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년 1 월 13 일 토요일 강추위
지난 몇년동안 글을 쓰고 싶을때마다
문맥을 잡아보려고 애를 쓰다가
매번 포기하고 말아버렸다.
그동안 풀천지 가족의 삶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는데도
2년전 마을 이장을 맡게 되면서부터
소박하고 자유로운 풀천지의 일상을 오롯이 지켜내기가
참 쉽지 않았던것 같다.
그전엔 풀천지 삶의 방식대로 고집해나가면 그만인 시간들이었는데
이장을 맡게 되면서 지역사회와 연계된
마을의 일들이 풀천지 삶안으로 통째로 쳐들어와
참으로 버겁도록 바쁜 세월을 보내고 만 탓이다.
이미 3 년전부터 의욕이 충만한채로
풀천지 가족의 힘만으로 집짓기를 시작한후
이층을 완성하고 마악 일층 집짓기를 시작하려는 절대적인 과제를 뒤로하고
녹색농촌체험마을 복원을 시작으로
내집 짓는일 대신 풀천지 가족 모두
체험마을 복원 사업에 통째로 매달려 버리게 된것이다.
연이어 오랜세월동안 미해결되었던 마을사업들을
악착같이 발로 뛰며 성공시키느라
정작 우리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만것이다.
그 와중에도 풀천지 생명농사만큼은
한치의 어긋남도없이 지켜나갔음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오늘도 모처럼 글을 쓰면서
어김없이 변명 일색이 되고마는데
올해 다시금 그만두고싶은 이장직을 연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닥쳐오는 일들은 쌓이기 마련이라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것 같다.
잘하면 잘하는대로 못하면 못하는대로
세상은 굴러가기 마련인데 사람들의 욕심이
끝없는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변화의 시작은 엉뚱한데서 터져나왔는데
최순실 사건이 온나라를 출렁이며 터져나왔고
온국민 모두의 손에 촛불이 들려지게 되었다.
"이게 나라인가?" 오직 그 한마디를 가슴에 품고
어떠한 폭력도 행하지 않은채
수십차례의 촛불집회만으로 박근혜를 감옥에 보내고
촛불의 염원을 담은 민주 정부가 들어서는 동안
그 엄청난 변화를 겪고서도 선과 악의 갈래는 조금도 변하지 않고
여전히 건재하기만 하다.
여당과 야당은 아무것도 한것이 없는데도
다시 주도권 싸움에 매달리고
국민들은 아직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하여
끝나지 않는 다툼을 영원히 하게 될것이다.
우리 삶 자체가 참으로 야비한 정치놀음으로
다시 환원되고 만것이다.
남보다 어떡하든 잘 살아보고 싶은 욕망들이 모여
온갖 악을 만들어내고 끊임없이 선을 위협해가기 때문이다.
하나의 집단속에서 서로모여 살아가면서
선과 악의 기준이 우리네 양심의 길을따라 명확한채로
참다운 우정을 나눌수 있다면
세상살이는 얼마나 행복해질수 있을 것인가?
누군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소통해 갈수 있을때만이 참다운 행복을 느낄수 있다 하였는데
서로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한
참다운 소통도 행복도 미래도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다.
요즘 수많은 TV 프로속에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프로가 인기를 끌고 있다.
출연자들 모두 이런저런 삶의 부침을 겪으며
사업도 망하고 건강도 무너지는 경험속에서 무작정 자연으로 돌아와
욕심을 비우고 나서야 건강과 행복을 찾아가는 내용인데
공감하지않는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인기를 끌고있는 셈이다.
나는 자연인이다가 인기프로가 되면서
재미를 보게된 방송국에서
취재대상을 찾아다니는 또다른 욕심이
조용한 농촌마을을 휘젓고 다니는데
과연 우리들에게 무작정 자연으로의 회귀만이
절대 선이 될수 있는지
어쩌면 위험하기만한 악의 길인지
명확히 규정되어질수 있을 것인가?
모든걸 내어주는 자연의 순리앞엔
풀한포기의 기적도 필요하듯이
복잡하기 이를데없는 우리네 삶의 기준속에
선과악의 기준또한 참으로 난망하기 그지없는 일일 것이다.
우리들 세상앞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실체는
바로 우리들 자신의 어쩔수 없는 욕심이 아닐까 싶다.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평화로운 세상은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을수 있을때만이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럴려면 비겁한 선이 악을 두려워하지 말아야한다.
우리들 양심에 어긋나지않는
선과 악의 기준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할수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선과 악의 그 모호한 굴레에서 벗어나
보다 선한 세상의 평화를 나누어 가질수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매우 간단한 일이다.
무언가 말하고 싶을때
두려움을 제치고 서슴없이 말할수 있어야 한다.
참는게 미덕인 사회는
악마의 달콤한 속삭임에 불과하다.
선과 악의 경계는 우리들 마음속의 용기에 달려있을 것이다.
우리가 미처 행하지 못했던 수많은 선들을 위하여
우린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
우리들의 선을 위해
두려워하지않고 발언할수 있다면
우린 비로소 악에 대항할수 있는
용기를 가질수 있게 될것이다.
타인이 악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나약함이 악의 뿌리임을 잊지 말기로 하자.
우리들 양심의 목소리는 선을 외치고 싶지만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침묵해왔기 때문에
아직도 세상은 그 간단한 선악의 기준조차 끝없이 모호할 뿐인것이다.
세상의 평화는 우리들 개개인의 작은 용기로 채워져감을
잊지 말기로 하자.
첫댓글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말하고 싶을때 두려움을 제치고 서슴없이 말할수 있어야 한다는 글에서는 한숨을 쉬게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목(? 인사권)을 쥔(가진)자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공감되는 말일텐데
그렇지 못한 조직에서는 내 목을 담보로 하고 싶은 말(결국은 서열에서 자신보다 위의 사람에게)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올바른 말 하는 사람이 더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부족한 글을 우정으로 살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서야 답글을 올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도 전해봅니다.
결국 구태여 용기를 낼 필요가 없는
변함없는 자연으로 돌아갈수 있는 용기만이
마지막 위로가 될수 있다 생각합니다.
욕심과 관련한 말씀에 대해 크게 공감합니다.
남에게 절대 피해가 없다는 전제하의 욕심,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욕심이라면 봐줄만 하다고 보는데 자신만을 위한, 자신이 속한 조직만을 위한 욕심은 결국 누군가에게는 피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잘 사는 사회는 쉽지는 않겠지만 청렴한 사회를 이루게 되면 그나마 최선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욕심을 쉽게 버릴수 없는 욕심은
머나먼 인생길에서 힘겨운 짐과 같은것이겠지요.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고 잘못되어도
내 자신부터 조금씩이라도 올바르게 실천하는 노력을 할수 있다면
세상은 그만큼 좋아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남들이 모두 잘못하고 있는 세상에대한 두려움보다
내 자신부터 올바르게 실천할수 있는 작은 용기만이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아갈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