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잘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많은 교육으로 성인이 되어 쉽게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지요. 그런데 참 안타까운 것은 지식의 성장에는 온 힘을 기울이면서도 영적 성장에는 외면하는 부모가 많다는 것입니다. 항상 하시는 말씀은 “지금은 공부 때문에 성당 다니기 힘들지만, 어렸을 때 복사도 했으니, 성인이 되면 열심히 나갈 것입니다.”, “자녀의 종교 자유도 존중해 줘야죠.”라고 하십니다. 좋은 것이라면 아이가 싫다고 해도 챙겨주는 것이 부모 아닐까요? 그렇다면 신앙을 좋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자신의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 현대인이 죽음의 문화 속에 살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숫자가 늘어나고, 생명을 존중하지 못하는 많은 모습에서 죽음의 문화는 그 세력을 더 넓혔음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생명의 복음을 주신 것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당신 스스로 죄와 죽음을 정복하시고, 풍성한 삶을 위해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시지 않았습니까? 문제는 죽음의 문화 속에서만 있으면 생명의 복음을 지루하고 오래된 쓸데없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학협회의 정식의학회지에 발표된 연구가 인상적입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종교의식에 참석하는 미국인의 경우 자살할 확률이 5배 이상 낮다는 것입니다. 또한 각종 연구에서도 정기적으로 교회나 회당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살할 성향이 적다는 발표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영적 성장이 곧 생명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적 성장만 무조건 ‘OK’를 외쳤던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십니다. 그 기도의 대상은 바로 주님을 믿는 이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이 믿는 이들이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를 이루면, 아버지의 사랑을 매 순간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으며, 어렵고 힘든 세상 안에서도 희망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앞서 이야기했던 영적 성장을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
분명히 훨씬 더 큰 기쁨 속에서 살 수 있는데도, 세상의 풍요로움과 안락함만을 추구합니다. 참 생명을 얻기 위한 삶이 아닌 겉으로만 보기 좋은 것만을 향해 나아가는 삶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되어서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기에,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의 뜻 안에 머물러야 할 것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무엇을 따라야 할까요?
오늘의 명언: 때때로 우리가 작고 미미한 방식으로 베푼 관대함이 누군가의 인생을 영원히 바꿔놓을 수 있다(마가릿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