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이틀 전, 갑자기 견진성사를 받은 기록과 당시에 촬영한 기념사진을 확인하고 싶은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궁금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규명하려는 경향이 강한 편인데 얼마전,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하여 절두산 성당에 최초로 다닌 때가 1979년 3월 4일이었다는 것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영세는 이미 소개한 바와 같이 1980년 5월 24일 오후 3시 절두산 성당에서 토마스
모어라는 세례명으로 하였습니다.
토마스 모어경은 영국 헨리8세 시대의 대법관으로서 특히 신앙심이 깊은 평신도로
유명한 분이며, 또한 불후의 명작인 "유토피아"를 저술한 학자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토마스 모어경이 헨리8세가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고 시녀인 앤블린과
혼인하는 것에 결사적으로 반대하다가 결국 런던탑에서 장렬하게 순교하셨는데
이러한 분을 주보성인으로 모실 수 있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견진성사는 1982년 4월 25일 명동성당에서 당시 서울대교구 총대리이셨던 경갑룡
주교님의 집전으로 받았습니다.
제가 원래 숫자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편인데 어느 덧 3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이 날이 바로 성 마르코 사도의 축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명확히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금요일에 명동 성당으로 전화하여 견진성사 기록과 기념 사진을 확인하고 싶다고
문의드렸는데 자매님께서 친절하게 설명하여 주시면서 확인을 하여 연락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자매님의 말씀에 따르면 2001년부터 견진성사 받은 교우님들의 기록이 전산화되었으나
그 이전의 기록은 수기대장에 기재되어 있다는 설명을 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해 찾는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양해하여 주셔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그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와 더불어 기록과 함께 당시 촬영된 사진도 소장되어 있는지 확인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런 통화를 한 이후 놀랍게도 그 다음날에 명동성당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사실 저로서는 주말이기에 연락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상외로 주말에
연락이 와서 그 정성에 감명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토요일에 전화주신 자매님은 금요일에 통화한 분과 다른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자매님 또한 친절하게 설명을 하여 주셨습니다.
답변 내용은 제가 기억하고 있는대로 명동성당에서 1982년 4월 25일 견진성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사진은 소장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사실 저로서는 당시에 제가 어떤 모습으로 촬영되었는지 그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는데
답변을 들으면서 사진을 구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거슬러 올라가서 1982년은 제가 대신학교에 입학한 해로서 영세한지 3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학생으로 1년간 통학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자유롭게 견진성사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1년간 일반학생으로 다니다가 2학년부터 정식으로 교구 신학생으로 기숙사 생활을
3년 하였는데 그 이후의 상황은 이미 칼럼을 통하여 소개하였기에 생략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견진성사 때 경갑룡 주교님을 비롯하여 함께 받았던 교우님들과 촬영한 사진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게 생각되나 그래도 38년전인 1982년 4월 25일 명동성당에서
견진성사를 받았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을 보람있게 생각합니다.감사합니다.
2018년 10월 21일(일) 박관우(토마스 모어) 역사작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