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멸망의 책임을 보통 대원군하고 마지막 왕 고종에게 묻는게 보통인데 사실 조선 후기로 오면 왕에게 책임을 지우기엔 왕권이 너무나 약했다고 봅니다. 오히려 이덕일씨 지적처럼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왕을 독살하고 인조같이 다루기 쉽고 무능한 왕 앉혀서 병자호란을 불러일으키고 소현세자 효종등 유능한 왕들이 나올려고 해도 자신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 싹을 잘라버리는 노론 세력들이 책임자가 아닐까요? 뭐 그런 권문세족을 누르지 못한 것을 조선왕들의 무능이라고 비난해도 되겠지만 1차적인 책임은 어디까지나 사대부들 중 서인들과 그 계파에 있다고 봐야겠죠.
조선 멸망은 또 군사기술을 포함한 서양문물의 우위에서 찾기도 하지만 대원군때 비교적 소규모지만 여러차례에 걸쳐 서양인들의 무력시위를 격퇴시킨 사례도 있고 내부 개혁으로 민중의 지지를 받는 정권이 들어섰다면 이도 충분히 극복될 수 있었던 문제라고 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 그들-친일파의 잔재가 남아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대원군과 고종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터키야 말로 그나마 독립국 행세를 할 수 있었죠. 그들은 전통적으로 유럽과 대립관계였고, 한때 압도한적도 있었으니.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계속 뒤쳐지다가 나중에 1차대전 때 캐발살, 줄을 잘못 섰지요. 조선이 식민화를 피할 방법은 적어도 1750~1850년대에 꾸준히 실질적인 발전을 했어야 합니다. 19세기 말에 와서는 누가 정치를 뭐 어떻게 한다고 조선의 국력이 나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조선의 명말에는 개개인 누군가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조선사회 전체의 책임이 크다고 볼 수 있죠. 고종, 대원군만의 잘 못이 아니라 조선사회 전체가 너무 오래 고립되어있다보니 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못 하고 있던거죠. 조선사회가 걸었던 고립의 길이 가장 큰 책임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고종의 시기에는 어짜피 누구한테 나라를 맡겨야 손해를 덜 보느냐가 관건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조선이 망한 이유에 정치는 별 상관도 없다고 봅니다. 설령 세종대왕이 당시 구한말의 조선을 통치했다고 해도 마찬가지 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천년동안의 중국이라는 대국에 눌려살면서 사대가 골수에 사무쳐서 국제사회의 흐름에 무지했다는점. 그리고 둘째는 너무 가난했다는 점입니다. 일본과 달리 조선은 당시 아무리 발버둥쳐도 명치유신같은 것을 단행할 만한 경제력이 없었습니다.
이웃은 둘뿐인데 그 둘이 너무 셌다는 점. 그리고 작고 가난했다는 점. 그것이 이천년간 약소국으로 살아온 한반도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망국의 책임을 조상에게 돌리고 싶지도 탓하고 싶지 않군요. 지금 한반도가 이만큼 살게 된것은 미국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국이 개입하여 시대적인 흐름과 천운,노력에 의해 이만큼 부강해졌으니 참 다행이죠.
전 조선이 망한 이유 따위 보다는 어찌하여 조선이 500년 씩이나 버틸 수 있었나 이게 더 미스테리 입니다. 임란 호란을 겪고 세도 정치를 거칠때 까지 왜 내부 혁신 세력에 의해 새로이 개국되지 못한게 특이하죠. 향촌장악력이 바닥인 조선의 정치시스템이 그렇게 우수한 것이었을까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향촌장악력으로만 따지자면 조선을 능가할만한 국가는 별로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조선에서도 여러 반란이 있었겠지만, 이괄의 난같은 지도부 내부에서 일어난 것을 제외하고, 향촌 세력에 의해 일어난 반란 중 주목할만한 것은 이시애의 난과 홍경래의 난입니다. 그러나 이시애의 난은 조선의 향촌 통치 시스템이 완전히 적용되지 못하고 과도기적이던 함경도에서 그에 반발해서 일어난 것이고, 홍경래의 난은 조선의 통치 시스템이 붕괴되어가는 즈음에 나타난 것입니다. 즉, 조선의 통치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던 시점에서 주목할만한 향촌 세력의 반란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조선은 교묘하게 중앙의 권력은 중앙과 일부 가문들이 독점하는 한편, 재지사족들에게 나름대로의 특권(군역과 약간의 자치권)을 보장해주면서 재지사족들을 조정에 충성하게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방의 사적 군사력을 철저히 부정했습니다. 이시애의 난이 가능했던 것도, 함경도는 특별히 토호 세력이 발전해서 사적 군사력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하면서 조선은 근대 이전 국가로서는 상당한 중앙집권적 체제를 갖췄고, 이런 시스템은 적어도 일본이나 중국처럼 지방 세력이 강력하게 중앙 정권에 대항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조선의 정치 시스템의 향촌 장악력이 낮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저도 조선이 그렇게 오래 유지된것이 불가사의 하긴 합니다. 저는 우리의 근대화가 실패한 이유를 하드웨어적인 면보단 소프트웨어적인 면이라고 보여 집니다. 하드웨어적인면에선 분명 상당한 진전이 잇었던것도 사실입니다. 도시정비라던가 군대의 현대화도 상당히 성과도 잇었습니다. 경제적인면도 그렇게 열악한 것도 아닙니다. 자료들 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아시아권에선 몇손가락에 들정도의 수준은 되었습니다. 특히 상류층들의 사치는 주한 외국인들이 혀를 내두를정도였습니다. 근대 문제는 시스템적인 면으로 들어가면 개판이 되어버립니다.
