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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아래와 같은 학교 당직 관련 내용이 있어서 복사해서 옮겼습니다.
대학교수 하셨던 분이, 울릉중학교 당직원을 하신 내용인데요, 내용이 매우 길어서, 다 읽으시려면 각오를 다지셔야 합니다.
공부, 학교당직근무, 그리고 <아들로부터 온 새> 찾기, 최지중 2021-09-03
울릉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1. ★‘사람이 오늘이 있을 알지 못하게 되면서 세상의 도리가 잘못되게 되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는 바가 있으려면 다만 오늘에 달렸을 뿐이다. 이미 지나간 것은 돌이킬 수가 없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은 비록 3만6천 날이 잇달아 온다고 해도 그날에는 각각 그날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어 실로 이튿날에 미칠 만한 여력이 없다. 참 이상하다. 저 한가로움이라는 말은 경전에 실려 있지 않고 성인께서 말씀하지도 않았건만 이를 핑계대고 날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부는 오직 오늘에 달린 것이어서 내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아! 공부하지 않은 날은 살지 않은 것과 한가지니 공친 날이다. 그대는 모름지기 눈앞에 환한 이 날을 공친 날로 만들지 말고 오늘로 만들어야 한다.’*1
2. ★‘코로나 시대에 선인에게서 배우는 공부법 // 자녀를 둔 부모의 로망은 무엇일까? 공부 잔소리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공부 잘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부모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 주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 기성세대에 비해 요즘 아이들은 공부를 방해하는 유혹 요소가 많은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게 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율곡 이이의 공부 철학에서 그 힌트를 찾아볼까 한다. / 율곡 이이는 결코 순탄한 환경에서 성공한 인물이 아니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조선 제일의 공부 달인이 되어 자신만의 학문 세계를 열었던 인물이다. / 우리가 이이에게 주목할 것은 그의 치열한 자기계발 의지와 노력하는 자세이다. 그는 조선조 500년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9번 번이나 장원급제한 공부의 달인이었다. 그의 성공적인 학습은 바로 공부에 대한 강한 목표 의식과 엄중한 실천 강령과도 같았던 바른 습관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 다음에 소개하는 이이의 1등 공부법은 학습 의욕이 낮고, 자기 주도적 학습 습관이 들어있지 않고, 作心三日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 첫째, 입지(立志) 굳은 의지로 실행 가능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라는 뜻이다. 이이는 목표가 분명해야 실천 의지가 생긴다고 보았다. / 둘째, 교기질(矯氣質) 율곡의 공부법에서 입지와 더불어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이 편벽(偏僻)된 기질을 바로잡는 교기질(矯氣質)이다. 타고난 기질을 없앨 수는 없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연습을 통해 공부하기 좋은 기질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을 믿고 몸과 마음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한다면 누구나 바른 자리에 설 수 있다는 신뢰가 공부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 셋째, 혁구습(革舊習) 몸에 밴 잘못된 옛 습관을 자각하고 하나씩 버리라는 뜻이다. 이는 의존적 태도를 버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하라는 실천적 의지를 강조하는 말이다. / 넷째, 구용구사(九容九思) 혁구습(革舊習)으로 비운 자리에 아홉 가지 바른 몸가짐과 아홉 가지 생각으로 공부의 기본자세를 확고히 세우라는 뜻이다. 감염병의 위험과 불안으로 인해 원격 수업이 늘고, 학생들 스스로 혼자 있는 시간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해진 요즘에 더욱 와 닿는 말이다. / 다섯째, 금성옥진(金聲玉振) 절박한 심정으로 집중하라는 뜻이다. 시작할 때의 결심과 의지를 끝까지 이어나가야 한다. 한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공부에 임해야 한다. / 여섯째, 일목십행(一目十行) 독서를 병행하며 공부하라는 뜻이다. 이는 독서가 공부를 심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 이이 공부법의 큰 프레임은 바로 지(知)·덕(德)·체(體)이다. 이는 21세기에도 전혀 고루하지 않은 공부법이다. 수 세기가 지났지만 이이의 공부법이 아직도 생명력을 갖는 이유는 그가 제시한 공부법이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적 삶 속에서 이루어낼 수 있는 평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실천할 수 있는 공부법이다. 율곡 이이의 공부 철학은 언택트 시대를 사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기 주도적 학습 태도를 갖게 하는 데 유용하게 작용하리라 믿는다. 율곡 이이의 공부법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코로나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영감을 얻길 바란다.//’*2
3. ★2020년 4월 9일. 원병오 경희대 명예교수가 91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원병오 교수는 한국전쟁 때 월남하면서 북한에 있는 가족과 헤어집니다. 1963년 원 교수가 서울에서 새 이동 인식가락지를 북방쇠찌르레기 다리에 달아 날려 보냈는데 2년 후 1965년 그 새는 평양에서 잡혀 북한 조류학자인 아버지 원홍구 교수에게 전달됩니다. 아버지는 확인 끝에 그 새를 날려 보낸 사람이 남쪽에 살아 있는 아들 원병오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남녘 아들이 날려 보낸 철새 이동 인식표를 북한 아버지가 발견한 사연, 철새로 말미암아 남한 아들이 북한 아버지를 찾은(확인한) 사연은 곧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외국 조류학자들 도움으로 편지를 교환하면서 부자지정(the affection between father and son)을 이어 갑니다. / 북한당국은 일본과 함께 이 감동적인 사연을 소재로 <새>라는 영화를 제작했고,*3 북한 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에 <아들로부터 온 새>를 실었습니다. 사람들과 세계 언론은 철새가 이어 준 남북부자간 사연에 주목했지만 저는 이 사연을 소재로 쓰인 글(영어) <아들로부터 온 새(a bird flown from a son)>가 북한 영어교과서에 수록된 것을 주목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아들로부터 온 새>라는 영문 텍스트가 북한 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을 알고 찾아 읽으려 했습니다. 원병오 교수가 돌아가신 것이 기연이 되어 서울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자료실 자료를 검색했습니다. 다른 북한 서책과 함께 이곳에 북한 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가 소장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북한 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가 우리나라 어느 곳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희망적인 일이었습니다. 북한 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 속에 <아들로부터 온 새>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그것을 찾으려했습니다.
4-1. 3년 6개월 전 2018년 2월 8일, 저는 연로하신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와 함께 있으려고 고향집이 있는 울릉도로 돌아왔습니다.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2019년 8월 22일 돌아가셨습니다. 사모곡에 해당하는 글 <지난 여름 끝자락에>를 같은 해 10월 30일 울릉군청홈페이지-참여광장-자유게시판 코너에 올렸습니다.) / 2018년 10월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10일 간 저는 울릉군청 교통과 기간제 근로자로 천부-나리동 구간 공영버스 교통조사 일을 했습니다. 공영버스를 타고 하루에 천부-나리동 구간을 7번 왕복하면서 현금과 교통카드로 버스를 타는 사람이 각각 몇 사람인지 조사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바람에 저는 그때 나리동을 70회나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해 11월 15일부터 12월 31일까지 울릉경찰서 기간제 근로자로 관내 교통안전시설 실태조사 일을 했습니다. 울릉도 곳곳에 있는 교통표지판 즉 <터널>,<20km서행>,<학교앞>,<횡단보도>,<일방통행구간>,<낙석주의> 등을 촬영하여 사진을 경찰서 컴퓨터에 입력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울릉도 차량이 갈 수 있는 곳 끝까지 다녀봤습니다. / 2019년 4월 6일부터 11월 30일 계약만료일까지 8개월 간 울릉산채영농조합 호박 빵 제조라인에 배속되어 일했습니다. (그때 우리 직원들은 울릉산채영농조합을 ‘호박엿공장’이라 불렀습니다.). 처음 만들어진 호박빵 반죽을 기계에 넣기 전 2차 반죽하는 일, 반죽에서 만들어진 생호박빵 모양을 철판에 담아 화덕(오븐)에 넣고 굽는 일, 굽힌 호박빵을 포장하고 나면 남는 빈철판을 몇 시간 동안 닦고 기름칠 하는 일. 그것만 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일도 닦치는대로 했습니다. 저는 이 일터에서 일을 많이 배웠고 참 괜찮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때 우리들끼리 우리를 ‘2019 호박엿공장 드림팀’이라 부르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또 하나 좋았던 것은 울릉산채영농조합이 우리나라 10대 비경 안에 위치하고 있었고 저동집에서 현포 공장까지 회사 통근차 뒷자리에 탑승해 출퇴근하면서 아침저녁으로 환상적인 울릉도 해안드라이브코스를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4-2. 고향에 돌아와 새삼스럽게 학생들 가르치거나 울릉도 독도 관련 해설이나 강의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몸 움직여 일하고 공무원이나 관리직 간부가 어떤 일을 하라하면 지시에 따라 일하는 것이 편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당신은 학교선생을 했으니 문화해설사를 하면 좋을 것 같아서 그것을 한 번 해보라 권합디다. 울릉지역 문화해설사하는 동무가 있는데 제가 보니 너무 멋지게 문화해설사 일을 하더군요. 아마 전국 문화해설사 경연대회가 있다면 동무는 우승했을 것입니다. 문화해설사 동무만큼 일하거나 동무보다 더 일을 잘 할 자신이 없으면 문화해설사는 아니해야한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5. 2019년 11월 30일. 호박엿공장에서 퇴업하고 집에서 쉬면서 일본소설 《설국(雪國)》과 프랑스 산문 《섬(Les îles)》을 원서로 읽었습니다. 아침에 울릉도서관에 가서 책 읽다가 저녁에 아름다운 동해바다를 바라보면서 귀가할 때면 세계가 다 내 것인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생활을 소망했습니다. 집에 점심식사 하러 오는 시간도 아까워 도서관에 도시락을 사가지고 갔습니다.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나는 다시 그날 저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거리에서 이 작은 책을 펼치고 나서 겨우 처음 몇 줄을 읽어 보고 다시 덮고는 가슴에 꼭 끌어안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정신없이 읽기 위해 내방에까지 달려왔던 그날 저녁으로. 그리고 나는 아무런 마음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책을 열어 보게 되는 저 알지 못하는 젊은 사람을 너무나도 열렬히 부러워한다.’. 앞글은 일본에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 《설국》 첫 페이지 첫 문장입니다. 아름답고 인상 깊은 문장이라 이 세 문장에 대한 논문이 있을 정도랍니다. 그 다음 글은 장 그르니에 《섬》에 카뮈가 붙인 서문 끝부분 글. 이 글 또한 멋있고 완벽하지요. 이 글을 읽는 순간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열렬한 《섬》의 독자가 됩니다. 《섬》은 ‘프랑스 산문의 정수’라 평가되고 있습니다. 《설국》은 1968년 노벨문학상으로 선정된 작품입니다. 그해, 베트남전쟁에 한국군 보병소총수로 참전하고 있던 이윤기 상병은 이웃나라 일본소설 《설국》이 노벨문학상으로 선정된 소식을 접하자 책을 구입하려고 당시 베트남 수도 사이공으로 특별휴가를 갑니다. 이윤기 상병은 나중에 작가( 겸 번역가)가 된 이윤기 선생입니다. / 섬 울릉도는 우리나라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지역이어서 겨울이면 설국이 됩니다. 지난 겨울, 눈 많이도 왔지요. 섬과 설국. 겨울에는 봄이 될 때까지 눈이 쌓여 있습니다. 산악스키를 타는 사람들은 성인봉 경사면에서 산악스키를 즐깁니다. 울릉산악회 회원들은 성인봉 근처에 눈을 파내 동굴을 만들어 비박하기도 합니다. 저는 설국인 섬에서 《설국(雪國)》과 《섬(Les îles)》을 일본어 프랑스어 원어로 읽는 무드가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좋은 책이라 읽는다기보다 설국으로 변하는 섬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 상황과 관련된 분위기 즉 무드 때문에 이 책을 읽은 것이지요. 새벽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할 때 그날 《섬》과 《설국》을 읽는다는 생각만으로도 저는 가슴 설렜습니다. 저는 그때 그런 자유가 0.1cm도 침범당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가 2020년 3월 8일, 이곳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 <섬과 설국, 혹은 《섬(Les îles)》과 설국(雪國)》>을 참조하십시오.)
6-1. 2020년 3월 2일부터 2021년 9월 현재까지 사동 안평전 중턱에 개교한 울릉중학교에 당직전담직원으로 채용되어 일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채용되기 전까지 19번이나 일터에 취업지원서를 냈는데 3번 합격하고 15번 떨어졌습니다. 19전 3승 1무 15패. 1무라니. 2018년 10월 산림청 울릉사무소에 지원서를 낸 후 면접 보러오라는 통보를 받았는데 가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저는 무승부라 봤습니다. 1년 기간제 군청 일자리에는 들어 갈 수 없었습니다. / 저동 다문화센터, 저동 노인장애자복지회관, 울릉선거관리사무소, 구암 폐기물쓰레기처리장 2회, 울릉시설관리사업소. 군청 주민복지과, 한마음회관 청소원, 울릉역사문화체험센터 매니저, 산림청 울릉 사무소, 산불감시원 3회, 태하 수토사박물관 관리원, 서달령 상수도 관리원 등. / 2018년 11월 8일. 울릉경찰서 교통안전시설 실태조사 조사원 모집 때 울릉경찰서에서는 이른바 브라인드 면접을 하더군요. 면접관과 지원자 사이에 장막이 설치되어 있고 면접관이 저희들 지원자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당시 경찰서장이 면접관에 끼어 있었다했습니다. 좋았어. 경찰서장까지 면접관으로 나선 45일짜리 기간제 교통안전시설 조사원 모집에 저는 합격했습니다. 3명 모집에 8명 응시. 취업과 관련하여 도동 관가를 지날 때 군청은 돈 빌려가서 갚지 않는 넘 사는 집 바라보듯이 불편한 심기로 바라보게 되고 경찰서는 연인 사는 집 바라보는 것처럼 편안한 심기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런 초라한 취업성적 때문에 애멸무지로 울릉중 당직전담직원 모집에 지원서를 냈습니다. 고백하겠습니다. 울릉중학교 당직전담직원 모집에 취업지원서를 내지 않으려 했습니다. 또 추풍낙엽 일 텐데. 제출 마감날이 작년 2020년 2월17일. 그날 아침, 울릉교육지원청 산하 아무개 기관에서 일하는 분이 저보고 울릉중학교에 채용지원서를 내보라고 강력하게 권유했습니다. ‘당신은 학교에 있었던 경력이 있기 때문에 유리할 수 있다’면서요. 아침에 부랴부랴 사진 붙이고 취업지원서를 만들었습니다. 눈이 엄청나게 쏟아졌습니다. 지원서를 들고 마을에 있는 울릉중학교에 갔는데 산 중턱 새로 지은 학교로 가라하네요. ‘이름도 울릉중학교 같은데 취업지원서 좀 받아주지. 이 나이에 눈길 걸어 산 위로 가야하니. 눈 녹아 산 중턱 중학교로 가는 인편이 있으면 그때 학교에서 지원서 대신 가져다주면 안 되니.’. 취업지원서를 들고 눈 속에 혼자 길을 내면서 산중턱 중학교로 가서 지원서를 접수시켰습니다. 등산화에 눈이 들어가 양말이 젖어 돌아올 때는 배낭 저 안쪽에 꼬불쳐 둔 여름양말을 갈아 신었습니다. 합격했습니다. 취업성적은 이제 1승이 더해져 20전 4승 1무 15패. / 그보다 한 달 전인 2020년 1월, 울릉군청 한마음회관 청소원 채용 면접에서 면접관으로 나온 군청 공무원들은 면접 받는 저에게 무례 했고, 그들이 하는 말에는 콤플렉스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면접장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습니다. 떨어졌습니다. 시험에서 0점 받은 국민학생이 그것도 기분 나쁜데 집으로 돌아오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바지까지 찢어진 꼴이지요. 울릉중학교 당직근무자 채용면접에서 면접관들은 우리를 깍듯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더 나아가 면접주관으로 나온 당시 교감선생님(울릉교육을 위해 울릉도에 2번 부임했고 이번 9월 1일 퇴직하신 유효영 교장선생님) 멘트. “혹시 채용되지 못하더라도 또 다른 기회가 있으니 너그럽게 이해해주십시오.” 감동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떨어졌구나 싶었습니다. 같이 면접 받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자기들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하더군요. 합격자 발표가 늦어져 이번에도 미역국 먹었구나 싶었는데 학교 행정실에서 합격통보를 해주었습니다. 시험에서 100점 받은 중학생이 택시타고 집에 오니 부모님이 치킨이나 새우가스를 사주시어 기분 좋게 먹은 모양새이지요.
6-2. 저는 학교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다시 일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글쎄 학교에 채용되자 기시감(데자뷰)이 있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 했습니다. 선친이 울릉도 지역 학교 교원(1943년부터 1991년 까지. 최수현 전 울릉국민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있었던 탓에 저는 학교사택에서 태어났고 대학원을 마친 후 학교선생을 했으니 학교 밖에 있었던 시간이 짧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 어떤 사람보다 학교에 있었던 기간이 깁니다. 일터인 학교에서 하는 일이 익숙했고 마치 집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과거 동해 저 위쪽 공해상 대화퇴어장에 오징어잡이 나가면 1개월 이상 조업하다 돌아오곤 하던 동네 어른 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 이야기에 따르면, 오징어잡이 나가는 어선을 타면 어선이 마치 자기 집 같다 하더군요. 편안하고. 어선 안에서 고스톱도 치고. 법도 해먹고. 그 분이 어선이 자기 집 같은 것처럼 저도 학교가 제 집 같았습니다. 학교에 오후 4시 30분 출근하고 그 다음날 아침 8시 30분 퇴근합니다. 토요일 일요일은 쉽니다. / 학생들이 ‘밤에 혼자 근무하면 무섭지 않느냐?’고 질문합니다. 저는 ‘어른들에게는 무서움이 없습니다’라 대답합니다. 오히려 밤이 주는 혜택을 고스란히 받습니다. 어둠은 바다보다 육지에 먼저 깔립니다. 그 다음은 바다에 어둠이 내려옵니다. 이리하여 섬은 어둠에 싸입니다. 때때로 밤 10시가 지나고 비와 안개가 학교를 감쌀 때 광경은 신비롭습니다. 사동 앞바다 어화(어선불빛), 달빛이 사동 앞바다에 내려 깔려있는 장면, 바닷물이 수증기로 변해 50,60m 수증기 기둥이 형성되는 현상 등은 장관입니다. 사동 밤바다는 날마다 찬탄을 금할 수 없는 광경을 보여줍니다. (‘여수 밤바다. 이 바람에 걸린 알 수 없는 향기가 있어. 네게 전해주고파. 여수 밤바다.’). 사동 밤바다! 금요일은 밤 11시가 넘어 퇴근하는데 밤-퇴근길은 고즈넉하고 아름답습니다. 이때 소프라노 정혜욱 <그리운 금강산>, 가수 문주란 <눈물의 북송선>, 가수 이미자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을 듣는데 좋아요.
6-3. 학교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학생들 젊은 청춘들을 보게 되지요. 제가 52년 전에 여기 중학교 다닐 때와 다른 청춘들. 밝고 예쁘고 착한 학생들. 생활관 학생들이 저녁 7시부터 8시 40분까지 선생님 지도로 공부한 다음 9시부터 10시까지 생활관 앞에서 노는 것을 저는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저토록 밝고 고민 없이 노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과거 학교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학생들 보는 것은 늘 설레이고 즐거운 일입니다. 젊어지는 것 같고. 젊은 학생들 바라보는 것은 축복입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좋은데. 저는 나이가 들어 얼굴이 상한 귤껍질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이 저보고 “당직 아저씨 동안입니다”라 말하고 지나갑니다. 너무 마음에 드는 멘트지요. / 우리 학생들이 저를 칭찬하는 글을 작년, 학교 통신망인지 홈페이지인지에 올렸다하더군요. 베리굿! 저는 거기에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 직접 읽지 못했습니다. 직접 읽고 읽지 않은 것이 뭐 그리 중요합니까? 학생들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병사는 자기를 알아주는 장군을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는다 했거늘. 저는 그런 학생들을 향해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우리 학생들이 왜 글로 저를 칭찬했을까? 학교에 있을 때 저는 학생들에게 경어를 사용했습니다. 저희 부부 사이에도 서로 존댓말을 사용합니다. 경어를 사용하는 것은 저에게는 일상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아마 그것 때문에 저를 칭찬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 (저는 국민학교 중학교 때, 육상 100m와 멀리뛰기 종목 울릉군 대표선수로 경북체전에 참가한 바 있습니다. 2019년 3월, 울릉터널 완전개통 전국마라톤대회에 출전하여 20km 저동에서 천부까지 돌아오는 코스를 완주했습니다. 지난 6월 27일, 제16회 독도지키기 전국마라톤대회 하프 20km 사동에서 구암 수층교까지 돌아오는 코스를 완주했습니다. 운동장이나 누가 달리기 하는 모습을 보면 저는 같이 뛰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합니다. 가수나 아나운서가 마이크만 보면 노래하고 싶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지난 6월 말 쯤, 학교 특기적성시간에 선생님 지도로 학생들이 50m 달리기를 하더군요. 학생 5명이 한 모둠으로 4 모둠이 되어 학생들이 달리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분초기로 기록을 쟀습니다. 4 모둠 중 가장 빠른 학생이 6.8초로 50m를 달렸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담당선생님께 가장 빠른 학생과 한 번 달리게 해 달라 요청했습니다. 담당선생님께서 제가 무리하면 심장마비나 골절사고가 난다고 생각했는지 안 된다 했습니다. 우리 학생 청년과 당직아저씨 60대 중반 노인 대결 50m 달리기는 무산된 것이지요. / 여름방학 나던 날 학교 본관 2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두 학생이 천정을 향해 점프를 합디다. 그냥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제가 점프를 좀 합니다. 오래 전 1969년, 울릉군교육장타기 핸드볼대회 결승전에서 (우리) 현포국민학교는 우산국민학교=울릉초등학교를 15:1로 대파하고 우승했습니다. 저는 그때 6골을 넣은 라이트윙 주공격수였습니다. 중학교는 도동마을에 있는 울릉중학교에 다녔습니다. 운동장 스탠드 앞 독도박물관 방향으로 일반 정규규격 배구네트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동네 청년들과 배구시합을 하곤 했는데 네트가 높아 중학생인 동료선수들은 세터가 토스한 볼을 상대편 코트에 스파이크를 때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세터가 높이 토스한 볼을 상대편 코트에 대놓고 때리는 오픈공격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강한 점프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때를 기점으로 시간이 꽤 오래 지났지만 자신 있어 두 학생이 보는 앞에서 천정에 닿으려고 점프했습니다. 1차시기 실패. 2차시기 실패. 아휴 이거 두 학생 앞에서 부끄러웠습니다. 점프해서 천정까지 닿는 것은 한계인가. 두 학생 앞에서 멋있게 천정에 손닿고 싶었는데. 그런데 두 학생이 엄지를 들면서 최고라 했습니다. 방학이 지나고 2학기 개학이 되어 두 학생을 만났습니다. 시간을 잡아 제가 두 학생 보는 앞에서 3차시기 점프를 시도하겠노라 선언했습니다. 두 학생 보는 앞에서 점프해서 기어이 손이 천장에 멋있게 닿은 모습 보이고 싶었습니다. 유감스럽게 제가 8월 14일 토요일, 현포 갔다가 신포구 부근 비탈길에 미끄러지면서 왼쪽 발 복숭아 뼈 근처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병원에서 5주 쯤 되어야 회복될 것같다하더군요. 현재 깁스 상태로 있습니다. 발 다치는 사고가 나고 열흘이 지난 8월 23일 두 학생을 만났는데 왼쪽 발이 완전히 회복되는 내년 쯤 가서 3차시기에 도전하겠노라 이야기 했습니다. / 학생들이 직업교육 실습시간에 만들었는지 커피, 우유, 얼음, 시럽 등을 넣어 만든 시원한 커피라테를 저에게 줍니다. 되게 맛있습니다. 학교를 그만 두더라도 시간이 많이 지나가더라도 그 맛을 잊기 어렵습니다. 양도 많아서 저는 그것을 저녁으로 먹기도 하고 2번 나누어 먹기도 합니다. 제가 당직실에 있으면 직접 주고 가고 제가 그곳에 없으면 그것을 놓고 갑니다. 브라보!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이 주는 특제 커피라테 받는 당직근무자 있으면 나오라 하십시오. / 저는 학교에 허락을 받아 학생들 활동에 함께 할 때가 있습니다. 개교기념행사(로 전교생이 학교-안평전까지) 걷기 대회. 강당에서 관람하는 뮤지컬. 전 미래창조부 차관 ‘데이터 대항해시대’ 강연. 이런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울릉중학교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독도수호거점 중학교로 선정되었습니다. 1학년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봄에 독도를 방문합니다. 내년에는 학교에 허락을 받아 학생들 따라 독도에 가 볼 생각입니다.
