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속에 숨긴 동전
친구들 세 명과 함께 도서관에 갔던 딸 유빈이(13)는 돌아오는 길에 나쁜 언니들을 만나 돈을 빼앗겼다고 했습니다.
셋이 가진 돈이라곤 동전 몇 개뿐이었지만, 유빈이가 지갑을 열어보이자 버스카드를 보고는 그걸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그 언니들은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너희들 돈 있니?”하고 물었다는데, 생전 처음 그런 일을 당한 유빈이는 너무 무서워서 계속 울었다고 했습니다.
다리에 힘이 빠져 길가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왜 우느냐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주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있었던 친구들이 정신을 차리고 사정이야기를 했더니, 그 아주머니께서 돈 이천 원을 주면서, 때리지 않고 곱게 갔으니 다행이라고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잘 섬기는 성도님이 아니셨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 이천 원을 받아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또 다른 언니들이 오더니 “너희들 돈 있니?”하고 또 조용히 묻더랍니다. 이런 이런!! 그래서 그 중에 천원을 다시 또 상납(?)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날은 유빈이와 함께 심방하기로 약속한 가정이 있어서 우리가 먼저 도착하고 십여 분이 지났을 때 유빈이가 들어왔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시끌벅적 야단이 났을 터인데 아주 조신하게 들어오길래 조금 이상타 여겼습니다.
예배를 드린 후 저녁 먹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다른 방에 들어간 유빈이가 대성통곡을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놓고 유빈이 아빠는 “아~ 그런 일도 겪으면서 강하고 담대해지는 거야! 괜찮아”하고, 한편 다른 성도님들은 “아니 아니, 세상에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하고 마구 흥분들을 하고 험한 세상을 탓하는데, 유빈이는 “생각할수록 무서워서 눈물이 나지만, 엄마가 돈도 없는데 충전해준지 얼마 되지도 않은 버스표를 지혜롭게 행동했으면 뺏기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뺏긴 게 억울하다" 는, 참으로 살림꾼다운 말을 하는 바람에 그 와중에 폭소를 자아냈습니다.
엄마는 작은 새처럼 놀란 가슴이 파득파득 뛰는 유빈이를 안고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유빈이가 착한 딸로 자라줘서 고마워. 그 언니들에게도 엄마가 있을 것인데, 그 엄마들은 아마 자기 딸이 그런 행동을 하고 다니는 줄 꿈에도 모를 거야.
“사춘기가 되면 자기도 통제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되고, 어른들의 눈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그런 시기를 잘 참고 견디지 못하는 그 언니들이 참 안쓰러워.
“유빈이도 이상하게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폭발할 것처럼 감정 조절이 되지 않을 때가 오면 ‘아하! 이것이 사춘기라는 거로구나’하고 꾹 참고 기도하는 거야! 지금까진 유빈이가 바람직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서 엄마 맘이 너무 편하고 행복해.”
그리곤 흔들흔들 아기 요람 흔들듯이 흔들어주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금방 소리소리 지르며 웃고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주신 가정의 기업(基業)인 자식. 그 자식은 자라면서 험한 세상을 혼자서 헤쳐 나가야 합니다. 그 가는 길이 실은 혼자가 아니고, 주께서 언제나 그의 연약한 손을 붙드시고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지켜주시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일도 생깁니다. 주님이 곁에 계신데도 생깁니다. 주께서는 사랑하는 그 자식이 험한 일을 당하지 않게 기도하기보다는, 비록 그런 일을 당할지라도 주가 주시는 힘과 권세로 담대히 이겨 승리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고 계실 것입니다.
어제 오후, 새로 배정 받은 중학교에 처음으로 등교하여 배치고사를 보고 온 유빈이가 식탁에 앉아서 사방을 휘휘 둘러보더니 비밀스럽게 이럽니다.
"엄마, 내가 혼자서 곰곰 생각해서 고안해 낸 건데, 이렇게 하면 언니들이 돈을 못 찾겠지?"
그러면서 바지를 걷어 올리더니 양말 발목을 한 겹 접어서 고이고이 간직한 동전 세 개를 내 보였습니다.
하하하하~ 그래서 반쯤 넘어가면서 손뼉까지 치면서 감탄을 해줬습니다.
"어머어머, 넌 정말 천재야!!! 어떻게 그런 기발한 방도를?"
그나저나 이 일이 누설되면 큰일 나는데, 여러분, 비밀을 꼭 지켜주세요.
주부. 서울 노원구. 필명: 문인숙 / 출처 해와달 2008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