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700쪽을 훨씬 넘는 롤스의 정의론이라니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리곤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책을 받은 지 한달이 지난 5월 독토 모임에서 만난 회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참석자들 숫자가 평소보다 줄지 않은 걸 보니. “독토의 출석율은 책 두께에 반비례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군요.
어려운 책들이 독토 밥상에 자주 올라오다보니 독토 회원들의 내공이 많이 다져진 탓일 거라는 분석, 독토가 아니라면 이런 책을 언제 한번 읽어보겠느냐는 갸륵한 생각이 책을 집어던지지 않은 이유라는 분석도 있네요.
롤스는 ‘무지의 장막’에 가려져 있는 ‘원초적 상황’에서 사람들이 선택하리라고 기대되는 정의의 원칙으로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지요.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한에서 가장 광범한 자유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제1원칙.
그리고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다음 두 조건을 만족시키도록 배정되어야 하는데
첫째- 최소수혜자에게 최대의 이득이 되고, 둘째-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에서 모두에게 개방된 직위와 직책이 결부되도록 하여야 한다.
는 제2원칙이지요.
공리주의가 대세를 이루던 시절, 자유의 원리, 차등의 원리에 따른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제시한 롤스의 정의론은 사회과학 내지 사회철학의 전 분야에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온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우리 회원들은 롤스의 정의론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롤스의 정의론이 이미 우리 사회의 정책 곳곳에 반영되고 있기에 참석자들 대댜수가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지만, 철저한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롤스와 상반된 주장을 편 로버트 노직의 정의론이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더 많았다는 분도 있었구요,
롤스의 다른 주장들은 공감이 되지만, 타고난 재능, 소질에 의한 유리한 여건들도 개인이 차지해야 할 도덕적 이유가 없으며 사회 전체의 공유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부분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같은 시대에 하버드에 함께 재직하면서 정의론에 관해 상반된 견해를 펼친 롤스와 로직, 두 천재의 대비되는 이론은 많은 흥미를 자아냈구요.
롤스나 로직 모두 공리주의를 비판했는데요,
공리주의가 반영된 정책의 대표적인 경우로 코로나 시기에 전 국민 백신 접종 정책 을 들 수 있는데, 사회 전체의 효용 극대화를 위해 백신을 원하지 않고 부작용을 겪는 개인의 권리 침해가 용인되는 경험을 했다는 모회원의 문제제기도 있었습니다.
과연 무지의 장막에 가려진채 원초적 상황에서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위험에 대한 안전판이 마련된 롤스의 주장대로 될까요? 어차피 한번 사는 세상, 인생은 배팅이니, 몰빵에 한표! 이런 분들이 혹 많진 않을까요?
이 책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최교수님 말에 의하면, 학생들 대다수가 위험 회피 차원에서 안전판이 마련된 결론에 표를 던진다네요.
이같은 원론에는 동의하는 듯 하지만, 반대로 요즘 젋은 세대들이 최소 수혜자에 대한 배려나 같은 민족이면서 빈곤에 시달리는 북한에 대한 원조 등에는 매우 부정적이라는 우려도 제기되었고요.
이같은 우려는 세대간 갈등, 젠더 갈등에 대한 논쟁으로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롤스는 책 153쪽에서, 천부적 능력, 타고난 재능이 부정의라 할 수는 없지만 이를 사회에 있어서 보다 유리한 출발지점으로 이용할 자격은 없으며, 이러한 우연성이 최소 수혜자의 선을 위해 적용될 수 있도록 기본 구조가 편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기자(記者)는 롤스 책 한권을 읽기도 턱밑까지 숨이 차는데 롤스와 로직까지 단번에 읽어내는 미친(!) 내공을 가진 분들을 바라볼 때 엄청난 좌절감을 느껴왔는데요... 이런 부정의가 있을 수 있는거냐고 씩씩거리면서요..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저같은 둔재도 입장료 없이 독토에 참석하여 미친 내공의 소유자들이 술술 풀어주시는 해설을 귀동냥 하기만 해도, 뻑뻑한 두뇌가 윤활유 칠을 한듯 스르르 돌아가니, 천부적 재능이 최소 수혜자의 선을 위해 이용되는 정의로운 사회 구조가 독토에서 잘 실현되고 있는 것 같네요.
다음달 책은 ‘법륜스님의 반야심경 강의’입니다.
득도의 세계로 입장할 수 있나 기대되네요.
참석: 강창* 김일* 박영* 박지* 심길* 윤봉* 이현* 정인* 최나*
* 부산독서아카데미는 매월 둘째주 화요일 독서토론회를 가지는 부산의 독서모임입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시는 분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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