7. 학교에 있다 보니 그간 잊어졌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구요. 지난날 학생들 가르치던 일을 몸이 기억해내는 것 같았습니다. 젊은 학생들 가르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리 내린 듯 허옇게 된 머리카락을 가진 채 야간숙직을 하는 아저씨가 어찌 감히 마음으로부터 무엇을 가르치려하겠습니까. 분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작년 4월 9일, 철새가 이어 준 남북부자간 사연 한 축인 남쪽 아들 원병오 교수가 별세한 것이 계기가 되어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북한 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에 들어있는 영문 텍스트 <아들로부터 온 새>를 찾아 젊은 학생들에게 읽히고 가르치고 싶었습니다.*4*5*6 그것만 달랑 읽힐 수 없으니 다른 영어 텍스트를 들러리로 세워 학생들과 읽고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들러리로 세울 다른 영어 텍스트도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것이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7 / 그러나 제가 학교에서 하는 일은 도시 아파트 경비원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학생들 가르치고 싶은 생각을 내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학생들이 아무데나 휴지를 버리거나 교직원들이 방이나 연구실에 전등을 꺼지 않고 퇴근을 하면, 저는 학생들에게 휴지를 아무데나 버리시지 말라든지 교직원들에게 전등을 끄고 퇴근하시라든지 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지요. 당직근무자 존재이유가 휴지 줍고 전등 끄는 일 등을 하는데 있습니다. 저는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제 위치와 본분을 엄격히 유지해야 합니다. 작년 봄, 특기적성활동에 ‘영어 어휘와 독해력’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아들로부터 온 새> 영문 텍스트를 입수하게 되면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선생님께 그것을 전달해서 가르쳐 주십사 부탁드리려 했습니다.
8-1. 원홍구는 우리나라 최초 (일본) 관비 유학생으로 해방 이전에 한국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조류를 연구한 학자였습니다. ‘새 박사’로 유명한 원병오는 1929년 5월 19일 원홍구의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산과 들로 새를 쫓아다녔습니다. 그 덕분에 소학교 다닐 적에 새 이름 150개 정도를 달달 외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귀가 밝아 새소리만으로 새를 구분해 아버지 연구를 도왔다고 합니다. / 1940년 여름에 원홍구와 원병오는 흥남평야에서 새를 관찰하다가 북방쇠찌르레기를 발견했습니다. 그 전까지 북방쇠찌르레기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한반도를 거쳐서 시베리아나 만주에서 번식하는 새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북방쇠찌르레기가 오동나무 줄기에 구멍을 뚫어서 만든 둥지를 발견한 것입니다. 원홍구는 그 사실을 세계 조류학회에 보고했습니다. 새 둥지를 발견한 원홍구 이름과 사진이 그 당시 신문에 나왔다고 합니다.
8-2. 원병오는 1950년 7월에 원산농업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원래 원병오는 김일성 대학에 입학했는데 농대가 원산으로 가면서 원산농업대학이 됨.) 그해 12월 4일에 원병오는 첫째 형, 셋째 형과 함께 월남하였습니다. 김일성대학 교수이면서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이었던 아버지 원홍구와 어머니, 누나들은 북한에 남았습니다. 원병오는 한국전쟁 기간에 육군 포병장교로 참전했으며, 중위로 복무할 때 국군 3군단 포병단장이었던 박정희 대령(후에 대통령) 전속부관을 지냈습니다. 그는 전역 후 아버지 뒤를 이어 조류학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8-3. ★‘.... 항상 엄격하고 말이 없으신 아버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시던 연구실은 어린 내게는 마법의 공간과도 같았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사냥총과 새그물이 있는 곳, 그리고 어린 소년의 호기심과 열정을 한꺼번에 풀어줄 것을 약속하는 온갖 종류의 자연도감들이 꽂혀 있는 높은 서가, 옆에서 냄새만 맡아도 가슴이 뛰었던 진귀한 새들의 박제 표본이 그득한 진열장. / 그리고 그 안에 마치 마법사처럼 앉아 그 모든 것을 관장하는 아버지가 계셨다. 그 곳에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었고, 내 나이 70을 제법 넘긴 지금에도 닮고 싶은 ‘연구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있다. / 부전자전이란 억지로 이뤄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은 모두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을 그대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나의 일 모두가 아버지께 물려받은 조류학, 그것도 분류학에 기초한 생태학과 보호 관리학 그대로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학문세계에서의 세대적 차이라고나 할까. / 청렴한 선비의 모습으로 평생을 교육과 학문의 외길을 걸으셨던 아버지 원홍구 박사는 내게는 평생의 스승이기도 했다. 그 분은 새에 대한 열정과 꿈을 어린 가슴에 심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어린 나에게 내 분야의 첫 걸음이기도 한 관찰과 채집에서 기초 분류에 이르는 수많은 것들을 익히도록 해주셨고, 그 무엇보다도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서 흐트러짐 없이 연구하는 학자의 모습을 가르쳐주셨다. 부친께서 발표하신 수많은 책과 논문들, 그 중에서 《조선 조류목록》, 《조선 조류도설》, 《조선 조류지》, 《조선 수류지(짐승지)》를 접할 때마다 나는 그 열악한 조건 속에서 평생을 노력하셨던 선친의 모습이 보이는 듯해 숙연해지곤 한다. / 늦은 밤 서재 한쪽 책상에 앉아 책을 뒤적이던 모습, 그리고 이른 새벽 서재 한구석에 앉아 사냥총과 새그물을 손질하고 채집 준비를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내 앞을 스쳐간다. 침침해진 눈을 쉬어가라면서도 아직 남아 있는 내 몫의 연구를 하려는 나의 욕심은 어쩌면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에서 걸려버렸던 마법이 아직도 풀리지 않은 탓이 아닐까 싶다. / 내가 이 강력한 마법에서 풀려나는 날, 나는 아마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막내아들의 이름을 부르셨다는 선친과 마주 앉아 남북한 생태계 보호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으리라.’*8
8-4. 1956년 여름에 원병오는 서울 홍릉 임업 시험장에서 북방쇠찌르레기를 발견했습니다. 당시에 그 새는 함경도나 평안도에 살뿐이지 남한에는 살지 않는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원병오가 북방쇠찌르레기가 남한에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입니다. 북방쇠찌르레기가 북한에 산다는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아버지이고, 남한에도 산다는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아들이었습니다. / 원병오는 철새이동을 연구했습니다. 주로 하는 일은 새를 잡아서 발에다 가락지를 달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새를 죽이지 않고 산 채로 잡아야 했기 때문에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는 7년 동안 134종, 새 20만 마리를 잡아서 새발에 가락지를 끼워 주었습니다. 그 안에는 북방쇠찌르레기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나라에는 가락지가 없어서 일본에서 가져다 사용했습니다. 당연히 가락지에는 ‘JAPAN’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8-5. ★철새 이동경로를 조사하던 원병오는 1963년에 새끼 북방쇠찌르레기 다리에 ‘JAPAN C7655’라고 적힌 알루미늄 가락지를 끼워서 날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새는 서울로 날아오지 않고 2년 후 1965년 평양 만수대에서 잡혀 당시 북한생물학연구소 소장이었던 아버지 원홍구 박사에게 전해집니다. 아들이 날려 보낸 새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분단으로 헤어진 아버지에게 전해진 기적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이동인식 가락지를 끼어 날려 보낸 새가 강원도나 서해 쪽으로 가지 않고 북한 그것도 평양까지 날아 간 것, 보통 살아날아 다니는 새를 잡기 힘든데 그것이 사람 손에 잡힌 것, 새를 잡은 사람이 그것을 키우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은 것. 다른 새도 아닌 인식가락지를 단 새가 아버지 원홍구 박사에게 전달된 것. 만약 그때 한국에서 새 이동 인식가락지가 생산되어 원병오가 예컨대 ‘KOREA CXXX’ 인식 알루미늄 가락지를 새발에 끼워 날려 보냈다면 북한 아버지 원홍구 박사는 남한 조류학자가 새를 날려 보냈구나 하면서 그 남한 조류학자가 누구인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 아버지는 새발에 '일본 농림성 C7655'라는 가락지가 있었고 이 새가 일본에 분포하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겨 일본 조류학자들에게 문의하고, 일본 도쿄의 국제조류보호연맹 아시아 지부는 다시 남한 원병오 박사에게 연락해 원병오 박사가 날려 보낸 것으로 확인합니다.*9 북한에서는 원병오(元炳旿) 박사 한자 이름을 조회하고 친부자지 간임을 밝혀내기에 이릅니다. (으뜸元 밝을炳 밝을晤). 남북 부자 조류학자가 새를 통해 15년 만에 서로 생사를 확인했다는 이 드라마 같은 이야기는 북한 노동신문, 러시아 프라우다지에 실리고 일본 미국에 이어 한국 신문에도 실리며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10*11* 북한 작가 임종상은 부자 이야기를 토대로 <쇠찌르레기>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이 소설은 일본 내 조총련계 중고등학교에서 사용되는 국어교과서에 26쪽 분량으로 실려 있다고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1992년 북한과 일본이 함께 영화 <새(Bird)>를 만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본문 다음에 나오는 주notes *3을 참조하십시오.). 2006년에는 남북이 합작으로 단편만화영화(애니메이션) <새>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넷에 ‘최초 남북합작애니메이션 새. 감독:이정’을 입력하시면 21분 07초짜리 <새>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이들 사연을 담은 기념우표를 발행했고*12, 중고등학교 영어 교과서에 <아들로부터 온 새(a bird flown from a son)>란 글을 실어 이 사연을 소개했던 것입니다.
9. 저는 대학시절, 2기 아산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대학 2학년부터 대학원을 졸업할 때 까지 5년 간 아산사회복지재단(당시 이사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았습니다.*13 (아산은 정주영 회장의 아호). / 지금부터 18년 쯤 아산장학생 동문 한 사람이 경북 성주에 전원주택을 지었고 곧 대구경북 지역 아산장학생 재학생 졸업생을 초청하여 저녁식사를 대접해주더군요. 아산장학금을 받았던 우리는 졸업하고도 현재까지 모임을 계속 합니다. 그 모임에 잘 모르는 재학생이 있어 물었더니 탈북 한 청년이었습니다. 북한에서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단신 탈북 하여 의과대학에 편입하여 재학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산장학생 동문 중 북한 탈북민 문제를 다루는 정치학자가 있는데 그 동문과 같이 모임에 온 것. 동문이 그 청년에게 장학생 선후배 모임이 있으니 한 번 가보자 했겠지요. / 그 후에 저는 그 청년과 더러 만났습니다. 한 번은 그이가 다니는 의과대학 강당에서 고교생 영어말하기 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집아이가 아무개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이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대회가 끝나고 대회장소를 나오다가 귀가하는 그 청년을 만났습니다. 저는 아는 사람을 만났지만 아들은 남한 외국어고교생으로 과거 북한 외국어고교생을 만난 셈입니다. (집아이는 입상하지 못했습니다. 내용에 인상적인 것, 참신한 것이 있어야 심사위원들에게 어필되는데 아들에게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사실 제가 임펙트한 아이디어를 주었는데 이넘 자식이 제 말을 듣지 않고 지 쪼대로 하더니만. ‘<잃어버린 아버지의 꿈을 찾아서>라는 제목을 제안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울릉도 사람인데 독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다르다. 저그 아버지는 젊은 날, 독도를 확실히 지키는데 도움 되는 국제법이나 해양생물학을 전공해서 그 분야 최고 전문가가 되려 했다. 그런데 어떤 사정으로 그것을 전공하지 못하고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것이 저그 아버지 평생 한이었다. 그러면서 글 원고에 일본넘들 독도침탈 야욕을 세리 까고. 아들 본인은 저그 아버지 한을 풀어 주고 싶다. 하여 대학에 가서 국제법이나 해양생물학을 전공하여 그 분야 세계적인 권위자가 되겠다. 독도와 관련 이런 분야에서 일본넘들이 한 마디라도 하면 묵사발 내겠다. 그것이 우리가 독도주권을 강건하게 확보하는 길이고 일본넘들 독도침탈 야욕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방법이다. 이런 것이 아버지 잃어버린 꿈을 찾아 주는 것이다. 최소한 이런 정도 내용을 아들 본인이 영어로 옮기고 영어로 말할 때 혀를 아니 굴려도 악센트만 정확하게 하면 입상에 근접할 수 있습니다. 기본 원고 내용이 평범하거나 임펙트가 없으면 승산이 없는 것이지요.’). / 북한에서 부모님들이 아들 장래를 위해 아들 혼자 남한으로 가게 간 것 같았습니다. 제가 그 청년에게 북한 영어교과서에 <아들로부터 온 새(a bird flown from a son)>가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자기가 배운 영어교과서에는 그 영문텍스트가 없었다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북한도 외국어 고교생와 일반 고교생이 배우는 영어교과서가 다르고, 영어교과서와 교육과정이 바뀌니까 자기가 북한 외국어고교에 다닐 때 배운 영어교과서에는 <아들로부터 온 새(a bird flown from a son)>가 없을 수 있습니다. 어느 날 그 청년과 식당에서 같이 저녁식사를 하는데 마침 kbs-tv에 고등학교 <골든벨> 울릉고등학교 편이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10. 저는 고교시절부터 대학 철학과에 진학하려 했습니다. 고교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김형석 교수가 쓴 《영원과 사랑의 대화》라는 책을 빌려 읽었습니다. (김형석 교수는 2021년 9월 현재 102세로 살아 계십니다.) 아예 이 책이 포함된 《김형석 엣세이 전집》(삼중당. 누른색 양장본)을 구입해서 하루 저녁에 한 권 씩 읽어 열흘 만에 10권 전집을 다 읽었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전집을 읽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김태길 교수가 쓴 《흐르지 않는 세월》(관동출판사. 양장본에 흰 커버로 싸여있었는데 거기에 여백 많은 동양화가 그려져 있었음)을 읽었습니다. 아호가 ‘무심’인 철학교수(‘무심선생’으로 나오고 무심선생은 저자 김태길 교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봤습니다.)가 일찍 대학에서 퇴직하여 천안에서 목장을 한다는 소설 같은 엣세이였습니다. 몇 번 읽었습니다. 두 분 철학과 교수 글을 읽은 감격과 충격은 컸습니다. ‘철학과에 진학해야겠다.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이렇게 철학과 진학을 굳혔습니다. / 그때 작가 최인호씨가 쓴 <고래사냥>이라는 소설이 영화화되었습니다. 공부에는 관심 없이 좌충우돌하는 철학과 학생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에 철학교수 역으로 나온 배우 박암 씨가 햇빛 들어오지 않는 강의실에서 철학강의를 하는 장면이 짧게 나옵니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 지금도 기억이 나네요 그때 장면이. 다른 학과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대학 2학년 봄, 인문계열에서 드디어 철학과로 진입했습니다. 그때 철학과에 5명이 진입했습니다.*14 영문학과에 150명이 넘는 학생이 진입했습니다. 영문학과 학과장 연구실에 ‘영어에 자신 없는 학생은 영문학과 지원을 다시 한 번 생각 하십시오’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무더기로 가는 영문학과.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 볼 일 없는 철학과. 철학과 진입원서를 들고 철학과 학과장실에 갈 때 희망찼습니다. 얼마나 가고 싶은 곳이었는데. / 저는 대학에 들어가서 세운 목표는 ★<대학 졸업하는 날까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이렇게 4개 외국어를 마스터하는 것>이었습니다.*15*16*17*18*19*20*21. 대학 4년을 대학입시를 앞둔 고3 학생이 공부하는 것처럼, 세계 복싱 챔피온 방어전을 7일 앞둔 권투선수가 훈련하는 것처럼 외국어공부를 했습니다. 시간이 아까워 아르바이트 같은 것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무슨 축제다 모임이다 이런데도 거의 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철학전공 학생에게는 독일어가 필수다시피해서 독일문학을 부전공으로 했습니다. 프랑스어는 프랑스문학과에 가서 청강했습니다. 부전공은 2개 할 수 없기 때문에 프랑스어는 프랑스문학과에 가서 학점신청 없이 청강한 것이지요. 일본어는 문법책 1권만 읽고 독학했는데 겨울방학 때 외국어학원에 등록해 일본어 고급반 일본잡지(리더스다이제스트) 강의를 2개월 들었습니다.*22 대학을 졸업할 때는 외국어 전공서적을 정확히 해독하고 번역함으로써 입학할 때 세운 목표 즉 ★<대학 졸업하는 날까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이렇게 4개 외국어를 마스터한다는 목표>를 달성한 것입니다. / 그런데 저는 외국어 발음이 한없이 슬프고 해당 외국인을 만나면 얼른 숨어 버립니다. 지리산 골짜기에 살면서 외국인 만날 일 없는 사람이 외국어 일상대화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외국인 만나면 손짓 발짓하면 소통이 안 될까. 외국어사전이 헤어지도록 찾고 외국어로 된 책만 주구장창 보면서 외국어를 공부한 사람의 변명입니다.*23 다만 외국인과 소통이 필요하면 저는 그 외국인과 필담하겠습니다. 18세기 조선의 유학자 홍대용이 한문으로 중국인 학자들과 필담(conversation by writing)한 것처럼.*24*25
11. 우리가 고등학교 때 지금처럼 대학입학을 위한 수능시험이 없었고 예비고사와 본고사가 있었습니다. 대학 신입생일 때 1,2학기에 교양영어 과목이 있었는데 중고교 때처럼 교과서를 읽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때 학교당국에서 중고교에서 영어를 6년 배웠으니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에게 대학 1학년 1,2학기 교양영어 과목 수강을 면제해주는 특별시험 제도를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특별시험을 원하는 학생에게 얼마인가 시험료를 받고 특별시험을 보아 통과한 학생은 교양영어 수업을 받지 않고 A+학점을 받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매력 있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영어를 잘 하는 줄 알고 교양영어 과목 특별시험에 응시했는데 떨어졌습니다. 어려웠습니다. 실력이 모자랐겠지요. 같이 영어특별시험에 응시했다가 낙방한 친구와 한동안 서로 ‘특시낙방생’이라 놀렸습니다. / 한문이나 다른 외국어 특별시험(독일어 프랑스어 등)도 같은 날 있었습니다. 저는 한문 특별시험에도 응시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4000자 한자어가 들어 있는 책 한 권을 떼었습니다. 한자어 공부를 좀 했거든요. 한문 특별시험 문제를 보는 순간 경악했습니다. 《논어》, 《맹자》, 《고문진보》, 《당시》 등에서 나오는 한문문장이 나왔습니다. 한자어를 공부하는 것하고 한문문장을 옮기는 것은 다르지요.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백지를 낼 수 없어 생 엉터리로 동문서답으로 한문문장을 다 번역을 했습니다. 한문 특별시험을 채점했던 교수가 아마 제 시험 답안지를 보고 폭소를 터뜨렸을 것입니다. 한문 특별시험도 불합격. / 전공공부에 진입하는 2학년 1학기까지 학교에 영어과목이 있었습니다. 비슷한 전공학과를 묶어 해당 학과 소속 교수가 사정에 따라 영어를 가르치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수업방식이 참 흥미로 왔습니다. 철학과-사학과가 한 클래스로 묶였습니다. 사학과 철학과 같은 인문계통 학과 교수들은 영어를 잘 합니다. 서양현대사를 전공하는 사학과 교수가 2차 세계대전의 기원을 다룬 영어원서를 교재로 삼아 우리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그때 보니 국문학과는 연합할 학과가 없어 그 학과 단독으로 영어수업을 하더군요. 국문학과 교수들은 영어를 읽을 기회가 없으니 국문학과 교수 중 누가 영어를 담당할지 막연했겠지요. 들리는 말로 대학시절, 중고교생 가정교사를 한 교수가 영어를 담당했다 하더이다. 이공계열 같으면 건축학과-토목학과 이렇게 연합하여 전공학과와 관련된 영문 텍스트를 읽었겠지요. / 제가 대학선생이 되었을 때 이런 영어과목이 없었습니다. 한글보다 영어로 쓰여진 글 읽기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이 이런 과목을 맡으면 딱 이었을 것인데. 학생들에게 영어를 잘 가르쳐 주었을 것인데. 영어선생도 아닌 사람이 영어를 가르치는 이런 영어 과목을 담당하고 싶었습니다.
12. 젊은 시절 외국어 공부하는 것은 재미있고 호기심 자극하는 일입니다.*26 외국어공부를 하는 것은 외국여성을 만나서 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 외국어를 대하면 설렘이 있고 공부가 진행되면 즐겁고. 그러니까 외국여성과 연애하는 느낌. 처절하게 외국어를 공부하더라도 이런 느낌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 먼저 외국어를 공부한 사람이 나중에 외국어 공부를 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가르쳐 줄 때 누구라도 외국어 공부를 한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기만 아는 외국어 그것 어디에 쓰겠습니까. 외국어를 배우고 익히는 것은 즐겁지만 그것을 젊은 청(소)년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더 즐거운 일입니다. ‘불교 공부를 제대로 했는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는 판단준거는 자신이 배운 것을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잘 알려주어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 도와주고 봉사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27 이것은 외국어공부나 다른 공부에 적용되어도 합당합니다.
