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올해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유명한 백석 시인이 탄생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시인과 시 연구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히는 백석. 백석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인생과 문학적 업적을 돌아보고 우리가 본받고 지켜가야 할 그의 문학관을 조명해보자.
파란만장했던 백석의 생애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백석. 그는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초반까지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탄압이 가장 심했던 시기에 백석은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만주로 유랑생활을 떠났다. 당대 시인으로는 드물게 그의 시에서는 친일시를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시대의 문화적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적인 작품활동을 펼친 백석의 사회에 대한 ‘소극적 저항’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백석은 광복 후 고향인 정주에 머물러 있던 재북(在北)시인이라는 이유로 분단과 함께 우리 문학사에서 잊혀갔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재북·월북문인들에 대한 해금조치를 계기로 백석에 관한 연구와 평가가 새롭게 이뤄지면서 백석과 그의 문학이 재조명받게 됐다. 불과 100여 편의 시를 남긴 데다 30년도 채 되지 않는 연구기간에도 불구하고 백석과 그의 시는 100년이라는 한 세기를 뛰어넘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전통을 노래한 백석 시
백석 시는 크게 유랑생활 속에서 고향에 대한 의식을 표현한 작품과 자신이 다녔던 곳곳의 정경을 묘사한 작품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고향의식을 드러내는 작품은 다시 백석의 유년시절, 고향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삶의 모습을 나타낸 작품과 그 고향을 상실하면서 생기는 그리움을 다룬 작품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는 일제 식민지체제 속에서도 가장 어두운 시기에 활동했던 그의, 전통을 회복하고 지키고자 했던 열망이 표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백석 시의 또다른 특징은 언어의 미적 활용이다. 그는 가혹한 시대상황 속에서 잊혀가는 전통적인 것들을 우리말, 특히 평북 방언과 토착어의 재발견을 통한 특유의 미학으로 일구어냄으로써 전통상실의 위기에 대응했다. 백석은 주로 일상생활 모습을 소재로 삼았기 때문에 그의 시에는 일상의 사물이나 의·식·주와 관련한 용어, 동·식물 등이 많이 등장한다. 특이한 점은 단순히 사물을 포괄적인 명칭으로 호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을 지칭하는 세부적인 고유명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집의 구조를 나타내는 시어는 60개가 넘고 동·식물명도 그 개수를 따지면 각각 90개, 140개가 넘는다. 특히 귀이리차, 도토리범벅, 제비꼬리 등 음식의 종류를 표현하는 시어는 170여 개에 달한다. 이처럼 다양한 토착시어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그 말이 담고 있는 한국적인 정서와 전통적인 삶의 풍경을 떠올리는 것, 그것이 바로 백석 시가 지닌 매력이다. 외면받고 잊혀가던 사물들이 백석 시 안에서 다시금 본연의 이름을 되찾게 되면서 우리말은 더욱 아름다워지고 시를 읽는 우리는 그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소소하고 은은하지만 깊은 여운과 미감을 선사하는 백석 시. 이것이 백석 시가 시대를 막론하고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민족시비공원에 있는 <모닥불>이 새겨진 비석
백석, 그리고 백석 시의 가치
백석과 그의 시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심도있게 진행되어 왔고 앞으로의 새로운 연구 가능성 역시 크게 열려 있다. 그만큼 백석이라는 시인의 생애와 그의 문학적 토양은 의미를 발견해내고 그 가치를 이어가기에 충분하다. 국민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황광수 교수는 “백석은 절망적인 시대상황 속에서도 뚜렷한 자의식을 지닌 채 작품활동을 했다. 그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 삶의 양식을 구체적 광경으로 떠올리면서 일제의 언어 동화정책에 저항했다는 점에서 시의 정치성이 무엇인지 뚜렷이 보여줬다”며 “백석은 국토와 주권을 상실한 조건 속에서도 언어와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한 삶의 뿌리까지 식민지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나간 시인이다”고 백석과 백석 시가 지닌 현재적 가치를 설명했다.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안겨주는 백석.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지난 3일 열렸던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심포지엄>을 시작으로 다가올 6월에는 서울여자대학교에서 학술대회, 9월에는 통인미술관 등에서 백석 시를 미술로서 형상화한 문학그림전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애정 어린 관심과 참여를 통해 백석이 남긴 문학적 자산을 돌아보고 뜻깊은 의미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그를, 그의 시를 기억하는 한 백석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