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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노조 뭉친다 “이념투쟁 대신 공정-상생”
MZ세대 주축 8개 기업노조 모여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21일 출범
“기성노조 과격한 투쟁, 신뢰 잃어”
토요일인 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의 한 사무실. 평범한 복장을 한 젊은 노조위원장 8명이 모였다. LG전자, 서울교통공사 등 8개 회사에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직원들이 주축이 돼 만든 신생 노동조합 8곳을 이끄는 대표들이다. 대표 8명 중 6명이 30대다. 이들은 4시간 넘은 논의를 거쳐 8개 노조의 협의체인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출범을 결의했다. 참여 노조는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조’,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동조합’,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 한국가스공사 ‘더 코가스 노조’ 등 8곳이다. 소속 노조원은 약 5000명이며 이달 21일 공식 발대식을 열기로 했다.
지역이나 업종이 서로 다른 이들 노조의 공통점은 기존 노조의 행태에 반대하는 MZ세대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참여 노조 대표들은 지난해 두 차례 화물연대 파업, 택배노조 파업 등 과격한 방식의 투쟁이 잇따라 벌어지면서 노동계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신뢰는 하락했다고 평가했다.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노동계를 바꾸겠다며 나선 것이다. 송시영 협의회 부의장(올바른노조 위원장)은 “상급 노조가 뭘 하든, 무슨 말을 하든 우리는 관심이 없다”며 “상식의 길을 걷겠다”고 말했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이날 만든 10개 조항의 설립 결의문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개방적인 의견 수렴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조성하겠다. 지속가능하고 투명한 노동시장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협의회 측은 당장은 MZ세대, 사무직 중심이라는 틀에 갇혀 있지만, 향후 활동을 통해 참가자들을 늘리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협의회 의장을 맡은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조위원장은 “우리의 핵심 가치는 공정과 상생”이라고 강조했다.
MZ세대가 보는 노조 인식과 관련해 동아일보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함께 지난달 20∼39세 성인 남녀 6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기존 노조에 대해 ‘대립적’ ‘권위적’ ‘불법적’인 단체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의 쟁의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응답이 84.7%로 나타났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90년대 방식으로 노조 활동을 해서는 안 되며, 이념적 투쟁보다 근로자 권익이 중요하다는 젊은 세대의 생각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재희 기자, 변종국 기자
MZ노조 “한미훈련 관여, 노조 일 아니다… 정치색 빼 공감대 조성”
[MZ세대가 노조를 바꾼다]8개사 MZ노조협의회 21일 출범
기존 노조 정치행보와 거리두기
“경제 위해 투명한 노동시장 조성, 산업민주주의 실현에 최선” 결의
전문가 “노동운동, 광장서 카페로… 젊은 세대의 권리찾기 평가할만”
4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각 기업의 신생 노조 위원장들이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결의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노동조합 위원장(앞줄 오른쪽)과 송시영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위원장(앞줄 왼쪽)이 각각 의장과 부의장으로 선출됐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제공
“‘한미 연합훈련 취소’ ‘이석기(전 통합진보당 의원) 석방’ 등은 노조가 주장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송시영 서울교통공사 노조위원장)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에 참여할 8개 단체 대표가 4일 작성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설립 결의문’에는 노조에 대한 이들의 시각이 요약돼 있다. “노조는 노조에 대한 본질을 지켜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기존 노조들과 ‘거리 두기’
6일 재계 및 노동계에 따르면 설립 결의문은 모두 10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국내외 규범 준수(제1조), 노동3권 확대·실현(제4조), 조합원 복리후생 확대(제10조) 등의 조항들은 기존 노조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눈에 띄는 조항들은 ‘산업민주주의 실현’(제5조), ‘사회적 공감대 조성’(제6조), ‘투명한 노동시장 조성’(제7조) 등이다. 협의회 부의장으로 선출된 송 위원장은 “노조의 시위는 회사의 부당함을 외부로 알리려는 목적인데 정치적 구호만 나온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노조 활동이 사회적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정치 등 외부 이슈가 아닌 본질적 사항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투명한 노동시장을 강조한 대목도 있다. 이들은 제7조에서 ‘국가경쟁력 제고와 국민경제 발전을 목적으로 노사정의 협력을 통해 지속가능하고 투명한 노동시장 조성’에 대해 결의했다. 무리한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무조건 파업부터 하고 보는 대립적 노동운동은 지양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또한 MZ노조의 교섭권 획득이나 사용자 측과의 법적 분쟁 등에 대해서는 힘을 합치자는 ‘상호공동대응’도 결의문 3조에 담았다. 9조는 노동단체가 미조직된 사업장과 취업준비생 등에게 올바른 노동 지식 및 정보를 전파하자는 내용이다. 재계 관계자는 “MZ노조가 연대와 전파를 통해 세력 확장을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쉽지 않았던 협의회 구성
협의회 구성원들은 스스로 “시대의 흐름상 조직이 탄생했다”고 이야기한다. 협의회에 참여한 8개 기업 노조단체는 대부분 기존 생산직 위주의 노조 체제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받은 젊은 사무직 및 연구직들 사이에서 만들어졌다. 일명 ‘MZ(1980년 초반∼2000년 초반 출생 세대) 노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긴 것이다. 유준환 LG전자 사무직 노조위원장(협의회 의장)은 입사 3년 차로 막 서른이 된 2021년 사무직 노조를 설립했다. 당시 MZ세대답게 직장인 커뮤니티에 ‘형들, 내가 총대 멜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고 한다.