13. 선생이 되어 저는 학생들에게 외국어공부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습니다. 정규수업과 관계없이 학생들에게 영어와 일본어를 가르치려했거나 가르쳤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배우려는 사람은 별로 없지요. / 학생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학교도서관 알림판에 영어를 가르쳐주겠다는 공고를 내면 한 두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영어를 배우러 옵니다. 제 정규강의가 끝나면 강의실 그 자리에 찾아오는 학생 두 사람을 앉혀놓고 가르쳤습니다. 철학 선생이 영어를 가르치는 풍경. 교재는 《The Analects of Confucius》(영어로 번역된 논어), 케빈 오록(Kevin O’Rourke)이 번역한 《Our Twisted Hero》(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28. 학생들이 영문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면 제가 잘 못 된 것은 고쳐주고 해석해줍니다. 한 단락이 끝나면 그 단락을 제가 빠른 속도로 해석하고 넘어가는 방식으로 학생들 가르쳤습니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좋고 누구에게 배우는 것을 권합니다. / 그렇게 영어를 배운 두 학생이 그 후 이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감사 표시로 학교 후문 식당에서 저에게 콩나물 국밥을 사주더만요. 이것이면 충분하지요. 공자는 육포 한 묶음 가지고와서 제자 되기를 청하면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오히려 영어 배우는 학생들을 교직원식당에 데리고 가서 점심을 많이 사 주었습니다. / 학생들에게 마가복음으로 일본어를 가르치려고 학교도서관 알림판에 공고를 내었는데 전화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제가 일본어 잘 가르쳐 줄 괜찮은 선생인데.
14. 2012년 봄부터 2013년 여름까지 1년 6개월 동안 처남 딸에게 ebs 수능교재로 제가 저희 집에서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고2였는데 오 마이 갓. 영어는 중학교 1학년 실력이었습니다. 처남은 고교 수학선생이었는데. 그래서 그랬던가 셋째 딸 영어는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외국어로 된 철학전공서적을 읽으니까 아내가 고교 수능영어 쯤은 눈 감고도 가르칠 수 있다 생각하고 저보고 자기 친정 조카를 좀 가르쳐달라 하더이다. 공업수학을 가르치는 공과대학 교수가 집에서 수학 못하는 조카에게 고교 수학을 가르쳐주는 것과 같은 모양새이지요. 영어가 형편없이 뒤떨어져 있지만 부끄러워 학원에 가서 중1과 같이 영어를 배울 처지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저는 가르치는 것이 좋고 재미있습니다.*29 / 고2인데 영어 실력이 중1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까 본인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말도 안 하고. 어떤 때는 삐질 때도 있구요. 그래도 다독여가며 성심껏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처남 딸이 열심히 공부하고 잘 따라 왔습니다. ★영어지문이 어렵거나 본인이 예습을 안 해왔을 때 제가 “오늘은 내가 하겠다”하면 처남 딸은 “고모부가 하면 제가 공부가 안 되잖아요”하면서 자기가 억지로라도 하곤 했습니다.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외국어 공부 할 때 예습은 필수이고 자기가 용기를 가지고 뛰어 들어야 합니다.*30 공부를 마치고 자기 집으로 가는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제가 꼭 바래 다 주었습니다. 버스시간이 촉박하면 둘이 버스 정류장까지 손잡고 뛰어가기도 했습니다. 저와 같이 영어공부를 하면서 영어 내신등급도 올리고 수능영어시험도 잘 봤습니다. 간호대학에 진학했는데 대학 첫 학기 의학용어 시험공부를 할 때도 저희 집에 와서 같이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 처남 딸이 수능시험을 치기 3일 전 다음과 같은 문자메세지를 보내왔습니다 : <감사합니다 고모부. 1년 반 동안 영어 가르쳐 주셔서 정말 도움 되었습니다. 수능 당일 날 이때까지 공부했던 모든 것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수능 끝나고 뵈요 고모부~>(2013년 11월 5일) >
15. 저는 우리나라 글과 서적이 외국어로 번역된 것을 관심가지고 흥미롭게 읽습니다.*31 김소월 <진달래>가 영어로 온전히 번역될 수 있을까. 우리말이라도 ‘싫어서’라는 표현보다 ‘역겨워’라는 표현이 시맛(taste of poetry)을 살리지요. ‘역겨워’는 억지로 ‘it’s disgusting’으로 옮긴다합시다.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즈려밟고’는 어떻게 밟는 것인데. 영어로 어떻게 옮길래. 여기서 <진달래> 영어번역 길은 끊어집니다. 그러면 영어로 번역된 <진달래>를 저는 읽지 않을 것입니다. / 김훈의 《남한산성》이 영어로 번역되면 읽겠습니다. 《남한산성》에서 구사된 독특한 김훈 식 언어가 영어로 완전하게 번역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수어사는 어느 쪽이오?” 이시백이 대답했다. “나는 아무 쪽도 아니오. 나는 다만 다가오는 적을 잡는 초병이오.” 최명길의 목구멍 안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조선에 그대 같은 자가 100 명만 있었던들....” 최명길의 눈에 이시백의 크고 강파른 몸매는 성 뿌리에 박힌 바윗돌처럼 보였다. 북장대로 올라가는 발소리가 끝날 때까지 둘은 저녁 어스름 속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남한산성》에서 제가 좋아하는 부분인데 이것은 영어로 번역되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작가 이병주 소설은 젊은 시절부터 거의 다 읽었습니다. 그 중에서 《지리산》을 즐겨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지리산》(7권)이 영어나 다른 외국어로 번역되면 꼭 읽으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런데 일본어로 번역되었네요. 李炳注著/松田暢裕訳 《智異山》 (東京:東方出版. 2015년 8월) 상+하 2책 1692페이지. 브라보! 울릉도집에 온 다음 일역본 《智異山》을 구했습니다.*32 다른 책 읽지 않아도 평생 이 책만 읽어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한국어를 모르는 일본사람들은 이 책을 읽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중 이병주 소설 연구자가 아니면 이 책을 구입할 이유가 없지요. 저와 같은 관심이나 취향을 가지고 일본어판 《智異山》지리산을 읽는 사람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저 말고는 없을테지요.*33 일본어판 《智異山》을 읽는 분위기, 무드 너무 좋습니다. 사정이 이러니까 일역본 《智異山》과 관련된 멋진 지적체험을 누구와 나눌 수 없으며 저 혼자만 간직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저는 이 체험, 이 무드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지 않습니다. / ★북방쇠찌르레기가 남북 부자간을 이어 준 사연은 드물고 인상적 입니다. 안타깝도록 감동적입니다. 이런 사연을 소재로 하여 쓰여 진 글은 그것도 영어로 쓰인 글은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일까. 이런 사연을 바탕으로 한 글이 영어가 아니고 우리말로 쓰여 남한이나 북한 어느 책에 수록되어 있었다면 저는 눈길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북한 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에 실려 있는 <아들로부터 온 새> 그것만 찾아 읽고 그 체험과 감동을 젊은 청(소)년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16. ★불교에서 인연(因緣)을 이야기하지요. 그럴 때 ‘인(因)’은 근본 원인이라 하고 ‘연(緣)’은 2차적 조건이라 합니다. 철새가 아버지와 아들을 이어준 사연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글(영어)이 북한 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에 실려 있다는 것을 안 것이 ‘인’에 해당되겠네요. 3월부터 제가 학교에 일하게 된 것과 4월 남쪽 아들 원병오 교수가 작고한 일이 ‘연’에 해당되겠습니다. 철새 덕에 아버지와 아들이 생사를 확인한 감동적인 사연을 소재로 한 글(영문)이 북한 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에 실리는 일이 없었으면 제가 저 영어 텍스트를 젊은 청(소)년들과 읽으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학교에 당직전담직원으로 일하는 기회가 있어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하더라도 원병오 교수가 작고하지 않았다면 북한 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에 실린 <아들로부터 온 새>를 찾아 볼 생각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학교 아닌 다른 일터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원병오 교수가 돌아가셨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17-1.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자료실에 북한교과서가 738권 소장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고 그 중 영어교과서가 31권. 31권 북한 영어교과서에 <아들로부터 온 새>가 있을 것으로 봤습니다. 작년 여름방학,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자료실에 소장되어 있는 북한 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 중 <아들로부터 온 새>를 찾아 서울에 있는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 가려고 학교에 휴가를 내었습니다. 학교 행정실에서 휴가신청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서 문자메세지가 왔습니다. <북한자료센터 확진자 발생으로 8월14일 금요일부터 잠정 휴관합니다. 재개관은 홈페이지를 통해 별도 공지하겠습니다. 2020년 8월 14일 오후 4시 52분.>. / 몇 달 동안 <아들로부터 온 새>를 찾으러가는 서울여행을 벼르고 있었는데. 허탈했습니다. 휴가신청서에 사인을 하는 시점에 가고자하는 곳이 때맞추어 휴관하다니. 드물고 귀한 여행은 이리도 어려운가. 같은 해 10월 9일 한글날 국가공휴일 앞 2일을 포함한 기간에 서울여행을 위한 휴가를 내려 했습니다. 그때 3일 간 동해해상 기상이 좋지 않아 2차 서울여행을 포기했습니다. 선플라워 혹은 그런 수준의 여객선이 있었더라면 서울여행을 했을 텐데.
17-2. 이런 사정을 아는 제자가 저 대신 나서서 <아들로부터 온 새>를 찾아 주기로 했습니다.*34 <아들로부터 온 새> 찾기 2라운드는 제자가 지원 나서 준 것입니다. 제자는 작년 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6월에 귀국하여 2학기부터 동국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제자가 한국에 돌아와 대학교단에 서는 첫날 저는 제자의 수업을 참관하여 격려해야겠다는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유감스럽게 코로나-19로 말미암아 대학이 비대면 수업을 하는 바람에 수업참관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정상적인 수업이 진행되었다면 직장에 휴가를 내어서라도 울릉-강릉 시스포빌호 여객선으로 바다 건너 서울에 가서 제자가 하는 첫 수업을 참관했을 것입니다. 제자가 미국에서 귀국하기 전 거기에서 <아들로부터 온 새>를 한 번 찾아보라고 부탁하려다 그만두었습니다. 어쩌면 미국에서 이것을 찾기 쉬울 수 있기 때문이지요.) / 2020년 10월 8일 금요일. 제자는 학교에 출근했다가 바로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자료실을 방문하여 북한 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를 확인했는데 <아들로부터 온 새>는 없더랍니다. 제자는 구글을 통해서까지 이것을 확인했는데 거기도 찾을 수 없다 했습니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육과정과 영어교과서가 몇 년마다 바뀝니다. 북한도 그러리라 생각됩니다. 북한자료센터 자료실에 있는 북한 영어교과서 31권은 2000년 초에 제작된 것입니다. 거기에 이것이 없다면 아마 그전 북한 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 어디엔가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북한에서 사용하지 않는 영어교과서는 그들 교육당국 창고 같은데 보관되어 있을 것입니다. / ★이제 북한 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에 수록되어있는 <아들로부터 온 새(a bird flown from a son)> 찾는 일은 포기해야할 처지입니다. 그런데 지금 탈북 주민들이 북한에 있는 부모님께 돈을 보내고 탈북한 지식인들이나 언론인들은 북한 친지들에게 전화를 해 그쪽 사정을 파악합니다. 돈을 받고 북한주민들 탈북을 안내하는 브로커도 있습니다. 탈북자가 3만 명이 넘는 이 시대에 북한 중등학교 영어교과서에 들어있는 글 한 편을 찾지 못할까. 저는 기어이 <아들로부터 온 새>를 찾겠습니다. 저는 2020년 10월부터 다시 5년 계획으로 북한 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에 들어있는 <아들로부터 온 새(a bird flown from a son)>를 찾아 나섰습니다.
주(notes) ---------------------
*1. 조선시대 문인 이용휴(李用休.1708-1782)가 〈당일헌기當日軒記>에서 한 말입니다. 저는 평생 공부하고 가르친 사람입니다. 지금은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부는 손에 놓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공부하는 일은 일상처럼 버릇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런 글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 조선시대에 공부꾼이 많습니다. 정약용 선생이나 이율곡 선생이 대표적인 공부꾼입니다. 정약용 선생이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에서 한 말입니다 : ‘천하에 가르쳐서 안 되는 못된 두 글자가 있다. ‘소일(消日)’이 그것이다. 아,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말하자면 1년 360일, 1일 96시각을 이어대기도 부족할 것이다. 농부는 새벽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애쓴다. 만일 해를 달아맬 수 있다면 반드시 끈으로 묶어 당기려 들 것이다. 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날을 없애버리지 못해 근심 걱정하여 장기바둑과 공차기 놀이 등 하지 않는 일이 없단 말인가?’. 여기서 농사짓는 일을 공부하는 일로 바꿔 읽으면 뜻이 잘 통합니다. 오늘은 놀아볼까(=공부하지 않고 지내볼까), 하루쯤 소일할까 생각하다가 이런 글을 만나면 꼼짝없이 붙잡혀 마음자세를 다잡습니다.
*2. 진선여고 방건희 교장선생님이 2021년 5월 6일 <밀교신문> 만다라에 기고한 글입니다. 본문 글은 방건희 교장선생님이 코로나-19 시대에 젊은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해야하는지를 알려주려고 쓴 글입니다. 율곡 선생 공부법은 보통 아홉 가지 입니다. 교장 선생님이 3가지를 소개하지 않았네요. ★3가지를 보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일곱 번째는 택우문답(擇友問答)으로 친구와 함께 공부하며 서로 부족한 것을 채우자는 것. 친구가 나에게 가장 좋은 선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토론식 공부 방법으로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여덟 번째는 경계초월(境界超越)로 고정관념에 갇히지 말고 열린 태도로 공부하라는 것. 공부법도 문제해결 방법도 여러 가지인데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로운 자신만의 공부 방법을 개발하자는 것이지요. 아홉 번째는 지어지선(止於至先)으로 선한 마음으로 공부하자는 것. 누군가를 이기려고 하는 공부는 나에게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도움 주기 위해 공부하거나 공부해서 남 준다는 생각을 가져보자는 것입니다. / 인터넷에 보면 초등학교 공부방이나 수학학원에서 율곡의 공부 방법에 관심을 갖고 논의하고 있습니다. ‘.... 조선 최고 학자 율곡의 공부 방법을 알려드림. 조선 최다 장원급제인데도 평생 책을 놓지 않고 학문에 매진했던 율곡의 9가지 공부 방법! 여러분도 하나씩 실천해보세요.’ / <밀교신문>은 대한불교 진각종에서 1개월 단위로 발행하는 신문. 진각종(=심인당)은 울릉도 출신 손규상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고 난 다음 창건한 불교종단. 진각종이 세운 학교로 경주 소재 위덕대학교, 대구소재 심인고등학교, 서울 소재 진선여고 등이 있습니다. 한편 저는 도동 불교진각종 여래심인당에 다니고 있습니다.
*3. 인터넷에 <새박사 원병오>를 치면 북한영화 <새>(Northen Korean Movie <Bird>)(1시간 28분 23초짜리)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끝나고 이어 2019년 8월에 열린 평창남북평화영화제 개막영화로 상영되어 호평을 받았습니다.
*4. 저는 대학에서 여러 학기 논리학을 가르쳤는데 교재로 《논리와 비판적 사고》, 《증명과 설명 – 김광수 교수의 비판적 사고 1》 + 《탐구의 논리 – 김광수 교수의 비판적 사고 2》를 사용했습니다. 이 교재는 논리학 교재로 압권입니다. 같은 저자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논리학 책이 《어찌 이방이 사또를 치리오》 + 《솔로몬은 진짜 어머니를 가려냈을까》 입니다. 이 책 역시 청소년 논리학 책으로 발군입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네요. 혹시 논리학을 가르칠 기회가 오면 저는 2권 책으로 청소년들에게 논리학을 가르칠 수는 있습니다. / 그렇지만 현재 <아들로부터 온 새> 이외에 다른 것을 고려할 처지가 못 됩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논리(학)보다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감성개발입니다. 시를 읊고 소설을 읽으며. 산이나 들로 나가 그림 그리고. 음악회나 미술전시회도 가고. 기타연주도 해보고. 좋은 영화나 수준 높은 뮤지컬도 보고. 이런 것들이 논리(학)보다 먼저입니다.
*5. a가 있으면 b가 있고 그것이 종합되어 c가 되는 논리가 있습니다. 변증법적 논리가 그런 것입니다. 변화생성이 있는 역동적인 논리인 것이지요. 그에 비해 형식논리는 틀(형식)에 갇혀 있는 논리로 변화발전 계기가 없습니다. / 그런데도 형식논리는 논리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형식논리는 말 그대로 형식(form)에 기반 한 논리입니다. 문장(판단)은 주어+서술어로 되어 있습니다. ‘울릉도는 눈이 많이 오는 섬이다’라는 판단은 참(true)이고 ‘울릉도는 한반도 서해에 있는 섬이다’라는 판단은 거짓(false)이지요. 이들 판단의 참,거짓은 책을 읽는 간접경험이나 실제로 가보는 직접경험을 통해 확인됩니다. 참,거짓은 판단에 적용되는 말입니다. 판단(문장)이 모여 있는 것이 추리(논증)입니다. ‘모든 민족시인은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이다. 이육사는 민족시인이다. 그러므로 이육사는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다.’라는 것이 추리(논증은 추리를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첫째 문장이 1단order이고 둘째 문장이 2단order입니다. 두 문장을 전제라 합니다. 셋째 문장이 3단order이고 결론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이 추리를 3단논법이라 합니다. 3단논법 사례에서 이육사 원래 이름은 이원록. 일제강점기 자신이 감옥에 갇혔을 때 죄수번호가 64번이어서 그것을 자기 이름으로 삼은 것. 이육사는 의열단원이자 민족시인이었음. 민족시인 전체가 어떤 것인지 언급하고 이육사가 민족시인에 속하면 이육사는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임에 틀림없지요. 이육사는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보편적 판단 ‘모든 민족시인은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이다’라는 것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전체가 참이면 전체에 속한 개체나 부분은 참입니다. 설득력 있습니다. 이것이 3단논법 효과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김대중 대통령이 이런 3단논법 방식으로 말하거나 연설하여 상대방이나 국민을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는 문장 셋이 모여 있습니다. / 논리(추리)의 타당성은 형식(form)에 의해 결정됩니다. 타당한 형식에 따르면 타당한(valid) 추리가 되고 부당한(invalid) 형식에 따르면 부당한 추리가 되는 것이지요. ① ‘모든 노인은 사람이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을 존재이다. 그러므로 모든 노인은 언젠가 죽을 존재이다.’. 이것을 형식화하면 <a-b b-c ∴ a-c>◼입니다. ② ‘울릉도는 영국에 있는 섬이다. 영국에 있는 섬은 유럽에 있는 섬이다. 그러므로 울릉도는 유럽에 있는 섬이다.’ 이것도 형식화하면 <a-b b-c ∴ a-c>◼입니다. ③ ‘모든 남자는 포유동물이다. 모든 늑대는 포유동물이다. 그러므로 모든 남자는 늑대이다’. 이것을 형식화하면 ‘<a-bc-b∴a-c>▲입니다. ④ ‘모든 여배우는 사람이다. 모든 여성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모든 여배우는 여성이다.’. 이것 역시 형식화하면 <a-b c-b ∴ a-c>▲ 입니다. ③은 전제 즉 첫 번째 두 번째 판단은 참인데 세 번째 판단인 결론은 거짓이지요. ④는 전제와 결론이 모두 참인 추리(논증)입니다. ③④형식 <a-b c-b ∴ a-c>▲를 보면 전제에서 b가 서술어 위치(오른쪽)에 있습니다. 전제에서 2번 나오는 b는 매개념(=연결개념이라 이해해도 됨)이라하는데 이렇게 매개념이 둘 다 서술어 자리에 와 있으면 a와 c를 연결하지 못합니다. 형식논리(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에서 이것을 ‘매개념 부주연의 오류’라 합니다. 형식 <a-b c-b ∴ a-c>▲는 (매개념 부주연의) 오류이고 여기에 어떤 내용 이를테면 늑대, 여배우, 여성, 동물 등을 대입해도 그 추리는 오류입니다. ①은 전제 결론 즉 판단 3개가 모두 참입니다. ②는 전제 중 판단 하나는 참이고 하나는 거짓입니다. 결론은 거짓이구요. ①②형식 <a-b b-c ∴ a-c>◼에서 2번 반복되는 매개념 b는 첫 번째 전제에 서술어 자리에 있고 두 번째 전제에 주어자리에 있습니다. 이 형식 <a-b b-c ∴ a-c>◼는 ‘매개념 부주연의 오류’를 포함 어떤 오류도 없습니다. 이 형식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도 그 추리는 타당한 추리입니다. / 어떤 추리가 연역적으로 타당하다면, 그것은 그 논증의 논리적 형식(구조structure) 덕분입니다. 추리(논증)를 구성하는 판단의 참 거짓과 추리의 타당성은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면 추리가 참,거짓이라거나 판단이 타당하다는 말은 무식한 이야기가 됩니다. ①처럼 타당한(valid) 논증이고 전제, 결론이 모두 참(true)이면 우리는 이 논증을 건전한(sound) 논증이라 부릅니다.
