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무진과 졸라의 초원 손 진 담
2017년 여름, 무더운 인천공항을 벗어나 4시간 만에 서늘한 스텝 나라로 갔다. 울란바토르의 칭기스칸 국제공항 출구에는 이번 패키지 여행팀의 현지 안내원과 미니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은 먼저 버스터미널 근처 한인 식당으로 안내되고, 제육복음으로 점심을 마친 후 본격 여행길에 나섰다. 광활한 초원과 하얀 게르, 황홀한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그리며 여행객들은 마냥 들 떠 있었다. 드넓은 스텝을 달려가며 여자 안내원 졸라(Ms. Jolla)가 들려주는 몽골의 자연과 문화 이야기에 모두 귀를 기울였다.
건조 기후대인 몽골고원은 평균 고도가 해발 1,580m이며, 동쪽은 대평원이 펼쳐지고, 서쪽은 알타이 산악 지형이며 남쪽은 고비사막이 대부분이나, 북쪽은 호수와 강이 많은 스텝초원이다. 새랭가(Salenger) 강은 북으로 흘러 시베리아 바이칼(Baikal) 호수로 들어가고, 텐히(Khentii) 산맥의 부르칸(Brukhan) 성산(聖山)에서 발원한 오논(Onon)강은 동으로 흘러 흘러 흑룡강(아무르 강)에 유입된다. 이곳 드넓은 초원에는 예로부터 유목이나 목축 생활하는 여러 씨족과 부족들이 살고 있었는데...
12세기 후반, 오논강 변에서 몽골 왕족이자 유목민 부족장인 에수게이의 맏아들로 태어나, 천신만고 끝에 칭기스칸이 된 초원의 영웅이 바로 테무진(鐵木眞)이다. 칭기스칸(成吉思汗, 1162년~1227년 8월 25일)은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대륙을 점령한 몽골 제국의 창업자이자 초대 대 칸이다. 몽골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출신보다는 능력에 따라 대우하는 합리적 인사제도에 기반을 둔 강한 군대를 이끌어, 역사상 가장 성공한 군사, 정치지도자가 되었다. 중국사에는 원(元) 태조(太祖)로 기록되는 그는 몽골인의 자부심 그 자체이다.
초원을 달려온 버스는 언덕배기에 위치한 오워(ovoo, 몽골 샤머니즘의 상징물)앞에서 잠시 머물렀다. 우리의 서낭당 같은 돌무지를 시계방향으로 세 바퀴 돌고 소원과 안녕을 빌었다. 기념촬영 도중 갑작스러운 강풍에 등산 모자가 물결치는 풀밭 속으로 사라져갔다. 멀리 수많은 양 떼들이 초원을 누비며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이어서 일행은 산속에 위치한 몽골 최초의 라마교 사원을 찾았는데, 풍화 침식으로 노출된 화강암 바위와 침엽수들이 잘 어울려 뭔가 영험이 있어 보였다. 오는 길에 지난해 세계 정상들이 모였던 거대한 게르 촌을 방문하였고, 한국 여자 대통령 사진과 칭기스칸 영정 앞 의자에 앉아 잠시나마 권력자가 된 기분을 느꼈으나, 어찌 보면 모두가 ‘헛되고 헛된 것’(vanity of vanities) 같기도 했다.
다음날 오전, 전승기념탑이 위치하는 호텔 근처 언덕에 올라 울란바토르 전경을 바라보았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톨 강과 멀리 화력발전소가 눈에 들어왔고, 신축 건물들이 많이 올라가고 있었다. 초원의 유목민들은 도시로 몰려들어 전체인구 약 3백만 명 중에 70%가 수도에 살고 있다고 했다. 알타이 계 황색인종(Mongoloid)이자 우리 한민족이 속하는 할흐 몽골족(Khalkh Mongols)은 90%에 이르고, 이들은 ‘칭기스칸의 도장’이라는 몽고점을 갖고 있어 한국과는 형제 나라이다. 언덕아래에는 몽골에서 가장 존경받는 한국인, 이태준선생의 기념관이 위치한다. 일제강점기 초기 몽골에서 의사로 활동하며 전염병 퇴치에 혁혁한 공을 세워 '몽골의 슈바이처'로 불린 독립운동가 이태준의 헌신적 노력도 현재 몽고와의 친선을 갖는데 큰 몫을 하고 있었다. 고귀한 삶을 살다간 이태준 선생을 참배하고, 그가 주치의로 돌봐준 마지막 황제 복들 칸의 겨울 궁전과 라마교 사원을 들른 후, 우리들은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이동하였다. 가는 길목의 전원마을에는 할머니가 외손녀를 돌보며 딸 졸라가 퇴근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세계자연유산의 하나로 몽골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관광지 테를지는 스텝 구릉지 곳곳에 침엽수와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환상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북바위 관광과 승마 체험, 유목민촌에서 마신 마유 등이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대형 게르 식당에서 준비된 저녁 파티에는 양고기 요리(허르헉)와 일행들이 가져온 술을 나눠 마시며 정담을 나누었다. 일행 중 멋쟁이 노신부님은 ‘정복자 칭기스칸의 시’를 낭송하여 갈채를 받았다.
