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노트와 이런저런 이야기
2006년 골든글로브 각본상으로 입증된 탄탄한 원작과 정교한 각색의 만남!
섬세하고 내밀한 심리묘사와 스펙터클한 스케일을 동시에 지닌 시나리오의 탄생
<브로크백 마운틴>은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유명한 소설가인 애니 프루가 1997년 뉴요커(The New Yorker)에 발표해 내셔날 매거진 어워드를 수상한 단편소설 ‘브로크백 마운틴’을 영화화한 작품. 이 소설의 시나리오화에는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래리 맥머트리와 다아아나 오사나가 참여했다. 시나리오 작가 다이아나 오사나는 잡지에 실린 단편을 우연히 발견하고 어느 순간 흐느끼며 읽기 시작해서 감정적으로 완전히 탈진하는 경험을 맛보았다고 고백했다. 오랜 세월 지속된 내밀한 감정을 압축적으로 그려낸 원작은 래리와 다이아나의 손을 거쳐 놀라울 정도로 스케일이 확장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시나리오로 거듭났다. 원작과 시나리오를 읽은 감독은 물론 배우와 스텝들은 이구동성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깊은 감동을 받았고 모두가 울었다고 고백했다.
록키 산맥의 심장에서 진행된 촬영
캐나다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알버타의 아름다움이 렌즈 안에 고스란히 잡히다
“카메라를 조금만 기울여도 광활한 풍광. 커다란 하늘이 들어왔다” – 이안 감독
이안 감독은 원작자 애니 프루와 함께 와이오밍주 곳곳을 돌아보았으며, 서부 출신의 시나리오 작가 래리 맥머트리의 안내를 받아 작품의 또 다른 배경이 되는 텍사스주 일대를 누볐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에니스와 잭의 사랑이 싹튼 마술적인 장소이며 그들의 사랑을 포용해주는 유일한 곳이다. 그들이 산을 떠나 작은 마을로 돌아갈 때, 모든 것이 그들을 다시 억압한다. 이안 감독은 미술감독, 촬영감독과 더불어 브로크백 마운틴과 강렬하게 대비되는 퇴색되고 혼란스러운 장소로서 마을을 묘사하기 위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시간과 공간의 느낌을 재현해줄 곳들을 로케이션 헌팅을 통해 발굴했고 1967년의 슈퍼마켓 장면 같은 경우는 상품 하나하나도 공들여 준비했다.
80%이상을 차지한 야외촬영은 캐나다에서 진행되었다. 2004년 5월 캐나다 알버타에서 시작. 캐나다의 록키, Cowley, Fort MacLeon, 캘거리 로케이션으로 기본촬영을 2004년 8월에 완료했다. 록키 산맥의 날씨는 통제 불가능! 시나리오 작가이자 프로듀서인 다이아나 오사나는 날씨가 정말 15분마다 변했다고 전해준다. 아침에는 매섭게 춥다가 오후면 뜨거운 태양을 견뎌야하는 식인데다 진눈깨비, 우박도 감수해야 했지만 모두가 한 마디 불평 없이 이 아름다운 영화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모든 정열을 바쳤다고. 이안 감독의 모든 작품을 함께 한 프로듀서 제임스 샤무스 역시 <브로크백 마운틴>을 가장 즐겁게 찍은 영화라고 말했다.
2006년 골든글로브 주제가상에 빛나는, 아카데미 수상 작곡가 구스타보 산타올라야의 오리지날 스코어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의 연가
가슴이 저려올 정도로 심금을 울리는 음악은 이 영화의 또다른 매력이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로 아카데미상을 거머쥐며 세계적인 영화음악가로 떠오른 구스타보 산타올라야의 구슬프고 애잔한 음악은 에니스와 잭의 가슴저리도록 애절한 사랑의 느낌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죽음을 초월하여 20년을 한결같이 사랑했던 에니스와 잭의 위대한 러브스토리를 기가막힐 정도로 효과적으로 표현해낸, 2006년 골든글로브 주제가상 부문의 수상곡 ‘A Love That Will Never Grow Old’ (구스타보 산타올라야 작곡, 버니 토핑 작사, 에밀루 해리스 노래)를 비롯한 이 영화의 애잔한 노래들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는다.