*6. 지난 5월. <개고기 식용 합법화해야 할까?>라는 주제로 한 수업내용이 교실 칠판에 판서되어 있었습니다. 찬반 주장과 근거, 대안 제시와 근거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차례로 적혀 있었습니다. <찬성(‘합법화해야한다’) 쪽◼ 근거로 ① 처리하는 과정이 법제화되면 투명하고 철저하게 관리. ② 소, 돼지, 강아지는 모두 결국 동일. ③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며 이를 합법화하면 더 좋을 것이다. (4표).>. <반대(‘합법화하면 안 된다’) 쪽▲ 근거로 ① 개들의 생명을 지켜주자. ②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반대. (5표).>. <대안◖은 지우개로 지워져있었습니다. ‘.....철저하게 분류. ..... 투명하게하고...... 하자.’ 이렇게 떨어져나간 고문서처럼 불완전하게 되어있더군요. (3표).>. / ‘합법화해야한다’ 혹은 ‘합법화하면 안 된다’는 것이 주장이고 그 밑에 나와 있는 진술들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입니다. 근거 각각이 4개 정도로 구성되었을 것인데 지워지고 칠판에는 2,3개만 남아 있었습니다. 대안 쪽 근거는 거의 지워져 어떤 내용인지 알기 어려웠구요. 찬반논의를 하는 문제(주제)일 경우 탄탄한 근거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을 설득하고 자기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습니다. / 찬성 쪽◼ 근거③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며 이를 합법화하면 더 좋을 것이다.’에서 앞부분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다’라 하면 됩니다. 뒷부분 ‘.... 합법화하면 더 좋을 것이다’는 찬성 쪽 주장(결론)입니다. 주장을 근거에 써먹는 것은 불필요한 반복. 영어나 일본어에서는 ‘...의(of 혹은 の)’를 몇 개씩 사용하지만 우리말에서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 ‘개인 선택의 문제이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은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바꾸어야 합니다. 영어성경 마태복음(MATTHEW) 13:11. <Because the knowledge of the secrets of the kingdom of heaven has been given to you,...>. of가 4개나 들어있습니다. of 없이 우리말로 옮기면, ‘당신이 천국 비밀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입니다.). 반대 쪽▲ 근거②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반대’. ‘개고기 식용을 합법화하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라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내용 있는 근거가 아니라 반대 쪽▲ 주장을 반복한 것이지요. 같은 논리로 찬성 쪽◼에서 (개식용론자라는 것이 있다면) ‘개식용론자들의 찬성’이라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을 텐데 이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말하자면 ‘설악산 정상에 케이블카를 설치해야하나’라는 주제 토론에서 반대 쪽▲에서 ‘환경론자들의 반대’를 근거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고 찬성 쪽◼에서는 ‘자연이용론자들의 찬성’을 근거로 제시할 수 있겠습니다. 두 가지가 다 자기 쪽 사람들의 주장이지 근거가 아닌 것 같습니다. / 근거(전제)는 사실판단(‘...이다’, ‘...있다’. 여기서는 ‘개들의 생명을 보호한다’, ‘소, 돼지, 강아지는 같다’는 판단)으로 되어 있고 주장(결론)은 가치판단(‘...해야한다’, ‘좋다’, ‘나쁘다’. 여기서는 ‘합법화해야한다’, ‘합법화하면 더 좋다’는 판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판단을 근거로 (혹은 전제로 하여) 가치판단을 결론으로 이끌어 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것은 일단 논리학자들에게 맡겨 둡시다. 다만 근거에는 사실판단 방식으로 진술하고 주장(결론)은 가치판단 방식으로 진술하면 됩니다. / 학생들이 입장(주장) 세 곳에 투표를 했는데 찬성 쪽◼ 4표, 반대 쪽▲ 5표, 대안 쪽◖3표네요. 저는 학생들이 대안(중도. 절충안) 쪽◖에 가장 많이 투표할 것으로 봤습니다. 대안(중도. 절충안)◖이 합당해 보이고 무난하거든요. 어느 한 쪽으로 투표하기가 거시기하지요. 그런데 수업과정에서 보통 대안이니 절충안이니 하는 것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뜨뜻미지근합니다. 대안이나 절충안은 매력 없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것은 실무나 정책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나 나올 수 있습니다. 학교에 있을 때 저는 대안이나 절충안 제시를 중심으로 글 쓰지 말라고 가르쳤고 논술문이나 답안지에 그런 식으로 쓴 글에 대해 점수를 야박하게 주었습니다. / 개고기식용 합법화 관련 글을 쓸 때는 자기 입장(찬성◼ 혹은 반대▲)과 관계없이 어느 쪽이 글쓰기 유리한지 좋은 근거가 많은지를 고려해서 글 쓸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이를테면 개고기식용 합법화를 반대하는 입장이라도 찬성 쪽이 글 쓰는데 유리하면 그 쪽으로 글 쓸 수 있습니다. 공부과정에 있는 학생들이 글쓰기 하는 것은 종교적 신념을 선택하고 정당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 ★이제 개고기식용합법화 관련 글을 쓸 때 찬반 중 어느 한 입장을 선택해서 자기주장이 맞다는 것을 근거 제시로 정당화하겠지요. 그것은 좀 약하고 ‘상대방 주장이 틀리고 내 주장이 맞다’ 해야 내 주장이 더 강하게 정당화됩니다. 글을 쓸 때 앞 부문에 상대방 근거를 반박하는 내용을 배치해야 합니다. 그 다음 자기 근거를 충분하게 제시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앞부분에 자기 근거를 제시하고 뒷부분에 상대방 근거를 반박하는 것보다 유리합니다. 요컨대 ‘내 것은 맞고 당신 것은 틀렸다’보다 ‘당신 것은 틀렸고 내 것은 맞다’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 ★대학교 인문학 과목 지필시험은 600자에서 1000자 정도 답안을 작성하는 방식입니다. 어떤 문제를 충분히 자세하게 서술하고 설명하는 방식으로 쓰는 것이 좋은 답안입니다. 대학교 신입생시절,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에서 글을 가장 잘 쓰는 교수님 과목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교수님이 ‘어려운 철학 시험 문제라도 그 문제를 국민학교 5학년 학생이 이해하도록 쉽게 자세하게 쓰는 것이 좋은 답안’이라 했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쉽게 자세하게 설명할 정도면 그만큼 학생이 철저하게 공부했고 그 문제를 잘 이해했다는 것이 되지요. 저는 도시에 있을 때, 한 달에 한 번씩 소속된 산악회 장거리산행을 다녔습니다. 제가 도맡아 놓고 산행후기 27편을 썼습니다. 산행후기를 쓰면 같이 산행한 회원들이 ‘글 읽어보니 한 번 더 산행 한 것 같다’고 하고 산행하지 못한 회원들은 ‘같이 산행하지 못했는데 같이 산행한 것 같았다’라 말하더군요. 산행후기를 썼으니 저를 격려하거나 고맙다는 인사로 회원들이 다소 과한 반응을 보였다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사람이 그 자리에 없어도 같이 있었던 것으로 느끼게 글을 쓸 수 있으면 그것은 잘 쓴 글이라는 점입니다. 학생들이 글을 쓸 때 생략하거나 절제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반복도 나쁘지만 생략( 혹은 절제)이 더 나쁩니다.
*7. ① 한자문화권인 싱가포르 중고등학교 영어교재로 사용되는 책이 《삼국지(Romance of three kingdoms) : 만화를 보면서 배우는 영어(learing english through comics)》입니다. 만화(그림)+영어문장으로 된 20권 전집. 영어문장은 관계대명사 없이 짧은 회화체로 되어 있습니다. 도원결의, 삼고초려, 적벽대전, 읍참마속, 제갈량의 둔갑술 등 주요부분을 발췌하여 읽을 것입니다. (a) 1971년 울릉중학교 2학년 때 장재수 교감선생님이 도덕과목을 가르쳤는데 교과서는 우리가 집에서 읽고 수업시간에 교감선생님이 삼국지를 실감나게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저에게 잊을 수 없는 도덕과목 수업이었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삼국지가 젊은 청(소)년들에게 용기와 포부를 길러주고 지혜와 사려를 깊게 할 수 있다 생각하시고 그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b) 저는 현포에서 도동으로 유학 와서 1970년 3월부터 1973년2월까지 3년 동안 도동에서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우리 학년이 중학교 입학시험 마지막 세대입니다.) 중학교 3년 동안 제 용돈으로 당시 서울신문을 구독했습니다. 신문을 정독하니까 사회 선생님보다 아는 것이 더 많았습니다. ★인터넷이 없었던 시대에 저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인터넷 같은 것이나 전략무기(도구) 같은 것을 손에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지적 체험은 나중 대학에 가서 공부할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글을 쓰거나 지필시험을 볼 때 다른 사람이 3줄 쓰면 저는 12줄 쓸 수 있었습니다. 양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쓸 수 있었을 것이고 질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쓸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지금부터 35년 전, 철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입학시험 전공 시험문제는 다섯 문제, 200점 만점, 시간은 100분 간. 1문제 당 20분 시간을 배당해야 하는 것이고. 저는 이 시험에서 186점을 맞았습니다. 1등으로 박사과정에 입학했는데 입학금 등록금 전액을 면제 받았습니다. 100점 만점으로 하면 93점이구요. 1문제 당 40점 만점에 평균 2.8점 실점했습니다. / 삼국지든 신문이든 소설이든 양적으로 많이 읽으면 생각도 많아지고 쓸 것이 많습니다. 제가 대학선생을 할 수 있었던 힘은 중학교 시절 3년 동안 서울신문을 정독했다는 것에서 나왔다 확신합니다. / 그런데 저보다 더 한 사람이 있었네요. 《러시아혁명사》를 쓴 김학준 교수. 서울대 교수와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분입니다. 이 분은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동아일보를 읽었다 하네요. 만약 국민학교 4학년 때 이 사실을 알았거나 누가 국민학생도 신문을 읽으면 좋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더라면 저는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서울)신문을 읽었을 것입니다. ★요컨대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젊은 시절 양적으로 많이 읽거나 남과 다른 지적 체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 (c) <1999년 모교 통번역대학원 교수로 임용된 후 20여 년 동안 제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통역을 잘하고 싶으면 종이 신문을 구독하라”는 것이다. “아침에 종이 신문을 읽지 않으면 학교에 오지 말라”는 말까지 한다. 파리 통역대학원 유학 시절, 교수들이 “우선 원문을 이해해야 통역을 할 수 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얘기했을 때 처음에는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통역대학원에 입학한 20대 중반은 아직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를 때다. 하지만 젊은 통역사들이 상대하는 사람은 각 분야에서 수십 년 활동한 국내외 전문가들이다. 어떤 언어를 통역하든 그들과의 지식 격차를 가장 빨리 메우는 방법은 종이 신문 읽기라는 것을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신문 구독률은 6.4%에 그치고 있다. ‘집에서 종이 신문을 정기 구독하고 있느냐’는 문항에 대한 응답률이다. 신문 구독률은 2000년대 네이버 등 포털의 ‘공짜 뉴스’가 등장하고, 2009년 스마트폰이 본격 등장한 이후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더구나 현 대학원생은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2030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아닌가. 나는 그들에게 인터넷으로 보는 뉴스와 종이 신문 뉴스는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인터넷에서는 본인이 보고 싶은 뉴스만 보지만, 종이 신문은 좋든 싫든 통역할 때 필요한 세상일을 깔끔하게 편집해 보여준다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데 가장 싸고 효율적인 방법은 종이 신문 읽기다. 모르는 내용은 들리지 않는다. 거의 모든 세상일을 해설해주는 신문이야말로 최고의 통역 참고서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손에 들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이 종이 신문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2020년 11월 26일 조선일보. 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명예교수의 글 <젊은이들이 종이 신문을 읽어야하는 이유>). (d) 대학 철학과에 ‘인식론’이라는 과목이 필수과목입니다. 대학 2학년 2학기 때 인식론과목이 개설되었는데 교수님이 《순수이성비판》 독일어본 원서를 교재로 삼아 강의했습니다. 《순수이성비판》 우리말 번역본을 읽어도 어렵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데 독일어로는 더 그렇겠지요. 교수님이 주요내용을 설명하고 책은 번역 해설하는 방식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저는 이것을 멋진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굉장한 지적프라이드를 느꼈습니다. 칸트 《(Kritik der reinen Vernunft)》(순수이성비판) 독일어 원서를 읽었다는. 이런 지적프라이드가 허상일 수 있고 착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적프라이드는 외국어 공부나 다른 공부에 엄청나게 도움 됩니다. (e) 국민학교 5학년 때 1969년, 우산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울릉군 교육장기 타기 핸드볼대회’ 예선에서 (우리) 현포국민학교는 우산국민학교와 격돌했습니다. 우산국민학교는 그 후 울릉초등학교로 개칭되었습니다. 이 핸드볼 경기에서 현포국민학교는 우산국민학교에 1:3인가 1:4인가로 패했습니다. (우산국민학교에 어른 덩치를 가진 선수가 네 사람 있었는데 그중 훗날 씨름 천하장사가 된 이준희(6학년)가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때 덩치 큰 선수가 천하장사가 될 이준희인지 김준희인지 알 턱이 없었습니다. 원래 이준희는 의성사람인데 어떤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그때 울릉도에 이사 와서 도동 연탄공장 부근에서 살았답니다. 제가 국민학교와 중학교 때 2번 경북체전에 육상선수로 출전했고 국민학교 핸드볼 시합에서 이준희와 일합을 겨루었다는 것을 근거로 저는 제가 동네수준 운동선수가 아니었다고 자랑하고 다닙니다.) / 국민학교 때 우리에게 운동을 가르쳐주신 분은 안동교대 출신 체육교사 이주탁 선생님. 선생님은 국가대표감독을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탁월한 스포츠 지도자였습니다. 이론, 실제, 합리성, 준비, 용의주도함 등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도동에 시합을 나가면 선수들이 잠자리가 바뀌어 잠을 자지 못해 내일 시합을 망쳐 놓을까봐 우리들에게 낮잠을 재우셨습니다. 그때 울릉중학교 밑 약수식당 자리에 있었던 진주여관 방에 담요를 쳐서 어둡게 해 우리가 잠자게 했습니다. 밤 같은 환경을 만들려고 한 것이지요. 낮에 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촌넘들이 읍내에 갔는데 모든 것이 신기해서 어떻게 낮에 자겠습니까. 선생님은 우리를 데리고 경기 전 날, 그 다음날 경기가 열릴 운동장 그라운드 컨디션 등을 꼼꼼히 살펴보셨습니다. / 400m 계주 연습을 할 때, 바통을 떨어뜨리는 순간 400m 이어달리기 우승은 물 건너 간다보고 육상지침서에 나와 있는 방법을 버리고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구식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즉 2,3번 주자는 오른손에 바통을 받아 왼손으로 바꿔 달리다가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안전하게 전달하는 방법. 스피드보다 안정을 택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방법으로 바통터치를 눈감고도 할 수 있도록 연습을 했구요. 울릉군민체전 국민학교부 400m 이어달리기에서 우리가 1등을 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완벽하고 세심했습니다. /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핸드볼 연습을 시킬 때 최선을 다하되 무리하지 말라는 말씀을 늘 하셨습니다. 안 되는 것을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핸드볼 공격수비 연습을 할 때 완전한 슛챤스가 아닌데 무리하게 슛를 남발하여 득점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무리하지 말라’, ‘볼을 아껴라’고 말씀하셨지요. 무엇이라도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해야지요. 우리가 무엇을 해도 이렇게 해야 되구나 싶었습니다. / 그러면서도 엄청나게 연습했습니다. 비오면 연습을 하지 않겠지 했는데 선생님은 우리를 교실에 데리고 가서 연습을 시킵디다. 현포국민학교는 군청소재지 도동에서 가장 멀리 있는 학교로 스포츠 변방의 학교였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우산국민학교와 저동국민학교는 우리 학교가 넘기 어려운 상대였지요. 스포츠 변방의 학교가 6학년 때인 1969년 당시 스포츠 종목 단골 우승학교 우산국민학교와 저동국민학교를 누르고 육상과 핸드볼에서 우승 했습니다. 그해 6월에 열린 울릉군교육장기 타기 핸드볼대회에서 저동국민학교를 9:4, 천부국민학교를 21:1로 이겼습니다. 핸드볼 결승전에서 우리 학교가 군청소재지에 있는 우산국민학교(=울릉초등학교)를 15:1로 대파하고 우승했습니다. 결승전 상대라면 실력이 대등해야할텐데 실력차가 나도 너무 났습니다. 핸드볼경기 우승까지 득점이 45점, 실점이 6점이었습니다. 그 만큼 우리는 연습을 많이 한 것이지요. / ★<공부나 다른 어떤 분야도 마찬가지인데 남보다 앞서려면 2배 정도 노력으로는 안 되고 5.5배 정도 노력하면 다른 사람보다 앞설 수 있습니다. 머리가 좋고 조건이 좋고 이런 것 다 필요 없습니다. 그때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 연습량(시간)의 5배, 연습세기(강도)의 5.5배로 연습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학교는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학교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이지요.>. 육상부문에서도 지독하게 훈련 했습니다. 연습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참 힘들었습니다. / ★우리가 선생님 밑에서 운동하면서 배운 것은 <철저한 준비>, <강도 높은 훈련>, <세심한 점검>, <무리하지 않는 여유>, <목적 달성을 위한 합리성>입니다. 저는 살면서 이런 것이 참 도움 되었더 생각합니다. ② 박완서 작가의 소설(동화)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가 미국 하버드대학교 비교문학박사인 전승희 선생에 의해 《I Am So Happy Born》으로 번역되어있습니다. 《I Am So Happy Born》은 중학생들이 읽기에 좋은 책입니다. 군데군데 그림도 들어있습니다. 영문판 《I Am So Happy Born》 서문으로 박완서 작가의 따님 호원숙 선생이 쓴 글 일부입니다. <어머니 글은 소설인 줄 알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이 꼭 어딘가 가까이 있어 안부를 묻고 싶고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게 합니다. 그 힘이 어디로부터 나오는지 알 수 없지만, 어머니께서 나누어 주고 싶은 강하고 깊은 사랑의 힘이 아니었을까요? 어머니께서 이 세상을 떠난 뒤에라도 후세에게 이 세상에 태어남 그 자체가 가장 큰 축복이라는 걸 알려주고자 하셨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또 그 축복은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합쳐져야 가능하다는 걸 보여 주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요? 브라운 박사처럼 말입니다. > ③ 재미 영어교육가 조화유 씨가 지금부터 20년 전 쯤 로마 정치가이자 장군인 줄리어스 시이저 만화책을 펴냈습니다. 그림(만화)에 영어문장이 들어 있습니다. ④ (a) 영어 구약성경에 룻기(Ruth)가 있습니다. 룻(Ruth)은 성경에 나오는 여인이고 룻기는 이야기체로 되어 있습니다. 4페이지. 영어성경은 영어공부에 어떤 다른 참고서보다 더 좋은 책입니다. 영어성경 룻기를 읽을 것입니다. ★(b) 저는 개인적으로 2015년 10월에 영어성경(NIV)(1940페이지)을 처음으로 다 읽었고 고향집에 돌아 온 2018년 9월에 영어성경을 2번째로 다 읽었습니다. 영어성경을 읽은 체험을 기록하여 제가 속해 있는 Daum ‘GEM 영어성경공부 카페(cafe.daum.net/niv-ebs)’에 올렸습니다. 카페에 글 <NIV 영어성경 완독보고>와 <NIV 영어성경 2회 완독보고>를 ‘공개’로 올렸기 때문에 카페에 로그인 하지 않고 Daum에 ‘NIV영어성경’을 검색하시면 카페글에 제가 쓴 2편 글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영어성경은 2000 페이지 쯤 되는데 그 속에는 영어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봐도 되겠습니다. 석학들이 아름답고 표준적인 영어를 사용하여 영어로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c) 저는 3번째 영어성경을 읽을 때, 책상 왼쪽에 영어성경을 놓고 오른쪽에 일본어성경을 놓고 영어 읽고 일본어 읽는 방식으로 영어성경-일본어성경을 같이 읽으려 했습니다. 시간도 10년 정도 예상하고 느긋하게 영어성경-일본어성경을 동시에 읽을 계획이었습니다. 계획을 바꿔 2년 후 2023년 가을 쯤, 영어성경을 5년 만에 3번째로 읽을 것입니다. 시간을 5년이나 단축하는 것은 영어성경 읽은 체험을 기록으로 제가 속한 영어성경카페에 보고하기 싶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제목은 가칭 <NIV 영어성경 3회 완독보고>. 그리하여 영어성경을 처음 읽거나 아직 영어성경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이 고민 없이 효과적으로 영어성경을 읽는데 도움 되도록 제가 영어성경을 읽은 경험, 방법, 요령 등을 전달해주려고 합니다. 체험은 나누고 공유해야 합니다. 제가 간 길은 뒤에 오는 사람에게 이정표가 됩니다. ★(d) 인터넷에 <영어성경공부 Handy English>를 검색하시면 영어성경(NASB. NKJV) 신약 전체, 구약 시편(Psalms)에서 말라기(Malachi)까지 동영상 강독강의가 올려져 있습니다. 또한 창세기(Genesis)에서 시작하여 현재 출애굽기(Exodus) 7장까지 동영상 강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탁월한 강의이고 멋진 영어성경 콘텐츠입니다. ⑤ 올해 2월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세계영화상을 휩쓸었습니다. 그 내용이 국내 영자신문 korea herald에 <‘Parasite’ wins Korea’s first Oscars> 기사로 소개되었습니다. / 작년 4월 29일,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정례브리핑. 정은경본부장과 질병관리본부 국민소통단 단원 자녀 7명, 경기도 어린이기자단, 대구 어린이기자단 사이에 질문과 대답이 있었습니다. 한 어린이가 코로나-19와 관련 영웅으로 떠오른 정은경본부장에게 “질병관리본부가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들을 했는데 그중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정 본부장은 “전 세계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지침을 만들고 결정하는 매 순간이 어려웠다”고 답했습니다. 또 한 어린이는 ‘어떻게 하면 정은경본부장처럼 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해 정 본부장의 미소를 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정 본부장은 “질병관리본부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고맙고 뿌듯하다”면서 “질병관리본부는 많은 사람이 어우러져있으며, 어떤 공부를 해도 기회는 다양하다”고 격려했습니다. / 이 대담은 국내 영자신문 korea herald에 <COVID-19: Kids have questions, too> 기사로 소개되었습니다. 두 아티클 합해 A4용지 5장 분량을 읽겠습니다. (질병관리본부는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되었고 따라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질병관리청장으로 보임되었습니다.) ⑥ 《Born of This Land : My Life Story》 (정주영 회장 영문 자서전 : 이 땅에 태어나서). 책에 정주영 회장측이 영국은행으로부터 현대조선소를 지을 돈을 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은행 측에서 돈 빌리는 사람이 돈을 갚을 능력이나 잠재력을 의심했습니다. 정주영 회장이 거북선 그림이 있는 500원 짜리 지폐를 꺼내놓으면서 “이것이 우리 거북선이오. 당신네 영국 조선(shipbuiling)역사는 1800년대부터라 알고 있는데, 우리는 벌써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거북선)을 만들어 일본을 혼낸 민족이오. 우리가 당신네보다 300년이나 배 만드는 역사가 앞서 있소. 다만 그 후 쇄국정책으로 산업화가 늦어져 국민의 능력과 아이디어가 녹슬었을 뿐 우리의 잠재력은 고스란히 그대로 있소”라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또 정주영 회장 측이 낸 탁월한 사업계획서를 보고 은행 측이 “정 회장 전공이 경영학입니까, 공학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정주영 회장은 국민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 정주영 회장은 그 전날 관광하다 옥스포드 대학 졸업식 본 것이 생각나서 “어제 내가 그 사업계획서를 들고 옥스퍼드 대학에 갔더니 한 번 척 들쳐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주더군요”라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은행 부총재가 껄껄 웃으며 “옥스포드 대학 경영학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그런 사업 계획서를 만들지 못 할 거요. 당신은 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합니다. 당신의 전공은 유머 같소. 우리 은행은 당신의 유머와 함께 당신의 사업계획서를 수출보증국으로 보내겠소. 행운을 빌겠소”라는 글이 나옵니다. 윗글을 포함하는 영문 5,6 페이지 텍스트를 읽을 것입니다. ⑦ 《From Pusan to Panmunjon : Wartime Memoirs of the Republic of Korea's First Four-star General 》 (부산에서 판문점까지 : 한국 최초 4성장군 백선엽(Paik Sunyeop) 한국전쟁 영문 비망록). 책 안에 낙동강방어선 다부동 전투에서 <부대 선두가 먼저 자리에 앉자 쫓겨 내려오던 후속 부대원들도 한곳에 다 모였다. 처절하게 버티다 내려온 부대원들의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모두 꺼냈다. "지금까지 정말 잘 싸웠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물러설 곳이 없다. 여기서 밀린다면 우리는 바다에 빠져야 한다. 저 아래에 미군들이 있다. 우리가 밀리면 저들도 철수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끝이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쏴라(I shall be at the front. If I turn back, shoot me.). 나를 믿고 앞으로 나가서 싸우자." / 저 멀리 하늘과 산이 맞닿은 공제선으로 적들이 올라왔다가 다시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 둘, 점차 그 수가 많아지고 있었다. 나는 옆구리에서 내 권총을 빼 들었다. 나는 적들이 넘어오는 산봉우리를 보면서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부대원들이 앉아 있는 대열 한가운데를 가르면서 뛰어나갔다. 내가 대열의 가장 앞에 섰다. 부대원들이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 뒤에서 함성이 일고 있었다.... 계속 그 산길을 뛰어올랐다. 숨이 다시 찼다. 300미터쯤 올랐을까....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사단장님, 이제 그만 나오세요. 우리가 앞장서겠습니다." 내 부하들이 나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들은 포탄이 넘나드는 그곳을 향해 쏜살같이 앞으로 나갔다.>는 글이 있습니다. 이 부분 앞뒤로 3,4페이지 되는 영어문장을 독해하겠습니다. ⑧ 《어린왕자(The Little Prince)》. ‘내 비밀은 이런 거야. 매우 간단한 거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란다.’, ‘사막은 아름다와.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해.’, ‘나를 길들여줘...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그러나 만일, 네가 무턱대고 아무 때나 찾아오면 난 언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르니까...’, ‘만약 어른들에게 “창문에는 제라늄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아름다운 장밋빛 벽돌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하면, 어른들은 그 집을 상상해 내지 못할 거예요. “10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라고 해야 그들은 비로소 “정말 멋진 집이겠구나!”하고 탄성을 질러요’. 이런 부분을 중심으로 어린왕자 영어를 읽을 것입니다. ⑨ 알퐁소 도데 <마지막 수업(The Last Lesson)>은 우리가 1970년 대 중반 고등학교에 다닐 때 고교 3학년 영어교과서에 실려 있었습니다. 프랑스어 마지막 수업에서 아멜 선생님은 프러시아군 침략으로 학교에서 자국어인 프랑스어를 가르치지 못하게 되자 마을 사람들과 학생들이 모인 교실에서 마지막 수업을 끝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비록 국민이 노예가 된다 하더라도 자기 나라말만 잘 지키고 있으면 감옥열쇠를 쥐고 있는 것과 같다!” 5,6 페이지 영문 텍스트를 읽을 것입니다.