개화기 쯤의 조선의 실정은 고종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외척인 민씨 문중 사람들을 실력도 경험도 없는데도 측근이라는 이유로 중책에 섰기 때문에 구한말 엄청난 실정을 거듭하게 되죠. 고종때 외무부인 통리외무아문의 수장은 민영익인데, 당시 20살이었죠..-_-;; (20살 젊은이가 나이먹고 노련한 외국외교관을 상대할 수 있을리 없죠.)
글쎄요. 임진왜란 당시에서도 조선의 향촌 장악력은, 군주가 저 멀리 쫓겨가는 시점에서도 분명히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근왕의병들이 일어날 정도로요. 물론 양반들이 지역에서의 자기 기반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 영향력을 인정해주는 대가로 재지사족을 조선에 충성하게 만든 쪽도 조정입니다. 아직 사회 내부에서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는데 개념잡힌 개인이 들고 일어나서 틀을 부순다는 것도 무리인 일이고, 가능할지라도 확 바꾸려면 이를 대신할만한 대안 세력이 있어야 했는데 이것도 없었습니다. 흔히들 이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외로운 사람들에게 한 마디가 붙지요.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
저도 게볼공과 의견이 같습니다. 임란 이후 비슷한 시기에 새로 들어선 청조나 베트남의 응우옌 왕조는 새로운 왕조였습니다만은, 둘다 서구 열강에게 털린건 조선이나 매한가지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선다 하더라도 뭔가 획기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똑같습니다. 이순신은 게다가 전통 마인드의 철저한 수호자였는데(명량해전에서 올린 글을 보세요)그 사람이 새 왕조를 세웠다 하더라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겁니다.
첫댓글 당파싸움, 쇄국정책 ㄳㄳ.
유교 신봉을 너무 과하게 했고...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당파싸움하고 서로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난.... 외침을 막을수있어도 안에서 썩는 건 못 막는다... 라는 말이 있죠. 결국 자멸한거죠 뭐.
이덕일씨에 따르면 한일합방후 독립운동에 나선 소론 남인 계열 양반들이 상하이로 망명했을 때 이런 말들을 나누었다더군요 "나라는 노론이 다 망쳤고, 우리는 권력의 곁불도 쬔 적이 없는데 고생은 우리가 다 한다."
약육강식이 곧 진리였던 시대에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 중 실질적인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나라는 태국과 일본 정도 뿐입니다. 너무 비하하지는 맙시다.
태국도 국력이 세서 무사히 넘겼다기 보다는;; 동남아의 기득권 싸움에 지친 영-프가 중립지역을 설치한 덕분에 가깝죠...(맞나??;; 틀려도 대충;;)
태국보다는 터키가 더 독립국다운 독립국이 아니었을까요?
터키야 말로 그나마 독립국 행세를 할 수 있었죠. 그들은 전통적으로 유럽과 대립관계였고, 한때 압도한적도 있었으니.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계속 뒤쳐지다가 나중에 1차대전 때 캐발살, 줄을 잘못 섰지요. 조선이 식민화를 피할 방법은 적어도 1750~1850년대에 꾸준히 실질적인 발전을 했어야 합니다. 19세기 말에 와서는 누가 정치를 뭐 어떻게 한다고 조선의 국력이 나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조선의 명말에는 개개인 누군가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조선사회 전체의 책임이 크다고 볼 수 있죠. 고종, 대원군만의 잘 못이 아니라 조선사회 전체가 너무 오래 고립되어있다보니 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못 하고 있던거죠. 조선사회가 걸었던 고립의 길이 가장 큰 책임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고종의 시기에는 어짜피 누구한테 나라를 맡겨야 손해를 덜 보느냐가 관건이 아니었을까요
권리과 권한을 누린 계층의 책임이 아무래도 크죠. 권력 주변은 결정권이 없으니
저는 개인적으로 조선이 망한 이유에 정치는 별 상관도 없다고 봅니다. 설령 세종대왕이 당시 구한말의 조선을 통치했다고 해도 마찬가지 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천년동안의 중국이라는 대국에 눌려살면서 사대가 골수에 사무쳐서 국제사회의 흐름에 무지했다는점. 그리고 둘째는 너무 가난했다는 점입니다. 일본과 달리 조선은 당시 아무리 발버둥쳐도 명치유신같은 것을 단행할 만한 경제력이 없었습니다.
