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산행기
1.
막내가 집에 오지 말랍니다. 친구들과의 모임을 집에서 한다고요. 신행 전날이었지요 토요일 아침 하는 수 없이 가평에서 차를 몰고 양주역으로 향합니다. 포천과 옥정 신도시를 거쳐 갑니다. 수도권 제2 순환고속도로의 건설과 전철 노선의 연결 등으로 새순이 돋는 듯 변화의 물결이 넘쳐납니다. 평생을 보아왔던 산업화와 도시화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삶의 질과 조화를 잘 이루기를 바래봅니다. 너만 잘하면 된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한 시간여 만에 양주역에 도착합니다. 차림은 청바지에 작업화입니다. 두 달 만에 참여하는 산행이라 설레기도 합니다. 신발끈을 묶으면서 문득 마음의 끈을 묶는 듯한 느낌입니다. 새로운 길에 서있습니다. 불곡산을 처음 들어 보았습니다. 해발 470미터로 ‘대동여지도’에 양주의 진산으로 나와 있답니다. 남쪽의 의정부 일대와 동쪽의 3번국도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 보고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보루성’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지형적 여건 때문에 고구려는 불곡산 능선을 따라 9개의 보루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보루성은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곳에 돌로 쌓은 작은 산성이랍니다. 안내표지만에 따르면 주봉인 상봄이 6보루, 상투봉이 7보루, 임꺽정봉이 8보루라고 하네요.
양주역 2번 출구에 반가운 얼굴들입니다. 버스를 타고 양주시 소주면 막걸리에서 내립니다. 정확하게는 양주시청 등산로 입구입니다. 희용형이 오늘의 등산코스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양주시청주차장 — 상봉 — 상투봉 — 임꺽정봉 — 악어능선 — 대교아파트입니다. 불곡산 등산로 안내판과 불곡산 기암괴석 표지판이 나란히 서서 산행객들을 맞이합니다.
이제 계획대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날씨는 쾌청하고 숲은 다정합니다. 햇살은 따뜻합니다. 오르는 길은 오르막과 평지가 교차하면서 적당한 긴장감이 좋습니다.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계단을 오르니 첫 기암괴석 팽귄바위가 반깁니다. 시원한 조망을 배경으로 너럭바위의 경사면에 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계속 오르다 보니 5보루 안내판이 서 있는 곳에 서너명의 산행객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들어보니 5보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5보루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한 분이 나에게 “어르신이 모르면 우리가 어떻게 알겠느냐고 답합니다. 제가 어느덧 ‘어르신’이 되어 있었습니다. 흐흠~~~
한동안 ‘어르신’에 대한 얘기가 오갑니다. 9시 25분으로 착각 기다리는 중이며 나이가 들어가니 자꾸 바보가 되가는 것 같다는 왕눈이 ‘어르신‘의 이야기입니다. 인생 100세 시대라지만 75세가 되면 절반이 소풍을 마치고 80이 되면 30퍼센트만이 아직 소풍을 즐기고 있다고 산바람 ’어르신‘이 말씀하십니다. 백내장 수술을 했다는 감자바우 ’어르신‘의 말씀을 듣다가 달라무 ’어르신‘이 이명 때문에 잘 못 알아듣고 답답해 합니다. 오가는 말들은 숲의 향기와 바람에 얹혀 그저 즐겁습니다. 거기에 귀들도 순해지셔서~~
어느덧 상봉에 이르러 뿌듯한 인증사진을 찍습니다. 어느 쵸여름 날 불곡산의 품에 들었다는 편안함입니다. 정상 아래 그늘에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습니다. 총무님이 준비해온 김밥, 족발, 달콤한 소주, 회장님이 준비해온 과일, 시원한 캔 맥주입니다. 이제 ’어르신‘이 되고 나니 맛난 것도 먹고싶습니다. 근데 딱 먹고 싶은 맛난 음식이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그저 한잔씩 돌리는 소주는 세월의 맛이요 시원한 맥주는 지난 청춘의 위로입니다.