*8. 본문에 인용한 글은 중앙일보 2001년 5월 23일 기획특집 ‘내 마음 속의 공간 1번지’에 원병오 교수가 기고한 <‘새의 나라’로 이끈 아버지의 마법>이라는 글 뒷부분에 있습니다. 신문 글 위에는 원병오 교수 부친, 원홍구 박사 북한 새 사진 우표 사진과 늦가을 철원평야 상공을 나는 무수한 새들 사진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대구집에 갔다 신문 스크랩 속에 있는 이 글을 우연히 찾았습니다. 아들 원병오 교수는 《한국의 조류》, 《한 눈으로 보는 한국의 새》, 《자연 속의 인간》, 《천연기념물》 책 등을 저술했습니다. 원병오 교수는 같은 새박사로 유명한 윤무부 교수 스승이기도 합니다.
*9. <원홍구 박사는 이 사연을 삐라로 만들어 남한으로 날려 보낸다. 1963년 영화 씨가 K대학 생물학과 재학 중인 어느 날, 학과 학생들과 야외 실습을 위해 경기도 광주에 있는 산에 갔을 때, 한 학생이 삐라를 주웠는데 놀랍게도 영화 씨의 할아버지인 원홍구 교수가 막내아들 원병오 교수에게 보낸 편지였다. 마침 그 삐라를 원병오 교수의 제자가 주웠던 것이다. / 영화 씨는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고 있다. "내 아들 병오 보아라. 나는 너의 이름과 똑같은 동명이인이 있는 것인가라고 의아해했지만, 네가 나의 아들이라고 확신하며 이 글을 쓴다. 아들인 너에게 글을 전할 수 없어 너의 손에 닿기를 바라며 이렇게 하늘로 날려 보낸다. 내가 이북에서 새로운 새를 잡아 이름을 붙였단다. 그런데 너 또한 남한에서 똑같은 새를 잡아 이름을 지어 주었더구나. 물론 이름이 달랐지. 그때 나는 내 아들이 남한에서도 나와 같은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새들은 남북으로 막힘이 없이 자유롭게 날아다니지만 우리에겐 38선이 가로 막혀 있구나. 살아생전 우리가 다시 볼 날이 있기를 바란다." 원홍구 박사는 그리운 아들을 만나지 못하고 1970년 눈을 감는다.>. 윗글은 명지원 삼육대학교 교수가 쓴 글 <새 세상에는 국경이 없다> 입니다. 글 속에 나오는 영화 씨는 원병오 교수의 조카인데 현재 캐나다에 살고 있습니다.
*10.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은 분은 엔도 키미오, 조류학자 원홍구 원병오 부자 이야기 (정유진 이은옥 옮김, 컵앤캡, 2017년) 189쪽에서 218쪽까지 내용을 읽어보십시오.
*11. 그 후 아버지 원홍구와 아들 원병오 부자는 세계 조류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서신과 사진 등을 몰래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편지교환은 있었지만 만남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꿈에도 잊지 못하던 막내아들 이름을 부르며 1970년 10월 3일 눈을 감았습니다. 아들은 일본 학자의 전보로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북쪽을 향해 절하며 울었답니다. 그로부터 3년 뒤 원병오의 어머니는 철새 다리에서 떼어낸 가락지를 어루만지며 흐느끼다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부음은 사망 6년이 지난 뒤에야 국제학회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의 일을 회고하면서 “철새는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며 북녘의 부모님 소식을 전해 주었는데 사람은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게 가슴 아팠다.”라고 말했습니다. / 원병오는 1989년에 김일성 주석의 초청장을 받았으나 우리 정부가 ‘북한의 정치선전에 이용될 수 있다’며 방북을 허락하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02년 4월 방북한 독일의회 대표단을 통해 북측에 성묘와 학술 교류를 원하는 편지를 전달했고, 5월 17일 북한 동물학회의 초청장을 얻어냈습니다. 그는 방북에 앞서 “북한 대학에서 강의하고 남북한 학술 교류에도 기여하고 싶다”면서 “새들처럼 자유롭게 왕래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원병오는 2002년 6월 22일부터 7월 6일까지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김일성종합대학과 원산농업대학, 평양 동물원, 부모 묘소가 있는 평양 애국열사릉 등을 둘러봤습니다. / 그리고 평양에 살고 있는 조카들의 아파트에도 들러 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이 사는 집은 남한의 낡은 아파트와 비슷했고 조카들은 생기발랄했지만 윤택하게 살지는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매달 쌀 한 가마라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방북 기간에 북한 동물학연구소는 그에게 아버지가 가장 아끼던 표본이라며 백두산 특산 조류인 멧닭 한 쌍을 선물했답니다. 그 표본은 지금 경희대 자연사박물관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12. 1992년 북한 당국은 철새와 남북 부자간 사연을 기념하여 우표를 발행했습니다. 우표 왼쪽에 작은 쇠찌르레기 사진이 오른쪽에 원홍구 박사 사진이 있습니다. 아래쪽에는 <the bird flown to Dr. Won Hong Gu>(원홍구 박사에게 날아온 새)라는 영문 글자가 있습니다.
*13. 그때 아산장학금은 조건이 좋은 장학금이었습니다. 대학등록금을 내고 학용품을 살 수 있는 돈이 나왔습니다. 한 번 장학생으로 선정되면 B+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면 계속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가볍게 B+는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아산장학금으로 저는 고민 없이 공부했습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같은 것은 하지 않았습니다. 학과에서 나오는 쥐꼬리 만한 장학금이 있는데 거기에 제가 경쟁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학생이 교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재단에서 홍보차원으로 신문 1면 광고에 장학생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대학 2학년 때 부전공으로 하는 독어독문학과 수업에 갔더니 담당교수가 ‘신문에 자네 이름을 봤다’면서 격려해줍디다. 아산장학증서 전달식은 우리나라를 3개 권역 즉 영남지역, 서울경기강원 지역, 호남지역으로 나누어 했습니다. 전달식에 교양강연도 있었고 오찬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아산재단 이사장 정주영씨가 교양강연을 했습니다. / 학교 졸업 후 우리 졸업생들은 모임을 합니다. 졸업생 동문들끼리 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섯 사례입니다. 재단에서 계간잡지 <아산의 향기>를 발간하는데 저는 이 잡지를 아끼며 읽고 있습니다. 제가 도시에서 고향집으로 돌아올 때 주소변경신고를 하여 여기 울릉도에서도 기어이 잡지를 받아 봅니다. 집아이가 대학에 다닐 때 아산장학생 신청을 하면서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아버지가 학생시절 아산장학생으로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아버지는 <아산의 향기> 잡지를 귀하게 여기면서 아껴 읽고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심정을 온전히 헤아리지는 못합니다.... (자기가 어릴 때 1997년, 아산사회복지재단 20주년 기념식이 열린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회의장에 아버지 따라 가봤다는 경험도 썼더군요. 아산사회복지재단은 서울 아산병원 안에 있습니다.) 저도 아버지에 이어 아산장학금을 받고 싶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학생시절 아산장학생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면 본인에게 유리할 것으로 생각해서 그렇게 썼겠지요. 저는 내심 아들이 아산장학금을 받아 부자가 아산장학생 동문이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당장 등록금이 들어가지 않는데. 아들은 아산장학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때 아버지와 아들이 아산장학생 동문인 경우가 한 사례 있었습니다. / 제 계획 하나는 <아산의 향기> 잡지에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인 아산장학생들이 울릉도에 오면 제가 사는 집을 무료로 빌려준다는 것’을 공고해서 아산장학생 후배들이 울릉도에 다녀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졸업생 동문들은 자기가 돈을 버니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14. 우리가 대학에 들어 갈 때, 학과 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고 계열 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했습니다. 2학년이 되어 전공 학과에 진입할 때, 철학과 같이 매력이 적은 학과에 사람 5명이 진입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때 철학과 교수님 한 분이 자신이 칼럼을 쓰는 신문에 <철학은 과연 무용지물인가>라는 글을 썼습니다. 철학과에 학생 5명이 진입한 것을 두고 마음이 심난 했을까. 조금 과장되게 우리 다섯 명을 환영했습니다. 지난 여름방학, 도시 집에 갔다가 40년 전에 해둔 신문 스크랩을 찾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신문 스크랩이 삭아 고문서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글 속 5명 표현에 제가 강조하려고 <> 표시를 했습니다. : ‘팔자 좋은 사람이 철학한단다. 쓸데없는 공론을 펴는가하면 말과 개념의 장난을 일삼는 허튼 수작을 하는 자들이란다. 비생산적인 망발과 망언을 일삼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런 자들은 이 현실사회에 쓸데없는 작자들이란다. 분명 현실이 그렇다하니 뉘라서 그렇지 않다고 감히 나서서 막아설 수 있단 말인가. / 한 종합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겠다는 자는 고작 <5명>뿐이라면 참으로 역설적이긴 하지만 기쁜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수 천 명 중에서 망발할 자들은 <5명> 뿐 인 동시에 장차 실업자 녀석은 <다섯 사람> 뿐 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공계열을 전공하겠다는 고급 기사님 후보생들은 수백 명으로 강의실을 누비고 학교전체를 떠들썩하게 하며 사회에서는 고급인력으로 최대대우를 받는다. 또 졸업과 동시에 기사로 취직하여 가족들의 생활보장을 이미 하고 있다는 말이다. 정말 우리 주위엔 기술자로 가득 찼고 외화획득의 역군인 사업가로 가득 찼다. 내 생활터전은 이미 마련되었으니 근심걱정이란 얼토당토 않는 말이다. / 더구나 여학생이 철학을 한다니까 노부모들은 물론이고 사내들까지 ‘미친것’이라고 달아나는가하면 혼처에서는 ‘정상이냐?’고 먼저 묻는다. 철학하는 것은 ‘미친것’이고 ‘비정상’이라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있느냐 말이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비정상은 처음부터 <‘다섯넘>뿐이었으니깐 그럴 수밖에 없겠지. 문제가 이것으로 끝나면 오죽 좋으랴만 세상일이 그렇지 않는데서 이 <다섯 사람>이 재론되기도 한다....’
*15. ① 학생시대 때 겨울방학이면 교수연구실에서 교수님 지도로 독일어원서를 읽었습니다.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 야스퍼스 《Einführung in die Philosophie》(철학입문), 2학년 겨울방학 때 하르트만 《Zur Grundlegung der Ontologie》(존재론 기초놓기), 3학년 겨울방학에는 칸트 《Kritik der reinen Vernunft》(순수이성비판)이 교재였습니다. 이렇게 누구에게 외국어를 배우는 방식으로 외국어 공부를 하면 굉장히 좋습니다. 그 후 저는 《Zur Grundlegung der Ontologie》 독일어 원서와 일본 번역본 《存在論定礎》(존재론정초)를 책상에 놓고 두 책을 같이 읽었습니다. 그러면 독일어도 공부하고 일본어도 공부하는 것이 되지요. / ★외국어를 몇 개씩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런 방법을 취합니다. 성경을 외국어공부에 이용합니다. 성경 내용을 아니까 여러 개 새로운 언어를 익히려는 사람은 성경을 교재로 삼아 외국어를 대조하면서 공부하는 것이지요. 이를테면 라틴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라틴어 성경을 교재로 공부하는 방법. ② ★당시 부전공 제도가 있었는데 해당 학과과목 7개를 수강하고 학점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독문학과 부전공. 그러면 프랑스어는 불문학과 (혹은 사범대 불어교육학과)에 가서 학점과 관계없이 프랑스소설 등을 청강하는 것이지요. 부전공이 아니어서 학점을 신청하여 수업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불어교육학과 수업을 청강하러 갔는데 수업 첫 날, 담당교수가 학생들에게 프랑스 소설과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중 어떤 책을 교재로 할지 투표로 물어 봅디다. ★12:12로 승부가 나지 않을 상황인데 제가 사르트르 쪽에 투표함으로써 그 학기 교재는 13:12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로 선정되었습니다. 제가 프랑스소설보다 이 책에 손 든 것은 철학영역에서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가 다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수업을 참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철학과 학생이 불어교육학과에 가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프랑스어 원어로 읽은. / 제 나이 30이 훨씬 넘어,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불어학과가 생겼습니다. 아마 대학교재만 가지고 이야기하면 한국방송통신대학만큼 (대학)교재를 잘 만드는 곳이 없습니다. 저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불어학과 강의 30개 쯤 들었습니다. 대학 불어불문학과 졸업생보다 프랑스어 강의를 더 많이 들은 것이지요. 자꾸 끊임없이 외국어를 읽고 공부해야 외국어를 잘 할 수 있습니다. ③ 대학 마지막 학기인 4학년 2학기에 <독일관념론철학> 강의가 있었는데 주로 독일어 텍스트를 공부했습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시간은 각각 50분이었습니다. 마지막 기말고사 때 저는 교수님께 말씀드려 기말고사를 독일어로 작성하겠다는 말씀을 드리려했습니다. 시간을 120분 달라고 하면서. 시간을 좀 더 주면 독일어로 시험답안을 쓸 자신과 능력이 있었습니다. 결국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다른 학생들과 시간배정 시간배당 문제도 있고 해서. 다른 학생들이 저를 미워할 수도 있고. 그때 기말고사를 독일어로 작성 하겠다 교수님께 말씀드렸다면 아마 교수님이 저를 칭찬했을 것입니다. 저는 철학과가 생기고 시험답안을 독일어로 작성한 학생 1호가 되는 것이구요. / 대학원 박사과정 입학고사에 전공시험, 제1외국어(영어) 시험과 제2외국어 시험이 있습니다. 저는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봤고 물론 통과했습니다. 박사과정 졸업 예비시험에 전공시험과 외국어 시험이 있습니다. 여기도 제1외국어 영어와 제2외국어가 부과됩니다. 저는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보았고 물론 통과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제2외국어를 하나하기 때문에 입학시험과 졸업예비시험에 같은 제2외국어 하나를 봅니다. 저는 제2외국어 3개를 공부했으니 박사과정 졸업예비시험에 다른 외국어 즉 프랑스어를 택해 통과했던 것이지요. 그때 저는 만용을 부려 학교당국에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예비시험 제2외국어 하나를 더 보겠다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일본어. 학교행정 시험관련 절차에 이 경우 제2외국어는 하나만 통과하면 되니까 제2외국어 2개는 불필요하지요. 이런 이야기를 학교당국에 했다면 학교당국은 ‘별 미친 넘 다 있네’ 이렇게 이야기 했겠지요. 제가 공부한 제2외국어 남은 하나 일본어 실력을 검증받는 동시에 외국어 4개를 한다고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 철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에서는 수업에서는 독일어 텍스트가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저는 학부시절 부전공도 독어독문학과에서 했고 독일어로 된 텍스트를 마르고 닳도록 읽었으니까 수업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철학전공을 하지 않고 타과에서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독일어 기초도 배우지 않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석사과정 첫 학기에 독일어 텍스트를 사용하니까 속수무책 쩔쩔 맵디다. 2학기가 되어 역시 독일어 텍스트가 사용되는 수업에서 그런대로 잘 따라 왔습니다. 방학 동안 독일어 공부에 집중했겠지요. ★외국어 공부에서 절실함, 긴장, 무모함, 공격적 태도, 압도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외국 가서 공부하거나 살면 외국어 모르면 밥도 얻어먹지 못할 것이고 선생이 부과하는 과제가 무언지 몰라 과제도 완성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외국어 공부하지 않을 수 없지요. 과감하게 공격적으로 외국어 공부에 뛰어 들 것,
*16. 학생시절, 저는 사회 각 분야 저명한 인사들이 젊은 청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어떻게 공부해야하는지를 조언해주는 책을 읽은 적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대학을 마치고 우리나라에서 철학교수를 하다가 언론인으로 변신한 분이 자기가 젊은 시절 외국어 공부를 한 경험을 썼더군요.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양장본으로 된 책이었습니다. 외국어 공부를 하는데 이 책을 만나서 들은 조언이 참 도움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어떤 시점에서 좋은 책이나 사람을 만나는 것은 공부나 미래에 큰 도움이 됩니다.). 책에 따르면, 방학이 되어 두툼한 영어원서 한 권을 가지고 산 속 암자나 고향집에 가서 다른 것은 읽지 않고 사전 찾아가면서 그것만 읽고 나면 영어실력이 엄청나게 향상된다는 것. 저도 그렇게 했습니다. /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울릉도집에 영어원서 Bury 《A History of Freedom of Thougt》(사상자유에 관한 역사)를 가지고 와서 영어사전 찾아가면서 읽었습니다. 2학년 때 울릉도 집으로 귀향할 때 독일어 원서 카를 야스퍼스 《Einführung in die Philosophie》(철학입문)를 읽었구요. 대학 3학년 여름방학 때는 일본어문법책을 한 권 가지고 귀향했고 1개월 만에 그것을 다 읽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울릉국민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계셔서 도동 교장사택에 살았습니다. 저는 주로 울릉교육지원청 자리 울릉도서관(현재 섬초롱 도서관)에 가서 전공공부를 했습니다. 대학 4학년여름방학 때는 대학원 시험준비로 바빠 고향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대학 1학년 때 버트란드 러셀, 《The Problems of Philosopy》(철학의 여러 문제들)를 혼자 읽었습니다. 자기만 읽을 영어원서 한 권을 골라 쉬지 않고 읽는 것은 영어실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 됩니다. 이런 체험은 중요합니다. 이런 체험을 많이 하다보면 다른 나라 철학서적을 우리말 서적 읽듯이 읽게 되는 것이지요. 집아이가 중학교 때 강원도 횡성에 있는 민족사관고등학교를 같이 방문한 적 있습니다. 2학년 여학생이 두툼한 영어소설 한 권을 들고 지나갑디다.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여학생에 다가가 무슨 책을 읽는지 물어봤습니다. Alex Haley, 《Roots : The Saga of an American Family》. 노예로 팔려진 흑인들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다룬 소설. 우리가 고등학교 때인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킨 책. ★그 여학생 뿐만 아니라 당시 외국어고등학교 학생들이 다 그런 식으로 영어공부에 도움 되거나 평소 읽고 싶은 영어소설을 읽었습니다. 다른 전문서적보다 소설이 아무래도 쉽게 읽혀지니까 영어소설을 택해 양적으로 많이 읽어서 영어독해력을 기우는 것이지요.