이웃은 둘뿐인데 그 둘이 너무 셌다는 점. 그리고 작고 가난했다는 점. 그것이 이천년간 약소국으로 살아온 한반도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망국의 책임을 조상에게 돌리고 싶지도 탓하고 싶지 않군요. 지금 한반도가 이만큼 살게 된것은 미국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국이 개입하여 시대적인 흐름과 천운,노력에 의해 이만큼 부강해졌으니 참 다행이죠.
전 조선이 망한 이유 따위 보다는 어찌하여 조선이 500년 씩이나 버틸 수 있었나 이게 더 미스테리 입니다. 임란 호란을 겪고 세도 정치를 거칠때 까지 왜 내부 혁신 세력에 의해 새로이 개국되지 못한게 특이하죠. 향촌장악력이 바닥인 조선의 정치시스템이 그렇게 우수한 것이었을까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향촌장악력으로만 따지자면 조선을 능가할만한 국가는 별로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조선에서도 여러 반란이 있었겠지만, 이괄의 난같은 지도부 내부에서 일어난 것을 제외하고, 향촌 세력에 의해 일어난 반란 중 주목할만한 것은 이시애의 난과 홍경래의 난입니다. 그러나 이시애의 난은 조선의 향촌 통치 시스템이 완전히 적용되지 못하고 과도기적이던 함경도에서 그에 반발해서 일어난 것이고, 홍경래의 난은 조선의 통치 시스템이 붕괴되어가는 즈음에 나타난 것입니다. 즉, 조선의 통치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던 시점에서 주목할만한 향촌 세력의 반란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조선은 교묘하게 중앙의 권력은 중앙과 일부 가문들이 독점하는 한편, 재지사족들에게 나름대로의 특권(군역과 약간의 자치권)을 보장해주면서 재지사족들을 조정에 충성하게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방의 사적 군사력을 철저히 부정했습니다. 이시애의 난이 가능했던 것도, 함경도는 특별히 토호 세력이 발전해서 사적 군사력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하면서 조선은 근대 이전 국가로서는 상당한 중앙집권적 체제를 갖췄고, 이런 시스템은 적어도 일본이나 중국처럼 지방 세력이 강력하게 중앙 정권에 대항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조선의 정치 시스템의 향촌 장악력이 낮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저도 조선이 그렇게 오래 유지된것이 불가사의 하긴 합니다. 저는 우리의 근대화가 실패한 이유를 하드웨어적인 면보단 소프트웨어적인 면이라고 보여 집니다. 하드웨어적인면에선 분명 상당한 진전이 잇었던것도 사실입니다. 도시정비라던가 군대의 현대화도 상당히 성과도 잇었습니다. 경제적인면도 그렇게 열악한 것도 아닙니다. 자료들 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아시아권에선 몇손가락에 들정도의 수준은 되었습니다. 특히 상류층들의 사치는 주한 외국인들이 혀를 내두를정도였습니다. 근대 문제는 시스템적인 면으로 들어가면 개판이 되어버립니다.
개화이후 근 30년 간의 세월을 허송세월했다는 생각이 ....... 개혁은 개혁대로 다 실페하고 ............
개화기 쯤의 조선의 실정은 고종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외척인 민씨 문중 사람들을 실력도 경험도 없는데도 측근이라는 이유로 중책에 섰기 때문에 구한말 엄청난 실정을 거듭하게 되죠. 고종때 외무부인 통리외무아문의 수장은 민영익인데, 당시 20살이었죠..-_-;; (20살 젊은이가 나이먹고 노련한 외국외교관을 상대할 수 있을리 없죠.)
임진왜란때 정권교체 따위..이런거 말고..새로운 왕조가 들어섰어야 했습니다..이순신 같은 독보적이고 제대로 개념박힌 인물..이 싸악 휘어잡고..다 뜯어고치진 못해도..뭔가 획기적인 변화를 맞았어야 했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임진왜란 당시에서도 조선의 향촌 장악력은, 군주가 저 멀리 쫓겨가는 시점에서도 분명히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근왕의병들이 일어날 정도로요. 물론 양반들이 지역에서의 자기 기반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 영향력을 인정해주는 대가로 재지사족을 조선에 충성하게 만든 쪽도 조정입니다. 아직 사회 내부에서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는데 개념잡힌 개인이 들고 일어나서 틀을 부순다는 것도 무리인 일이고, 가능할지라도 확 바꾸려면 이를 대신할만한 대안 세력이 있어야 했는데 이것도 없었습니다. 흔히들 이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외로운 사람들에게 한 마디가 붙지요.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
저도 게볼공과 의견이 같습니다. 임란 이후 비슷한 시기에 새로 들어선 청조나 베트남의 응우옌 왕조는 새로운 왕조였습니다만은, 둘다 서구 열강에게 털린건 조선이나 매한가지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선다 하더라도 뭔가 획기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똑같습니다. 이순신은 게다가 전통 마인드의 철저한 수호자였는데(명량해전에서 올린 글을 보세요)그 사람이 새 왕조를 세웠다 하더라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겁니다.
외척때문이라면 60년간 세도정치로 조선을 주물렀던 안동김씨가 그 원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선멸망의 외척책임론을 말하는 분들이 안동김씨를 언급하지 않는게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