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떠나고 있음에 대한 반성
- 글공부와 노동을 병행하도록 권장해야 한다 -
장 기 홍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아이들이 어른 뺨칠 만큼 어른 흉내를 잘 내고 어른과 꼭 같은 언행을 하여 시선을 집중시키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러구러 매스컴은 그런 아이들을 장려하고 있다. 그런 어른-아이들의 양산(量産)이 시청각문명과 함께 촉진되고 있음은 염려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면서 아이로서 자라고 사춘기 때는 또 그렇게 사춘기를 누리며 자라다가 어른이 되면 어른답게 성숙해야 하는데 요즘은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바로 어른이 되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서서히 졸자라야 하는데 너무 올되어버리는 것은 하나의 재앙이다.
헥켈(Haeckel)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개체(個體) 발달은 종족(種族)발달을 반복한다.’는 것인데 ‘반복’ 대신에 ‘표현’이라 해도 좋다. 사람은 척추동물로서, 고생대의 고기의 단계를 거친 계통의 후예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는 해수(海水)에 해당하는 양수(羊水) 속에서 고기 모양을 하고 있다가 밖으로 나와서 비로소 코로 숨을 쉰다는 그런 순서를 밟는다. 말하자면 생략(省略) 반복이다. 상세한 것을 개체발생에서 다 반복하지는 않아도 건너뛰면서 약식(略式)으로 반복한다는 이것이 헥켈이 처음 발설한 일종의 ‘법칙’이다. 반복발생(palingenesis)이라고도 한다.
개인이 태어나 아이에서 차츰 어른이 되는 것은 원시인이 고대 중세를 거쳐 현대인이 되는 과정과 같다. 그러므로 사람의 일생에는 많은 것이 축약되어 들어 있는 것이다. 너무 많이 생략하고 건너 뛰어버리는 것은 원시인이 갑자기 현대인이 되는 것 같아서 고대, 중세, 근대, 근세와 같은 발달단계를 상실함과 같다. 이 어떤 손실이 아닌가? 요즘처럼 아이가 곧바로 어른이 되면 사춘기 때의 그 특이한 정서발달과 이팔청춘의 그 낭만을 추억할 것이 없어진다는 말이니, 그러한 추억은 반드시 시인(詩人)만의 소유가 아니라 누구나 누릴 큰 특권이요 재산임에 비추어보면 크나큰 손실이다. 요즘의 어른아이는 그 부(富)의 유산을 놓치고 마는 셈이다.
시청각문명이 만든 너무 올 자란 ‘어른아이’는 자연에서 멀어진 인간의 한 예에 불과하다. 실로 현대인 혹은 초현대인은 자연에서 너무 떠나 인위 인공 속에서 살고 있다. 나의 손자 하나는 이제 중학생이 되었는데 밤 11시가 되어서야 학교에서 귀가한다는 것이다. 공부를 그렇게 반강제로 인공적으로 시켜서는 안 된다. 지식을 전달하는 그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으나 스스로 되는 공부와 보조를 맞추어야지 공급되는 분량이 너무 많으면 억지 공부가 되어 체해버린다. 이는 마치 요즘 저 낙동강이나 여러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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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江河)가 자정(自淨)능력 이상의 짐을 떠안아 오염된 결과 인위적 과학기술적 정화(淨化)과정에 의지하고 있음과 같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강물을 떠다먹고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예산을 들여서 물을 인공적으로 거르고 화학적으로 맑게 하여 상수도로 공급한다. 자동적 자발적으로 순환하던 자연의 그 순환을 문명이 파괴하고 말았다. 사람도 자연적으로 공부하고 자연적으로 공부가 되던 것을 인위적으로 주입(注入)하고 강제적으로 다그치고 있으니 이것도 인간이 자연을 떠난 한 측면이다.
자연을 떠난 현황을 말해보자면 한이 없다. 합창단 단원만 되더라도 요즘은 여성이면 목덜미와 그 아래를 벗는 서양천통이 도입되어 젖통이 아슬아슬 보여야 하는 통에 실리콘으로 젖을 키우는 확대수술의 유혹을 받는다. 몸매가 문제가 되는 직업을 가진 여자들은 유방수술을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려나기 때문에 거의 모두가 수술을 한다. 코, 얼굴, 쌍꺼풀 등등 인공 인위가 너무 판을 친다. 남자도 얼굴에 손을 대야만 면접에서 유리하다는 것은 상식이 되어 있다. 이 모두가 자연을 떠난 인간의 모습이다. 성형수술은 대한민국이 최첨단이라 하니 문명의 못된 것부터 먼저 따 안은 결과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자연으로 돌아갈까? 아니 조금이라도 천천히 자연을 떠날까 하고 생각해보지만 도도한 물결을 대항하기 힘들다. 그러나 미래를 생각하면 인류의 살 길은 인공을 줄이고 자연을 될 수 있는 대로 보존하여 간직하는 그 길 밖에 없다. 자연이란 ‘자연계의 전통’이다. 이 전통은 수십억 년에 걸친 전통이다. 우리는 조상의 문화전통을 헌신짝 같이 버리기를 삼가야 하듯이 자연을 저버리는 일을 삼가야 한다. 문명이 덮어놓고 좋다는 생각부터 반성해야 한다. 어서 발달하고 개척하고 외적 진보를 서두는 우행을 삼가야 한다.