*17. ① 학생시절 우리 철학과 교수들은 외국어 천재들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9개 외국어를 하시더만요. 어떤 분은 미국사람이 쓴 영어를 고쳐주기도 합디다. 말은 미국사람들보다 못하겠지만 글은 미국사람보다 더 잘 쓰는 것이지요. 대학 1학년 봄, 분담지도교수 연구실에 갔는데 서가에 꽂힌 두툼한 독일어 원서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도 독일어를 잘해서 저런 책을 읽어야지. 이런 자극이 필요합니다. / 같은 시기에 한 번은 국어학을 전공하는 교수연구실에 갔는데 그 분이 국어학 연구를 위해 만주어 사본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청병들이 뭐라 뭐라 하던 그 말. 지금은 사어가 되어 사용하지 않는 말. 지금도 연구실에 간 그날 기억이 생생한데 만주어 사본을 본 체험은 그 후 외국어 공부에 신선한 자극이 되었습니다. ② 대학시절 지도교수 강의는 명강이었고 따라 적으면 그것이 바로 책이 될 정도였습니다. 제가 따라 적으면 70% 밖에 적을 수 없었습니다. 아쉬웠습니다. 저 귀한 강의내용을 다 주워 담아야하는데. 속기를 배워야하나. ★<녹음기로 교수님 강의를 녹음하자>. (그때, 의과대학 학생들은 교수강의를 녹음하여 집에서 다시 재생 하여 강의를 듣는다고 합디다.). 커다란 녹음기를 학교에 들고 다니면서 교수님 강의를 녹음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1시간짜리 강의 기준으로 하면 수없이 뒤로 되감기 되감기하여 노트에 강의내용을 옮겨 적으면 4시간에서 4시간 30분 걸립니다. 교수님 강의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의 강의 음성은 제자에 의해 종이에 옮겨져 책이 되는 것이지요. / 지도교수님은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그 분 만큼 글 잘 쓰는 사람을 아직 본 적 없었습니다. 천재적인 외국어 실력하며. 저는 그런 스승 밑에서 공부한 것을 큰 행운으로 큰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지도교수와 관련하여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임진왜란 노량해전에서 군관 이영남(유태웅 분)이 중상을 입고 숨지기 직전, 충무공(김명민 분)에게 안겨 “제가 가장 두려워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장군입니다”, “제가 가장 존경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장군입니다”, “제가 가장 닮고 싶었던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장군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군관 이영남은 절명합니다. ③ ★제가 교수님 학부강의를 혼자 녹음기로 녹취할 때 거의 같은 시기 우리나라 또 다른 곳에서 대학원 학생들이 대학원강의를 녹음기 2대로 녹취한 것이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그리스 철학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서울대 박홍규 교수. 교수로 논문을 쓰거나 책을 출판하는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뛰어난 제자(학자)를 양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분. 교수의 탁월한 대학원 강의 내용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제자들이 교수-제자의 철학토론을 녹음하기 시작합니다. / 박 교수가 작고한 다음 제자들이 자기가 담당한 부분 녹음테이프를 녹음기에서 재생시켜 녹취합니다. 교수가 하는 수업이 메모나 노트를 보고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생각한대로 나오는 대로 토론하는 형태이니까 수업과정을 녹음해도 완전한 문장이나 글이 되지 않습니다. 녹음된 음성을 글로 옮겨도 거친 글을 다듬고 고쳐 완전한 글을 만드는 과정 즉 윤문과정이 필요합니다. (그에 비해 제가 교수님 강의을 녹음해서 옮겨 쓰면 바로 책이 될 정도였습니다. 학생시절부터 제 지도교수를 보면 우리는 아무리 공부해도 저분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절망했습니다. 제 지도교수 만큼 공부 잘 하고 강의 잘 하는 분을 본 적 없습니다. 제가 그분 강의음성 금싸라기 같은 강의음성이 사라지는 것이 참을 수 없어 강의를 녹음한 것을 보면.). 그런 과정을 거쳐 《박홍규전집》 5권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드물고 고귀한 책입니다. / 거기에는 스승-제자 간 철학적 토론이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2500년 전 쓰여진 플라톤 대화편(책)이 대화로 되어 있습니다. 역시 《박홍규전집》도 철학적 대화로 되어 있습니다. 《박홍규전집》 중 《형이상학 강의 2》에 나오는 대화입니다. <박홍규 : 하이데거가 아니라 헤겔이 그래. 헤겔의 논리학을 보면, 존재에서 출발하는데, ‘존재는 무규정적이다. 따라서 무와 같다. 그러므로 존재는 존재이며 동시에 무다. 그러니까 운동이 나온다’는 거야. 그런데 무규정적이라고 하면 존재라고 할 수도 없고, 무라고 할 수도 없고, 도대체 무규정적이란 말도 못해. 요컨대! 그러니까 종합이란 말도 못해! (이태수 들어옴) 자네 이리 오게. 이리 와. 이태수 : 대만원이어서 어디.... 박홍규 : 아니. 이리 들어와. 들어오라고. 강의 시작했어. 내가 지금까지 ousia 즉 개체에 대해 얘기했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가장 중심적인 것이 자연적 세계의 개체 거든. 그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 이것>이라했고 또 <atomon> 즉 <individuum>, 쪼갤 수 없는 것이라 했어. 그리고 수에 있어서 하나라고 했어. <tode ti>라는 것은 (녹음하는 녹음테이프를 가리키며) 이렇게 지시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야. 그래서 고유명사하고 관계가 돼. 그래서 고유명사가 뭐냐 하는 걸 설명해야 돼. 그리고 또 개체에 대해 <각각(hekaston)>, <각각의 것(ta kath’ hekasta)>이라는 말도 썼어. 그리고 그 개체를 <제1존재(prote ousia)>, <가장 으뜸된 의미에서의 ousia>라 했어. 그래 놓고는 《형이상학》에 가면 형상(eidos)을 <prote ousia>라고 해. 왜 <prote ousia>가 2개가 나오느냐, 왜 <prote>라는 말을 쓰냐는 문제가 나와. <제2존재(deutera ousia)>를 가정하니까 그것에 대해서 <제1(prote)>이라는 말을 쓸 텐데 말이야. 그래서 먼저 <우시아(ousia)>를 알아야 돼. 그것을 <실체(substantia)>로 번역했지만. 라틴어에도 현대어에도 정확한 번역은 없어. <substantia>는 <기층(hypostasis)>에 해당하는 말이니까. 그건 나중에 신플라톤 학파에서 나오는 말이야. 이태수 : 지금 쓰는 말들이 전부 라틴어에서 만들어진 거죠. 박홍규 : 라틴어에서 만들어졌지. 보에티우스 당시부터 나와서 스콜라 철학으로 넘어 오거든. 이태수 : 보에티우스 이전에도 아마 있었을 겁니다. 키케로나..... 박홍규 : 아, 키케로 때도 있었을 거야. 응. 사전에 나와. 그런 것 같아. 그러나 요컨대 ‘ousia’에 대한 번역은 없어. 한문 ‘存在’도 안 되고. 그래서 존재란 뭐냐는 걸 설명하고 있는 거야.> / 대화에서 ‘(이태수 들어옴) 자네 이리오게. 이리 와’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태수는 그 당시 독일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돌아 온 신예학자. 학점으로 수업을 듣는 제자는 물론이고 전국에 교수로 나가 있는 제자들까지 교수의 대학원 강의에 참여한 것입니다. 박교수는 일제강점기에 와세다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분인데 이분 어학수업 경력이 이채롭습니다. ★‘일본 동경에 있는 아테네 프랑세즈(어학원)에서 프랑스어, 라틴어, 희랍어를 공부했고, 조치(上智)대학 독문학과에서 독일어를 배웠다’
*18. 고교시절 개교기념일에는 학교가 쉬니까 그날, 대학 캠퍼스에 가서 철학과 강의를 한번 들어 보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대학에 가서 철학강의를 들었으면 아마 진로를 다시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철학과에 가서 공부하다보니 고교 시절 생각하던 것과 다른 것이 많았습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나온 언어분석철학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어떤 문제를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 이래 지금까지 철학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일을 하더만요. 언어학도 아닌 것이 수학도 아닌 것이. 철학에서 문제는 우리가 언어 혹은 언어규칙을 몰라 생기는 질병과 같은 것이라 합니다. 방대한 플라톤 철학을 언어분석을 통해 한 움큼 정도 양으로 분석 해체하기도 하구요. 시원하고 매력적인 면도 있지만. 기호논리학은 수학계산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 대학 1학년 신입생일 때 철학과 3,4학년 강의가 듣고 싶어 강의를 들었는데 너무 어려워 중도포기 했습니다. 대학에서 좋은 것이 참 많은데 그것은 수강료 없이 아무 강의나 마음껏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점이 너무 좋았습니다. 고교시절이나 평소 듣고 싶은 강의를 제한 없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대학 2학년 때 사학과 <동양사한문강독> 강의에 들어가 봤습니다. 교재는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으로 명말(明末)·청초(淸初) 학자 황종희(黃宗羲)의 저서입니다. / 역시 대학 1학년 때, 영문학과 교수가 토플(TOEFL)을 가르쳤는데 그 과목강의도 들었습니다. 교재는 한국말이 전혀 없었고 아마 미국에서 나온 책을 불법복제한 책이었습니다. 1학년 여학생 한 사람이 그 강의를 듣더군요. (그 여학생은 공부를 잘 했는데 불어불문학과에 진입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저기 또 있구나’. 담당교수가 자기가 바로 토플시험을 치면 몇 점쯤 맞을 수 있겠다 그런 이야기를 하더만요. / ★<강의 들으러 다니는 것의 하이라이트는 다른 대학에 좋은 강의가 있으면 들으러 다닌 것입니다. 저는 다른 대학에까지 가서 강의 들었던 것을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지금 대학생들은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대학의 자유나 낭만이 그런 것이라면 저는 그런 것이 좋았습니다.
*19. 하나 더 익히고 싶었던 언어는 한문(고전중국어)입니다. 제가 동양철학을 전공했으면 한문을 익혔겠지요. 그것도 한문도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한문을 공부할 시간도 없었지만 한문바다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기 때문에 뭍(육지)에서 구경만 했습니다. 한문 맛은 대단한데. 한문은 생략과 함축이 있습니다. 시가 그렇지요. ★영어 외에 일본어를 익혀 놓을 필요가 있다 생각합니다. 일본어는 우리말 어순과 대략 비슷하고 한자어가 들어 있어 우리말 읽는 것 같습니다. 우리말도 아닌 것이 중국어도 아닌 것이. 일본어 되게 재미있어요. / 학문하는 사람들에게 사전이 필수인데 일본어로 된 좋은 사전이 많습니다. 영어나 일본어를 잘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영어나 일본어를 통해서 세상 모든 지식을 얻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몇 1000년 전에 쓰인 글도 영어나 일본어로 다 번역이 됩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어떤 특수한 지역, 어떤 특수한 사실, 돈이 많이 들어 다른 사람이나 다른 나라에서 하지 않은 것 등에 대해서 연구하고 책을 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것들을 영어나 일본어 책을 통해서 알아 낼 수 있습니다.
*20. ‘운동권 일본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 70,80년 대 학생운동을 하던 청년들이 며칠 만에 일본어를 익혀 일본말로 번역된 사회과학책을 읽는 방식으로 일본어를 공부하는 방법. 운동권 청년들은 일본어 문법책을 바로 떼고 2박3일 만에 일본어 책을 읽게 되는 것이지요. 당시 금서인 《자본》이나 다른 서적 세미나를 하고 그런 과정을 거쳐 이론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번역된 《자본》이 없었기 때문에 일역본 《자본》 등을 숨어서 읽으려고 이런 외국어 학습방법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일본어를 엄격하고 정밀하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에 써 먹어야 하는 목적으로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또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일본어가 우리말과 대략 어순이 같다는 점에도 있습니다. 한자어를 알고 초보적인 일본어 문법 실력만 있으면 일본어를 읽을 수 있습니다. / 소설 《지리산》에 일제강점기 때 학병과 징용을 피해 지리산으로 들어갔던 사람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에 지식인 권창혁이 청년 박태영에게 독일어 원서 《자본(DAS KAPITAL)》을 가르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보통 《자본》을 읽고 공산주의자가 되는데 오히려 권창혁 생각은 박태영이 《자본》을 읽고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독일어 문법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DAS KAPITAL)》이라는 텍스트을 통해서 독일어 문법을 익혀 가는 방식을 택한 것이지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외국어를 배우는 데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과감하게 뛰어 들라는 것입니다. / (소설 《지리산》은 1989년 kbs 대하드라마 <지리산>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탤렌트 전광열, 김성겸, 정욱, 배종옥, 신혜수, 이순재, 조민수 씨 등 여러분이 나옵니다.) 여기에 권창혁 동경외국어대 동기생으로 나오는 하영근은 1938년, 진주자택에 장서 3만권을 쌓아두고 병든 몸을 눕히고 있었습니다. 박태영은 그곳을 자주 찾았고 그런 계기로 권창혁을 알게 됩니다. 학병과 징용을 피해 지리산에 박태영이 들어가자 박태영을 아끼던 하영근이 권창혁을 지리산으로 보냅니다. 시간이 흘러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이 후퇴하게 되자 박태영은 지리산으로 들어가 파르티잔이 됩니다. 휴전회담이 끝나자 지리산 파르티잔은 북한으로부터 버려집니다. 박태영은 여성 파르티잔과 더불어 지리산 마지막 3명 파르티잔으로 남습니다. 어느 혹독한 겨울밤, 여성 파르티잔이 맹장염에 걸리자 박태영은 여성 파르티잔을 업고 함양의원으로 찾아듭니다. 시골 병원장 역으로 배우 신구씨가 나오는데 병원장이 양초가 있는 대로 다 가져오라하여 양초를 켜고 맹장수술을 합니다. / 병원 탁자 위에, 영어로 번역된 로마철학자 세네카의 책이 있었습니다. 시골 병원장이 읽고 있던 책이었겠지요. 여성 파르티잔 환자(이미경 분. 탤렌트 이미경 씨는 2004년 4월, 폐암으로 투병하다 타계했습니다.)가 회복을 위해 병원에 머무는 동안 박태영(박진성 분)이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옵니다. 병원장이 그 책을 가져가라고 합니다. 박태영은 쓸쓸히 미소 지으며 그러지 않겠노라 했습니다. 파르티잔들이 수술비를 주고 갔는데 그 돈은 화폐개혁 전 화폐라 사용할 수 없게 되었구요. / 같은 드라마에 이 보다 먼저 파르티잔들이 해인사에 보급투쟁을 나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파르티잔들이 해인사에 요양 중인 유태림(정보석 분)을 잡아 산으로 들어갑니다. 유태림은 박태영의 진주중학교 선배인데 보급투쟁에 나섰던 박태영은 그런 사실을 밝히지 않고 유태림을 돕습니다. 유태림이 끌려가고 가족이 절방을 정리하는데 거기 여러 책 중에 Cassell의 라틴어사전이 나옵니다. 《Cassell’s Latin Dictionary》. 대학 1학년 2학기 때, 학교에서 라틴어 강좌가 개설되어 저는 한 학기 기초라틴어 공부를 한 적 있습니다. 그때 담당교수(철학과 소속)가 《Cassell’s Latin Dictionary》 사전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이 책은 당시 우리나라에 해적판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요즘은 저작권법 등이 있어 외국도서를 무단으로 복제하여 판매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그때는 우리나라에서 제한 없이 외국서적을 복제하여 판매했습니다. 저에게 <지리산> 드라마에 나왔던 세네카 영어원서, 《Cassell’s Latin Dictionary》가 눈에 어른거립니다.
*21. ① 저는 영어로 쓰이거나 번역된 책을 즐겨 읽습니다. 읽은 책 중 《Animal Farm》, 《The Little Prince》, 《The Giver》가 있습니다. 인터넷을 보니 책 해설 동영상 강의가 있었습니다. 저는 동영상 강의를 따라 이 책들을 2번째로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The Giver》는 제가 일하는 중학교 도서관에도 소장되어 있더군요. 역시 인터넷에 《The Myth of Sisyphus》, 《The Alchemist》, 《Thus Spoke Zarathustra》 해설 동영상이 올려져있습니다. 저는 현재 동영상 강의에 따라 이 책들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외국어 공부를 하거나 외국어로 쓰인 책을 읽을 때 같이 읽거나 강의를 듣는 것이 좋습니다. 혼자 읽으면 며칠 못가서 중도포기하게 됩니다. 인터넷에 해리포터(《HARRY POTTERT》) 동영상 강의가 있습니다. ②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과 신현욱 교수가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주홍글자(The Scarlet Letter)》 전권을 끝까지 주해하고 녹음한 책 2권을 펴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를 구입하면 책과 함께 37시간 분량 음성파일을 받을 수 있고 《주홍글자(The Scarlet Letter)》를 구입하면 역시 책과 함께 78시간 분량 음성파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음성파일은 대단히 귀하고 드문 자료입니다. 대학 강의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철학과에서 ‘철학원전강독’이나 영어영문학과에서 ‘미국소설의 이해’와 같은 강의에서 해당교재 2,30 페이지 겨우 읽고 끝납니다. 그런데 저 책에 대해서 담당교수가 마지막 페이지까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저 책 번역본을 읽을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음성파일 강의를 잘 들으면 영어원서로 책을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는 영어로 읽었습니다. 지금 음성파일 강의를 들으면서 2번째로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를 읽고 있습니다. chapter1을 끝내고 chapter2에 들어가 있습니다. 순항 중입니다. 이 책이 끝나면 《주홍글자(The Scarlet Letter)》로 건너갑니다. ③ 우리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대부분 학생들이 《성문종합영어》(처음에는 《정통종합영어》였음)를 읽었습니다. 지금은 《성문종합영어》가 수능시험 공부 등에 적합하지 않다 해서 사람들이 크게 찾지 않습니다. 책을 펴낸 출판사 서평에 따르면 《성문종합영어》는 ‘가장 권위 있는 참고서이며 내용이 다양하고 충실한 것으로 신뢰받고 있습니다. 특히 독해력 향상에 좋은 참고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고교시절, 학원에 수강료를 내고 이 책을 배웠습니다. 당시 전북 어느 대학 교수인 분이 1,2년 학원에 나와 우리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강사 선생님이 영어를 잘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때 미국 포드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는데 선생님이 포드 대통령 김포공항 도착 영어 연설문을 청취하여 인쇄물로 만들어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 《성문종합영어》를 가르쳤던 강사 선생님들 중 전설적인 인물들 이야기가 떠돌고 있습니다. 수강학생들이 많아 한 달 강사 수입이 집 한 채를 살 정도가 된다든지. 수강학생이 가르쳤던 강사 선생님을 자기 어머니 다음으로 존경했다든지 하는. 지난 9월 인터넷에 ‘이기남 선생 추억의 성문종합영어 카세트 테이프 강의’라는 콘텐츠가 올려져있네요. 1970,80년대 《성문종합영어》 강사의 강의 음성을 녹음해둔 사람이 몇 10년이 지난 지금 녹음파일을 올린 것. 강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나운서 목소리 빰 치는 수준이고 강의가 참 좋습니다. 저는 요즘 학생시절 영어공부 하던 것을 편안하게 추억하면서 좋은 기분으로 녹음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④ 버트란드 러셀 《The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서양철학사)(895 페이지). 대학 2학년 1학기 때 필수과목이었던 ‘서양고대철학사’ 과목 교재였습니다. 그때 철학과 2학년 학생수가 5명. 대학원 2층 교실이 강의실이었고. 누른 색깔로 된 영어원서. 한 사람씩 영어문장을 읽고 번역하고 교수님이 관련된 내용을 설명하시고. 빛나는 시기였습니다. / 교수님은 겨울방학 때, 우리 몇 사람을 잡아 (우리는 순순히 기분 좋게 잡혀 드리고) 연구실에서 독일어로 된 철학원서를 강독해주셨습니다. 어느날 사모님이 지붕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시다 떨어져 입원하시는 바람에 며칠 수업을 못했습니다. 며칠 후 수업이 재개되던 날 제가 먼저 교수연구실에 가서 칠판에 영어, 독일어, 일본어 순으로 교수님께 위로와 고마움을 전하는 짧은 글을 썼습니다. ★<We are proud that you are our professor. Wir sind stolz darauf, dass Sie sind unser Professor. 私たちはあなたが私たちの教授であることを誇りに思っています.> (=우리는 당신이 우리 교수님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교수님이 이것을 보시고 제가 잘못 쓴 일본어 단어를 수정해주시더군요. 당신이 가르쳐준 외국어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제자가 기특했을 것입니다. 사모님 병원 입원으로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던 교수님이 되게 만족해하셨습니다. 돌아가신 교수님 생각 많이 납니다. 겨울방학 동안, 독일어 철학원서 강독이 끝나면 교수님께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 삼계탕을 사주셨습니다. 멀리 지리산이나 설악산으로 산행 할 때는 우리를 당신 아들처럼 데리고 다녔습니다. ⑤ 그런데 현재 인터넷에 러셀 《The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서양철학사) 동영상 강의가 있네요. 강의 한 단위가 1시간 10분 정도인데 62강까지 있으니 엄청난 크기의 콘텐츠인 셈입니다. (강의하시는 분은 영문학을 전공한 분인데 젊은 시절부터 철학을 독학으로 공부하셨더만요.). 이런 콘텐츠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제가 젊은 시절 읽었던 《The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를 다시 읽을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하면서 행복한 기분으로 러셀 서양철학사(《The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를 읽고 있습니다. (정민 교수가 쓴 《체수유병집(滯穗遺秉集)》 49쪽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자가 중국에 갔을 때, 묵고 있는 호텔 식당 기둥에 세로로 써서 붙인 글이 있더랍니다. ‘정리매사전일과靜裏每思前日過 한시보독소년서閑時補讀少年書’. ‘고요 속에 언제나 지난 잘못을 생각하고, 한가할 땐 젊은 날 읽던 책을 다시 읽네’.) 책 앞 빈 공간에 ‘철학과 2학년 1학기 때 ‘서양고대철학사’ 교재였던 이 책을 40년이 더 지난 2020년 가을 읽고 있다’라고 썼습니다.