씨네21 리뷰
세상에는 이런 사랑도 있다. 20여년 동안 간간이 만남을 이어나가면서도 각자의 가정을 버리지 않았던 두 사람이 끝내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하는. 1963년 와이오밍의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양을 방목하며 한철을 함께 보낸 두 카우보이, 에니스 델 마(히스 레저)와 잭 트위스트(제이크 질렌홀). 자연의 숭고함을 배경으로 시작된 이들의 사랑을 그리기 위해 리안 감독(<와호장룡> <헐크>)은, 그 어떤 사랑의 밀어보다 애틋한 생략법을 구사한다. 제62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이며 올해 아카데미 영화상 최다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위대한 사랑 이야기, 이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애니 프루 - 원작자
<브로크백 마운틴>은 퓰리처상 수상 작가 애니 프루의 단편 소설집 <Close Range: Wyoming Stories>에 수록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뒤 잡지에 논픽션을 기고하다가 소설가로 전향한 애니 프루의 소설은 북미 시골을 배경으로 하며, 구체적인 환경 속에서 인물의 생생한 캐릭터를 만들어간다. <Close Range…>는 와이오밍을 배경으로, 미국 서부에 대한 독특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면서, 하나같이 가슴 저릿한 결론을 지닌 11편의 단편소설을 수록하고 있다.
로드리고 프리에토 - 촬영감독
모든 것이 한편의 동양화처럼 정제된 영화의 분위기를 완성한 것은 멕시코 출신 촬영감독 로드리고 프리에토의 몫이었다. <아모레스 페로스> <8마일> <21그램> <알렉산더> 등 멕시코영화부터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까지 다양한 영화의 비주얼을 책임진 그의 촬영은, 불같이 뜨거운 인물의 감정을 전달해왔다. 그의 작품 중 외적으로 가장 정적으로 보이는 <브로크백 마운틴>에는, 미처 표현하지 못한 절절한 사랑의 흔적이 선연하다.
구스타보 산타올라야 - 음악감독
서정적인 기타 선율로 시작한 영화는, 밥 딜런의 <He Was A Friend Of Mine>과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The Maker Makes>로 끝맺는다. 주인공의 사랑을 감싸는 사려깊은 멜로디가 인상적인 영화 속 음악을 담당한 것은 구스타보 산타올라야. <21그램>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의 음악감독이었던 그는, 주제가 <A Love That Will Never Grow Old>로 올해 골든 글로브 주제가상을 받았다. 들을수록 쓸쓸한 기타음악, 곱씹을수록 담백하고 애잔한 사랑이 떠오르는 가사가 인상적인 포크 음악들이 수록된 영화의 O.S.T는 오는 2월 발매 예정. 글 오정연 2006-02-23
씨네21 리뷰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홀)은 로키 산맥 ‘어디쯤’에 자리한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수천 마리의 양떼를 방목하는 일에 고용된 스무살의 청년들이다. 그들은 익스트림 롱숏으로 포착된 풍경 속에서 인간이 아닌 자연의 일부가 된다. 그들은 뒤뚱이며 걸어가는 양이자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가지이고, 헐겁게 출렁이며 흘러가는 강물이기도 하다. 자연과 인간의 이분법적 구분이 사라진 ‘브로크백 마운틴’은 스스로가 이성애자임을 의심하지 않았던 에니스와 잭에게 동성애라는 낯선 사랑을 선물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감정의 실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갑작스레’ 사랑하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들은 그 감정에 있어 성숙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계산적이지 않을 수 있는 어린아이이다(이는 은유가 아니다).
