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일국상 제99일차 ㅡ 이운행렬, 다비의식 》
2024년 2월 26일 어두워오는 저녁 7시무렵. 프놈펜 깔멧 국립의료원 특별병동. 세수 93세 법납 75세의 노스승 마하썽끄리읏(대승왕) 뗍봉 큰스님께서는 끊길듯 끊길듯 사위어가는 호흡에 마지막 남은 의식을 두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잠시 감은 눈 반쯤 뜨시더니 말라붙은 입술 힘겹게 떼시며 상수제자 욘센스님에게 다음과같이 마지막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 (새승왕) '엄느 히힝 스님' 께 전화드려서
<모든 것을 믿고 가볍게 떠납니다> 라고 전해라..."
보디삿따의 행을 온몸으로 실천하신 부처님의 성스러운 제자,
완전히 파괴됐던 캄보디아 테라와다 상가를 온전하게 복원시킨 진정한 마하테라, 위기에 처했던 크메르ㆍ앙코르의 민족정신을 굳건하게 지켜낸 캄보디아의 위대한 스승이신 마하썽끄리읏 뗍봉 큰스님께서 파란만장했던 한 생애를 마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6월 3일> 큰스님의 100일국장이 시작된지 어느덧 99일차. 이날은 <왓 운날라움> 큰법당에 99일동안 모셔져있던 큰스님의 법구가 <왓 보툼> 다비장에서 한줌의 재가 되어 프놈펜 바삭강에 뿌려지는 날입니다. 다만 다비(화장) 직후 수습된 사리는 건립중인 스투파(탑)가 완공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사리함에 담겨 큰법당 부처님 곁에 봉안될 예정이며, 이날이 사실상의 100일장례 마지막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승왕청 <왓 운날라움> 앞 광장에는 이른 새벽부터 수않은 인파가 운집해 있었고, 큰스님의 법구가 모셔져있는 2층 큰법당에는 스님ㆍ신도ㆍ일가친척들이 모여 불경을 독송하고 있었습니다. <05:00> 법당에 모셔졌던 큰스님의 법구가 특수제작된 레일을 타고, 2층계단에서 1층으로 내려와 평화의 수호신 <가루다> 라는 새 모양으로 꾸민 운구차에 옮겨졌습니다.
드디어 <06:00> 한 시대를 이끌었던 우리들은 큰 스승 마하썽끄리읏 뗍봉 마하테로의 초대형 근정을 앞세운 운구행렬이 다비장 시설을 갖추고 있는 <왓 쁘똠>으로의 시가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승왕청 <왓 운날라움>에서 다비장이 있는 <왓 쁘똠>까지의 행진거리는 약 5km. 이번 운구행렬(시가행진)은 승왕청ㆍ왕실ㆍ정부가 참여하는 범국가적 행사로서 캄보디아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장대한 운구행렬(시가행진)이 캄보디아 수도 한복판을 가로질러 갔습니다.
아래 내용은 며칠전 승왕청으로부터 제공받은 시가행렬 구성내용입니다.(행진경로 = 승왕청 <왓 운날라움> ㅡ> 독립기념탑 ㅡ> 펜부인의 산에 있는 사원 <왓 프놈> ㅡ> 스리랑카 해탈보리수 사원 <왓 랑까> ㅡ> 다비장 <왓 쁘똠>)
1. 마하썽끄리읏 뗍봉 큰스님의 공식근정(맨앞)
2. 국기, 종교기, 왕실기 / 큰스님 법구 / 51명의 군인
3. 육군 - 해군 - 공군
4. 헌병 / 경호부대 / 경찰군
5. 걸스카웃 / 보이스카웃 / 청년 스카웃
6. 청소년 연맹 / 국기, 종교기, 왕실기,
10명의 호위군 / 근위병
7. 육군 군악대 / 불법승 삼보존 / 장송곡을 부르는 14명 /
헌법위원회 행렬
8. 상원의원 행렬 / 하원의원 행렬 / 프놈펜 공무원 행렬
9. 종교부 공무원 행렬 / 외국인 비구 행렬 / 이슬람 교도 행렬
11. 기독교도 행렬 / 보우 끄리 텀마윳 종정,
마하니까이 엄능히응 종정 / 국기, 종교기, 왕실기
엉꺼오(앙코르) 왕실부대 군인행렬
12. 악단 / 야차와 향로 / 소방군 행렬 / 브라스 밴드
양쪽으로 150미터 밧줄과 각종 깃발 행렬(옛 군인)
13. 큰 스님 법구를 기준으로 긴 줄을 잡는 사람들과
각종 부채형 빠크랍(국가 왕실 정부를 상징하는
캄보디아 국장) 을 들고 뒤따르는 사람들.
