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억원짜리 연구 장비를 선물용 참기름 수천 병을 짜는 데
쓴 지방자치단체 산하 연구기관장이 경찰에 적발됐다.
전남도 산하 출연기관인 전남생물산업진흥원 나노바이오 연구원의 이모 전 원장은
지난해까지 4년간 '초임계추출기'라는 연구 장비를 이용해 참기름을 짜서 지역 국회의원과
전남도청 간부 등에게 명절때 선물로 보냈다고 힌다.
초임계추출기는 물질에서 필요한 요소만 뽑아내는 장치다.
연구 개발이 필요한 중소기업들에 빌려주기 위해 연구원이 2009년 25억원 들여 도입했다.
이 전 원장의 지시로 25억원짜리 연구장비가 참기름 생산기게로 변질됐으니 이런 코메디도 없다.
참기름을 짜는 작업에는 원장과 팀장, 연구원 등 전체 직원 25명 중 절반이 넘는 14명이 관여했다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나노바이오 참기름'을 만드는 '방앗간 연구원'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게다가 참기름 세트 제조 비용 6200만원은 에탄올 등 연구기자재를 사는 데 쓴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고 한다.
이 전 원장은 또 부하 직원한테서 활동비 명목으로 2100만원의 뇌물을 상납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전 원장 밑의 김모 팀장은 과학기자재를 독점 납품하게 해 주는 대가로 고등학교 동창인 업자 이모씨로부터
2200만원어치의 금품을 챙겼다.
연구원 직원들은 업자 이씨가 위조한 다른 업체의 비교견적서를 제출받아 정상적인 경쟁입찰이 이뤄질 수 없게 해서
이씨가 계약을 따낼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원장, 팀장, 직원까지 모두 한통속으로 '윗물에서 아랫물까지' 썩은 '비리 복마전'인 셈이다.
이 전 원장은 지난 1월 윤장현 광주시장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경찰수사가 시작돼자 4월 초에 그만뒀다.
이 전 원장처럼 기관장이 조직적인 범죄를 벌여도 돈을 댄 지자체가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지자체가 출자하거나 출연한 기관은 지난해 9월 기준 540개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예산 낭비도 심각하다.
전남도가 출자하거나 출연한 연구기관들은 지역 내에 관련 기업이 없어 쓸 수도 없는 고가 장비부터
덜컥 먼저 구입한 사례가 최근 드러났다.
1년 장비 사용률이 1%대에 불과한 것도 있다고 한다.
다른 지역의 연구기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지자체 출연 연구기관들을 전수조사를 해서라도 국민의 혈세가 한 푼이라도 허투루 쓰이지 않게 해야 한다.
20150501 서울신문 사설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