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나타내는 수. 0 은 양수와 음수의 경계가 되는 수이며, 임의의 실수 에 대해 가 되게 하는 단 하나의 수로 정수에 속한다. 한편 십진법으로 표시된 203400이라는 숫자는 이십만삼천사백을 나타내는 것으로 0·2·3·4만을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십진법에서는 0, 1, …, 9 등 10개의 숫자로 모든 수를 표시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리잡기의 원리>가 이용된다. 즉 숫자의 위치로 그 자리에 해당되는 단위를 나타내기 때문에 십, 백, 천, 만, … 등의 단위를 붙여 줄 필요가 없게 된다.
반면 수가 없는 자리에는 빈자리임을 표시해 주는 기호가 필요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0 이다. 자리잡기의 원리는 옛날부터 이용되어 왔는데, 잘 알려진 것으로 메소포타미아의 기수법(60진법)이 있다. 이에 따르면 현재의 0 에 해당하는 것을 *로 표시하였는데, 그 사용에는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은 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즉 수의 맨 끝자리에는 *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애매모호함을 없앤 기수법도 이용되었다고 전하지만, 천문학 등의 특별한 분야에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다른 예로는 중국의 산목(算木)을 들 수 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수백년부터 산목을 사용해 수를 표시하였는데, 단자리에서는 막대를 세로로 놓아 1을, 가로로 놓아 5를 표시하였으며 10자리에서는 가로막대가 1을, 세로막대가 5를 표시하였다. 이런 식으로 자리가 바뀜에 따라 가로막대·세로막대의 의미를 번갈아 교대하여 수를 표시하였다. 0을 표시할 때는 산목을 놓지 않고 빈자리로 두었다고 한다.
한편 수판과 다른 계산판에서도 수가 없는 자리는 비워 놓음으로써 0을 표시하였다. 이와 같이 자리잡기의 원리는 널리 이용되었는데, 이를 추상화하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수의 체제에 포함시켜 빈자리를 묘시하는 기호로 0 을 사용하게 된 것은 인도에서 시작되었다. 인도인들은 자리잡기의 원리를 유효하게 하기 위해서만 0을 사용한 것이 아니고, 1, 2, 3, …과 동등한 수로서 인식하여 갔다. 그리스에서도 무(無)라는 개념은 있었지만 이것을 수로 이해하지는 않았다.
인도의 브라마굽타(7세기)는 음수와 함께 0 의 계산법칙도 다루었는데 특히 0÷0=0으로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a÷0에 대해서는 취급하지 않았고 후에 비스카라 2세가 a÷0(a0)을 무한대라고 했다고 한다. 인도에서의 0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확실한 자료는 중앙인도의 구바리아에 있는 작은 사원의 벽에 조각된 것이다.
이것은 870년의 것으로 270과 50이라는 숫자가 표시되어 있는데 0 이 작은 원으로 표기되어 있다. 한편 7세기에 브라마굽타가 0 의 계산을 다루었다는 사실에서 인도에서의 0 의 사용은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처음에는 0 이 아닌 ·등의 기호가 사용되었다. 인도에서의 0 의 발견과 다른 문화권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있다. 즉 메소포타미아·바빌로니아로부터의 영향, 그리스로부터의 수입, 중국 산목의 영향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다른 문화권으로부터의 영향에 대한 예로서 0 의 형태가 그리스문자의 0(오미코론)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오미크론은 그리스어로 <공(空)>을 의미하는 ouden의 머리글자이고, 또 K. 톨레마이오스는 로 41°0′18"를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기호 0 과 0 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경향이 짙다.
마야문명에서도 <자리잡기의 원리>와 빈자리를 나타내는 기호 0 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마야의 기수법(記數法)은 역(曆)과 관계가 깊어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또 다른 문화권과의 교류도 확실치 않아 마야문명의 0 이 마야문명의 독창적인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한편 인도에서 확립된 기수법은 0 도 포함하여 9세기에 아라비아로 전해졌다.
이 무렵 알 콰리즈미는 <힌두식계산법>에 대한 책을 썼는데 이것은 다분히 브라마굽타의 책을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아라비아숫자라고 불리게 된 것은 인도의 수가 아라비아인에 의해 전파된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산스크리트에서는 0 이 아라비아어로 번역되고 다시 아라비아어 발음이 유럽에 전해져 라틴어로 cifra 또는 zephirum이라 씌어졌다.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zefiro·zefro·zevero로 쓰이게 되어 결국 베네치아의 방언에 의해 zero가 되었다고 한다. 인도의 수는 10세기 당시 아라비아문화권이었던 에스파냐를 통해 유럽에 도입되었으나, 0 의 의미나 중요성은 이해되지 않고 다만 1∼9까지의 숫자만이 계산에 이용되었다. 그 후 13세기 유럽에서 0 까지 포함한 인도의 기수법·계산법을 대중화하려는 노력이 기울여졌다. 피보나치는 이집트·시리아·그리스 등지를 여행한 후 1202년 인도의 기수법·계산법에 대한 책을 썼다. 또 파리대학의 J.새크로바스코도 유사한 책을 저술하였다. 이렇게 전래된 인도의 기수법·계산법이 일상화된 것은 15세기 이후이다.
<신의 숫자>
이상하지
양수의 나라에도
음수의 나라에도 안타깝게 가 닿을 수 없어
가슴이
타들어간
영원한 나라
시작도 끝도 알 수 없어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면서 보이지 않는
아무런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측량할 수 없는
과분한
빈 그릇에 담긴
신의 숫자 0의 값
나는 그
블랙홀 같은 허공으로
무언의
창세기를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