잭과 애니스에게 찾아온 사랑이란, 거부할 수 없는 힘이 그들을 휘어감는 ‘순간적인 매혹’이라는 면에서 미학적 대상이다. 섬광과도 같은 순간의 힘이 미학적인 사랑의 출발점일 수는 있으나, 그 관계의 지속은 미학이 아닌 윤리학의 영역에 위치하고, 사랑이란 미학과 윤리학의 변증법 속에서 완성되는 법이다. 이러한 면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이 보여주는 20년간에 걸친 에니스와 잭의 삶의 궤적은 미학적 매혹의 순간이 윤리적 지속에 실패한 사랑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정한석이 지적한 것처럼(<씨네21> 541호), 리안의 영화는 인물(들)이 감추어놓은 ‘비밀’이 서사의 중심을 이루곤 하는데, 비밀에 대한 인물들의 태도가 관계의 지속과 실패를 결정짓는 윤리의 영역과 맞닿는다. 이 비밀의 공개를 낭만적으로 해결하는 초기 영화들과 다르게(그렇다고 그의 영화가 완전한 해피엔딩이었던 것은 아니다. <결혼 피로연>의 엔딩에서 ‘두팔 들어’ 항복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상기하라), 할리우드 진출 이후의 작품에서는 비밀의 폭로가 관계의 단절 혹은 파국과 관련맺곤 했다. 비밀이 삶 속에 자연스럽게 통합되지 못하고 비극적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브로크백 마운틴> 역시 마찬가지다. 에니스와 잭(특히 에니스)에게서는 관계의 지속을 위한, 달리 말해 감추어놓은 비밀을 삶으로 통합함으로써 적극적인 삶의 주체가 되려는 윤리적 태도가 부재한다(물론 이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방목철이 끝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온 에니스와 잭은 각각 다른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가 된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재회했을 때, 추억 속에서만 은밀하게 간직하면 되었을 비밀은 현실의 커튼 뒤에 감추어야 할 버거운 대상으로 바뀐다. 그들이 공모한 비밀은 자유(보로크백 마운틴에서의 낭만적 사랑)와 의무(가족)의 충돌을 낳고, 이는 자신들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연인으로서의 삶, 그리고 그들과 관련된 모든 타자의 삶까지도 황폐하게 한다. 에니스와 잭의 삶을 병렬식으로 보여주는 20년의 시간은 이러한 악순환의 연속이다. 자유와 의무의 충돌을 무협이라는 장르 속에 펼쳐 보였던 <와호장룡>은 장르 고유의 스펙터클이 이러한 주제까지 파악하지 않더라도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보호막 구실을 했다면, <브로크백 마운틴>은 이러한 보호막을 거둬내어, 순간적인 자유를 위해 의무의 영역을 황폐화시키고 굴레 같은 의무에 갇혀 자유를 그리워하기만 하는 악순환의 반복을 통해, 그 버거운 대상에 허덕이는 에니스와 잭의 삶을 날것 그대로 펼쳐 보인다.
영화의 초반부를 제외하고는 질식 이전 상태의 에니스와 잭의 삶을 담아내는(초반의 광활한 자연 장면과 대조적으로 중·후반의 장면들은 실내의 답답한 공기를 담아내는 데 치중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낭만적 사랑에 대한 영화이자 동성애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열정은 있으나 그에 풍덩 빠져들지 못하는 보편적인 인간들의 좌절에 대한 영화에 더 가깝다.
결혼 서약 직후 구토를 하지만, 막상 4년만에 만난 잭과 키스를 나눌 때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에니스, 그리고 이러한 눈치보기를 20년간 반복하는 그는 자신의 삶의 주인이 아니다. 사실 <보로크백 마운틴>의 주인공은 복수(複數)가 아니다. 에니스가 동성애자를 죽였던 어린 시절의 ‘비밀-기억’(그는 잭에게조차 아버지의 짓이라고 거짓말을 한다)에서 도망치는 비겁함을 보일 때, 사라지지 않은 기억의 유령은 사랑의 지속을 위한 윤리적 태도의 가능성을 앗아간다. 동성애자이지만 동성애자를 죽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에니스는 자신이 일조한 사회적 편견에 의해 스스로가 희생되는 모순적 대상이다. 비겁함이 굴레를 만들고, 그럼으로써 ‘비밀-기억’으로부터 소외된 에니스는 남편, 아버지, 연인으로서의 모든 관계와 자기 자신의 삶까지도 황폐하게 만든다.
삶의 오묘한 비극성은 삶의 지혜란 그것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진 이후에야 도래한다는 데 있다. 에니스가 자신이 겪은 비극의 원인이 외부의 편견이나 억압 혹은 신의 운명에서 도래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은 잭의 죽음 이후에야 찾아온다. 현실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목적으로서의 대상을 상실한 이후에 찾아온 깨달음이 허망한 것이듯, 영화 엔딩의 “맹세할게’(I swear)라는 에니스의 대사에서 부재하는 목적어는 ‘맹세’라는 단어에 내포된 미래 지향성을 모호하게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브로크백 마운틴>이 에니스의 삶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에로스’로서의 삶을 완성할 수 있는가를 반어적 방식으로, 즉 ‘우리는 어떻게 사랑과 열정에 빠져들기를 포기함으로써 삶을 망치게 되는지 보여줌으로써 성취해냈다’는 것이리라. 글 안시환(영화평론가) 2006-02-28
수상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