<07:30> 우리 두 스님은 원래 <7.외국인 비구 행렬>에 참여할 계획이었는데, 종교성에서 의전차량을 보내오는 바람에 다비식장이 있는 <왓 쁘똠 사원>으로 직행했습니다. 사원에 도착하자 안내요원은 우리 두 스님을 각각의 이름이 적힌 KOREA VIP 지정석으로 안내했습니다. 지정석 맨앞줄 중심엔 새승왕 엄능힝(엄느 히응) 스님과 담마윳 종파의 상가라자 스님께서 나란히 앉아계셨고, 그 우측엔 시하모니 국왕폐하가 앉아 있었습니다.
<왓 쁘똠 >사원 한복판에는 큰스님의 법구를 다비할 불탑형식의 다비시설이 갖춰져 있고, 그 왼쪽엔 스리랑카 아누라다쁘라 지역에서 이식해온 해탈보리수가 어느덧 고목이 되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정석에 앉아서 식순에 따라 진행되는 다비의식의 전 과정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08:00> 마하썽끄리읏 뗍봉 큰스님의 법구가 불탑 1층에서 불탑 2층 다비대로 올려졌습니다. 불탑 1층 앞에 마련된 큰스님의 근정사진이 놓인 분향소에 맨 먼저 세계불교회의 의장 고리 신카이 대장로께서 분향예배 후 조사 낭독이 있었고, 담마윳 종파의 상가라자ㆍ새승왕 엄느 히응, 그리고 시하모니 국왕폐하 분향이 이어졌습니다.
<08:20> 마하썽끄리읏 뗍봉 큰스님의 상수제자 욘센스님이 1.5m 길이의 관 끝부분에 불을 붙인 후 지정석 중심에 앉아계신 시하모니 국왕폐하께 불붙은 관을 전해올렸고,. 관을 전해받은 시하모니 국왕폐하가 지정석 머리위에 설치된 가느다란 화약줄에 불붙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08:30> 드디어 시하모니 국왕폐하가 큰스님 법구에 점화하기 위해 머리위에 설치된 가느다란 화약줄에 관을 대고 불을 붙였습니다. 그 화약줄은 해탈보리수와 연결돼 있어 순식간에 그 불꽃이 해탈보리수로 날아가 불꽃을 튕기면서 자욱한 연기를 발생시켰습니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연기에 휩싸이는 해탈보리수가 수분동안 소리내어 울부짖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곡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해탈보리수가 곡소리를 내는 동안 연기는 퍼져나가 불탑을 완전히 뒤덮었고. 자욱하던 연기가 차츰 사라지면서 울부짓던 해탈보리수도 그 울음을 그쳤습니다(직접 촬영한 동영상과 사진자료 그대로 올리겠습니다). 한편 불탑 2층 안에서 다비를 기다리고 있던 큰스님의 법구는 (우리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 실제로는 이미 불길에 휩싸여 한창 다비가 진행중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해탈보리수가 울부짖는 소리, 자욱한 연기가 불탑을 휘감았다가 서서히 사라져가는 장면 등은 가상과 현실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스승을 마지막 떠나보내는 불자들의 슬픈 감정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이 경이로운 장면들을 연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썼을까 생각해보니 마음이 절로 숙연해 졌습니다.)
<09:00~10:30> 큰스님의 법구가 불탑 속에서 계속 다비되는 동안 불답 주위를 돌며 다양한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캄보디아는 예로부터 집안에 스님이 돌아가시면 장례 마지막날 유족들이 머리를 깍고 단기출가하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유족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머리깍고 출가하여 공덕을 쌓을 수 있습니다. 이날 역시 많은 청년ㆍ장년ㆍ노년들이 출가행렬에 참여했고, 출가자 부모님(특히, 아버지)은 상가에 공양올릴 가사와 바루를 두손에 받쳐들고 출가행렬을 뒤따랐습니다.
그외 장례와 관련된 민속무용과 전통악기 연주가 있었고, 스님들은 열을 맞춰 탑을 돌면서 찬팅을 하거나 단상 앞에서 마이크 들고 큰스님의 공덕을 찬탄하거나 법문을 하였습니다. 또한 분향소엔 훈마넷 현 총리를 비롯한 왕실가족, 그리고 각 부처 장관들이 차례로나와 큰스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했습니다.
<11:00> 어느덧 점심공양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비식장에서 물러나와 승왕청 <왓 운날라움> 사원에서 정성껏 마련한 크메르 전통음식으로 공양을 한 다음 다비장으로 다시 돌아가 큰스님의 유해(사리)수습 과정을 참관했습니다(자료사진 참조).