원시시대에는, 그때의 원형(原型) 인간은, 제가 먹을 것을 제가 마련했다. 그것이 인간의 기본이다. 그런데 지금은 일은 기계가 하고 노동은 노동자들이 맡아 하고 일반인은 몸을 움직여 노동하는 일에서 떠났다. 그 결과 운동부족이 되어 병이 떠나지를 않는다. 어딘가 잘못되어 있으나 문명의 결과여서 예사로 알고 있다. 나는 밭에 채소를 심어놓고 돌보면서 ‘사람은 삽이나 호미를 들고 자연스런 운동을 해가면서 공부를 해야 공부도 잘 된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느낀다. 한편 내 손자나 같은 반 중학생들 공부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앞으로 교육당국은 글공부와 노동을 병행하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뒤돌아 자연으로 조금이라도 나아가기다.
자연은 인간이 그 속에서 자라온 환경이기 때문에 자연을 떠난다는 것은 실낙원(失樂園) 곧 그지없는 불행이다. 갖가지 부자연이 따를 것이니 영육(靈肉)간에 이상(異狀)이 올 것이다. 농사는 사람의 자연스런 수양과정이었다. 날씨와 기후에 운명을 맡기며 느긋하게 농사를 지으며 긴장을 풀고 살았었다. 문명이 발달하여 살기가 좋아질 것 같았는데 바쁘고 긴장되기는 전보다 더 하다. 정신병은 증가하고, 전염병도 더해가는 추세다. 어쩔 수 없으나 알기는 똑바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자연을 간직하여 덜 빨리 망하고, 살아날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생사(生死)의 기로에서
강 병 조
며칠 전 알코올 중독 환자가 입원하였다. 전날 밤에 숨을 못 쉬어 어느 종합병원 응급실에 갔다가 병실이 없어서 우리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입원시킨 후 잠시 다른 병실에 회진하러 간 사이에 수간호사님으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이 환자가 경련발작을 한다는 것이었다. 경련 발작에 대한 주사를 지시하고 빨리 가보았더니 정말로 심한 경련 발작을 하고 있었다. 얼굴은 새까맣고 숨을 못 쉬어 곧 죽게 되었다. 겁에 질려 인공호흡을 시키던 중 한참 만에 숨을 쉬었다. 정말 1-2분만 더 숨을 쉬지 않았더라면 죽었을지 모르는 순간이었다. 생사의 기로에서 용케도 살아났다. 기관지 분비물이 기도를 막았으면 즉사하였을 것이다. 다행히 숙련된 간호사님들과 보호사님들의 응급처치가 이 환자를 살린 것이다. 기독교식으로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이 환자가 기독교 신자였더라면 아마 간증할 자료가 될 것이다.
정신과 의사 40년 생활동안 간질 환자들의 발작은 무수히 보았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의 금단증상으로 생기는 경련발작은 필자도 처음 보았다. 급히 보호자를 소환하여 상의한 후 외래 통원치료 하기로 결정하였다. 약을 지어주고 퇴원시켰다.
며칠 후 외래로 왔다. 이 환자는 멀쩡한 정신으로 씩씩 웃으며 말하였다. "지금까지는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고......". 필자는 죽다가 살아난 이 환자를 보면서 <인간이란 정말로 어리석은 존재이다>하는 생각을 하였다. 숨 못 쉬고 새까맣게 넘어가는 자기 모습을 이 환자가 보았더라면 과연 다시 술을 마실 수 있을까?
의사인 필자 자신도 내 몸 속에서 무슨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며 오늘도 희희낙락하고 있다. 폐에서 암세포가 자라고 있는지, 간에서 지방이 차이고 있는지,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콜레스테롤에 의해서 막혀가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며 영원히 살 것으로 착각하고 오늘도 기분 좋게 살아가고 있다.
핸드폰이 삑삑 소리를 내어 열어 보니 문자 메시지가 왔다. 필자보다 한 해 후배인 의사가 사망하였으며 그의 장례식장을 알려주는 대구시 의사회의 통지문이었다. 절친한 동료요 후배의 부고(訃告)를 받고 나니 정말 인생이 무상(無常)하고 허무(虛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개고(一切皆苦), 열반적정(涅槃寂靜).
인간은 무명(無明)에 싸여서 괴로움을 받고 있다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다. 초기불교를 전공하신 각묵스님은 무명을 <사성제(四聖諦)를 모르는 것이 무명>이라고 분명하고 쉽게 정의를 하셨다. 사성제는 고집멸도(苦集滅道)를 말한다. 인생은 괴로움의 바다이다. 이 괴로움은 애착, 집착, 욕심에서 온다. 이 애착, 집착, 욕심을 버린 상태가 멸(滅)이며, 열반(nirvana)이며, 극락이다. 이런 괴로움이 없는 멸, 열반, 극락에 도달하려면 도(道)를 닦아야 한다. 이것이 석가모니가 6년의 고행 끝에 깨친 위대한 진리이다.
도(道)란 무엇인가? 그것은 팔정도(八正道)를 말한다.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는 여덟 가지의 길을 말하는 것이다. 시골 사람이 서울을 가는데 고생하지 않고, 빠르게, 경제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가는 고속도로를 가르쳐준 것이다.
알기는 쉬우나 실천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길이다.
(1) 정견(正見)
(2) 정사유(正思惟)
(3) 정어(正語)
(4) 정업(正業)
(5) 정명(正命)
(6) 정정진(正精進)
(7) 정념(正念)
(8) 정정(正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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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지 시 항 : 2009년 5월 모임
3木 모임 -- 2009년 5월 21일 (목) 7 시
장소: 경북대학교병원 606병동 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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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파일:1]</p>