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께서 말씀하신 진정한 상가의 의미
이번 법문에서 큰스님께서는 상가(僧伽)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상가라고 하면 출가한 스님들의 공동체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큰스님께서는 이날 상가를 훨씬 넓고 본질적인 의미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상가예요.”
그리고 법문을 마치면서도 다시 강조하셨습니다.
“상가는 우리들이 수행하는 공동체 전체를 상가라고 그래요. 스님이 아니라.”
그렇다면 절에 다니고 법회에 참석하면 모두 상가가 되는 것일까요.
큰스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상가를 상가답게 만드는 것은 ‘모여 있음’이 아니라 ‘함께 수행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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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는 수행하는 단체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상가의 성격을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상가는 수행하는 단체입니다.”
그리고 더욱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수행하지 않는 상가는 없습니다.”
“수행하지 않는 상가는 상가의 일원이 될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수행을 강조하셨을까요.
큰스님께서는 상가를 군대에 비유하셨습니다.
군인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평소에도 끊임없이 훈련합니다.
전쟁이 일어난 다음에야 훈련을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상가는 무엇을 위해 훈련하는 사람들일까요.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상가는 생사의 마군으로부터 중생을 지켜내는 군대란 말이에요.”
세속의 군대가 나라와 사람을 지킨다면,
상가는 수행을 통해 생사의 고통에 빠져 있는 중생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하지 않는 상가는 있을 수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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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을 많이 아는 것과 금강경의 뜻을 아는 것은 다릅니다
큰스님께서는 이 대목에서 금강경을 깊이 공부한 것으로 알려진 한 사람의 이야기를 예로 드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누구인가가 아닙니다.
큰스님께서 그 사례를 통해 무엇을 경계하셨는가입니다.
『금강경』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무릇 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며, 모든 상을 상 아닌 것으로 볼 수 있다면 곧 여래를 본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큰스님께서는 금강경을 많이 공부하고 잘 안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기도를 부탁하고 연등을 다는 모습을 사례로 드셨습니다.
큰스님께서 경계하신 것은 단순히 연등을 다느냐, 기도를 하느냐라는 외형적인 문제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금강경의 깊은 뜻을 공부하면서도 여전히 무엇인가를 붙잡고 그것을 얻기 위해 부처님께 매달린다면,
경전을 아는 것과 그 경전이 가리키는 뜻을 실제로 아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금강경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통해 내가 붙잡고 있는 상을 실제로 내려놓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불교는 아는 데서 끝나는 공부가 아니라 수행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큰스님께서 이 사례를 통해 강조하신 취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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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불교를 공부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여기서 법문은 자연스럽게 상가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불교를 많이 공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경전을 읽고 이해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적인 지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혼자 불교를 알고 공부하는 데 머무는 것에 대해 상당히 강한 표현도 사용하셨습니다.
“취미로 불교를 보는 사람”이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그만큼 큰스님께서는 불교를 지식이 아니라 수행의 문제로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수행은 혼자서 완성하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혼자서는 절대로 못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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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혼자서는 못 가는가
큰스님께서는 거센 물살을 건너는 모습을 예로 드셨습니다.
물이 세차게 흐를 때 한 사람이 혼자 건너려고 하면 쉽게 휩쓸립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서로 어깨를 붙이고 힘을 합치면 훨씬 강한 물살도 버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건너야 하는 것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바로 생사의 거센 흐름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흐름을 건너기 위해 모였습니다.
어떻게 건널 것인지 배우고,
수행을 통해 힘을 기르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보태면서 함께 건너가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그것이 상가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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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힘들면 포기할 수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남방불교의 수행공동체를 예로 들어 이 점을 설명하셨습니다.
혼자 수행하면 배가 고플 때 포기하기 쉽습니다.
몸이 힘들면 쉬고 싶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면 수행을 그만두고 싶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옆을 보면 나와 똑같이 힘든 사람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나만 배고픈 것이 아닙니다.
나만 힘든 것도 아닙니다.
옆 사람도 힘들지만 참고 수행합니다.
그러면 나 역시 다시 힘을 냅니다.
저 사람도 하는데 나도 해야겠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수행을 이어가는 것.
큰스님께서는 그것이 상가 공동체의 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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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 하나는 쉽게 꺾이지만
큰스님께서는 또 하나의 쉬운 비유를 드셨습니다.
화살 하나는 쉽게 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개를 한꺼번에 묶어놓으면 쉽게 꺾이지 않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의 힘은 약합니다.
혼자 수행하면 쉽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뭉치면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상가는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닙니다.
생사의 거센 흐름을 건너기 위해 서로의 힘을 보태는 수행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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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지불은 왜 ‘침묵의 부처’인가
큰스님께서는 이어서 벽지불(辟支佛)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스스로 수행하여 깨달음을 이루었지만 적극적으로 설법하거나 상가를 이루지 않는 존재를 말씀하시면서, 이를 ‘침묵의 부처’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으신 뒤 그 깨달음을 혼자 간직하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법을 설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상가가 이루어졌습니다.
큰스님께서 벽지불 이야기를 꺼내신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수행은 나 혼자 깨닫고 나 혼자 벗어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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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과 나는 한 몸”
큰스님께서는 이 대목에서
“중생과 나는 한 몸”
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진여의 세계를 배운 사람이라면 나와 중생을 완전히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수행이 아니라,
내가 먼저 수행하고,
옆 사람이 쓰러지면 붙잡아주고,
서로 힘을 보태 함께 건너가야 합니다.
그래서 상가는 나의 수행을 도와주는 곳인 동시에,
그 수행의 힘으로 다른 중생을 살리는 곳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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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는 중생을 살리는 ‘구세군’이어야 합니다
법문 앞부분에서 큰스님께서는 상가를 군대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기독교의 구세군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구세군은 이름 그대로 사람을 구하는 군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큰스님께서는 불교의 상가 역시 자신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세속의 군대가 나라를 지킨다면,
상가는 무엇을 지켜야 할까요.
큰스님의 표현을 따르면,
생사의 마군으로부터 중생을 지켜내야 합니다.
그래서 이날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상가의 역할은 단순히 함께 수행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함께 수행하여 힘을 만들고, 그 힘으로 중생을 살리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가는 진정한 ‘구세군’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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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모이는 것만으로 상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문을 마치면서 큰스님께서는 다시 처음의 문제로 돌아오셨습니다.
“상가는 우리들이 수행하는 공동체 전체를 상가라고 그래요. 스님이 아니라.”
상가는 스님들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모두 자동으로 상가라고 부르는 것도 큰스님께서 이날 말씀하신 상가의 본뜻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수행해야 합니다.
혼자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혼자만 잘되기를 바라서도 안 됩니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서로 힘을 보태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수행의 힘은 결국 고통받는 중생을 향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법문에서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상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가는 함께 수행하여 생사의 거센 물결을 건너고, 그 힘으로 중생까지 살리는 수행공동체입니다.
절에 얼마나 오래 다녔는가보다,
불교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보다,
어쩌면 우리에게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금 상가의 일원으로서 수행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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