<17:00> 세계불교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각국의 스님들은 다시 승왕청 <왓 운날라움> 사원 대법당에 모여 마하썽끄리읏(대승왕)뗍봉 큰스님의 성스러운 <유해 봉헌의식>에 동참했습니다. 먼저 새승왕 <엄능힝> 스님께서 황금사리함에 봉안된 큰스님의 유해를 불단앞에 모셨고, 각국의 대표들은 차례대로 나와 향공양을 올리면서 빨리어나 각국의 언어로 예경을 했습니다.
한국대표단에게도 5분간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우리 두 스님은 미리 준비한대로 삼보예찬ㆍ분소의게송ㆍ위빳사나게송ㆍ회향게송을 독송했습니다.
그리고 <100일국장 제99일차> 마지막 순서로 새승왕 <엄능힝> 스님께서 캄보디아 최고 상가회의를 대표해 <세계불교 정상회의>와 <100일국장>에 참석해주신 각국의 대표들, 시하모니 국왕폐하와 왕실가족, 훈마넷 총리와 정부각료, 그리고 모든 자원원봉사자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또한 각국의 대표 한분 한분에게 캄보디아 승왕청의 마음을 담은 1.5뼙 높이의 목불 부처님을 오색바구니에 담아 선물하였습니다(사진 참조).
100일국상 중 2박 3일간의 마지막 장례일정이 꿈처럼 지나갔습니다. 캄보디아 테라와다 상가의 최고 어른이시고, 캄보디아 국민의 정신적 지주셨던 마하썽끄리읏 뗍봉 큰스님께서 지난 2월 26일 입멸(入滅)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선 일평생 세상의 평화와캄보디아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당신한몸 남김없이 불사르셨습니다.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 가르침 가슴깊이 새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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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상 100일째 되는 6월 4일은 큰스님 속가 유족들의 출가의식,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공덕 회향의식, 모든 상가 대중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상가다나(승보공양), 그동안 수고해주신 분들에 대한 답례인사와 표창 등 100일국장을 마무리짓는 의식이 거행됐습니다. 오늘의 이 글은 빡빡한 일정 소화해 내면서 피로를 회복하느라 부득이 사흘 늦게 올리게 됐습니다.
이제 100일국장 일정이 모두 끝나고 그제는 캄보디아 국리박물관을 둘러보았습니다. 전담 안내원의 자세한 설명을 통해 캄보디아 불교사를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리고 곳곳에 전시된 다양한 형태의 부처님 성상을 통해 부처님 상호의 변천사를 파악할 수 있었고, 캄보디아 부처님 상호의 특징을 읽어낼 수있었습니다.
어제(6월 6일 아침)는 수도 프놈펜을 떠나 캄보디아의 불교유적도시 시읍리업으로 이동하여 세계 7대 불가사의 앙코르왓 구석구석을 탐방하였습니다. 앙코르왓 흰두사원이 불교사원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고, 경계를 구분지을 수 없는 두 종교의 혼재를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폴포트 공산정권의 학살현장 킬링필드에서는 눈시울을 붉히며잔혹하게 죽어간 넋을 위로하였습니다. 금번 100일국상의 장본인이신 뗍봉 큰스님께서도 가족ㆍ친지ㆍ스승ㆍ도반 80여명이 집단학살 당하는 고통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킬링필드는 인류사에서 가장 잔혹한 역사로 기록될 만큼 캄보디아의 아픔이 서려있는 곳입니다.
잠시 후 우리 일행은 아침 공양을 마친 뒤 밤 11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프놈펜으로 돌아갑니다. 가는 길에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은 수행처 <오동 사마타 명상센터> 를 방문할 계획입니다. 그곳에서 책임자를 만나 그곳 명상센터의 특징과 캄보디아의 수행처 현황에 대한 정보를 얻어갈까 합니다. 그 소식 또한 귀국해서 시간나는대로 정리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빤냐완따ㆍ떼짓사라 전ㆍ현 두 이사장 스님과 두 스님을 그림자처럼 따르며 시봉했던 깝삐야 윤상돈 수행자에게 있어 이번 <캄보디아 100일국장 참석 8박 9일 일정>은 지금까지 살아온 수행자로서의 삶을 냉정하게 되돌아 볼 수 있었던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캄보디아 100일국장 참석>은 먼훗날 한국테라와다불교사에 중요한 역사로 기록될 것입니다.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께 마음깊이 감상의 마음을 전합니다. 모두들 담마 따라서 둑카(苦)의 온전한 소멸에 이르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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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2568년 6월 7일 아침
킬링필드 시엠립을 떠나며
with metta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