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촌주세력이나 지방으로 밀려난 진골 귀족 등이 선종 세력 등과 연합하면서 호족으로 성장하였다. 2. 고려는 거란 및 신라와 통교하면서 후백제를 견제하였다. 3. 전제왕권이 몰락한 신라 말에는 6두품 세력이 가장 많은 타격을 받았다. 4. 호족은 지방에서 성주, 장군이라 자칭하고 사병이나 농장을 소유하였다.
답은 2 전 왕권과 귀족들이라고 생각해서 3번이요. 6두품은 나중에 반신라적으로 변해서 호족과 같이 연계하여 활동했으니까요. 근데 왜 3번은 맞는거죠? 그리고 1번에 선종세력과 연합했다는데, 고려초의 선종인가요??? 호족으로 성장은 그냥 불안정한 신라상황에서 일어난 쿠테타인줄 알았는데,, 알려주세요!
첫댓글2번이 확실히 틀린 것은 당연합니다. 왕건은 거란을 싫어하죠. 거란이 발해 멸망시켰기 때문에 고려는 거란을 배척합니다. 한참후에 교역을 전개하기도 하지만 사이는 좋지않다 기조가 뚜렷하죠. 1번은 신라 하대부터 선종이 득세하면서 지방으로 밀려난 진골귀족이나 촌주세력, 지방 군진세력 등 호족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죠. 3번은 문장에 어패가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딱히 2번에 비해서 완전한 틀린문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라 중대 왕권강화와 함께 성장했던 6두품 세력이 신라하대 왕권이 몰락하면서 6두품 세력도 타격을 받게 되는 부분이니. 다만 가장 많은 타격을 받았다고 하는 부분이 좀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6두품이 타격을 받은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이런 문제에선 가장 틀린 지문을 골라내는 것도 실력인 것 같습니다. 즉, 아리까리 한 것 보다는 정말 틀린것을 답으로 하고 나머지는 이후에 다시 고민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안그러면 님처럼 다른 지문을 선택해서 결국 오답처리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번 문장은 일부러 꼬아 낸듯 하군요. 언뜻 보기에는 틀린것 처럼요.. 이렇게 생각하면 편합니다. 6두품은 늘상 최고 위치에는 못올랐지만, 왕이 엄청나게 교체되는 라말 시기에는 중앙 권력에 더욱 꿈도 못꾸죠. 그런면에서보면 신라 귀족중에서도 가장 불만이 많았고,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계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호족과 연계하게 되는 것이죠. 사실 이런식의 문제는 더티한 것 같지만, 돌려 생각하면 맞기도 합니다.
음.. 고려는 후백제와는 대립적으로 신라와는 굉장히 친화적으로 지냈죠 예를 들어 후백제가 신라로 침략해오자 신라는 고려에게 원병을 요청하죠 하지만 공산전투해서 패배하죠 하지만 그후에 고창전투나 운주전투해서 승리하면서 통일의 주도권을 장악해요 고려는 외교적으로 중국과는 교류했지만 거란과는 강경책을 썼어요 예를 들면 낙타를 굶겨죽인 만부교사건에서 알수있죠
첫댓글 2번이 확실히 틀린 것은 당연합니다. 왕건은 거란을 싫어하죠. 거란이 발해 멸망시켰기 때문에 고려는 거란을 배척합니다. 한참후에 교역을 전개하기도 하지만 사이는 좋지않다 기조가 뚜렷하죠.
1번은 신라 하대부터 선종이 득세하면서 지방으로 밀려난 진골귀족이나 촌주세력, 지방 군진세력 등 호족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죠.
3번은 문장에 어패가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딱히 2번에 비해서 완전한 틀린문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라 중대 왕권강화와 함께 성장했던 6두품 세력이 신라하대 왕권이 몰락하면서 6두품 세력도 타격을 받게 되는 부분이니. 다만 가장 많은 타격을 받았다고 하는 부분이 좀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6두품이 타격을 받은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이런 문제에선 가장 틀린 지문을 골라내는 것도 실력인 것 같습니다. 즉, 아리까리 한 것 보다는 정말 틀린것을 답으로 하고 나머지는 이후에 다시 고민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안그러면 님처럼 다른 지문을 선택해서 결국 오답처리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군요ㅎ 답글, 충고 감사합니다^^
고려 왕건은 만부교 사건을 일으킬 정도로 거란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원수라고 여겼거든요. 태조년간에는 거란과 교역이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3번 문장은 일부러 꼬아 낸듯 하군요. 언뜻 보기에는 틀린것 처럼요.. 이렇게 생각하면 편합니다. 6두품은 늘상 최고 위치에는 못올랐지만, 왕이 엄청나게 교체되는 라말 시기에는 중앙 권력에 더욱 꿈도 못꾸죠. 그런면에서보면 신라 귀족중에서도 가장 불만이 많았고,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계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호족과 연계하게 되는 것이죠. 사실 이런식의 문제는 더티한 것 같지만, 돌려 생각하면 맞기도 합니다.
그렇군요ㅎ 댓글 감사합니다ㅎ
음.. 고려는 후백제와는 대립적으로 신라와는 굉장히 친화적으로 지냈죠
예를 들어 후백제가 신라로 침략해오자 신라는 고려에게 원병을 요청하죠
하지만 공산전투해서 패배하죠 하지만 그후에 고창전투나 운주전투해서 승리하면서 통일의 주도권을 장악해요
고려는 외교적으로 중국과는 교류했지만
거란과는 강경책을 썼어요 예를 들면 낙타를 굶겨죽인 만부교사건에서 알수있죠
후백제 견훤이 귀순하고 경순왕마저 신라에서 귀순하면서 왕건을 정통성을 확보해서 고려는 더 성장하죠
초기만 해도 거란과는 강경책이였어요 정종때까지만 해도 호족군대를 연합한 거란방어를 위한 광군을 조직하잖아요
하지만 곧 지방군으로 편입되구요 성종때 1차침략때는 서희의 외교담판으로 고구려 자주의식을 보여주죠
그래서 강동쪽에 있던 여진군을 거란군이 쫒아내면서 강동6주를 확보하죠
하지만 현종때 2차침략을 해요 목종을 폐위한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요 강조가 패배하고 개경이 함락되자
현종은 나주로 몽진을 떠나죠 하지만 고려 양규의 분전으로 거란이 다시 돌아가죠
하지만 곧 3차침략을 하지만 강감찬이 귀주(청천강)에서 몰아내죠 이 이후 개경주위에는 나성을 쌓고 압록강부터 천리장성을 쌓죠
와... 문과세요??ㅠㅠ이렇게 잘아시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