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7:5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개역개정판)
누가 그걸 모를까?
6절 말씀도 안다.
잠언 27:6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개역개정판)
면책(免責)과 면책(面責)은 한자가 다른데
면할 면(免)자는 책임을 벗어난다는 뜻이고
얼굴 면(面)자는 얼굴을 보는데서 책망한다는 뜻이다.
누구나 책임을 면하고 싶어하지
보는데서 책망을 듣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잠언 묵상을 해도
책망을 받는 즉시 기분이 좋아진다면
영적으로 신령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건강검진을 앞두고
항상 긴장하지만
결과값이 최악은 아님에 안심하고
삶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건강검진은 집행유예나 다름없다.
자주 건강검진을 받는다고 해서
의사나 의료진이 나를 건강해주는 것이 아니다.
약만 의존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신 없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야쿠르트를 파시는 분이셨는데(지금도 계신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기분을 나쁘게 하는 묘한 재주가 있는 분이셨다.
본인은 숨기지도 않고 흡연을 하면서
남에게는 건강을 챙기라는 훈수를 늘어놓으니
영업이 잘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국야쿠르트, 아니 이제는 (주)에치와이 제품의 우수성과는 선호도와는 별개로
프레시 매니저들의 개인기는 본인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삼촌 살쪘어. 관리 좀 해!”
영업적으로나, 관계적으로나 도움이 안되는 말을 하면서도
그걸 영업전략이랍시고, 친하다는 착각 하에, 그것도 만날 때마다 한다면
누가 좋아할까?
계산도 자주 틀리는 분의 말씀, 아니 잔소리니 신뢰조차 가지 않는데...
그러나 그 말 자체는
나에게도
건강의 적신호가 오고 있다.
건강 관리를 해야하며
삶을 관리해야 한다는 우리 주님의 시그널일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그게 맞을 것이다.
지독하게 운동하지도, 살을 빼지도 않는 나에게, 우리에게
지속적인 경고의 멘트가 여러 곳에서 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아니, 행동해야 한다.
롯과 그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천사들을 보내시고
주저하는 롯을 위해 소돔에서 그 손을 끌고 나오시기까지 하신 주님
그런 은혜도 우리 삶에 있다면 좋겠지만
소돔 성문에 앉아 있으면서(창 19:1)
- 사회적 위치가 낮다면 소돔 성문에 앉아 있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을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돔의 죄악에 애통하고 고통스러워 했던(벧후 2:7) 롯은
사실 그곳을 먼저 떠났어야 했다.
소돔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엘람의 그돌라오멜 왕에게 잡혀갔던 롯은
삼촌 아브람이 318명의 용사와 함께 자기를 구해줬을 때 (창 14:16)
다시 아브람에게로 돌아가던지
최소한 소돔에서는 나왔어야 했다.
소돔의 동성애자들(또는 성폭력을 저지르려 했던 자들)이
두 천사를 겁탈하려던 그 밤에
그 인간들은 롯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창 19:9)
딸은 물론 사위들에까지 충격이었을지도 모를
두 딸을 내주겠다는 제안에
그 범죄자들의 판단...
당신은 우리 중의 한 사람이 아니며
당신은 우리의 법관도 아니다! (창 19:9)
성경에 나온 등장 인물 중
가장 질낮은 수준의 범죄자들 부류의 말이긴 하지만
맞다.
세상 가운데서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그저 애통하다가
자신의 가족(중 일부)만 겨우 구원한다면
그리고 자신의 후손(모압, 암몬)을 통해
약속의 민족들이 고통을 당하는 슬픈 일을 겪는다면
그 삶은 결국 실패한 삶에 가깝다.
그러면서 법관 노릇(판단..)까지 하려하다니
그 양반들이 봤을 때도 기가 찼을 것이다.
누가봐도 그들은 아군이 아니라 적군이다.
결국 심판 받았다.
적군의 말에도 뼈가 있다면
아군의 말에는 얼마나 많은 진실과 유익이 담겨 있을까?
친구(Friend)란 말은
우리 나라에서는 동년배에게 주로 쓰는 말이지만
영어에서는 오히려 아군, 우리편의 느낌을 주는 말이다.
따라서
(주는 나의 친구..라는 찬양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면 안된다..)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내 편이 되어주는 이, 또는 그런 분들은
심지어 오랫동안 잔소리를 쏟아내온 그런 분들까지
나의 친한 편, 곧 오랫동안(舊) 친(親)밀한 관계를 맺어온
친구(親舊) 곧 벗님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빚을 졌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분들 때문에 얻은 유익이 크다.
“친구끼리 미안한 거 읍따!”
25년 전 유명한 영화 대사이지만
친구 사이에는 미안한 것보다
고마운 것이 더 많으니까 나온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나에게 책망을 통해 교훈하는 모든 분들은
오늘도, 아니, 오늘까지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는 나에게
원수의 입맞춤보다는 나은 유익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