MZ노조의 상당수는 노조 활동의 핵심인 교섭권을 아직 얻지 못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근로조건과 고용 형태가 기존 노조와 다르다고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했지만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기각되곤 했다. 이 과정에서 내부 갈등이 발생하고, 신규 조합원 영입 속도도 떨어졌다. 현대자동차그룹 ‘MZ 사무직 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한 이건우 노동위원장(전 현대케피코 연구원)은 지난해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MZ노조 8곳이 힘을 합치기로 결심한 것은 불씨라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시도로 보인다. 정부 간담회에서 만난 적이 있거나, 서로 연락처를 수소문해 만난 이들은 지난해 11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를 설립하기로 뜻을 모은 뒤 세 차례 회의에 나섰다. 4일 열린 결의식은 그 결과물이다.
전문가들은 새로고침 협의회 출범을 포함한 젊은 세대들의 움직임이 새로운 노사 관계 정립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최영우 전 한국고용노동연구원 교수는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 광장 대신 카페, 이렇게 노동운동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라며 “노조가 불필요한 게 아니라, 노조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그동안 노조들의 활동은 일종의 정치적인 이슈와 너무 관련성이 높아 실질적으로 근로자 권익 향상을 보장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며 “젊은 세대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여전히 넘어야 할 산들
MZ세대 노조가 대안 세력으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적잖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시대적 열망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분간 세를 불려 나가겠지만 정부와 기업, 기존 노조와의 관계 등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은 “기업 입장에서는 MZ세대 노조가 과격해지지 않도록 소통 채널을 운영하고 주장을 일부 수용할 필요도 있는 만큼, 노사 관계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짚었다.
자신들의 직장과 관련된 문제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MZ세대 노조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들을 장기간 한울타리에 묶기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노총, 한노총이 이해관계가 다른 각 사업체 노조를 묶는 공통분모로 정치적 메시지를 활용하는 것처럼, 이들 역시 같은 길을 걸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영우 전 한국고용노동연구원 교수는 “기성 노조와 다른 독자 노선을 찾아내고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이 있어야 조직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한재희 기자, 김재형 기자
MZ노조 모임 의장 “수당-성과급 등 최대 관심사에 집중”
[MZ세대가 노조를 바꾼다]
“정치투쟁 아닌 노동 개선이 기본
나이 초월한 가치 공유가 중요
기존 노조, 우릴 배척 말았으면”
4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각 기업의 신생 노조 위원장들이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결의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노동조합 위원장(앞줄 오른쪽)과 송시영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위원장(앞줄 왼쪽)이 각각 의장과 부의장으로 선출됐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제공
“노동조합은 사업장의 조합원을 위해 존재해야 된다는 것이 기본입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노조’ 모임인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대표로 새로 선출된 유준환 의장(32·LG전자 사무직 노조위원장)이 6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유 의장은 “(정치 투쟁이 아닌) 정말 노동자를 위해 필요한 개선점을 취합해 공론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또 유 의장은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가 MZ세대 위주로 추진됐지만, ‘MZ 노조’에만 머무는 것을 경계한다고 했다. 신체 나이와 상관 없이 공정, 상생, 합리성 등의 핵심 가치관을 공유하는 노조원이라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협의회의 결의문에도 ‘확장성’이 주요 조항에 명시돼 있다.
유 의장은 입사한 지 3년 만인 2021년 LG전자 사무직 노조를 설립했다. LG전자 사무직 노조는 기존 노조들이 거리에서 투쟁을 벌였던 것과 다른 형태의 노조를 지향한다고 했다. 유 의장은 30대가 집행부의 주요 보직을 맡은 이 노조를 이끌며 초과근무수당이나 성과급 등 20, 30대 노조원들의 최대 관심사에 목소리를 집중했다고 했다.
유 의장은 새로고침 협의회를 통해 기존 노조와의 차별성에 큰 가치를 둬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사업장에 복수 노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기존 노조와의 갈등을 딛고 존재감을 내야 하는 것도 과제다. 그는 “기업 단위 사업장에서 만난 상위 단체가 신생 노조에 대해 배척하거나 거부감을 갖지 않고 같은 노동조합으로서 열린 자세로 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또 노조 활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회사와의 교섭권 획득과 관련해선 “노동시장의 공정성과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보전하기 위해 교섭창구 단일화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며 “노동조합들의 의견과 사례를 모으고 토론회를 진행하는 등 공론화에 힘을 쏟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 의장은 사용자 측을 향해서도 날을 세웠다. 그는 “(협의회에 참여하는) 위원장들 사이에서 공정의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며 “회사가 대체로 평가권 인사권을 독점하니 공정한 평가가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려면 노조가 개입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 의장은 “MZ 노조라고 하면 물리적 나이가 MZ가 아니면 가입하지 않을까 봐 걱정되기는 한다”며 “이제는 MZ들의 정체성이 다른 나이대로도 많이 확산된 만큼 나이가 아닌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한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