1998)는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에 초청되었다. <새인간 이야기>(2002)로 또 다시 베를린영화제에서 수상했고, <사랑과 달걀에 관한 이야기>(2004), <오페라 자바>(2006), <나무 아래서>(2008) 등 인도네시아의 전통과 예술에 관한 영화들을 꾸준히 만들어 왔다.
리뷰:
'동남아시아의 시네마 기수들'
브리엔테 멘도자, 펜엑 라타나루앙, 에릭 쿠, 가린 누그로호. 동남아시아 뉴 웨이브 시네마를 이끈 대표적인 감독들이다. 각기 다른 스타일과 관심사로 세계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인물들이지만, 이들은 모두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각 나라들의 사회적 경험과의 영화적 소통에서 창작의 원천을 찾는다는 교집합을 갖고 있다. 레오나르도 씨니에리 롬브로소의 <동남아시아 시네마의 기수들>은 부산국제영화제와도 인연이 깊은 네 명의 작가들과의 대화를 통해 전통적 가치와 근대적 변화의 충돌, 예술영화에 대한 문화적 의지, 영화의 상업성과 게릴라식 독립영화 제작방식의 기묘한 혼재 등 동남아시아 영화의 부상을 가져온 다양한 맥락들을 들려준다. 로컬 시네마에 대한 단순한 묘사를 넘어, 영화 만들기를 둘러싼 전통과 혁신, 국가와 문화, 예술과 사회 전반에 대한 입체적인 접근이 돋보이는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박진형_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싸움은 필연이었다”
가린 누그로호는 인도네시아 젊은 감독들의 스승과도 같은 사람이다. 그는 사막이나 다름없던 90년대 인도네시아 영화계에서 홀로 생명을 유지했고,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을 스탭으로 기용해서, 새로운 물결을 일으킨 감독으로 키워냈다. “마음만 먹으면 최고의 스탭을 쓸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영화를 찍을 때마다 스탭을 모두 바꾼다. “경험없는 사람을 쓰면 영화의 퀄리티가 떨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선생이고, 언제나 기회를 주어야 한다.”외국영화를 볼 수가 없어서 책으로만 영화를 배운 가린 누그로호는 이제 더이상 혼자가 아니다.
<베개 위의 잎새> <달의 춤> 등을 만든 가린 누그로호는 불모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사랑과 믿음”이라는 두 단어로 설명했다. 그리고 하나 더 인내가 있었다. “상업적이지 않은 영화를 만드는 건 낚시에 비유할 수 있다. 줄을 던지고 하염없이 기다려야한다. 매우 지루한 과정이지만 특별한 시스템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대사가 거의 없고 시적인 <달의 춤>, 거리 아이들의 현실을 다큐멘터리처럼 기록한 <베개 위의 잎새>, “지금은 마음에 별로 안들지만” 당시엔 <쥴 앤 짐>같다는 평가를 받았던 <사랑은 빵 한조각>은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법규로 도제 시스템을 규정한 정부와 싸워왔던 그는 그 싸움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재능있는 젊은이들이 있는데, 15년이나 기다려야 감독이 될 수 있다면, 싸울 수밖에 없다.” 그와 함께 인도네시아 특별전에 초청된 <엘리아나 엘리아나>의 리리 리자나 <쿨데삭>의 미라 네스마나가 그 싸움으로 발굴한 인재들. 그러나 아직도 상황은 쉽지 않다. 군부독재는 사라졌지만 소비중심주의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중심주의는 모든 걸 이익과 대가의 문제로 판단한다. 그러나 극히 일부일지라도, 똑같은 나무로 이루어진 숲보다는 개성있고 아름다운 한그루 나무를 중시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글=김현정 사진=조석환
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