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정명 1260년 역사문화우표전시회
금년은 김포시기 생긴지가 1260년이 되는 해이다. 고구려 장수왕 시절 검포현으로 불리우다가 통일신라 757년 경덕왕 때에 김포현으로 불리운 것이 지금껏 바뀌지 않고 그대로 김포란 지명을 안고 1260년을 살아온 것이다.
이를 기념하고자 지난해부터 역사문화우표전시회를 김포시청, 김포문화원과 꾸준히 노력하여왔으나 우여곡절 끝에 한벗우취회의 주최로 개최하게 되었다. 여기엔 김포의 선후배님들의 뜨거운 후원과 성원이 있었음을 보고한다.
작품은 나 자신이 그동안 준비해온 역사에 관한 우취작품과 한벗우취회가 소유하고 있는 문화에 관한 작품으로 정하고 배달겨레의 대서사시, 김포정명 대 서사시, 가문의 서사시 이렇게 3종류의 병풍으로 전시장 분위기가 분명하다. 그리고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확대한 우표포스터가 한층 돋우고 카자흐스탄에서 발행한 단군주화가 금상첨화였음을 어찌 부인하랴
여기에다 김포 출신 우취인들의 작품과 창의도깨비미술학원생들의 김포역사문화를 그림으로 그려진 전시는 기막힌 신토불이문화를 창출하였음을 덧붙인다. 김포에는 딱이 내세울만한 역사문화가 빈약한 터에 학원생들의 참여가 결정적이었다. 김포찬가 시 한 수가 부채질 했으리라.
개막식은 심재경 가수의 노래와 사회로 낭랑한데 내빈 소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좌에서 우로 차레대로 자연스럽게 표현하였다. 커팅 인사도 격식에 억메이지 않고 무작위로 시켜서 촌스럽지만 오히려 아름다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즉석에서 한마다 씩 짧은 인사말이 축하한다는 인사치레가 아니고 교육적인 전시회였음을 강조하는 인사말씀 이였음을 자평한다. 어떤 분은 추가 경비를 모두 댈 터이니 연장하자 하고 또 어떤 분은 이 기막힌 전시를 학생들을 단체로 관람시키게 하였으면 좋겠단다. 한편에서는 양곡에 있는 독립기념관에다 상설전시 할 것을 제의하기도 하고, 예비군 지휘관들의 탐방으로 내가 왜 이 어려운 전시회를 자비를 들여가며 하게했는지의 물음표에 답을 얻는 귀중한 자리였다. 후원, 촌지, 화환도 모두 사절한 그야말로 누구나 부담없이 찾아와 역사의 향기에 공감할 수 있기를 바라는 전시회로 열고 싶었다. 사실 경비 관계로 3일간 잡은 게 후회막급이었다.
이뿐이랴 김포정명 휘호 8백장, 마음이 부자인 집 천여장, 나뭇잎 등 그 외 다수의 좋은 글로 관람객들에게 무료 증정하여 글씨의 잔치 분위기가 늦은 가을을 수놓게 되었다.
홍보가 빈약하여 매우 성대한 전시회는 아니었지만, 결코 전시회를 위한 전시회 즉 행사성의 전시회는 아니하겠다는 애초 마음먹은 바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매우 보람있고 유익한 전시회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역시 일반인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테마별 전시회가 유리함을 입증한 셈이다. 특히나 역사, 문화는 일반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어서 각 시, 군, 구청의 콜을 받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가 앞서는 바이다. 금번의 전시회로 관심을 보여준 지자체가 있어 곧 입증 되리라 믿는다. 물론 여기에는 신토불이 역사, 문화를 이끌어내어야 한다는 과제가 따를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과 윤봉길 의사의 丈夫出家生不還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그 뜻을 이룰 때까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비장한 글을 가슴 깊이 새기오며
한벗우취회 명예회장 남창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