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빗/ 조이섭
어머니는 평생 긴 머리를 올려 지은 쪽에 얼레빗을 꽂고 다녔다. 그게 없을 때는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손빗으로 쓸어 넘겼다. 공사판에, 타작마당에 다니느라, 부지깽이 쥐고 장작불 마주하느라, 동백기름 바르고 참빗으로 벗겨 넘겼던 적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막내 누나 초례청 혼주석에서 하얗게 센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긴 모습만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다.
사람의 인상은 두상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중에서 얼굴의 이목구비와 낯꽃이 먼저겠지만, 머리매무새도 한몫을 감당한다. 단정하게 각인된 첫인상은 관계를 부드럽게 시작하거나 이어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헝클어진 머리모양을 가지런히 바로잡아 주는 도구가 빗이다. 외출하기 전에 머리를 단장하는 것처럼 마음을 열어 보이는 말도 말빗으로 빗고 난 이후에 주고받아야 한다.
말을 빗는다는 뜻은 교언영색하라는 게 아니다. 입에 발린 말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깃든 사랑을 느끼도록 말을 다듬으라는 말이다. 공자께서도 논어 학이편에서 ‘마음에 없는 말을 귀에 듣기 좋게 잘하고, 얼굴빛을 남의 눈에 들게 잘 나타내는 사람은 곧은 마음(直心)에서 우러나오는 인정(仁情)이 적다.’라고 하셨다.
사랑하는 마음과 인격을 말에 스며들게 하려면 말빗이 필요하다. 말빗은 여러 개의 빗살로 만든다. 첫째 빗살로 자신을 낮추고, 둘째 빗살로 마음을 가다듬고, 셋째 빗살로 진실한 말을 가려서, 넷째 빗살로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다섯째 빗살로는 말씨를 부드럽게 피워내야 한다.
자신을 낮추는 일은 겸손이다. 겸손은 자기 비하와 다르다. 잘 났다 내세우지 않되, 제 심지까지 내버리지는 말아야 한다. 겸손과 배려가 공존하면서 자존을 잃지 않아야 한다.
마음을 가다듬는 것은 거울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마음의 거울을 갈고 닦는 지름길은 독서다. 책 속에 숨어 있는 맑고 밝은 글을 통해 흐트러지는 자기를 비추어 보아야 한다.
가슴에 욕심이 들어 있으면, 진실한 말을 하기 어렵다. 모든 진실하지 않은 말은 욕심에서 나온다.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먼저라는 자세를 굳게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경청은 귀를 활짝 열고 상대방의 말을 많이 들으라는 말이다. 내가 들어 준 만큼 상대도 나의 마음을 헤아리고 받아들인다.
부드러운 말씨는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다. 내가 하는 말은 내 맘대로지만, 상대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은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진심이 왜곡되지 않게 전달하려면 우선 말씨가 부드러워야 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그나저나 요즘은 말이 점점 줄어든다. 편리가 효용을 앞지르는 세태다. 만나서 하는 대화 보다 전화, 전화보다 문자, 문자보다 이모티콘이 난무한다.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정보는 순식간에 왔다가 흘러간다. 주고받는 말에 사랑과 감정이 결핍되면, 그 자리에 AI와 로봇이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추세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마음의 소통(疏通)이고, 마음이 오가는 징검돌 역할을 하는 것은 말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말의 또 다른 얼굴인 글을 쓰다 보면, 필연적으로 퇴고를 하게 된다. 퇴고는 글을 빗으로 빗어 모양을 내는 일이다. 아둔한 나는 쓴 글을 아무리 곱씹어도 입안에 뉘가 그대로 굴러다닌다. 그래서 쓰는 게 하나이면 퇴고는 열이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윤문하는 글 빗질과 달리, 나는 말빚을 깔아가며 살았다. 아버지 어머니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자라서 잘 모실게요, 모두 다 빈말이었다. 여보 다시 술 안 먹는다고 다짐했던 말을 흘려보낸 것도 모자라 어린 아들 손주들과 새끼손가락 걸었던, 그들에게는 세상 전부였을 약속을 아버지라는 방패로 미루고 또 미루었다. 무엇보다 부끄러운 허언은 내가 나에게 던진 허튼 약속이다. 이것 하겠노라, 저것 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헌신짝처럼 내버린 거짓 맹세들이 차고 넘친다.
내가 내밀어 걸었던 새끼손가락은 쉬 잊어버리면서 남이 내게 지나치며 한 빈말조차 귀퉁이가 마르고 닳도록 간직했다. 남을 위한 일은 예사로 까먹으면서, 나에게 이로운 것만 취하려는 심보를 가졌으니, 성인의 말씀처럼 직심(直心)이 부족하고 인정(仁情)이 메마를밖에. 그럴 바엔, 차라리 입을 닫고 사는 게 나을 뻔했다.
『대학』에 신독(愼獨)이라는 말이 있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하여 말과 행동을 삼가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인데 이 또한 나하고는 거리가 멀다. 말로 진 빚이 열 섬이라면, 갚은 것은 두어 줌이나 될까. 한마디 말을 앞에 두고 말빗으로 가다듬기를 백 번 하리라 매 순간 다짐하지만, 희고 검은 말들이 제 먼저 달려 나오려고 아우성을 치니 낭패다.
이제는 글뿐만 아니라, 말도 그리해야 한다. 이제라도 무심코 뱉은 말로 상처받은 분들께 빚잔치하는 마음으로 괜찮은 말빗 하나 준비할 일이다. 만시지탄이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일 뿐이지만, 어찌하랴.
어머니의 머리카락은 항시 부스스했으나, 나에게 보여준 삶은 동백기름보다 윤기 있고, 향기로웠다. 남의 말보다 남을 위한 말만 하고, 가난해도 당당하셨던 것은 단정한 말빗을 속적삼 속에 고이 간직하고 살았기 때문이리라.
어느덧 나도 머리가 하얗게 세고 보니, 입관할 때 고동색 참빗 하나 은비녀 하나 쥐여 드리지 못한 불효가 마냥 눈물겹다.
첫댓글 선생님, 좋은 수필 잘 읽었습니다.
좋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글을 빗으로 빗어 모양을 내는 일이다.....이게 잘 안되는일인이 감히 선생님 글을 접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유당 선생님,
저도 제 글처럼 잘 안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