정복자 테무진(1162-1227)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목숨을 연명했고 ,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일이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목숨을 연명했고 ,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와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 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 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모두 없애 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테를지 공원의 밤하늘, 쏟아지는 별을 보며 캠프파이어의 낭만을 기대했는데, 우중충한 가을비가 내려 게르안으로 들어와 몸을 녹였다. 옆집의 싱글 김 선생도 마음이 울적했는지 식당에서 마신 취기가 덜 가셨는지, 양주 한 병을 들고 방문을 했다. 차가운 밤공기에 게르의 난로가 빛을 발한 가운데 여행객의 술잔이 여러 차례 오고 갔다. 아내와 자식들은 미국엘 보내고, 자신은 기러기 아빠로 사업을 하다가 그나마도 정리하고 세계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지난 세월의 이야기와 다녀온 해외 여행지를 나열하는데 부러움 반 서글픔 반이었다.
소주 한 병을 비운 후 싱글은 가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한밤중에 노크소리가 나서 벌떡 깨었다. 누구냐(who)고 했더니 파이어(fire)라고 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초저녁에 난롯불을 피워준 어린 여종업원이었다. 자정을 넘었는데, 타는 불이 꺼질까봐 다시 나타난 걸 보니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중3 정도나 될까, 학교 갈 나이에 밤잠 설치며 일하는 걸 보니, 지난날 시골 떠나 상경하던 우리네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집사람도 같은 느낌인지 배춧잎 하나를 꺼내어 새까만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래도 그녀는 초원 밤하늘의 영롱한 별처럼 반짝이는 눈망울을 지니고 있었다.
다시 잠자리에 누웠는데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낮에 안내원 졸라가 한 이야기도 생각났다.
졸라의 남편은 몽골 국영방송사의 9시 뉴스 진행자란다. 매우 자랑스러운 직업이지만 월급은 넉넉지 못하여 같이 벌며, 외곽지 친정어머니 집에 딸까지 맡겨놓고 동거한다고 한다. 여행안내도 성수기인 여름 한 철이라, 넉넉한 생활을 하려면 외국에 나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길밖에 없다고 하였다. 대학원 학력에다 한국어도 잘하고 성실한 그녀 정도라면, 우리 경우 전문직 여성으로 활동할 것 같았다. 여행객들은 한국에 오면 금방이라도 일자리를 마련해 줄 것같이 입 서비스를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녀의 생활 자세는 예상외였다. 비성수기인 가을에는 한국에 와서 지적인 일보다는 육체노동도 불사하겠다면서, 식당의 허드렛일보다 이삿짐센터에서 일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무거운 가구를 짊어지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체력이 된다고 하는 안내원 졸라, 몽골 젊은이의 사고방식이 작금의 우리 청소년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 마음이 끌렸다. 테무진과 형제들을 늠름하게 키워낸 어머니 호엘룬을 닮은 것 같다.
4박 5일의 짧은 여행 후, 돌아오는 대한항공의 창밖으로 펼쳐지는 테무진과 졸라의 초원을 내려다보며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초원의 빛’ 한 구절이 떠올랐다.
한때는 그리도 찬란한 빛이었건만
이제는 속절없이 사라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오히려 강한 힘으로 살아 남으리
지난날의 영광을 되새기며 분발하는 몽골과 우리는 보다 긴밀한 국제 교류를 통하여, 단단한 실크로드국가를 구축함으로서, 날로 커가는 중국과 러시아의 패권세력을 견제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2018.4.6
첫댓글 손진담 박사님 어찌 여행기를 잘 쓰셨는지 감동적입니다. 특히 부귀와 영화 권력 모든것이 헛되고 헛되도다 란 랄 귀감이가고 아무런 죄없이 고생하는 여자 대통령 애초럽기만합니다. 또한 ,정복자 칭기스칸의 시’ 마음에 와 닫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복자의 글은 이순신 장군의 글과 비슷한 면이 있네요
몽골 여행기를 잘 읽고갑니다. 앉아서 몽골 여행과 징기스칸의 정복사, 그리고 리더십을 잘 음미했습니다...!!!♡♡♡
댓글 달아 주신 어르신들께 감사드립니다. 글 쓸 용기를 주셔서 힘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