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장 좋아하는 야구선수. 정민철 선수가 최연소 최소경기 2천이닝을 달성했습니다.
최근 최고구속 130KM 를 갓 넘기는 투수, 5이닝 짜리 투수라는 비아냥도 있지만, 제 마음속의
영원한 에이스, 90년대 최고투수는 정민철 입니다. 오늘 9회말 2사후에 있었던 오심 논란에
그의 성과가 묻혀버린게 너무 아쉽네요.
감독 코멘트
한화 김인식감독=(9회말 김인철이 홈에서 아웃판정을 받은 심판오심에 대해)왜 그 심판만 못보느냐고. 심판이라면 그 정도는 봐줘야 하는 것 아니냐. 태그도 안됐고 포수가 공을 잡았을때 이미 주자가 들어왔잖아. 포수 뒤에 선 심판 위치도 잘못됐고. (오심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겠냐고 하자)무슨 방법이 있어?
1992년 한화의 전신인 빙그레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입문한 정민철은 부상으로 단 1승도 못올리며 54이닝 투구에 그친 2004년을 제외하고는 4차례 200이닝 투구를 포함해 매 시즌 110이닝 이상을 던져 14시즌 만에 2천 이닝을 달성했다. 2000이닝 투구는 200이닝을 10년간 던져야 달성할 수 있는 대기록.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송진우(한화), 이강철(전 KIA), 한용덕(전 한화) 3명만이 달성했을 정도로 꾸준함과 실력이 동반돼야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다.
정민철은 또 통산 139승으로 송진우(196승)와 이강철(152승), 선동열(삼성 감독.146승)에 이어 이 부문 4위에 올라 있다.
첫댓글 조삼모사 캐동감
98년 부상을 안고 등판한 이후 정민철의 전성기는 사실상 무너진 겁니다. 전반기 부상1승 후반기만 9승이었던가요?그 이후 정민철의 150에 육박하던 직구는 사라져버렸죠... 승운이 따르던 99년18승을하여 다승 2위를 차지하고 한국시리즈 2승등 우승을 차지하였지만 99년 이후의 정민철은 정민철이 아니었죠. 요미우리에서도 슈퍼게임에서 활약했던 정민철의 모습을 기대한 것이었는데 00년부터는 145가 벅찼습니다... 슬픈 현실이죠... 시애틀에서도 지겹도록 관심보였던 정민철선순데... 92년의 포스는 지금 류현진 못지 않았습니다. 닥터k 정민철 두번다시 볼수 없는 스타일로 변화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네요. 어찌돼었건 화이팅입니다
공익근무로 생활하며, 대전 홈경기에만 출전했음에도 엄청난 기록을 보여주기도 했었죠... 99년에 개인통산 최다승을 거두긴 했지만, bACE 님 말대로 구위는 떨어졌구요. 선발투수로서는 다승왕만 제외하고 모든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죠.
저 팀덩컨님 공익근무로 생활하며 <-------이부분이 이해가 안가는데요 정민철선수 공익근무하면서 뛰었나요? 그게 가능한가요??
정민철 선수는 모르겠지만 과거 공익근무로 뛰면서 엽기적인 성적을 거둔 선수 2명이 있죠. 해태의 이종범과 이대진. 당시 홈경기밖에는 나오지 못했지만 이종범은 연속안타 신기록을 세웠고 이대진은 시즌 중반까지 승률 1위를 질주했죠. 막판 이상훈의 20승5패에 밀려서 2위했지만 두자리 승수를 거두었습니다. 아 글고보니 저 둘은 당시 공익근무라고 부르기보다는 방위라고 불렀네요.
93년에 정확히 말하면 방위로 근무하며 홈경기에만 출전했습니다. 당시에는 그게 허용됐거든요. 18경기에 출전해서 13승 3패. 승률왕까지 거머줬던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평균투구이닝이 8이닝이 넘으니까 거의 매경기 완투했다고도 볼수 있겠죠...
오늘 경기.....짜증 지대로다~(봉선버젼ㅋ)
예전에는 방위로 군대를 가게되면 홈경기는 출전이 가능했습니다 아마 그것도 야간게임이던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선수들의 감각유지를 위해 홈게임은 출전 시켜줬었죠.
양준혁도 데뷔년도인가? 다음년도인가 그랬었는데..저런선수가 원정때도 따라다니면서 쳐주면 상대팀 무섭겠다는 라디오중계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신인이라는 뉘앙스긴 한데 홈경기만 가지고 신인왕을 받았을것 같진 않은데 자세히 아시는분 계신가요?
90년대 영원한 에이스... 가슴이 찡합니다 ㅠㅠ 진짜 정민철 최고 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