상투봉 방향의 계단으로 내려가다 보면 거북바위가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크지 않은 산에 거대한 바위들이며 그 틈에 자리잡고 있는 기암괴석들을 보노라면 그저 자연은 본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상투봉을 지나 임꺽정봉으로 가는 길에 생쥐봉이 나오고 다음으로 여성봉이 나옵니다. 암릉구간을 지나면서 물개바위를 마주합니다. 누군가 불곡산을 바위동물원이라 하더니 그럴 듯합니다.
임꺽정봉에 다다릅니다. 왜 임꺽정이 의적이 되었는지 왜 이봉우리가 임꺽정봉이 되었는지 이해가 됨직도 합니다. 불곡산의 전체적인 모습이 간단치 않다는 느낌입니다. 조용히 한 번 더 와보고 싶어집니다. 조선의 3대 도적은 임꺽정, 홍길동, 장길산이고 현대의 3대 도적은 연규진, 비, 그리고 간장게장이라는 희용형의 아재개그를 들으면서 하산을 합니다. 하산 시 악어능선과 대교아파트 길을 놓고 산바람형과 희망형이 팽팽하다가 악어코스로 결정이 납니다. 산바람 형의 말발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니 빙긋이 웃습니다. 그 미소가 따뜻했습니다.
악어능선을 내려오면서 공기돌 바위와 아기 물개바위를 만납니다. 그들에게 인사하니 그들도 반갑다고 웃어줍니다. 악어능선의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악어바위이겠네요. 가까이 가면 물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대교아파트에 이르러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버스를 기다래면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습니다. 바로 산행 맛이었지요
2
산행기가 늦어도 너무 늦었습니다.
’어르신‘이 되면서 흔들리기도 하고 생각이 많기도 합니다.
불곡산을 오르면서 마음의 끈도 다시 묶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연히 마주한 박노해 시인의 글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시 꿋꿋이 살아가는 법
박노해
일단 꼬박꼬박 밥 먹고 힘내기
깨끗이 잘 차려입고 자주 웃기
슬프면 참지 말고 실컷 울기
햇살 좋은 나무 사이로 많이 걷기
고요에 잠겨 묵직한 책 읽기
좋은 벗들과 좋은 말을 나누기
곧은 걸음으로 다시 새길을 나서기
첫댓글 산행기 늦었다 누구하나 재촉하지 아니하고
나이많이 먹었다 누구하나 홀대하지 아니하니
어르신! 산악회에서 다시한번 꿋꿋하게 살아가시길
산행기 맡기기를 잘했군. 늦긴 했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네. 3대 도둑 중 하나는 연규진이 아니라 그의 아들 연정훈이라네. 이밖에도 사소한 오타가 두어 개 눈에 띄지만 천의무봉 글솜씨에 흠집 낼 정도는 아니어서 입 다물기로. 농번기에 수고해줘서 감사. 근데 갈 데 없어 산행에 동참했다니 서운하군.
회장님 막내가 집에 오지 말라는건 전날 저녁이에요 일요일 산행은 행복^^
@달라무 금요일 저녁 집에 오지 말라고 해서 토요일 가평에서 차를 몰고 왔다는 뜻이구만. 착각했네. 미안. 일요일 산행은 뭥미? 오타겠지?
@희망과용기 형 연정훈 토요일 산행~~ 큰일이네요 ㅎ
@달라무 지적질 당해도 귀가 순해져 안 거슬리지?
@희망과용기 이명때문에 안거슬려요 ㅎ
잘 읽었습니다.^^
'어르신'들의 산행기 재미있네~~ 다들 각자가 향하는 어르신의 길로 씩씩하게 나아가기를...
달라무 글 잘 읽었어~~
씩씩하게 나아갈려고 날마다 운동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