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빙그레 웃는 마음 又
公은 處身富貴하나 而不為富貴에 所折困하니 非夙植般若種智이면 焉能如是리오. 但恐中忘此意하고 為利根聰明에 所障하여 以有所得心이 在前頓放故로 不能於古人直截徑要處에 一刀兩段하여 直下休歇이니라. 此病은 非獨賢士大夫라 久參衲子도 亦然이라. 多不肯退步하여 就省力處에 做工夫하고 只以聰明意識計較思量으로 向外馳求니라. 乍聞知識이 向聰明意識思量計較外에 示以本分草料하고 多是當面蹉過라.
그대는 부귀하게 살면서도 부귀한 삶에 끄달리지 않으니 예전에 반야 씨앗을 심지 않았다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부귀한 삶 속에서 처음 공부하던 뜻을 잊고 똑똑한 것이 장애가 되어 ‘얻고자 하는 마음’이 눈앞에 놓였기에, 옛 어른께서 가신 바른 지름길에서 공부를 단숨에 해결하지 못할까 그런 걱정만 될 뿐입니다.
이 병은 현명한 사대부들뿐만 아니라 오래 공부한 스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개가 한 걸음 물러나 힘이 들지 않는 곳에서 공부를 하지 않고, 다만 똑똑하게 헤아려서 견주는 마음을 가지고 밖으로만 치달아 깨달음을 구하려 합니다.
그리하여 똑똑하게 헤아려 견주려는 마음 밖에서 본분을 드러내는 선지식의 가르침을 언뜻 듣고서는, 대개 그 자리에서 잘못 알아 버립니다.
將謂 從上古德이 有實法與人이니 如趙州放下著과 雲門須彌山之類가 是也라하니라.
巖頭는 曰 却物이면 為上이요 逐物이면 為下라하고 又曰하되 大統綱宗은 要須識句이니 甚麼是句오 百不思時를 喚作正句라하며 亦云 居頂이라하며 亦云 得住라하며 亦云 歷歷이라하며 亦云 惺惺이라하며 亦云 恁麼時라하니 將恁麼時하여 等破一切是非이나 纔恁麼이면 便不恁麼라 是句도 亦剗이며 非句도 亦剗으로 如一團火相似이듯 觸著便燒이니 有甚麼向傍處리오. 今時士大夫가 多以思量計較로 為窟宅하기에 聞恁麼說話하면 便道하되 莫落空否아하니
그리고는 “예로부터 옛 어른들이 실제의 법을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있으니, 조주 스님의 ‘放下著’과 운문 스님의 ‘수미산(須彌山)’ 같은 내용들이 이것이다”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암두(巖頭) 스님은 “경계를 물리치면 도인이요 경계를 좇아가면 중생이다”라고 하였고, 또 “선에서 전체를 꿰뚫는 근본 종지의 알짜는 정구를 알아야 하니, 무엇이 그 정구인가. 화두를 챙기면서 오로지 화두뿐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때를 정구라고 한다. 또는 거정이나 득주라고 하기도 하며 역력이나 성성 또는 ‘화두를 챙길 때’라고 부르기도 한다. 화두를 챙길 때를 가지고 옳고 그러다고 분별하는 모든 마음을 함께 없앤다. 그러나 화두를 챙길 때라고 하면 화두를 챙길 때가 아니다. 옳다는 말이나 그르다고 하는 말도 인정치 않으니 마치 한 덩어리의 불과 같아서 여기에 닿는 모든 것을 태워 버린다. 여기에 무슨 곁눈질 할 곳이 있겠는가”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사대부들이 대개 헤아려서 견주려는 마음으로 자기가 기댈 터전을 삼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곧 “공에 떨어진 것이 아니냐”라고 말을 합니다.
喻似舟未翻에 先自跳下水去이니 此는 深可憐愍이로다. 近至江西에 見呂居仁이라. 居仁이 留心 此段因緣 甚久하나 亦深有此病인데 渠豈不是聰明이리오. 某嘗問之曰하되 公이 怕落空하니 能知怕者 是空耶아 不空耶아 試道看하라하니 渠佇思하여 欲計較祗對기에 當時 便與一喝하니 至今 茫然하여 討巴鼻不著이라. 此는 蓋以求悟證之心이 在前頓放하여 自作障難이니 非干別事니라. 公이 試如此做工夫하여 日久月深하면 自然 築著磕著이니라. 若欲將心待悟하며 將心待休歇이면 從脚下參하여 到彌勒下生이라도 亦不能得悟하며 亦不能得休歇하여 轉加迷悶耳이니라.