*22. 외국어학원에서 일본어를 가르쳤던 강사 선생님은 일제강점기에 동경 메이지대학을 나온 분이었습니다. 주중에는 외국어학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주말에는 바다낚시를 다니더군요. 월요일 수업에 바다낚시 나간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그 분이 일본노래를 부르면서 일본어를 공부하면 일본어를 잘 할 수 있다했습니다. 저는 일본어를 전공하는 사람도 아니어서 그 이야기를 듣고 그냥 흘려버렸습니다. ① 일본노래 <오사카 시구레(大阪しぐれ)>는 한국인 2세인 미야코 하루미(都 はるみ)의 히트곡으로 1980년 2월에 싱글곡으로 발표되었던 노래입니다. 우연하게 가수 나훈아가 부른 <오사카의 늦가을 비(大阪しぐれ)>를 들었습니다. 이 노래를 중국가수 등려군(鄧麗君), 북한가수 이경숙 등 내노라하는 외국가수가 불렀습니다. 가수 나훈아 노래가 원곡자 미야코 하루미나 다른 외국가수 노래 보다 낫습디다. < ひとりで 生きてくなんて できないと (히토리데 이키테쿠난테 데키나이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고) / 泣いて すがれば ネオンが ネオンが しみる (나이테 스가레바 네온가 네온가 시미루. 울며 매달리니 네온이 네온 빛이 스며드네요) / 北の新地は おもいでばかり 雨もよう (키타노신치와 오모이데 바카리 아메모요. 키타신치는 추억뿐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한데) / 夢も ぬれます(유메모 누레마스. 꿈도 젖는군요) / ああ 大阪しぐれ(아~ 오오사카시구레. 아~ 오사카 늦가을 비) // ひとつ やふたつじゃないの ふるきずは(히토쯔야 후타쯔쟈나이노 후루키즈와. 하나 둘이 아니에요. 옛 상처는) / 噂 並木の 堂島 堂島 すずめ(우와사 나미키노 도-지마 도-지마 스즈메. 오지랖이 넓다고 소문난 도지마, 도지마 수다쟁이인) / こんな わたしで いいなら あげる 何もかも(콘나 와타시데 이이나라 아게루 나니모카모. 이런 내가 괜찮다면 드릴게요. 모든 것을) / 抱いて 下さい(다이테 쿠다사이. 안아주세요) / ああ 大阪しぐれ(아~ 오오사카시구레. 아~ 오사카 늦가을 비) / しあわせ それとも 今は 不しあわせ(시아와세 소레도모 이마와 후시아와세. 행복한가요? 아니면 지금 불행한가요?) / 醉って あなたは 曾根崎 曾根崎 あたり(욛테 아나타와 소네자키 소네자키 아타리. 술에 취한 당신은 소네자키, 소네자키 근처에 있겠지요) / つくし足りない わたしが 惡い あのひとを(쯔쿠시 타리나이 와타시가 와루이 아노히토오. 정성을 다하지 못한 내가 나빠요. 그 사람을) / 雨よ 返して(아메요 카에시테. 비여! 돌려다오) / ああ 大阪しぐれ(아~ 오오사카시구레. 아~ 오사카 늦가을 비) >. ② K-트로트가 전성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작년 sbs <트로트 신이 떴다>에서 실력있는 신인가수와 이름 덜 알려진 가수들이 경연하고 있습니다. 경연하고 있는 가수들 중 유라가 부른 <사랑의 부르스>, <간대요 글쎄>, <칠갑산>을 즐겨 듣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가수 김연자가 가수 진성의 <안동역(安東駅)>을 일본어로 부른 동영상과 가사가 있습니다. / 風に 飛ばされた 虚しい 誓いなのか (카제니 토바사레타 무나시이 치카이나노카.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 初雪の降る日 アンドン駅の前で (하쯔유키노후루히 안동에키노마에데.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 逢おうと 約束した 人 (아오-토 야쿠소쿠시타 히토.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 明け方から 降る 雪が 膝まで 積もるのに (아케가타카라 후루 유키가 히자마데 쯔모루노니.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 来ないのか。来られないのか (코나이노카 코라레나이노카.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 まだ 見えない 人よ (마다 미에나이 히토요. 오지 않는 사람아) / 切ない 私の心だけが 待ち焦がれて (세쯔나이 와타시노코코로다케가 마치코가레테. 안타까운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 汽笛さえ 消えた 夜に (키테키사에 키에타 요루니. 기적 소리 끊어진 밤에) // 夢をつないだ 愛の約束 (유메오쯔나이다 아이노야쿠소쿠. 꿈을 이어온 사랑의 약속) / 待って暮らせば 命がけ (맏테쿠라세바 이노치가케. 목숨 바쳐 기다리며 지내는 것은) / こころが 罪になる (코코로가 쯔미니나루. 마음이 형벌이에요) あんなにあんなに 燃えていたのに (안나니안나니 모에테이타노니. 그렇게 그렇게 불타 있었는데) / 来るのか来ないのか なぜなぜ来ない (쿠루노카코나이노카 나제나제코나이. 오는 걸까. 안 오는 걸까. 왜 어째서 오지 않는 걸까) / 汽車は出てゆく ただひとり... (키샤와데테유쿠 타다히토리... 기차는 떠나가고 다만 나 홀로...) / 夜更けの 安東駅で (요후케노 안동에키데. 밤 깊은 안동역에서) / 汽車は出てゆく ただひとり... (키샤와데테유쿠 타다히토리... 기차는 떠나가고 다만 나 홀로...) / 夜更けの 安東駅で (요후케노 안동에키데. 밤 깊은 안동역에서) >. 가수 김연자가 부른 <안동역(安東駅)>이나 가수 나훈아가 부른 <오사카의 늦가을 비(大阪しぐれ)>를 포함 일본노래 100곡 쯤 따라 부르면 일본어가 획기적으로 늘 것입니다.
*23. ① ★<영어문장 5형식만 알면 영어문장의 기본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5형식을 머릿속에 새겨 넣고 사전을 끊임없이 찾고 어휘를 많이 습득해야 한다. 어휘단어장을 만들어 어휘를 무조건 외어야 한다. 어학의 첩경은 미련해지는 것이다. 미련하게 공부하지 않고 어학을 잘 하려는 사람은 사기꾼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사람은 과천경마장에나 가서 어느 말이 잘 달리는가를 점치는 것이 낫다. 어학에서는 무조건 파고들어야 한다. 경마와 달리 예측대로 결과가 나온다. 10분 공부하면 10분만큼 성과를 얻어가고 100분 공부하면 100분만큼 성과를 얻어가는 것이 어학의 세계이다. 어학에는 행운도 없고 천재도 없고 둔재도 없다. 누구든지 열심히 공부하면 천재와 똑같아 진다.> (EBS 교육방송 《영어로 읽는 도올의 요한복음》 첫날 강의 중 김용옥 선생이 한 말) / 이 방법과 태도는 외국어를 공부하는 고풍스러운 방법이고 언제나 유효합니다. 원어민이 아니면 사전을 찾아봐야하고 해당 문법을 꼭 공부해야 합니다. 다만 영어문장을 빠르게 독해하는 능력을 키우는데 다른 방법이 고려될 수 있습니다. 영어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지 말고 문장맥락 속에서 그 단어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모르는 단어가 몇 개 나와도 전체 영어문장을 파악하는데 큰 지장이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말 뜻을 몰라도 사전을 찾지 않고 우리말을 읽어 내는 것과 같습니다. 모르는 영어단어가 대부분이면 처음부터 시작하여 사전을 찾아봐야 하지요. 주어진 시간에 영어를 양적으로 많이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쉬운 영어소설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영어에 자신감이 붙습니다. 이렇게 자꾸 영어를 많이 읽어야 합니다. 수학은 단계적으로 실력이 오르지만 영어는 한꺼번에 수직적으로 실력이 상승합니다. 중1 영어실력을 가진 학생이 1년 6개월 정도 집중적으로 공부하면 고3 영어실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② 영어 원어민이 아니면 영어문법은 반드시 익혀야 합니다. 특히 문장 구조와 관련된 문법사항은 알아야 영어문장 독해가 가능합니다. 다만 영어문법을 독립적으로 공부해야하는 과목처럼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문장 속에서 영어문법을 익히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원어민은 문법을 우리만큼 알지 못해도 영어를 잘 하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 1950년 대 미국으로 건너가 심리철학(philosohpy of mind) 분야 세계적 권위자가 된 사람이 김재권(Jaegwon Kim) 교수입니다. 제가 학교를 떠나기 전 마지막 학기에 심리철학 과목을 가르쳤습니다. 마지막 수업. 교재는 김재권 교수가 쓴 《심리철학》 2판 번역본을 사용했습니다. 그때 나와 있던 《philosohpy of mind》 3판(2011년) 원서를 교재로 사용하자고 학생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학생들이 영어 못 한다고 강력하게 반발하더군요. 영어책을 읽을 기회가 있으면 피하지 말고 덤벼들면 영어를 잘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기회 하나를 날려 버린 셈입니다. 미국 사람들도 김 교수가 미국인 보다 영어로 글을 더 잘 쓴다고 평가합니다. / 이 책 《philosohpy of mind》 3판(2011년) 서언(preface)에 김 교수가 강의조교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Chiwook Won, my graduate assistant at brown, has given me invaluable help, with efficiency, intellidence, and good cheer.’. 동사 다음에 목적어가 2개 나옵니다. 동사가 ‘주다(give, has given)’니까 ‘누구에게’ ‘무엇을’ 주는 것이 되겠지요. 이것을 영어문법에서는 4형식 구문이라 합니다. 영어문장 5가지 문형을 알고 있으면 문장이 바로 눈에 들어오겠지요. 5가지 영어문형을 몰라도 해석은 가능하지 싶습니다. with+명사는 부사(적으로) 해석한다고 배웠지요. 그러면 with+efficiency는 ‘효과(효율)적으로’가 되겠네요. 그것을 몰라도 with+efficiency를 부자연스럽게 ‘효과(효율성)를 가지고’라 옮겨도 됩니다. 영어문법을 너무 강조할 일은 아닙니다. 서술어(동사)가 현재완료 시제인데 문장을 보면 현재는 아닌 것이지요. 과거와 현재완료의 차이를 몰라도 문장을 먼저 과거로 해석하면 될 것입니다. 일단 뜻은 통할 것입니다. 문장에 현재완료가 사용되었으니까 주어(사람)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쭉 도움을 준 것이네요. 주어가 2개 있으니까 같은 말 동격이라 하지요. 뒤에 부사구는 그저 장식품으로 있는 셈이지요. 문장이 길어도 주어 동사만 빨리 잡아내면 그 문장은 반 이상 해석 된다 봐야 합니다. ★③ <뜻을 몰라 여쭈면 사전을 찾아보라고 하셨다. 사전에 이런 뜻으로 나와 있다고 말씀드려도 당신 눈앞에서 기어이 찾아보게 하셨다. 무슨 뜻이 있느냐고 물으셔서 이런저런 뜻이 있노라 말씀드리면 “봐! 거기 있잖나” 하셨다. 의미는 항상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곳에 숨어 있었다.... /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후 댁에 갔을 때, 하도 많이 찾아서 반 이상 말려들어간 민중서림판 《漢韓大字典》(한한대자전)을 보았다. 12책으로 된 《大漢和辭典》(대한화사전)도 손때가 절어 너덜너덜했다. (《大漢和辭典》은 동양문화의 에센스라 불리는 유명한 사전. 일본에서 출간되었는데 모로바시(諸橋轍次)사전이라 함.) 선생님도 찾고 또 찾으셨구나. 둥근 돋보기로도 한 눈을 찡그려가면서 그 깨알 같은 글씨를 찾고 또 찾으시던 모습이 떠올라 참 많이 울었다.... 학문의 길에 무슨 왕도가 있겠는가? 단순무식한 노력만 있을 뿐이다. 지금도 마음이 스산하면 선생님 사전을 쓰다듬고 냄새를 맡는다.> (정민 선생이 쓴 《스승의 옥편》에서). ★④ <외국어를 습득하는데 암송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박노자 선생(러시아인. 노르웨이 국립대학 교수)은 내가 아는 한 가장 다양하고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천재 중 천재이다. 그런데 그가 한국어를 익힌 방법은 이외로 간단하다. 북한에서 러시아로 들어오는 노동신문, 춘향전 등을 몽땅 외웠다는 것. 그런 방법으로 노르웨이어, 중국어, 한문에다 산스크리트어까지 익혔다. (허걱!) 실제로 외국어를 익히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그 나라말로 된 수준 높은 작품을 하나 골라 주구장창 소리 내어 암송하면 된다.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올 때 까지.> (고미숙 선생이 쓴 《호모 쿵푸스-공부의 달인》에서)>
*24. 이와 관련하여 정민 선생이 쓴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하버드 옌칭 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 (문학동네. 2014년)을 보십시오. ‘문예공화국’은 17,18세기 유럽 각국 인문학자들이 라틴어로 소통하던 지적공동체를 이르는 말입니다. 책 제목은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이 연행사로 갔던 청나라에서 그곳 지식인들과 공동 문어인 한문으로 소통하면서 동아시아의 문예공화국을 이뤘다는 것을 뜻합니다. 부제에서 나타난 ‘후지쓰카 컬렉션’은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 1879~1948)라는 일본인 학자가 모은 장서라는 의미입니다. / 후지쓰카는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지냈던 인물. 그는 관련 연구를 위해 엄청난 양의 서적을 중국과 조선에서 수집했습니다. 그의 아들 후지쓰카 아키나오(藤塚明直)는 전후 일본에서 생계를 위해 선친의 책을 꿰 많이 처분했고, 그 책들 일부가 미국 하버드대학교 옌칭(燕京)연구소 부속기관인 옌칭도서관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동아시아 관련 고서가 많기로 유명한 옌칭도서관은 동양학을 공부하는 학자라면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 2012년 방문학자로 옌칭연구소를 찾은 저자 정민 교수는 우연히 후지스카 컬렉션이 이곳에서 60년 간 잠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한 권 한 권 찾아내며 조선과 중국지식인들의 교류를 복원합니다. 그이는 그곳에서 우연히 후지쓰카의 전용 원고지에 필사된 책 한 권 만난 것을 계기로 다른 일은 모두 제쳐두고 본격적으로 후지쓰카 컬렉션 발굴에 뛰어들었습니다. / 책은 두 축으로 펼쳐집니다. 하나는 저자가 옌칭도서관에서 후지쓰카 컬렉션 속 책들을 찾아내며 책 의미를 탐색하는 과정입니다. 다른 축은 숙부 홍억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베이징에 간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으로부터 시작된 조선지식인들과 청나라 선비들의 우정과 소통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홍대용은 엄성(嚴誠,1732~1767), 육비(陸飛,1719~?), 반정균(潘庭筠,1742~?) 등과 우연히 만나 사귀며 ‘천애지기(天涯知己. 멀리 떨어져있어도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우정)’를 맺었습니다. 책은 특히 홍대용과 엄성의 평생에 걸친 우정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는데 두 사람의 소통이 18세기 한중 지식인 문예공화국의 주춧돌을 놓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구요. 1766년 연행의 일원으로 베이징에 갔던 33살 젊은 홍대용은 2월 초, 35살 엄성과 그 친구들(48살 육비, 25살 반정균)을 처음 만났습니다. ★<이들은 필담을 나누며 급격히 서로 이끌렸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통했던지 헤어질 적에 엄성은 “여태껏 지기를 만나보지 못했다”며 울컥 했고, 홍대용이 “끝내 헤어져야 한다면 애초 만나지 않았음만 못하다”고 하자 반정균(潘庭筠)은 아예 흐느꼈습니다. 그 한 달 동안 베이징에서 홍대용과 엄성 등은 일곱 차례나 만났습니다. 헤어진 뒤에도 계속 교분을 이어가 각기 중국과 조선에서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러나 불과 2년 뒤 엄성이 풍토병에 걸려 짧은 생애을 마감합니다. 엄성의 단짝 친구 조문조라는 사람이 조선에 있는 홍대용에게 엄성이 남긴 문집과 함께 편지로 부고를 알렸습니다. 후지쓰카가 수집한 것으로 곡절 끝에 10년 뒤 홍대용에게 닿았던 그 편지엔 엄성이 세상을 뜨기 직전 광경을 묘사한 대목이 나옵니다. “병이 위중하던 저녁, 제가 침상 곁에 앉아 있었는데, (엄성이) 그대(홍대용)의 편지를 꺼내더니 나더러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읽기를 마치자 눈물을 떨궜습니다. 이불 속에서 그대가 선물한 먹을 찾아 그 고향을 아껴 취해 향기를 맡고는 이불 속에 간직해 두었습니다. 홍대용은 답서에 이렇게 썼습니다. “철교(엄성)가 생사의 와중에 보여준 은혜와 사랑은 천륜의 형제와 다름이 없습니다.... 이처럼 알아주고 아껴줌을 입은 저 같은 사람이야 장차 무엇으로 그 심정을 표현하리까?”>. 엄성(嚴誠)과 홍대용(洪大容)의 국경을 뛰어넘은 우정은 수많은 한중지식인이 서로 얽히고설키는 관계망을 만들어나가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 18세기 청나라와 조선의 지식인들은 고전 중국어 즉 한문을 사용하여 직접 만나서는 필담을, 떨어져 있을 때는 편지로써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교류했습니다. <특히 홍대용과 엄성의 우정은 엄성이 홍대용이 선물한 먹을 가슴에 품고 그 향을 맡으며 죽었다고 하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안타깝지만 감동적입니다.>. 후지쓰카 지카시가 자신의 전용 원고지에 베껴 쓴 엄성의 『철교전집鐵橋全集』과 엄성, 육비, 반정균 세 사람의 향시(鄕試) 답안지를 따로 모아 묶은 『절강향시주권浙江?試?卷』을 만듭니다. 청나라와 조선의 지식인들이 필담한 것도 수습, 정리하여 책 형태로 만듭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18세기 청나라와 조선의 지식인들 간 지적교류와 우정을 살려냅니다. 후지쓰카 지카시는 일본에서는 주로 우편을 통해 북경 유리창의 서점에서 많은 책을 구입했습니다. 그러다가 1921~1923년 북경에 가서 청대의 원간본(原刊本) 서적 수만 권을 사들였습니다. 1926년부터 1940년까지 조선에서 수집한 것은 서적 수천 권, 서간, 서화, 탁본 1000여 점이나 된다 합니다. / 이렇게 모은 컬렉션 일부가 우여곡절 끝에 미국 하버드 대학교 옌칭도서관에 흘러들어가 안착됩니다. 후지쓰카 컬렉션이 하버드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지 않았더라면 정민 교수에 의해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은 저술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대학 도서관이 왜 있어야하는지 알고도 남습니다. 저자 정민 교수는 2019년 쓴 책 《체수유병집(滯穗遺秉集)》(글밭에서 이삭줍기)에서 이 때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후지쓰카 컬렉션을 뭉텅이로 찾아내면서 계획했던 일들을 미뤄두고 이 자료의 정리에 온전히 몰두했다. 생각하는 자료를 모두 갖춘 꿈의 도서관에서 어느 줄기를 당겨도 고구마가 줄줄이 딸려 올라오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하버드 대학에서 1920년 대 일본문화를 연구하던 한국인이 대학도서관에 1920년 대 어느 한 해 일본신문을 구입해달라는 희망도서신청을 하자 도서관에서 3억 2300만원을 들여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된 1920년 대 어느 해 1년치 신문을 구입해주더랍니다.). 미국이 학문에서도 강국이 되는 이유 또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저자 정민 교수는 후지쓰까 켈렉션 서지사항(저자,출판년도,출판사 등)이 불분명하고 켈렉션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모르고 한 권 한 권 대출했던 것이지요. 저자는 옌칭도서관에서 그의 컬렉션을 한 권 한 권 발견하여 검토할 때마다 ★<후지쓰카의 방대한 독서와 꼼꼼한 메모에 감탄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후지쓰카는 머리나 가슴이 아니라 몸으로 공부한 학자였다는 것.>. ‘그의 소장서를 보면서 느낀 것은 그가 확실히 쓰기보다는 읽기를 사랑한 학자였다는 사실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읽기만도 너무 바빠서 자신이 읽은 모든 것에 대해 미처 글로 쓸 겨를이 없었다. 한 권 한 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대조하고 메모해가며 그는 철저하게 읽고 꼼꼼하게 표시했다. (…) 책 속에 남은 후지쓰카의 메모는 모두 한 방향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한중 지식인의 문화 학술 교류의 현장이었다. 그의 그 많은 메모를 살펴보니 실제 그가 자신의 연구에서 직접 활용한 것보다는 정리만 해놓고 미처 글로 쓰지 못한 내용이 훨씬 더 많았다.’ / 정민 선생 책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 95페이지에서 97페이지까지 작은 제목이 <교실의 후지쓰카, 논어 수업광경>입니다. 여기에 후지쓰카가 얼마나 공부와 학문을 좋아했는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 ..... 그 중 하나가 일본 나고야 대학 전신인 명문 제8고등학교 교수 시절 논어 수업의 모습이다. 당시 학제는 소학교 6년, 중학교 5년, 고등학교 3년, 대학 예과 3년, 대학 학부 3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본 본토의 고등학교는 제1~8고등학교뿐이어서 전국의 수재들이 운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예과를 거치지 않고 바로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었다. 말하자면 고등학교가 대학 예과에 해당하는 교육기관이었다. 후지쓰카는 제8고의 제자들에 대해, 그들은 때리면 소리가 나는 무리였다고 늘 말하곤 했다. / 당시의 제자였던 사카모도 다로(坂本太郞)의 회고였다. <교과서는 《논어집주論語集註》였는데 글자마다 풀이해주는 강의를 받은 기억은 없어요. 그때 들었던 에피소드들은 지금도 기억납니다. 재미있는 여러 이야기로 한문세계에 끌어들이려 했던 배려였지요. 예를 들면 “공자는 어쨌든 제자를 잘 보살펴주었네. 염백우(冉伯牛)란 사람은 나병이었어!”라고 목소리를 조금 낮추어 말씀하셨고, “공자는 그 병에 걸린 염백우에게 문병을 갔지. 창으로 손을 내밀어 손을 잡고 이렇게 덕이 높은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정말로 하늘도 무정하다고 탄식 하였다네”라는 그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조금 이외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연극배우처럼 손짓 발짓을 섞고 억양까지 넣어 읽는 모습에 눈물까지 흘린 제자도 있었다고 한다. 후지쓰카는 제8고 교수 시절 아침마다 인력거를 타고 출근했다. 그는 아침형 인간이었다. 저녁식사 후에 바로 잠자리에 들어 새벽 3~4시에는 일어났다. 아침까지 공부하면 출근 시간이 임박하도록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다. 조금만 더, 한 장만 더하다가 늦을까봐 허둥지둥 인력거를 불러 타고 출근하곤 했다. / 역시 제8고 시절 제자 요시다 겐코(吉田賢抗)는 스승을 이렇게 회고했다 : <실제 강의를 들은 것은 3학년 때였다고 생각됩니다. 텍스트는 왕센첸(王先謙)의 《장자집해莊子集解》였던 것으로 기억돼요. 상해에서 출간한 석인본(石印本)을 사용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그런 것을 사용한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선생님은 몹시 감동하면 당신 혼자서 감격하고 정말로 즐거워하셨습니다. 논어 중에 ‘공자께서 즐거워하셨다’라는 장이 있습니다. 저는 정말로 후지쓰카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 그 말이 떠올랐습니다. 8고 시절의 인상입니다만, 하루는 지금 이야기 중에서 강의를 하시고, ★“자, 이것으로 수업이 끝났네. 집에 돌아가서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 하고 책장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진짜 즐거움이지”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모습이 지금도 인상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정말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와서 말한다면 그 시절에 소위 《논어論語》 중에 학문을 즐기는 안회(顔回) 같은 느낌을 우리는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리듬을 타고 《장자莊子》를 읽으셨지요. 《장자莊子》는 문장이 뛰어나니까 그 인상이 저에게는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 ★<어서 빨리 자신의 서재로 돌아가 책을 읽고 싶은 욕망을 참고 견디는 후지쓰카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각인되는 글이다. 그는 책과 공부 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다.>. 집안이 가난했던 제자가 생활 문제로 학문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망설이자, 그는 제자를 불러다놓고 “자네, 학문을 해! 시시한 정치라든가 그런 것에 타협하는 게 아니야”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 ★<1년간 후지쓰카 지카시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한 정민 교수는 옌칭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그의 컬렉션을 통해 18세기에 우리와 중국의 지식인들이 마음을 열고 소통하며 대를 이어 문화와 학술 교류의 네트워크를 이어나갔던 아름다운 광경들을 이 책에서 되살려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아름다운 우정을 들여다 볼 수 있고, 후지쓰카, 정민 교수를 통해 공부가 무엇인지 공부를 어떻게해야하는지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25. 또 공부가 무엇인지 공부는 왜 하는지를 알고 싶은 분은 다음과 같은 책을 읽어보시면 도움 될 것입니다 : 김열규, 《공부의 즐거움》 (위즈덤 하우스). 이윤기《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 (민음사). 고미숙, 《호모 쿵푸스-공부의 달인》 (그린비)
*26. 제가 50년 전 도동마을에 있는 울릉중학교에 다닐 때 배운 영어 교과서는 《Gateway to English》 였습니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도 영어 낱말에 해당하는 발음부호를 다 알아서 쓸 수 있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영어시험에 발음부호를 쓰는 것을 물어보는 줄 알았지요. 언제 어떻게 그 많은 영어 낱말 발음부호를 아는가. book 발음부호가 [buk]처럼 모음 ‘oo’는 [u]로 나는 것은 쉬운데 그밖에 낱말 발음부호는 따라 갈 수 없었습니다. 절망했습니다. 영어를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중고등학교 영어시험은 물론 토플시험에도 발음부호를 쓰라는 문제는 출제되지 않는다. 발음부호는 미국넘들이 써 주는 대로 너는 고민 없이 읽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라고 한마디만 해주었다면 절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중학교 1학년 때 울릉종합고등학교에서 수산과목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영어를 담당했습니다. 낭만적인 시대였지요. 작년 추석 1주일 전 목요일, 학교 교생선생님 영어수업 시연이 있었습니다. 교생선생님이 수업을 정말 잘하더군요. great! 교생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영어로 물으니 학생들이 알아듣고 영어로 응답하고. 오래 전 우리나라에서 말하기듣기 위주로 학교 영어수업 방향을 바꾼 것이 그날 수업에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영어수업은 그래야하느니. 저는 그날 수업을 참 잘 봤습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영어교과서에 얼굴을 파묻고 영어문장을 읽기만 했습니다. 격세지감이 있습니다.
