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Ⅱ-82]“삼순아, 부디 인도환생하거라”
KBS <인간극장>은 나의 최애最愛 프로그램, 휴먼 다큐멘터리 5부작으로 거의 한 주도 빼지 않고 방영하고 있다. 나의 졸저 <총생들아, 잘 살거라> 출판 계기로 우리 부모가 주인공이 되어 2016년 11월초 5부작으로 방영된 데 이어, 지난해에는 25주년 기념특집에 선정돼 아버지만 두 번 공중파를 타기도 했다. 그 프로를 좋아하는 까닭은, 첫째 내가 사람에 대한 관심이 크기 때문이며, 둘째는 보통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많이 간접경험함으로써, 언제가 될지 모르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면 도움이 되리라는 얄팍한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사람을 어떤 편견도 없이 마치 오래된 관계처럼 친숙하게 오픈 마인드로 대하는 게 나의 장점이라고 여럿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알고 사귀는 기쁨보다,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곤 하지만, 이익과 손해 개념으로는 생각지 않기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신영복 선생이 늘 ‘유학儒學은 곧 (너와 나의) 관계關係의 철학에 다름 아니다’는 말씀을 하셨듯, 혼자서도 못사는 게 사람이라는 생각과 또 ‘혼자 잘 살믄 무슨 재민겨’(전우익 선생 책 제목)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서설이 길었지만, 이번 주 방영된 <인간극장-소는 내 인생>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서울토박이였던 주인공(73세 조영현-71세 이은경) 부부는 16년 전에 소를 키우고자 낯선 전남 장흥으로 귀향했다. 그래스-페드(grass-fed, 사료가 100% 풀)로 키운다는 확고한 철학을 갖고, 16마리의 소를 '창업동지'로 맞이했다. 남은 2마리 중 1마리가 '삼순'이다. 현재는 150마리라던가. 정든 동지 ‘삼순이’를 안락사시키는 장면에서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인도환생’을 축원하는 축문을 인근에 사는 원로작가 한승원(노벨문학상에 빛나는 한강의 춘부장) 선생께 받아왔다. 인도(人道)환생은 죽은 뒤에 다시 사람의 몸을 받아 인간세상에 태어나라는 불교의 윤회사상. 생명체가 지은 업보에 따라 6가지 세상(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을 돌고 돎. 차마 어쩌지 못하고, 그 장면을 외면하는 초로의 부부가 눈물을 쏟은 것을 보았다. 소의 안락사도 듣느니 처음이다. 불인지심(不忍之心)이 그것일 터.
아, 나도 생각나는 게 있다. 국민학고 4학년이나 됐을까? 아버지가 형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한다고 우리집 암소를 쇠전(우시장)으로 끌고 가시는데, 대문앞까지 달려가 소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팔지 말라고 매달렸다. 그때 보았다. 500원짜리 동전만한 큰 소의 눈에서 떨어지던 굵은 눈물방울을. 언젠가 <전라도닷컴> 사진전에서 외양간에 갇힌 소 사진을 20만원엔가 산 것도, 소를 지금도 좋아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사진>. 소가 우리집의 전재산이나 다름없었던,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 부르던 때였다. 우리집 소의 눈물방울이 <소는 내 운명>을 보면서 떠올랐다. 내가 싫어하는 작가이지만, 춘원 이광수의 <우덕송牛德頌>을 감상해 보시라. 위가 4개라는 소가 주저앉아 되새김질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너무 평화스럽지 않던가. 그래서 나는 되새김을 뜻하는 ‘반추反芻’라는 말을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다. 지난날을 되새겨볼 줄 모르고, 제 잘난 맛에 사는 인간들을 나는 '경멸'한다.
그런데, 그들 부부에게는 정말로 ‘소사랑’이 운명인 듯하다. 그동안 일일이 작명을 하고 어루만지고 풀만 정성스레 먹이고, 발굽을 깎아주는 정성에 거듭 놀랐다. 그들은 45년 전에 어느 요들동아리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다던가. 흑장미를 좋아한다는 여자의 말에 출근 전 신문지에 흑장미 100송이를 둘둘 싸 안기고 가던 무뚝뚝한 그 남자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마는 영혼이 자유로운 인간이었던가. 사료회사에 다니면서 제2의 삶을 풀로만 소를 키워야겠다는 야심찬 꿈을 꿨다고 한다. 젊은 시절 알피스트 못지 않은 두 분의 산사랑도 인상적이다.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던 그는, 알프호른(스위스 알프스 지방의 길이가 3-4m가 되는 목관악기. 밸브나 구멍이 없고 입술 진동만으로 소리를 낸다)을 소들 앞에서 아내와 함께 분다. 자식들에게 어떤 민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쿨한 부부, 늙은 아내를 처음부터 지금껏 ‘은경아’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저 남자, 정말 제대로 노후를 충만되게 사는 듯했다.
십수년 전, 서울에 살 때 집주변에 심어놓은 나무의 이름이 ‘000 벚나무’. 모친 장례식때 남은 부의금으로 나무를 사 어머니 이름으로 심어놓았다. 여지껏 살고 있는 동네 주민들이 모처럼 방문한 그들을 반기며 그 재미나던 젊은 시절을 회억한다. 굵어진 그 나무는 이제 곧 몇 천개도 더 될 벚꽃을 흐드러지게 피여날 것이다. 주민들은 그들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멋지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수년 내에 소목장을 이끌어갈 후계자가 없어 쩔쩔매는 문제에 부닥칠 게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껏 인생길을 현명하게 헤쳐 나왔듯, 그들은 또 무슨 현명한 방법을 찾을 것이다. 무한한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화이팅이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