이를 비유하면 배가 뒤집히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먼저 물에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몹시 가련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근래에 강서에서 여거인을 만났습니다. 그가 이 일대사 인연을 마음에 둔 지 매우 오래되어도 또한 이 병이 깊었는데, 그가 어찌 똑똑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일찍이 “그대가 空에 떨어질까 두려워하니, 그 두려워할 줄 아는 자가 空 이냐 불공 이냐. 어디 한번 일러 보아라”고 물었더니, 그는 오래 생각해서 분별하는 마음으로 대답하려 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때 한번 윽박질렀더니 지금까지 망연자실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이 눈앞에 놓여서 스스로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에 관계된 것이 아닙니다. 그대가 이렇게 공부하여 일구월심 노력하다 보면 자연히 원하는 대로 공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깨달음을 기다리는 마음을 꾀하고 모든 경계가 사라진 경계를 찾는다면, 당장 공부를 시작하여 미륵 보살이 내려올 때까지 공부하더라도, 깨달을 수 없고 쉴 수가 없어 점차 번뇌만 더 많아질 것입니다.
平田和尚이 曰 神光이 不昧하여 萬古徽猷니 入此門來에 莫存知解라하며 又 古德은 曰 此事는 不可以有心求며 不可以無心得이며 不可以語言造며 不可以寂默通이라하니 此是第一等으로 入泥入水한 老婆說話인데도 往往에 參禪人이 只恁麼念過하고 殊不子細看 是甚道理라. 若是箇有筋骨底 聊聞舉著하고 直下에 將金剛王寶劍으로 一截에 截斷此四路葛藤하면 則生死路頭도 亦斷이고 凡聖路頭도 亦斷이며 計較思量도 亦斷이고 得失是非도 亦斷이라. 當人의 脚跟下가 淨裸裸하고 赤灑灑하여 沒可把리니 豈不快哉며 豈不暢哉리오.
평전화상께서 “신령스런 광명이 어둡지를 않아 만고에 빛난다.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고 하셨고, 또 우두융 선사는 “이 일은 유심이나 무심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로 언급하거나 침묵으로 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중생들을 제도하려고 진흙탕에 뛰어드는 늙은이들의 으뜸가는 간절한 말입니다. 그런데도 더러 참선하는 사람들이 이런 가르침을 놓쳐 버리고 조금도 “이 무슨 도리인고”를 꼼꼼히 살피지를 않습니다.
줏대 있는 사람이 이 말을 듣자마자 바로 금강왕보검의 한칼로써 네 갈래 갈등을 끊는다면 곧 삶과 죽음의 길도 끊어지고 범부와 성인의 길도 끊어지며, 헤아려서 분별하는 마음도 끊어지고 득실과 시비하는 마음도 끊어지는 것입니다. 본인이 있는 그 자리가 말씀하고 깨끗하여 터럭 하나라도 잡을 것이 없으니, 어찌 유쾌하고 즐거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출처: 禪 스승의 편지 , 대혜 종고 『서장』, 원순 옮김
첫댓글 다음 주 부터는 수요일에 공양 올리겠습니다. 내용이 길어서 다음주에 계속 됩니다.
시비 분별, 알음알이를 가지고 공부하려는 마음을 가지지 마라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음을 말하려고 서로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며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도 주지 않고 열심히 알고 있음을 말하려고 하지 않나 돌아봅니다.
좀은 어리숙한 듯한 삶을 살아가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요?
있는 그대로 보는 그 마음!
을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보문님 참 대단. 이 어려운 한자들을 어찌 일일이 워드로 옮기셨을꼬
@普賢. 한자는 먼저 공부하신 분들이 계셔서 복사하였습니다. 간혹 오자나 탈자만 넣었어요.
대혜선사의 서장을 보면 화엄, 보현행원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아마 이제는 다들 느끼실 겁니다.
공부가 바르게, 그리고 깊어지면 전부 화엄, 보현행원적으로 됩니다.
화엄이란 말, 보현행원이란 말을 쓰지 않아도 그 분위기가 전부 화엄, 보현행원입니다.
우리 카페 구참 불자님들이라면 제 말씀 이해하실 거에요.
대혜선사의 서장은 보조지눌이 상무주암에 계시며 마지막 깨침의 관문을 통과하게 한 가르침입니다.
지눌은 서장을 읽으며 가슴에 아직도 떨어지지 않았던 원수같던 알음알이를 떼 버리게 되었다고 하시지요.
우리는 수심결을 읽었고 또 초발심자경문을 읽었고 또 선가귀감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대혜의 서장에 오게 됩니다.
모두 무유간단으로 올리신 보문님의 공덕입니다.
오늘 가르침 역시 알음알이, 일념의 허망을 경고하는 말씀들입니다.
화엄에서는 알음알이를 일념으로 많이 이야기하지요.
入此門來 莫存知解
이 말은 선방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문구지요.
이 문에 들어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
선은 살아있는 것인데, 많은 선 수행자들이 이걸 잊고, 또는 모르고 죽은 선으로 선을 삼지요.
그래서 자칫하면 관념으로만 빠집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행이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선은 움직여야 해요.
살아서 펄펄 뛰어야 하는 겁니다.
말이 살아있고 생각이 살아있고 행동이 살아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선사들은 할을 하고 방망이로 때리는 겁니다.
그런데 모자라는 선수행자들은 그런 건 모르고 할을 하고 때리는 것만 봅지요.
똑같은 할을 해도 죽은 할을 하는 겁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죽은 선을 하는 선수행자들이 많습니다.
본인들만 모르지요.
@普賢.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