*27. 서광스님, 돌이키는 힘 : 치유하는 금강경 읽기 (모과나무, 2016년). 35쪽
*28. ① 《The Analects of Confucius》(영어로 번역된 논어). 영어로 논어를 읽으면 흥미도 있고 분명하게 이해됩니다. 논어는 영어실력을 기르는데도 도움 됩니다. 논어 영어문장이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a) When the stables were burn down, on returning from the court, he said: "Was anyone hurt?" But he did not ask about the horses. (마구간이 불타 내려앉았는데 사람들이 소가 안에 들어있었네 마구간이 폭삭 내려앉았네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퇴청하던 공자 “사람 다쳤느냐”라 물어보고 말에 대해서는 물어 보지 않더라.) (b) The Master said: "Maeng-Jiban never boasted of himself. When he fled at the battle, he remained in the rear; but when they neared the gate, he whipped up his horses, saying 'I dare not fall behind. My horses were slow.'" (선생님이 말씀했다. 맹지반은 자기자랑 하지 않는다. 그가 전쟁에서 후퇴할 때 뒤에 처져 적을 막았다. 적을 저지한다고 늦었는데 그것을 자랑하지 않고 말이 늦어 맨 나중 안전한 성으로 들어왔다는 것. 모두 제 자랑하고 생색낸다고 바쁜데.) (c) 논어에 나오는 인상적인 부분이 있는데 이런 부분도 영어로 읽을 수 있습니다. ‘자로․ 증석․ 염유․ 공서화가 공자를 모시고 앉아 있을 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들보다 나이가 조금 많기는 하지만, 그런 것을 의식하지 말고 얘기해 보아라. 평소에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라고 하는데, 만일 너희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자로가 불쑥 나서면서 대답하였다. “제후의 나라가 큰 나라들 사이에 끼어 있어서 군대의 침략을 당하고 거기에 기근까지 이어진다 하더라도, 제가 그 나라를 다스린다면 대략 3년 만에 백성들을 용감하게 하고 또한 살아갈 방향을 알도록 하겠습니다.” 공자께서 미소 지으셨다. “구(염유)야, 너는 어찌하겠느냐?” 염유가 대답하였다. “사방 60~70리 혹은 50~60리의 땅을 제가 다스린다면, 대략 3년 만에 백성들을 풍족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곳의 예법이나 음악과 같은 것에 관해서는 군자를 기다리겠습니다.” “적(공서화)아, 너는 어찌하겠느냐?” 공서화가 대답하였다. “저는 ‘할 수 있다’고 말하기보다는, 배우고자 합니다. 종묘에서 제사 지내는 일이나 혹은 제후들이 천자를 알현할 때, 검은 예복과 예관을 갖추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점(증석)아 너는 어찌하겠느냐?” 거문고를 타는 소리가 점차 잦아들더니, 뎅그렁 하며 거문고를 밀어 놓고 일어서서 대답하였다. “세 사람이 이야기 한 것과는 다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또한 각기 자기의 뜻을 말한 것이다.” 증석이 말하였다. “늦은 봄에 봄옷을 지어 입은 뒤, 어른 5~6명, 어린 아이 6~7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을 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는 노래를 읊조리며 돌아오겠습니다.” 공자께서 감탄하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점과 함께 하련다.” (Last of all, the Master asked Tsang Hsi, "Tien, what are your wishes?" Tien, pausing as he was playing on his lute, while it was yet twanging, laid the instrument aside, and "My wishes," he said, "are different from the cherished purposes of these three gentlemen." "What harm is there in that?" said the Master; "do you also, as well as they, speak out your wishes." Tien then said, "In this, the last month of spring, with the dress of the season all complete, along with five or six young men who have assumed the cap, and six or seven boys, I would wash in the I, enjoy the breeze among the rain altars, and return home singing." The Master heaved a sigh and said, "I give my approval to Tien.")>’ ② 케빈 오록(Kevin O’Rourke)이 번역한 《Our Twisted Hero》. 2005년 민음사에서 출판된 책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뒷부분 PP.91-189에 수록되어 있는 영문 텍스트입니다. 영어공부에 안성맞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일부가 우리나라 중고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 들었습니다. 《Our Twisted Hero 》는 미국 뉴저지에 있는 페닝턴 고교 <동아시아 문학> 수업교재로 사용되었습니다.
*29. 아버지는 1991년 울릉국민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임 했습니다. 1943년부터 1991년까지 교직에 있으면서 울릉도를 떠나지 않았었습니다. 외삼촌은 1997년 울릉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임 했습니다. 1958년부터 1997년까지 교직에 있으면서 역시 울릉도를 떠나 본 적 없습니다. 두 분도 아마 가르치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을 것입니다.
*30. ★① 학생들이 수학을 공부할 때 꼭 예습을 해야 합니다. 예습 없이 동영상 강의든 학교 수업이든 간에 수업을 들을 때 그때는 이해가 되는 것 같은데 시간이 좀 지나면 별로 남는 것 없습니다. 해당 부분에서 무엇이 문제되고 어떤 점이 어려운지 어디서 막히는지 이런 것들을 학생 본인이 느낍니다. 그리고 난 다음 수업에 들어가면 그 부분에 대해 선생님 설명이 분명하게 이해됩니다. 예습을 하면 예습하는 사람은 어떤 계기나 문제를 가지게 될 것이고 본 수업에서 그것이 완전하게 해결됩니다. 예습효과는 100%입니다. 힘들고 괜찮더라도 예습해야 합니다. <복습보다 예습이 먼저>. / 수학문제 푸는 방법과 기술을 연습해서 수학문제를 보는 순간 그것에 따라 문제를 기계적으로 푸는 태도는 좋지 않습니다. 수학문제를 잘 푸는 선수가 되기보다는 수학문제에 들어있는 개념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왜 그런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과정이 중요한 것이지요. <수학문제를 풀 때 시간을 두고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수학을 공부하는데 기본이라 할 수 있고 수학공부에 있어서 큰 효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렇게 수학공부를 한 학생은 선생님처럼 다른 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쳐 줄 수도 있습니다. / 수학문제가 안 풀리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도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해답집을 참고해서 문제를 풀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나 동무에게 물어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학생들이 보통 수학문제를 풀 때 해답집을 옆에 놓고 생각 없이 대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풉니다. 이래서는 수학을 잘 하기 어렵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그때 해답집을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② 영어도 마찬가지인데 꼭 예습하고 학교수업이나 동영상 강의 등을 들어야 합니다. <영어에서도 예습효과가 엄청납니다. 학생들이 영어교과서나 참고서 영어독해력 지문을 읽을 때 처음부터 해답집을 보면 안 됩니다. 자기 힘으로 영어지문을 독해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영어지문에서 내가 어느 것을 모르고 어디서 막히는지 무엇이 문제되는지 표시하고 나중에 해답집을 봐야 그 지문이 확실하게 이해됩니다. 그러면 효과 짱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바로 해답집에 물어보지 말라는 이야깁니다. ③ 중고교 시험이나 공무원 시험에서 보통 4가지 답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나오지요. <해당 부분을 정하거나 장(chapter) 단위로 그 안에 있는 것을 공부하되 시간이 들어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자세로 공부해야 합니다. 먼저 그 안에 있는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여 어떤 문제가 나와도 틀리지 않는다는 목표를 정해야합니다.> 공부하는 방법과 관련 동양고전에 ‘심문(審問)’, ‘신사(愼思)’라는 말이 있습니다. 심문(審問)은 자세하게 질문하고 따져 보는 것을 말하고, 신사(愼思)는 꼼꼼히 생각하여 알려고 하는 것의 내적 원리와 전체적 체계을 파악하는 것을 말합니다. 심문하고 신사해야 합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긴장 없이 시간 때우는 식으로 공부하는 것은 공부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 객관식 문제에는 정답처럼 보이는 오답지를 넣기 때문에 피상적으로 공부하면 채점자가 유혹하는 그 오답지를 고르게 됩니다. 시간이 들더라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자세로 공부하면 어떤 문제가 나와도 요구하는 정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주관식 서술형 문제는 정확히 몰라도 개인기 이를테면 글 잘 쓰는 능력이 있으면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하지만 4가지 답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는 완벽하게 알아야 정답을 고를 수 있고 나아가서 문제 전체를 다 맞힐 수 있습니다. 만점(100점)이 가능 합니다. ④ 저는 학생시절부터 책이나 교과서 지면을 노트처럼 사용했습니다. 책이나 교과서에 메모도 하고 중요한 곳에는 ★★별표도 하고 줄도 긋고. 영어원서를 읽을 때 관계대명사 2중 제한용법이 나오면 관계대명사 2개에서 출발해서 선행사(과녁) 하나에 꽂이는 화살표 2개(→.→)를 책 지면 1/3을 차지하는 수준으로 크게 그립니다. / 지시대명사가 나오면 앞에 나오는 명사와 그 지시대명사를 2줄로 연결시키기도 하구요. 영어문장에 나오는 간접목적어는 독일어문법에서 3격이라 하고 직접목적어는 4격이라 합니다. 하여 간접목적어가 나오면 그 자리에 ③동그라미, 직접목적어가 나오면 ④동그라미를 써놓습니다. 영어문장에 that 목적절이 2개 나오면 앞 that절 that에 ①동그라미, 뒷 that절 that에는 ②동그라미를 붙입니다. 아래 위 여백에는 관용구 뜻도 써놓습니다. 책 읽는 순간 감동이나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여백에다 메모도 하구요. 이쯤 되면 책 지면이 어지럽게 낙서한 것처럼 됩니다. 저는 이렇게 해야 책 읽은 것 같습니다.
*30. ① (제가 우리말이나 책이 외국어로 번역된 것에 관심을 가지지만) 이렇게 어떤 나라 언어가 여러 나라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것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동해바다와 저동항이 보이는 저희집 큰방 서가에 《창백한 말》 영역본(The pale horse) 1권, 불역본(La cheval bleme) 1권, 일역본(蒼ざめた馬) 2권, 중국어본(灰色馬)+영역본(The pale horse) 1권 이렇게 5권이 한 곳에 모둠으로 있습니다. 7년 전 쯤 《창백한 말》 중국어본(灰色馬)+영어본(The pale horse) 합본(중국 안휘인민출판사)을 구했습니다. 생각나면 저는 어느 책이라도 집어 읽다가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창백한 말》 독일어본을 구하려했는데 구하지 못했습니다. 《창백한 말》 원본이 러시아어인데 러시아어를 배울 생각은 없었습니다. / 대학시절 저는 독일문학을 부전공으로 했습니다. 철학과 학생으로 독문학과 학생보다 더 열심히 독일어를 공부하던 저를 예뻐해 주시던 독문과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러시아어로 쓰인 《전쟁과 평화》 독일어번역본 같은 것을 읽으면 독일어 공부에 큰 도움 된다 하셨습니다. 다른 나라 언어를 독일어로 번역하는 번역자는 독일어 문법에 맞게 표준 독일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렇다 하신 것입니다. ② 젊은 시절, 저는 외국어로 된 전공서적을 읽으려고 외국어를 배우고 익혔습니다. 지금은 해당 외국어 문학작품을 읽기도 합니다. 저는 북면 현포리에서 태어나 안개 자욱한 날이면 향목 등대에서 들려오는 등대음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저동리 집에서 행남 등대가 바로 보입니다. 앞으로 저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To the Lighthouse》(등대로)를 원어로 읽을 생각입니다. 제가 지금 보고 있는 행남 등대와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가 다를지라도. 등대가 보이는 섬집에서 《To the Lighthouse》(등대로)를 읽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을 것입니다. ③ 한반도와 관련해서 눈길을 끄는 영문저서가 작년(2020년)에 출판되었습니다. 한국과 미국 언론이 트럼프 대통령 안보보좌관을 지냈던 존 볼턴(John Bolton) 저서 《The Room Where It Happened : A White House Memoir》(그것이 일어났던 방 : 존 볼턴 트럼프 행정부 회고록) (Simon & Schuster. 2020년 6월 23일. 592페이지)에 큰 관심을 갖고 그것을 다루고 있지요. 저도 이 책을 영어로 읽으려고 작년 6월 25일 주문했는데 7월 중순 울릉도집에 도착했네요. 제가 이 책을 읽으려하는 이유는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된 책으로 2020년에 나와 현대영어로 쓰여 졌기 때문입니다. 한미 언론이 책을 폄훼하는 것과 별도로 실력 있는 저자가 쓴 글이어서 한 번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현재 읽고 있습니다. ④ 2021년 올해 여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사샤 세이건/홍한별 역. 문학동네)라는 책이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사샤 세이건(Sasha Sagan)은 칼 세이건 따님. 칼 세이건은 유명한 책 코스모스《Cosmos》를 쓴 과학저술가. (좀 어려운 영어원서이지만 《Cosmos》는 학생들이 읽어볼 책입니다.) 저는 번역본 제목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가 아름다워 이 책 원서를 읽어 보려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어를 읽을 수 있으니까 꼭 우리말로 아니 읽어도 되지요. 하여 미국으로 책 주문했고 책이 택배로 도착했네요. 원서명. 《For Small Creatures Such as We : Rituals for Finding Meaning in Our Unlikely World 》 (Penguin Books. 2019년 10월). 현재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이 2019년 미국에서 출간된 현대영어라 저는 또한 읽어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32. 저는 일역본 《智異山》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책에 고급 한자어가 들어 있었습니다. 일본 젊은이들이 한자어가 들어있는 책을 읽을 때 우리 젊은이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한자어를 익힌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들 간 차이는 엄청납니다. 그렇게 되면 학문이나 다른 분야에서 우리는 일본 혹은 일본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한자어를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으면 학생들은 집에서라도 한자어를 공부해야합니다.>. / 학교에 있을 때 학생들이 교수 강의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한자어를 몰라서 그렇다 느꼈습니다. 우리말에 한자어가 많이 들어와 있으니 한자어를 모르면 우리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교수가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그것은 학생(들)에게 소귀에 경 읽기입니다. 한계이지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학에서 교수가 ‘타자(他者)’를 칠판에 써놓으면 학생들이 그게 아니고 ‘타짜’(노름판에서 남을 잘 속이는 재주를 가진 사람)를 잘못 쓴 것 아니냐고 한다지요. / 1970년에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때 <기술> 과목이 처음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술과목 1기생이 되는 것이지요. 직접 제도도 했습니다. 3각법 1각법이라는 용어도 있었구요. 1학년 때 수업에서 담당선생님께서 교과서에 ‘도시하라’말이 나오자 학생들에게 무슨 말이냐 물었습니다. ‘도(圖)’는 ‘그림’이고 ‘시(示)’는 ‘보여 준다’는 뜻이니까 제가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이라 대답했습니다. 정확하게 대답했다고 선생님께서 칭찬해주셨습니다. 3학년 때인 1972년, 사회과목을 공부할 때 동서 해빙무드니 브레즈네프니 하는 내용과 인물이 나왔습니다. 선생님께서 ‘해빙(解氷)’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같은 반 클라스 메이트가 ‘얼음이 녹는 것’이라 대답해서 선생님으로부터 격려를 받았습니다. 한자어를 조금만 알아도 ‘도시(圖示)’나 ‘해빙(解氷)’ 같은 말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동무는 우리 지역 평화통일자문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지역발전을 위해 큰 노력을 하는 사람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공부 잘 했고 매력 넘치는 동무였습니다.
*33. 이병주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유학을 했기 때문에 일본어를 일본사람들보다 더 잘 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1921년에서 1992년까지) 선생이 《지리산》을 바로 일본어로 썼거나 같은 말이 되지만 7권으로 나온 《지리산》을 본인이 일본어로 번역했다고 가정합시다. 지리산을 일본어로 번역한 사람은 마쓰다 노부히로(松田暢裕)로 1970년생이고 1993년에서 1994년 까지 한국 연세대한국어학당에 유학한 사람입니다. 선생이 일본어로 쓰거나 번역한 지리산과 현재 나와 있는 일본어역 《智異山》을 비교할 수 있으면 어떨가 싶습니다. 전혀 불가능한 비교이지만 제 관심과 호기심이 그렇습니다. 재미있을 것입니다.
*34. ① 작년 4월 말,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제자가 저에게 보내 온 이메일입니다. <교수님께, 교수님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세요? 제 근황을 알려 드리고 싶어서 메일을 씁니다. 교수님 제자가 드디어 어제부로 박사논문 심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적절한 조언과 따뜻한 격려 덕분에 결국은 제가 여기 까지 올 수 있었고, 이 여정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생활 정리가 되면 곧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한국에서 교수님 곧 뵐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4월29일 미스 컬럼비아 올림>. / 두 달 후 6월 말 제자는 귀국했습니다. 본문에 밝혔듯이 2학기부터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이렇게 크게 학문적 성공을 거둔 것은 가르쳤던 선생에게 큰 경사입니다. 제자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공부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저와 자기 사이에 교환한 이메일, 편지 등을 묶어 작은 책 한 권을 펴내겠다 말했습니다. ② 청출어람(excelling one’s master).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야하지요. 무술을 가르치는 스승은 수련이 끝날 즈음 연습대련에서 제자 검에 찔리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둑스승에게 바둑을 배운 제자가 그 스승을 이기는 것을 보은이라 말합니다. 제자가 잘 된 것 보면서 저는 선생을 한 사람으로 후회 없습니다. 제자 한 사람 덕분에 저는 선생을 참 잘한 사람입니다. 비록 한 사람 제자이긴 하지만 시원찮은 제자 1만 명이면 그것 어디다 쓰겠습니까. 한 사람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제자 미스컬럼비아는 선생을 한 저에게 별이나 진주 같은 존재이지요. <.... 꽃처럼 영롱한 별처럼 찬란한 진주가 되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가수 윤시내 노래 <열애>) ③ 작년 9월 말, 당직실 앞에 서있는데 지나가던 두 여학생 중 한 여학생이 저를 보고 “저 예쁘지요”라고 말하더군요. 이 얼마나 밝고 꾸밈없는 행동인가. 똑똑하게 자기를 표현할 줄 아는. 당직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 말을 걸어주는 학생이 있어 내심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 상황에 맞는 빛나는 멘트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해서 제가 밋밋하게 “참 예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동행하던 여학생이 “정말이지요”라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제가 “지금은 당직하는 아저씨지만 제가 과거에 학교 선생님 한 사람입니다. 선생님 한 사람은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고 두 여학생은 식생활관 쪽으로 갔습니다. 여기서 그때 제가 그 여학생에게 멋진 멘트로 넉넉한 반응을 보이지 못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 여학생을 다시 만나면 멋진 멘트와 폭풍 격려로 제 마음을 전해야지. / 1주일 쯤 지나서 그 여학생으로 추정되는 학생이 당직실 앞을 지나가 길래 제가 “1주일 전 쯤 저보고 ‘저 예쁘지요’라 한 학생입니까?”라고 물으니 그 학생이 “그렇습니다”라 응답했습니다. 제가 “그때는 제 말이 부족했습니다. 학생은 미스 울릉입니다. 아니 미스코리아입니다”라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학생에게 미스 울릉, 미스 코리아라 부른 이유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당직 아저씨가 지나가는 학생을 붙잡고 무엇을 길게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학교 선생님이라면 몰라도. / (학교에 있을 때, 제자가 미국 명문 컬럼비아대학교에 유학을 했는데 유학 첫 학기에 제가 보낸 이메일에서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제1 예쁘고 공부 잘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혹은 그런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그녀를 ‘미스컬럼비아’라 부르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자기가 저에게 이메일 보낼 때 ‘교수님께’로 시작하고 ‘미스컬럼비아 올림’으로 끝맺습니다. 휴대폰에 저는 제자 전화를 ‘미스 컬럼비아’로 저장합니다. 공부가 끝나 작년 봄 한국에 돌아와서 제자가 휴대폰을 바꾸었을 때 제 휴대폰에 ‘미스컬럼비아 2020’으로 저장해두었습니다. 제가 제자에게 이메일 보낼 때 ‘미스 컬럼비아께’로 시작하여 ‘아장예자훌제 선생 최지중’으로 끝맺습니다. 아장예자훌제 선생? <‘아’=아무리 생각해봐도. ‘장’=장하고. ‘예’=예쁘고. ‘자’=자랑스럽고. ‘훌’=훌륭하기까지 한. ‘제’=제자를 둔>. 40 몇 년 전 우리가 대학을 다닐 때 미국에 앤스콤(Anscombe)이라는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당시 나이가 80이 넘은 서양 여성인데도 자녀가 7,8명 있었습니다. 똑똑하고 미인이었던 80대 여성 철학자를 동료 철학자들은 앤스콤 여사(Mrs. Anscombe), 앤스콤 할머니(grandmother Anscombe)라 부르지 않고 앤스콤 양(Miss Anscombe)이라 불렀습니다. 하도 유명해서 ‘미스(Miss)’라 부른 것. <미스 앤스콤(Miss Anscombe)>. 제자가 나이와 관계없이 미스 앤스콤 같이 예쁘고 훌륭한 학자가 되라는 뜻으로 제자를 ‘미스 컬럼비아’로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 ★이제 ‘저 예쁘지요’라고 자신을 분명하게 표현한 여학생, 제자는 아니지만 이곳 고향에 있는 중학교 50년 쯤 후배가 되는 여학생에게도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미스울릉’, ‘미스코리아’라 불러 준 것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 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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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근무 마치고 퇴근하고나서 당직카페 들어오니까 선생님 글이 있네요.
5/2 정도 읽었습니다 글이 참 재밋고 우리 정서에 맞습니다 쉬었다가 끝까지 읽어 볼께요.
부분부분 읽었습니다. 내용과 관계없이 가슴이 찡합니다. 지금의 제 마음상태 때문일까요!
처제 딸, 그래도 인사성은 밝군요.
여성 파르티잔.: 사상의 노예는 되지 말아야지요.자신도 파멸, 가정도 파멸
참 대단하십니다. 이런 분이 당직 실무원 근무를 하셨다니.
주마간산 처럼 끝까지 읽기는 하였습니다. 훌륭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